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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줘. 되도록이면 끝까지"

 

“고민 상담 그거 어케하는 거임?”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하겠다.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 위한 것이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이든 할 거 없이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에 비빌만한 그 어떤 스킬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저 눈을 마주치며 끝까지 잘 들어주었을 뿐인데 헤어질 무렵에는 고민 당사자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던가.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내 마음 가는 대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또한 그저 잘 들어주다가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그렇게 해도 괜찮아”

 

좋은 대화 상대가 되는 법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잘 들어주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러고 보면 대화라는 건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구기종목 운동과 닮았다. 탁구나 배드민턴, 테니스 할 거 없이 점수를 내기 위한 승부 말고 그저 오래 주고받기 위한 연습을 목적으로 할 경우 아무리 개떡같이 쳐서 넘겨도 잘 받아주는 상대가 있는 쪽이 유리하다.

 

끝까지 잘 들어주는 건, 성인병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하고 비슷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보다는 알면서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 그렇다. 몸에 좋은 습관을 실천하는 건 둘째치고 해로운 거라도 덜하면 좋으련만, 끝까지 잘 들어주는 건 둘째치고 남의 말을 자르지나 않으면 다행인 사람이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다. 대화는 승부가 아닌데 왜 자꾸 우리는 네트 넘어 상대가 받아칠 수 없는 빈 곳으로 만 공을 치려고 하는 걸까.

 

‘공감대화’라는, 일종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그저 끝까지 잘 들어주는 모임이다. 다 듣고 나서 이야기한 내용 중에 더 궁금한 부분에 대해 물어볼 수는 있지만 의견이나 주장을 해서는 안 되는 룰이 있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이 모인 공감대화가 있었고 한국, 탈북, 다문화 학생이 모인 공감대화도 있었다. 재일동포, 조선족, 고려인처럼 식민 통치와 분단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이 모여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가 하면 해방 이후 좌익 청년들에게 친척을 잃고 소위 빨갱이 때려잡는 우익 테러 활동을 했던 참가자와 북한군 장교 생활을 하다 탈북한 참가자가 마주한 모임도 있었다.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는’ 일이 가능할까 싶은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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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대화』는 그런 ‘공감대화’들을 정리해 엮어 놓은 책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남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가 만들어내는, 작다면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변화를 『공감대화』에서 만날 수 있다.

 

“네가 함 갔다 와”

 

때는 2013년, 딴지일보의 머리 큰 신입기자 시절이었다. <딴지영진공>의 맴바들이 을지로에서 한 잔 때릴 예정이라는 첩보. 당시 딴지일보 편집장이었던 너부리 편짱이 내린 지령은 그랬다. (썩 마음에 드는 관상은 아니나) 네가 딴지의 새 얼굴이니 괜찮으면 인사도 하고 얼굴도 좀 익혀보라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날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딴지일보 신입 기자라는 내 소개에 다들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는 것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그날이었을 게다. 내가 딴지의 헤비죠를 처음 본 것은.

 

딴지의 헤비죠. 영진공의 맴바로 딴지 초창기부터 글빨 좀 날렸다는 필진. 몹시 큰 키에 포쓰 넘치는 인상. 음악 분야에 굉장한 덕력을 지님.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꽤 오랜 시간 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제법 대단한 인물이었다. 헤비죠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조일동이다. 무려 ‘문화인류학 박사’였다. 그냥 딴지에서 노는 형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방끈이 길었다니. 그냥 덕력 충만한 음덕인 줄 알았는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란다. 그냥 폼으로 음악평론가라고 하고 다니는 줄 알았다. 몇몇 TV프로그램에 문화인류학자 타이틀을 달고 출연하기도 했다. 오오, 네이버 검색창에 이름을 넣으니 프로필이 나온다. 책도 여러 권 쓰고 막 번역도 했다. 딴지에서 노는 형은 알고 보니 유식하고 유명한 형이었다.

 

뭐, 그런다고 그가 딴지의 헤비죠인 게 달라진다는 건 아니다.

 

『공감대화』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그를 충정로 딴지사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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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 하는 형

 

홀짝(이하 ‘홀’) : 그냥 딴지에서 노는 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 대단한 사람이더라.

 

헤비죠(이하 ‘죠’): 대단하지 않은데. 돈에 팔려 다니는...

