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활을 위해 일본군이 부린 갖은 꼼수
1945년 8월. 그러니까 패전 직전에 일본 육군과 해군의 총병력 수는 거의 700만 명에 이르렀다. 자, 문제는 미국은 일본의 군대를 철저히 해체하려고 작정했다는 거다.
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가
USS 미주리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 당시 일본은 모든 꼼수를 동원해서 자신들의 군대를 유지하려고 했다(후대를 위한 종자를 남겨놓겠다는 생각).
"너희 군대 다 해체해! 너희 틈만 보이면 사람 뒤통수치려 하니까. 아예 군대를 없애버려야 해!"
"아니, 너희 말은 다 이해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치안 병력은 유지해야 하는 거 아냐? 이대로 내버려 두면 사회가 혼란해진다니까 그러니까 우선 경찰 25만이랑, 헌병 22만 정도만 남겨 놓자 응?"
"어디서 밑장을 빼! 너희 무조건 군대 해체해야 해!"
일본의 '헌병' 꼼수는 한반도에서도 사용했다.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 한국인들이 들고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제17 방면군 즉, 한반도에 주둔한 일본군을 동원해야 했는데 만약 군대를 동원했다간 이후 문제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헌병의 수를 대폭 늘렸던 거다. 훗날 미군이 시비를 걸어도 자신들은 단순 경비를 위해 헌병을 동원했다고 변명하고자 함이었다. 실제로 미군이 주둔하기 전까지 일본은 멀쩡한 보병에 헌병 완장을 채워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일본은 다시 한번 꼼수를 둔다.
"야, 군대 해체하는 건 인정! 근데...덴노(천황)는 어떻게 하냐? 응?"
"덴노? 너희 덴노가 왜?"
"우리 덴노를 누가 경호하냐고! 덴노를 경호하기 위한 근위 사단 하나는 남겨놔야 황궁 호위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어디서 또 약을 팔아! 경찰은 뒀다 뭐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군대는 싹 다 해체해 버려!"
덴노를 경호하는 근위 사단이란 명목으로 군대의 명맥을 남겨놓으려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일본은 이렇게 자신들의 군대를 끝까지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완전히 박살이 났다. GHQ(General Headquarters, 연합군 최고 사령부)는 일본 제국군의 흔적 자체를 없애려 했다. 그 일환으로 1945년 11월 군인 연금을 아예 없애 버렸다. 12월에는 거의 모든 부대와 조직을 해산했고, 정부나 국가단체에 있던 군인 출신 인사들도 깡그리 솎아내서 쫓아냈다. 이에 더해 군에 협조적인 민간인들도 모두 쫓아냈다.
당시 미국은 작정하고 일본 군대를 해산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문제는 '바다'였다. 일본은 해외 식민지와 점령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다시 일본 본토로 데려와야 했다. 아울러 일본 근해에 해상봉쇄를 위해 던져놓은 기뢰(機雷)도 제거해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해군 병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외 식민지와 점령지에 있던 패잔병들의 귀환 업무를 위해 만들어진 게... 정확히 말하면 육군성과 해군성의 이름을 바꾸어 만든, 제1 복원성과 제2 복원성이다. 아울러 기뢰 제거를 위한 소해(掃海, 안전한 항해를 위하여, 바다에 부설한 기뢰 따위의 위험물을 치워 없애는 일) 부대 1만 명 정도가 남겨지게 된다. 이 소해 부대가 나중에 해상보안청이 된다. 얘네 들은 기뢰도 제거하면서,
"아니, 당장에 바다를 내버려 두면 밀무역도 하고, 밀입국도 할 텐데... 이거 누가 막아요! 나라가 나라 꼴을 유지하려면 국경 경비부터 해야죠!"
이러면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강변한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준군사조직이란 거다(상당 부분 미국의 해안경비대와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 해안경비대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해상보안청은 나름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과시하며 잘 버텨나갔는데, 1950년 6월... 이들이 다시 한번 날갯짓할 기회를 얻게 된다. 바로 한국전쟁이다.
2. 미군이 다시 부른 일본군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미군이 일본 해상보안청 인원들을 찾는다.
"야! 너희 한반도로 넘어와라!"
"예? 저희가 전쟁에 나가도 되나요?"
"... 뭐 정식으로 참전하는 건 안 되고, 여기 와서 기뢰 좀 제거해라."
실제로 해상보안청 인원들은 한반도로 넘어와 소련과 북한이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는 임무에 투입됐고, 작전 중에 전사하기도 한다. 이 해상보안청은 원래의 '경찰' 임무를 그대로 남겨둔 해상보안청과 해군 기능을 가진 해상경비대로 분리된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이 해상경비대의 장교와 부사관의 98%는 구 일본제국 해군 간부들이 차지한다.
