주의
근육병아리는
요리에 관한 어떤 정식 교육도 받은 적 없으며,
오직 유튜브와 만화책으로만 수련 중인 야매 수산인으로
기사에 담긴 그 어떤 레시피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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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고수, 등장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평화롭던 노량진 무림에 의문의 검객 하나가 등장한다.
그 검사의 이름, 흑점줄전갱이.
일명 '시마아지'라 불리는 그 의문의 검객은 펑펑 터지는 지방과 사각사각한 식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초식을 쓰며 무림의 고수들을 일격에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단숨에 여름 횟감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몇 해 지나지 않아 민어 농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강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흑점줄전갱이가 여름 노량진에 우뚝 서게 된 배경에는 사실, 강호를 씹어먹으려는 신흥 전갱이문파의 거대한 음모가 있었다. 전갱이의 공습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겨울 전갱이, 대방어였다. '제철 대방어는 참치 뱃살과도 안 바꾼다'라는 대범하고도 호방한 풍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그 녹진한 맛에 현혹되기 시작한다.
기름이 잔뜩 오른 8kg 오버사이즈 겨울 대방어를 해체해 분할 판매하는 업장들이 대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전국의 방어 맛집엔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날씨에도 웨이팅이 속출하기 시작했으며, 방어의 주산지인 제주 모슬포나 강원 고성 등지엔 오직 방어 배꼽살을 먹기 위해 방문을 감행하는 미슐랭 쓰리스타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인스타그램을 수놓았던 것이다.
그르타. 대방어는 현재, 겨울 횟감계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강자다.
그러나, 전갱이과 생선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제철에는 내공이 미친 듯이 치솟지만, 산란을 마치면 급격히 살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특히 방어는 그 간극이 극단적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피크를 찍는 방어의 기름은, 뭔가 이제 좀 봄 냄새가 나는 건가? 싶으면 대회를 앞둔 보디빌더마냥 몸에 지방을 모조리 커팅 해버리는 아나볼릭한 녀석들이다. 어촌 마을에서 '여름 방어는 개도 안 물어간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자연의 섭리인 걸 별수 있나. 겨울에 먹었던 방어의 그 기름진 맛을 떠올리며 다음 찬바람이 불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바다는 넓고 생선은 많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방어만큼 미식가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선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틈을 치고 들어온 것이 바로 이 흑점줄전갱이 되시겠다. 겨울 전갱이가 잔뜩 끌어올린 수요를 그대로 받아 성공적으로 노량진에 정착하여 전갱이문파의 아성을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겨울 - 방어 / 여름 - 흑점줄전갱이
로 이어지는, 원투펀치 '노량진 전갱이 유니버스'가 완성된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살이 빨리 물러지는 방어에 비해 살성마저 단단해서 사각사각한 좋은 식감을 내는데, 이것은 단지 활어로서의 가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숙성의 세계로 넘어갔을 때 엄청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
셰프들 입장에서 흑점줄전갱이는 선택권이 좁은 여름 시즌에 탐나는 종목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맛있는 녀석인데다가, 적당한 식감과 함께 입안에서 기름과 감칠맛을 와르르 쏟아낼 수 있는 '숙성의 구간'마저 넓은 생선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흑점줄전갱이는 중량이 2~3kg만 되어도 그 포텐이 이미 풀충전 되어 있기 때문에, 대민어나 대농어처럼 큰 생선들에 비해 접근성도 좋다.
이러한 전차로, 흑점줄전갱이가 능히 여름의 노량제일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강호를 뒤흔든 무시무시한 이 검사 뒤엔, 이 모든 큰 그림을 그린 무림의 흑막이 있었으니...
아이고,,, 이 검사들이 아니고..
아무튼. 이놈들의 뒷배는,
바로 이 사람들.
노량진 세계관의 끝판왕, 중도매인들이다.
중도매인들의 역할은 단지 물건을 중계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물동량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함과 동시에,
수산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서 유통 루트를 구축하고 시장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항구와 국내외 양식업체의 정보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들은, 말하자면 시푸드 프로듀서인 셈.
출처 - 링크
최근 노량진에서 가장 신박했던 건, 양식 활전갱이의 등장이었다. 개체 특성상 살려서 들어오기 어려운 빵 좋은 전갱이 활어회를, 낚시를 하지 않고도 맛 볼 수 있게 된 일대 사건으로, 새벽 노량진 쇼핑객들과 회 매니아들의 가슴을 두 근 반 세 근 반으로 쪼개버렸던 것. 이 역시, 노량진 중도매인들의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노량진수산시장 건물 모처에 개관한,
상인 연합 체력단련실.