 

홀: 일단 문화 인류학 박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무도 없거든. 문화 인류학자는 정말 KBS1 방송 틀어야 볼 수 있는데.

 

죠: KBS1에도 잘 안 나오지. EBS나 가끔 나오는 희귀한...

 

홀: 그런데 문화 인류학자는 뭐 하는 사람인가?

 

죠: 이게 한 마디로 말하기가 어렵다. 문화 인류학은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부끄러운 학문이다. 과거 유럽을 보면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가 있고 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있고 언어를 탐구하는 언어학이 따로 있었다가, 식민지를 개척하려고 가보니까 개척? 개척이라는 말도 굉장히 좋게 포장한 느낌이지만,

 

홀: 침략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건가?

 

죠: 그렇지. 가서 그 동네의 가족 구조도 알아야겠고 저 동네의 역사도 뭔지 알아야겠고 저 동네 언어는 뭐가 특징인지도 알아야겠고 저 동네의 권력은 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아야겠고,

 

홀: 어디를 건드려야 약한지도 알아야겠고,

 

조: 맞다. 이를테면 모계 사회에서 ‘아버지를 구워삶으면 권력자가 움직일 텐데’ 혹은 ‘부인을 구워삶으면 움직일 텐데’ 그런 식으로 백날 접근해봤자 안 된다는 거지. 모계 사회에서는 주로 외삼촌이 권력자 거든. 어머니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런 거에 대한 감각이 없이 그냥 가부장적인 유럽인들이 들어가서 여러 번 구워삶아봤자 안 되니까 그냥 총칼로 들어가고, 그러다가 조금씩 들여다보니까 ‘어? 이런 것들을 알았으면 훨씬 더 군사력을 적게 쓰고도(정복할 수 있었겠네?) 그리고 통치도 쉽게 잘해 먹겠다’ 그래서 시작된 학문이 인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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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이고로트족

 

그래서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포괄하고 있는 영역이 엄청 넓다.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제국주의의 성공을 위해 있었던 학문인데, 그래도 내가 하는 학문이니까 좀 화장하면서 멋있는 말로 성찰을 하게 된 거지. ‘우리가 앞잡이였구나’ 하면서. 앞잡이 하면서 얻었던 지식이긴 하지만 다른 문화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다 보니까 비교 문화적인 시선이 길러진 거고. “내가 보기엔 저건 틀린 행동 같은데”라고 말할 때 “저건 틀린 게 아니라 우리랑 다른 행동이야”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거다.

 

홀: 써먹는 목적성이 예전에는 좀 불순했던 거지.

 

죠: 그렇다.

 

홀: 대단한 사기꾼도 인간에 대한 굉장히 높은 이해도가 있어야지 할 수 있는 거잖나. 그러니까 이제는 문화 인류학이라는 게 예전보다는 아름다운 목적을 가지고.

 

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직도 해외의 인류학자 중에는 그 지역에 대한 굉장히 빠른 정보들을 이용해서 개발업자랑 해 먹는 경우도 있다. 국제적인 제약 회사들은 어느 지역에 들어가서 어떤 식으로 실험을 해야 그 지역의 사람들이 항의하지 못할까, 어떤 권력을 얻고 들어가면 별다른 저항 없이 원하는 실험을 할 수 있을까를 알아내는 데에 인류학자를 동원한다. 그런 짓을 하는 인류학자들도 아직 남아 있기는 하다.

 

홀: 문화 인류학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이제 막 알게 된 사람은 ‘야~ 이거 되게 멋있는데 돈 안 되는 일이겠다’라고 생각할 텐데 굉장히 자본과 끈끈히 결탁하고 있었네?

 

죠: 아~ 끈끈하지.

 

홀: 그것도 글로벌하게.

 

죠: 몇 년 전에 LG에서 스마트폰 나오기 전에 그 뭐라고 그러지? 예전 2G폰 시절에 이슬람 가서 대박 났던 폰이 하나 있었거든. 그게 뭐였냐면 이슬람 신도들은 하루에 5번 메카를 향해 절을 하잖아. 당시 LG에서 나온 폰에 메카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이 들어 있었거든. LG가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인류학자를 끌어들였던 거지.