일본 해상보안청 청사
출처-<위키백과>
당연하게도 육군과 달리 해군은 '바다 경험'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해경 출신 중 상당수가 해군 출신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해경 입장에서 해군 출신은 '즉시 전력감'이기에 환영할 수밖에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이 해상경비대가 경비대가 됐고, 한국 전쟁이 끝난 1954년 7월 1일 우리가 알고 있는 『해상자위대』가 된 것이다.
해상자위대가 항공자위대나 육상자위대와 달리 유달리 일본 제국군의 모습을 자주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들은 구 제국해군 시절 군함의 이름을 가져와 자신들의 배 이름에 붙이기 시작했다. 욱일기를 사용한 것도 이들이 시작했던 거다. 육상자위대의 경우 나름 '생각'이란 게 있어서 경찰 출신과 구 일본 육군 출신을 비슷한 비율로 선발하여 과거로 돌아가는 걸 막아보는 시늉은 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급격하게 규모를 늘려가면서 구 제국 육군 출신 인원들이 '잔뜩' 들어오게 된다.
공고급 구축함(Kongō class destroyer) 중 하나인
JS 기리시마
출처-<위키백과>
어찌 됐든 일본 해상자위대는 고스란히 '일본해군'을 계승한 존재란 게 분명하다. 당장 구레 지방대(구레 기지)만 봐도 그렇다. 히로시마현 구레시에 있는 해상자위대 지방대 중 하나인데, 이 구레항은 일본 해군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당장 메이지 시절인 1889년 구레진수부가 만들어진 이후, 일본 해군의 핵심 기지로 분류됐다(1886년에 일본은 전국 5개의 해군구를 지정하고, 각 구 군항에 진수부를 두기로 했는데, 구레진수부가 그 5곳 중 하나였다. 일본 제국 시절에 '구레진(呉鎮)'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 자리에 들어선 해상자위대 구레지방대는 자신들의 부대창설 연도를 말할 때 18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메이지 시절부터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뼈대 있는' 부대란 거다.
구레 지방대 본청과 위치
출처-<위키백과·구글맵>
"우리는 일본 해군이라니까!"
를 말하는 터이다. 툭 까놓고 말해보자. 지금 해상자위대라 불리는 일본 해군의 실력은... 예전 제2차 세계대전 터지기 직전의 그것처럼 세계 3위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건 다들 인정하지 않는가? 냉전 시절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방벽으로, 지금은 중국을 틀어막는 방벽으로 활약하는 게 지금의 해상자위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처럼 메이지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게 맞다. 그들은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고, 21세기 레이와 시절까지 살아남았다.
3. 나라에서 관함식을 하는 의미
2015년 일본 도쿄 남쪽 사가미만에서 진행한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
출처-<한겨레>
일본 제국 해군의 마지막 관함식은 1940년에 있던 황기 2600년 기념 관함식이었다(다시 말하지만, 관함식이란 건 그만큼 평화롭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쟁 중에 관함식을 할 겨를이 있을까?). 이후 일본에서 관함식이 부활한 건 1957년이었다.
"씨바 우리 제국 해군은 사라졌지만, 욱일기도 있고, 배도 이만큼 모았는데... 한 번 관함식 해보자!"
"그래, 씨바 옛날 기분도 내고... 배 한번 거하게 띄워보자!"
이후에 부정기적으로 관함식이 이어지다가 1981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치르게 된다. 왜 3년이냐면, 육상 자위대의 중앙관열식, 항공자위대의 항공관열식, 그리고 해상자위대의 관함식이 로테이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매년 11월 1일이 되면 자위대기념일이라고 해서 육상 자위대는 아사카 주둔지에서, 항공 자위대는 햐쿠리 기지에서, 해상 자위대는 요코스카 지방대가 있는 요코스카 기지에서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각 병종끼리 나름의 기 싸움이 있는 거다.
"아니, 씨바 해상자위대만 뽀대 나게 뭐 하냐? 하려면 다 같이 해야지! 우리도 예쁘고, 쌔끈한 장비 많아!"
"그래, 바다에서 배 띄우는 게 뭐 볼 게 있어? 하늘에서 쫙하니 에어쑈하면 이게 얼마나 볼 만한데..."
일본이 제국 시절에 해군의 관함식과 육군의 관병식이 서로의 전력을 뽐내며, 서로를 견제했던 것의 연장선상이다. 자 그렇다면, 이 관함식의 뭐가 잘못된 걸까? 뭐가 문제이기에 언론에서 흥분하며 떠든 걸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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