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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영국에 새로운 총리가 당선, 취임했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엘리자베스 리즈 트러스(Mary Elizabeth Liz Truss)".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전 마지막 사진에 함께 등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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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으로 영국의 새총리를 먼저 봤을 수도 있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긴 마지막 사진 중 하나이자,

서거 이틀 전 사진으로 뒷모습이 바로 리즈 트러스 총리다. 

 

전통적인 보수 우파 성향의 데일리 메일은 총리가 선출된 다음 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다. 달라질 게 없다는 논조의 기사를 실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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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런 기사!

 

 

지난 12년간 브렉시트를 비롯해 결과적으로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활개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NHS(국민 보건 서비스)를 비롯한 공공영역의 서비스까지 엉망이 된 영국인데 총리에게 기대가 전혀 없다고? 으응? 그럼 왜 총리로 뽑은 거야? 

 

자, 세상 돌아가는 썰에 관심도 가질 겸 썰 한 번 풀어보자. 

 

 

영국 새 총리는 논스톱 국정운영이 된다? 

 

9월 7일, 당대표로 선출되어 총리직에 앉게 된 리즈 트러스는 곧바로 국정운영에 투입, PMQ(Prime Minister’s Questions)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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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Q에서 '리즈 트러스'

 

어떻게 당선과 취임이 단숨에 이뤄질 수 있는가 물을 수 있겠지만, 대통령제를 채택해 시행 중인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의회민주주의 - 게다가 단원제의 우리 국회와 달리 양원제(상원/하원)로 운영 – 는 당대표가 총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별다른 인수위원회를 두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질문도, 당연히 생길 수 있다. 

 

다수당은 국가의 내각(Cabinet Office)을 운영할 수 있다. 각 부처 장관 임명은 물론, 그와 함께 일할 차관급 인사까지 여당에게 권한이 쥐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은 야당에도 있다. 이름하여 쉐도우 내각(Shadow Cabinet Office). 명칭 그대로 ‘그림자 내각’이다. 여당이 국정을 운영하는 동안, 야당은 똑같은 직급의 인사를 단행, 임시적이지만 그림자처럼 국정 운영에 가담하여 여당과 방향이 맞을 경우 협조하지만, 반대일 경우 목소리를 내어 보다 좋은 안을 실행토록 권고한다. 

 

물론, 쉐도우 케비넷이 내각과 같은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시간 국정운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언제든 여야가 뒤바뀌는 상황이 주어지면 곧바로 모드(Mode)가 전환되어 직접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때문에 별다른 인수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아도, 곧장 국정운영에 투입될 수 있다. 이처럼 야당이어도 바로 국정운영에 투입되는 게 문제없는데, 이번엔 같은 당에서 대표만 바뀐 것뿐, 내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더욱 군더더기 없이 진행 가능했던 것이다. 뭐, 이런 면에선 공백이 없는 영국의회민주주의의 좋은 예시 중 하나랄까. 어쨌든!

 

지난 7월 22일,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슨이 사임한지 40여 일 만에 실시된 다수당인 보수당 경선에서 리즈 트러스(Liz Truss)가 당선된다. 보수당에서 당대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인단 수는 총 172,437명. 이 중 82.6%가 참여했고 81,326표를 얻은 리즈 트러스가 최종 보수당 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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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경선.

리즈 트러스(좌)와 리시 수낙(우).

 

이전 기사(영국브리핑 14: 인도계 정치인은 어떻게 유력 총리 후보가 됐나-링크)에서도 언급했지만,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인기를 누렸던 다크호스 리시 수낙(Rishi Sunak)은, 재벌 2세인 아내의 세금 미납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곤혹을 치렀다. 결국, 60,399표를 얻어 2위에 머물렀다. 인도 계열의 이민자 집안에서 총리가 배출될 것인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있긴 했지만, 인종이나 계층에 대한 이해충돌 이전에, 개인의 세금 납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일단락되었다.  

 

 

또 하나의 '민족정론지' BBC는?    

 

1975년생으로, 현재 47살인 리즈는 201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데이비드 카메론 시절엔 환경부 장관, 테레사 메이 시절엔 법무부 장관, 그리고 지난 보리스 존슨 시절에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BBC는 리즈가 새 총리로 당선된 직후, 위와 같은 뻔한 정보 외에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기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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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리즈 트러스: 영국의 새로운 총리에 관한 빠른 가이드

출처-<BBC> 링크

 

1. 총선(국민투표)를 통해 총리가 된 것이 아닌,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점

2. 역대 세 번째 여성 총리라는 점

3. 리즈 트러스의 부모님은 진보(left-wing) 진영이었다는 점

4. 보수당이 아닌, 자유민주당 출신이었다는 점

5. 브렉시트 국면 당시,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했었다는 점 

 

이 중 사실상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노동당을 지지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학 때는 중도 노선인 자유민주당에 몸을 담았었고, 이후 국회의원 출마 등을 위한 정계 입문은 보수당에서 했다는 것.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는 것인데, 영국인들이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꼽는 ‘뚝심’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게다가 애초부터 보수당 출신이 아니었고, 브렉시트 때에도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줄곧 내오다가 국민투표 이후 찬성에 무게가 실리니 곧바로 태세 전환을 하기도 했다.

 

이런 행적을 통해, BBC는 새 총리가 자신의 뚜렷한 소신보다는 환경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 권력에 대한 욕망에 따라 결정이 좌우되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투표를 통해 검증·선출된 총리도 아니니) 지켜봐야 할 게 많다는 말인 셈이다.