 

홀: 정리하자면 문화 인류학이란 건, 다른 문화권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죠: 그걸 목표로 하고 그러한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문화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지.

 

홀: 타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나 사회학 이런 것들을 다 아우르고 있어야 하는 약간 종합 예술 같은 거네?

 

죠: 그렇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렇게 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그런 총체적인 시선으로 자문화를, 쫌 멋있게 말하면 ‘문화 상대주의적’으로 다시 보는 거지.

 

홀: 그러면 문화 인류학자인 헤비죠가 영화나 음악이나 이런 데 폭넓게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사실 그렇게 어색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죠: 맞다.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지.

 

홀: 이렇게 또 포장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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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그럴듯할 뿐이지 태생은 인간 집단을 효율적으로 등쳐먹기 위한 도구였던 인류학은 이제 그 목적을 인간 집단의 파괴와 약탈이 아닌 이해와 성찰에 두기도 한다.(혹은 그랬으면 좋겠다) 이어서 에스노뮤직콜로지가 어떻고 그게 번역하면 음악인류학 정도 되는데 요즘 BTS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블라블라... 어려운 말이 많아서 이하는 생략하겠다. 어려운 건 나쁜 거니까 대강 문화라는 게 워낙 방대한 영역을 퉁쳐 부르는 말이다 보니 문화인류학자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주 종목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문화인류학자 조일동의 주 종목은 음악과 미디어인 거고.

 

공감대화 : 고립된 섬들의 연결

 

그렇게 문화인류학자들의 다양한 나와바리에 대한 썰을 풀다가 북한 이야기까지 흘러왔다.

 

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서글픈 현실은 어쨌든 이제 우리가 통일 한국을 준비하기 위해서 북한에게 다가갈 때 문화 인류학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해진 게 아닌가, 너무 오래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죠: 그렇다. ‘전혀 다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다른 문화적인 감각 혹은 사고방식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감각, 권력에 대한 감각도 다르고 그거를 어떻게 볼 거냐는 중요한 문제지.

 

홀: 심지어 분단이 지금 한 70년 됐다고 치면, 15세기나 12세기에 70년 분단된 거면 오히려 결합하는 게 별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21세기 이후에 5년, 10년은 밀도가 다르니까. 오히려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10년 차이로 막 세대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식민지 개척 시대에 (서구 열강들이) 다른 문화권에 접근하는 거 이상의 어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죠: 그 시절보다 더 심할 것 같다. 차라리 그때만 해도 인터넷도 없었고 어딜 가나 생활은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먹고사는 게 핵심이고. 뭐 이런 차원에서 보면 전 세계 어딜 가나 비슷비슷할 텐데. 4차 산업혁명 얘기 나오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뭐 1차 산업, 2차 산업, 사람 몸으로 하는 노동에 대해서 감각이 달라지는 이 시대에 여전히 북한의 방식과 변화하는 한국의 방식의 차이는 100년 전 관점으로 보면 몇 백 년 정도의 다른 삶의 방식이 유지되고 있는 거에 비견할 수 있겠다.

 

홀: (방금 우리가 했던 말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내용하고 연결이 될 것 같은데 <공감대화>라는 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죠: 이 책은 우리가 2012년부터 시작해서 2021년 6월까지 했었던 여러 차례의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내가 한양대 글로벌 다문화 연구원이라고 하는 곳에 있을 때 정병호 선생님(책의 공동저자이자 헤비죠의 지도 교수)께서 뭔가 새로운 연구를 해보자고 들고 오신 게 있었다. ‘시민 인문강좌’라고 한국연구재단이라는 곳에서 전국에 있는 대학들이나 연구소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여는 프로그램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거를 갑자기 실험적인 연구를 해보자고 들고 오셔가지고 처음에는 ‘이 분이 왜 그러시지?’ 그랬더니 인문학 강좌를 하는데 학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을 불러서 시민들이 살아온 삶을 학자들에게 들려주는 이런 강좌를 해보자.

 

홀: 이 책에 나오는 ‘삶 이야기’의 어떤 시작 같은 거구나.