밤새 전투를 마친 중도매인들이
이곳에서 다음 날을 위한 체력을 기른다.
새벽의 검투사들, 파이팅.
전갱이파의 인장
3일 후,
김치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녀석을 깨워 만져보니, 때가 되었다. 지금이다. 숙성 곡선의 상한선.
얼핏 보면 뭔가 볼품 없어진 것 같지만,
그거슨 순전히 기분 탓이다.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기름과 감칠맛이 한껏 치솟은 상태. 퍼펙트다.
전갱이과 녀석들은 회를 치기 전에 반드시 치러야 할 의식이 있다.
전갱이 집안 애들한테는 꼬리 측선에 솟은 날카로운 비늘이 있다. 바로 모비늘. 흑점줄전갱이는 좀 짧은 편이지만 전갱이는 꽤 길다.
아무튼 이 모비늘은 상당히 날카롭기 때문에, 생선이 살아있을 때나 숨이 떨어졌을 때나 자나 깨나 조심해야 한다.
생선 비늘에 손이 베이면 생각보다 엄청 아픈 데다가, 어디 가서 왜 다쳤다고 물어보면 사실대로 말하기에 뭔가 좀 창피해서 누가 시비 걸어서 한 따까리 했다느니 하는 한심한 핑계를 대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칼을 넣어보니,
기름이 쏟아진다. 누군지 몰라도 오늘 이 완벽한 살점을 맛볼 사람들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어체공학적 탐구
눈썰미가 좋은 독자들은 이쯤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 병아리자식이 왜 평소처럼 생선 머리를 진작에 떼어내지 않고, 계속 붙여두는 걸까??
그 비밀은 바로, 이 꼬챙이에 있다.
얼마 전에 자려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어느 랜선 스승님 채널에서 엄청난 걸 봐버렸기 때문이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근병에겐 무분별한 유튜브 시청이 회칼 들고 혼자 뻘짓하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미 그른듯..
뭔가 순조로운 듯했으나, 이내 난관에 봉착했다.
빳빳하게 치솟아야 할 꼬리 부분이, 피 빼는 과정에서 너무 세게 내리쳤는지 너덜너덜 해진 것.
큰맘 먹고 딴 데 쓸 일도 없는 꼬챙이도 샀는데, 이제 와서 때려치울 순 없는 노릇. 과감하게 꼬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설계를 도모해 보자.
높이를 맞추는 게 쉽지 않다. 꼬리를 맞추면 본체가 무너지고 본체를 맞추면 꼬리가 흉하게 따로 논다. 역학적 이해가 호기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눙물나는 상황.
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7차 교육과정 문과생.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아무튼 조지면 쉬발 언젠가는 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찾은 황금 균형. 흔들림 없는 편안함, 에이스 접시.
마치 방금 물속에서 튀어 오른 듯, 노량진 여름 깡패의 힘찬 기상을 구현한 어체공학적 설계가 완성되었다.
이제부터 일사천리다.
우리가 어떤 민족 입니까
무를 주쎄요.
요대기를 깔고,
비싼 시소잎 대신 깻잎으로 실속 인테리어.
기름이 콸콸콸.
72시간의 숙성을 받아 낸 살의 탄력이, 제법 훌륭하다.
숙성회 간지가 나도록 커팅을 한 다음,
등살은 등칸에,
뱃살은 배칸에, 일명 수구초심 플레이팅.
흑점줄 전갱이 3D 모둠 스페셜 한 접시 완성.
오늘은 테이크 아웃 주문이라, 배달을 해야 하는데..
새로운 플레이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어떻게 가져갈지 까지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70년대 냉면집 스타일로 접시째 배달. 걸음걸음마다, 행인들과 길고양이들의 관심이 한 몸에 쏟아진다.
배달의민족 주문~
배달팁 : 만나서 꽁술 결제.
아마도, 이 녀석은 유서 깊은 상수동 위스키바에 처음 들어온 날생선대가리로 기록될 예정.
전갱이과 생선회와 피트 위스키의 조합이 아주 좋다는 갤러리들의 품평.
갑자기 분위기 이마트 시식코너.
이것이 그의 장렬한 최후인듯 하였으나,
흥이 오른 바텐더의 즉흥 요리.
아 업소 오븐은 못 참지.
미쳐버린 턱살.
갑자기 시작된 갤러리들과의 포트럭 파티.
털보 아저씨랑 돌고래 아저씨랑 회 썰어 먹다가 이렇게 나와서 음식을 나눠 먹으니,
뭔가 분위기가 사뭇 다른 거 같고.. 기분이 들뜬다.
뭐지. 왤까.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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