 

두 번째, 세 번째로 여성 리더쉽이 발현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짚어볼 두 가지가 있는데, 마가렛 대처의 경우, 당시 남성들과 같은 언행을 선보이며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남성과 같은 이미지) 오랜 기간 국회를 누빈 끝에 50대 중반이 돼서야 총리로 선출되었던 반면, 리즈 트러스는 1975년생으로 올해 47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리즈는 2006년에는 같은 당 의원과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던 이력도 있다. 이전 여성 총리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유럽 국가 중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9개 국가의 총리가 여성이고,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총 16명이라는 점이다. 전체 유럽의 약 1/3에 해당하는 수치인데, 이러한 여성 리더쉽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추세가,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리즈가 새로운 총리로 발탁되는데 큰 부담 없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조롱의 이유

 

몇 년 전, 브렉시트가 추진되었던 진짜 이유는 거대한 시대적 담론 때문이라기보다는 데이비드 카메론 전 총리의 정치적 야망 때문이었다. 그 야망으로 인한 아젠다가 브렉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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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카메론

 

잘 나가던 토니 블레어(재임 1997.05-2007.06)의 노동당은 이라크 침공이라는, 노동당의 색과는 전혀 반대되는 선택을 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때다 싶었던 데이비드 카메론은 노동당을 공격하며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그 이상 이렇다 할 리더쉽을 보여주지 못했다. 총선에서도 과반을 넘기지 못해 2010년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s)과 연정을 통해 '헝 의회’(hung parliament - 의회 내에 과반을 차지한 단일정당이 없는 상태)를 구성하며 겨우 총리에 취임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카메론은 굉장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확고한 리더쉽을 다지기 위해 아젠다를 제시했는데 하필 그게 브렉시트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프리 트레이드’를 통해 관세 없이 유럽대륙과 자유롭게 무역이 가능했다. 영국 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값싼 농수산물과 식재료를 수입해 온 거다. 또한 북미와 유럽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며 톡톡히 재미를 보던 때였기에 – 물론, EU가입국들의 연이은 도산으로 구제금융 역할을 하며 막대한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 장기적으로 보면 유럽연합 탈퇴는 영국에게 좋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이민정책 방향 등으로 많은 영국인들이 유럽연합에 대한 불만을 갖자, 카메론은 이를 이용해 지지율을 올리고 총선에 이기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서 유럽연합 잔류파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잔류 여론이 더 높게 나온다는 조사 결과만을 믿고, 어차피 반대가 더 많이 나와 브렉시트는 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 표 확장을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한다. 총선에서 보수당은 승리했고 결국 국민투표로 직행, 유럽연합 탈퇴파가 과반을 넘으며 승리... 했다. 유럽연합 잔류파였던 카메론은 반대 여론을 뒤로 하고...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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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바.. ㅈ됐다....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게 테레사 메이 총리다. 국민투표를 했고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으니 탈퇴는 하는데... 탈퇴 이전에 누렸던 유럽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으응?), 모순되면서도 어정쩡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한다. 결국, 최단기간 사퇴하는 여성 총리가 된다.

 

다음으로 등장한 보리스 존슨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겉과 속이 다르고 앞뒤가 다른 주장을, 너무 많이 해왔다. 그 결과, 쫓겨났다. (존슨이 욕먹는 자세한 이유를 다룬 기사 링크 1. 영국 브리핑 18: 문재인이 유럽의 지도자였다면?(feat.영국 지방선거) 2. 영국 브리핑 20: 왜 세습된 여왕은 존경받고 선출된 총리는 욕먹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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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좌)와 테레사 메이(우)

출처-<the Independant>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에 못 이겨 내 걸었던 브렉시트와 함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비드 국면에서 12년이란 세월 동안 보수당이 보여준 리더쉽은 물가상승률 19%를 예상하도록 했고 (결국 망가진 경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실상 국민들의 몫) 무너진 실리외교로 인해 갖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재의 영국이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들이 공공영역까지 침투해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으로 운영을 해오던 NHS(국민 보건 서비스)가 더 망가지며, 코비드 동안 국민들에게 직격탄을 때렸다. 

 

이미 숱한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지만, 그동안 거대한 허울 속에서 숨어 있다가 밝혀진 NHS(국민 보건 서비스)의 실태는 코비드를 통해 세상에 낱낱이 밝혀졌다. 한때 코비드 감염자 수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고, 사망자 수 또한 수십만을 넘어섰으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게다가 예산 문제로 경찰 인원도 감원하였는데, 이후 드러난 치안 문제로 테러와 강력범죄율 증가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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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uters>

 

이러한 총리들과 함께 발맞춰 내각에서 법무부, 외교부 장관으로 일해왔고, 불륜으로 상대방의 정치 인생을 종결시켰음에도 카멜레온처럼 이리저리 색을 바꿔가며 살아남아 온 사람이 새 총리가 되었으니 영국민들의 마음에 들 리 없지 않겠는가. 해서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는 게다.  

 

새 총리가 된 리즈는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을 줄여 나가고 다가올 에너지 위기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했지만, 전쟁으로 끊긴 가스관을 대체 할 수 있는 자원이 금 나와라 뚝딱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뿐일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지지기반이 빈약하고, 뚝심이 보이지 않는 새 총리, 그리고 취임식 날부터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안 그래도 없던 인기가 더 없어진 새 국왕. 이대로라면 영국의 태양은 지금보다 더 빨리 저물 것 같다.

 

... ... 

 

물론,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란 건 나도 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