 

죠: 글타. 얘기를 듣고도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서 그냥 반신반의하면서 있었는데 안산이라고 하는 지역의 시민들을 부른다고 생각을 해보니까 안산은 지금도 다문화 도시하면 안산을 얘기하는 것처럼 조선족, 고려인도 많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오신 여성들 또 태국, 일본 뭐 16개국 정도가 되고 공식적으로는 11%인데 비공식적으로 한 15% 정도의 인구가 다문화 내지는 외국인 주민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서 이 사람들이 자기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 그 얘기를 들려주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겠다.

 

홀: 원래 뭐든 지도 교수님이 뭘 하자고 그러면 제자의 입장에서는 반감부터 가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이치지. 사실 또 지도 교수님들이 그렇게 친절하게 설명 안 해주잖아.

 

죠: 아~ 그러니까.

 

홀: ‘일단 같이 해봐’ 약간 요 느낌으로.

 

죠: 음~ 이거 될 거야. 이러면서. 근데 다만 이제 갑자기 이분이 안 그러시던 분인데 사당 쪽에 당시에 막 새로 생긴 꽤 큰 그 고급 중식당에 가서 밥을 사주면서 한번 써봐라 그래서 삐지려고 하다가 또 이렇게 좋은 게 입에 들어오니까 열심히 써봤지. 그렇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나도 놀랐다.

 

그러니까 한 분을 부른 게 아니라 여러분을 불러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에 어떤 가치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이분들에게 더 궁금한 걸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본 거지. 인류학에서 큰 연구 방법 중에 하나가 구술 생애사 방법론이 있는데, 구술 생애사 방법은 1 대 1로 진행하는 거거든. 근데 1 대 1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불러놓고 구술 생애사 방법론 비스무레하게 뭘 하자라고 하니까 이게 자료를 못 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때 박사를 마친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 불러서 인터뷰를 들으면 그걸 다 자료화시켜서 뭔가 다른 걸로 써먹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한 사람한테 1시간에서 1시간 반씩 시간을 드릴까?’ 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구술사 연구를 한다 그러면 2시간씩 두 번에서 3번 정도를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정상인데 한 사람에게 1시간 반 정도 그것도 한 3~40분 정도는 자기 얘기 궁금한 걸 물어가면서 채우는 방식은 아무리 봐도 자료로 보기에는 너무 빈 구멍이 많을 것 같았다.

 

홀: 게다가 모아놓고 돌아가면서 얘기를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죠: 그렇지.

 

홀: 그냥 따로따로 1 대 1로, 1 대 1로, 1 대 1로 하는 것과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죠: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연구 프로젝트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가 많이 빠져있었단다. 앞서 이야기가 나왔듯 인류학의 연구 방법 중 하나인 ‘구술 생애사’하고 얼핏 닮아 있긴 하지만 그건 이야기하는 사람 한 명을 두어 시간씩 두어 번을 만나서 집중적으로 듣고 기록하는 거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한 사람 당 길어야 한 시간씩 서로 이야기하고 듣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건 당최 효율적이지가 않아 보였던 것. ‘공감대화’가 참여한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걸 놓고 연구라는 걸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난처했겠다.

 

암튼 ‘빠진 이’를 메꾸기 위해 시간이 흐른 뒤에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참가자들에게 ‘공감대화’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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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 (전략) 특히 고려인들 같은 경우 한국인이라고는 하지만 이분들이 태어났을 때는 일본인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일본어 단어에 굉장히 익숙하다. 한국어를 배운 게 아니라 태어나서는 일본어를 쓰는 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인들과 같이 모여 살았고 그 이후에는 러시아어를 갑자기 쓰게 됐고 한국말이라고는 부모님들한테 들었는데 부모님들이 쓰시던 옛날 1920년대 30년대에 쓰던 조선어인 거지. 그래서 만나서 얘기해 보면 억양은 러시아어고 그다음에 단어는 러시아어, 일본어, 약간의 한국어가 섞여 있다. (중략)

 

1945년 8월 14일까지 태어난 분들은 한국 국적을 준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강제로 한국 밖으로 나간 사람이기 때문에. 근데 되게 웃기는 건 8월 15일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에게는 거기서 해방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국적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8월 14일 이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국에 올 수 있게 됐고 그다음에 러시아 경제가 워낙 2000년대 초반에 안 좋아지면서 여기서 못 살겠다고 해서 한국으로 오시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자식들은 다 거기에 남아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굉장히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가 그 대화 모임(공감대화)에 참석해서 조선족이나 비전향 장기수, 민간인 학살 피해자 같은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나만 고립된 섬이 아니라 다들 자기만의 섬에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 훨씬 더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고 그다음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훨씬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먹물이라 좀 포장한 면이 있지만 하여튼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중략)

 

이국 땅에서 태어나 사실상 그곳 사람으로 살고 있는 가족들을 두고 떠나와 밟은 고국의 동포들은 환대보다는 적대, 감동의 눈빛보다는 감시의 눈초리에 가까웠다고 한다.

 

죠: 이제 굉장히 한국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건지가 절대 금지, 무슨 금지, 무슨 금지 이게 쫙 엘리베이터에 가득 쓰여있는 걸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거지. 그런데 이분들이 이런 대화 모임에 참석한 다음에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나 지금이나 기분은 나쁘지만 ‘쟤들도 뭐 그럴 수도 있지’, ‘쟤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니까’ 약간 이해를 해줄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뭐라고 해야 될까? ‘쟤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뭐’ 이런 시각들을 갖게 되었다라. 그러니까 타인을 이해한다기보다 자신을 더 건강하게 살도록 만들게 되었다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다.

 

홀: 자기 얘기를 함으로써.

 

죠: 자기 얘기를 함으로써. 그 경험을 들으면서 ‘이걸 좀 더 확장 시켜봐야겠다’라고 해서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또 탈북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들 여기에 다문화 청소년들을 같이 붙이기도 하고, 또 탈북 여성들과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들과 다문화 여성들만의 프로그램도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분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각자 어떻게 살았는지 살아온 얘기를 서로 들려주자.

 

그런 모임들을 한 10년 넘게 이어오고 나서 그중에서도 재밌었던 몇 가지 사례를 갖고서 논문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이렇게 타인 앞에서 자기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듣고 그다음에 여기에 대해서 어떤 가치 평가를 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시간의 긍정적인 효과를 논문이 아닌 다른 글로 알렸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책을 쓰게 된 거다.

 

홀: 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달라고 말한 지 20분 만에...

 

죠: 아~ 그러네.

 

홀: 정리는 내 몫이니까.

 

순간 X됨을 느꼈지만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은 인터뷰어의 덕목이기도 한 고로 애써 침착함을 부여잡으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공감대화’는 왜 필요한가

 

홀: 단도직입적으로,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

 

죠: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특히 지난 대선을 보면서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세대 간의 갈등, 또 젠더 간의 갈등, 은근히 보이지 않는 종교 간의 갈등... 지금 한국은 정말 갈등 조장 사회 같기도 하다. 갈등으로 넘쳐나는 이 시대에 당사자들이 화해 내지는 화해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들이 같은 사회에서 정말 같이 살 수 있을까? 지금은 누르고 살고 있지만 이게 조금만 지나면 일본 사회의 우경화된 청년들이 등장하는 거와 같은...

 

홀: 이미 우리나라도 뭐 비슷하다고 봐야지.

 

죠: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절대로 말도 못 섞을 저것들하고 어떻게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이러고서 살아갈 수만은 없을 거다. 혹은 그렇게 그냥 서로 안 보고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정상이란 말도 물론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말이지만 최소한 그런 사람들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과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적어도 저 사람에 대해서 ‘저것들하고는 말도 섞지 말아야지’가 아닌 ‘그러면 저런 사람들과 쟤는 왜 저렇게 됐을까?’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나면, 이해를 하고 나면 여전히 싫어도 ‘저 사람과 내가 그래도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 혹은 ‘쟤랑 저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쟤는 저렇게 살아와서 그런 거니까 내가 저런 부분을 또 이해하면서 같이 살아갈 수 있겠어’라고 하는, 그렇게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뭔가를 조금은 더 찾아내지 않으면 사실은 죽이는 것 밖에는 남는 게 없는 우리의 다가올 미래가 자명해 보여서.

 

홀: ‘너는 다르니까 죽어야 돼’랑 ‘너는 달라. 다르지만 그냥 넌 너대로 살아’는 한 끗 차이니까.

 

죠: 그렇지. 한 끗 차이인데 ‘죽어야 돼’가 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고.

 

홀: 지탱이 안 되는 거지.

 

죠: 다르지만 다른데도 불구하고 ‘너는 그렇게 살고 나는 이렇게 살지만 서로 여기까지는 넘지 말자’라고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사회인 거지. 그래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런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이 필요한데 그 방식의 하나로 ‘공감대화’를 제안하고 싶었다. 물론 이게 전 사회가 다 같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이런 건 아니다. 굉장히 작은 규모로, 소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남미에서 70년대, 80년대에 지금의 한국은 정말 우스울 정도로 이념의 다름으로 인해서 어마 무지하게 죽어나갔잖나. 그 사람들을 어떻게 같이 살게 만들 것인가? 그 방식 중에 하나로 인류학, 지리학, 심리학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프로그램 비슷한 거를 꽤 많이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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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정말 엄청난 위기의식을 갖고 모였겠는데. 이러다 우리 다 죽어.

 

죠: 브라질 혹은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엄청나지. ‘이러다 정말 우리는 서로 미워하다가 다 죽어’라는 이 엄청난 공포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도 당연히 크게 할 수가 없는 거지. 열 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여서 와인 마시고 같이 탱고도 추고 이러면서 어떻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게 용서는 안 되는데 ‘아~ 쟤가 그렇게 경찰이 됐구나. 저렇게 고문했던 저 경찰이라고 하는 사람도 저러저러한 삶을 겪어서 쟤가 저렇게 했던 거구나’

 

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나올 법한.

 

죠: 이게 아마 남미 지역에서 사회적인 불평등도 해결 못했고, 그다음에 용서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그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은 힘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그런 차원에서 이 공감대화가 이준석과 (유명 정치인) 누구를 불러서 대화하고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작은 단위에서, 지자체라든가 아니면 마을 공동체 같은 아주 마이크로한 단위에서, 얼굴 마주 보고 같이 사는 사람들 안에서(있었으면 좋겠다).

 

‘여자들 때문에 역차별당하고 있어’ 이런 사람들과 여성들이 서로의 가치 얘기 하나도 안 하고 그냥 살아온 얘기를 쭉 나누는 것만으로 오히려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생기거든.

 

홀: 굉장히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게, 어느 마을 단위이든 갈등 요소가 다 있잖나. 가령 재건축 내지 재개발 논의가 되고 있는 지역에서 어떤 부류는 극렬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부류는 빨리 지금 재개발, 재건축해야 된다는 사람이 있고. 엄청 격렬하게 부딪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동네에 어떻게 이사를 왔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이 집이 나한테 어떤 집이고 하는 걸 어떤 결과를 정해놓고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 번씩 얘기만 서로 들어보고 이런 식으로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죠: 개인적으로 이 책 쓰기 직전에 의료생활협동조합, 의료생협의 이사장을 맡게 된 대학 선배가 연락을 해오셨다. 자기네가 이제 20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20년이 지나는 사이에 처음에 같이 했던 사람들 중에 오히려 지금은 밖에서 저 생협이 뭐가 문제라고 막 욕하는 사람도 있다더라. 근데 20년을 맞이해서 이런 모두를 포함해서 “우리가 화해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서로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은데 그런 자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고 물어보시더라. 처음에는 “영상 프로그램 같은 거를 만들면 어떨까?” 이러면서 의뢰를 해오셨는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선배님 그거보다 의료생협에서 어디 펜션도 가지고 있으시다면서요. 거기 한 2박 3일 빌려서 공감대화 방식으로 서로 의료생협 얘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대신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얘기만 서로 들려주고 거기서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그런 자리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러고선 “저녁때는 돼지고기 구워드시고 그런 거 해보시면 어떨까요?”라고 했는데 “될까?” 하고 되게 걱정하시더라. 결국 그런 식으로 2박 3일짜리 프로그램을 했는데 여전히 욕을 하고 여전히 분노를 하지만...

 

홀: 맞아. 확 바뀌지는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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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주년 행사를 하는데 찾아와서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그래서 여전히 회계에 대해서 불철주야 욕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살던 분들이 회계가 불투명하다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 이 조직은 없어져야 된다고 밖에서 교육하던 분들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던 거에 그 2박 3일이.

 

홀: 굉장한 진전이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회계가 불투명하다고 말한다는 건 회계가 투명해지면 있어도 된다는 뜻이잖나. 그게 좋은 것 같다.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점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대한 얘기만 하는 거. 그게 부딪히는 지점을 좀 더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죠: 가장 날카롭게 찔릴 부분들을 빼고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면들이 오히려 저 날카로움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대화라는 게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네’ 확인하는 거. 거기서 좀 더 나가면 서로가 어떤 길을 걸어온 끝에 각자의 자리에 있는지 알게 되는 거.

 

하여 대단한 화해나 용서, 갈등의 해소 따위를 대화의 끝에서 얻게 될 보상으로 기대해선 안된다. 대화가 그런 대단한 화해나 용서, 갈등 해소의 시작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그 또한 처음부터 기대할 수는 없다. 그저 나의 생겨먹음과 너의 생겨먹음이 어떤 맥락을 통해 나타난 결과물인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 그걸 몰랐을 때보다는 훨씬 다른 차원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몇몇의 대화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홀: 이 공감대화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꼭 필요한지, 우리 사회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어떻게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건지 그건 알겠다. 여는 글에 보면 ‘공감대화는 말보다 자리에 의미가 있다’ 그게 와닿았고,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울림을 준다’ 요런 표현도 있었고. 그리고 공감대화의 룰에서 가장 ‘아!’ 했던 거는 ‘경청’이었다.

 

죠: 듣는 귀가 커야 된다는.

 

홀: 들어줌, 들어줌에 주의사항이 있다는 것도 인상 깊었다. 그래서 너무 지나치게 호응하지도 말고 다 듣고 나서 ‘어후~ 정말 대단하세요’ 이런 말을 함으로써 다음 발화자를 주눅 들게 하지도 말라는 배려가 너무 좋았다. 근데 문제는 아까 우리 사회의 대립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의 비대면 소통이 훨씬 더 활발한 세상이잖나.

 

죠: 아~ 글치.

 

홀: ‘자리’가 없는 거다. 비대면이나 온라인상에서는 상대방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지 확인은커녕 대부분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니까. 이런 시대에서 공감대화는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혹시 생각해 본 바가 있을까?

 

죠: 나는 오프라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온라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음악을 만들어내고 어떤 무엇인가를 생산해내고 그것을 유통시키고 의미화시키는 이런 종류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생산의 영역은 온라인을 통해서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폭넓게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 같다.

 

홀: 파괴력이 있지.

 

죠: 굉장히 파괴력이 있다. 인디 음악, 오지은 씨 사례가 있었다. 오지은 씨가 혼자서 앨범을 만들었는데 각종 음악과 관련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무료로 마스터링을 해주기도 했다. 최고 수준의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만약에 예전 방식으로 했더라면 이 사람의 자본 가지고는 불가능할 수많은 일들이 온라인에서(가능해졌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이 음반이 화제가 돼서 초판이 몇 주 만에 다 팔려버리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굉장히 큰 파괴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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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오지은(링크)

 

공감대화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온라인으로 이러한 대화가 만들어지려면 지금보다 테크놀로지가 훨씬 더 발전해야 되지 않나? 현재의 온라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보를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무언가 생산하는 것에는 굉장히 특화되어 있지만 정서적인 공감을 나누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베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게 ‘팩트’다. 왜 ‘사실’에 이렇게 목을 맬까?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1940년대 후반에 나와서 한 3호 발행하고 망해서 없어지는 신문들, 정말 편향된 이런 신문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신문 기사가 있다. 이거 봐라 자료가 있지 않냐?’ 하는 식으로 자료, 팩트 이런 것에는 매우 특화돼 있는 게 온라인이다. 감정적인 지지와 연대 내지는 공감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이해' 정도라도 만들어내는 데에는 온라인이 굉장히 취약하다.

 

공감대화가 온라인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확산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런 공감대화만큼은 오히려 역으로 오프라인의 것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홀: 감정의 교류나 정서적인 연대 같은 게 온라인으로 좀 힘들 수 있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분노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파괴적으로 빨리 퍼지기도 한다. 반대로 순기능이 있기도 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움직임으로. 어쨌든 널리 전파하고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데는 너무나, 너무나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다 보니 마음을 울려가지고 여러 사람을 모이게 하는 데 굉장히 효과적인 수단일 수도 있단 말이지.

 

죠: 글타.

 

홀: 반면 오프라인의 것으로 남아 있는 공감대화는 정말 작고 5명, 10명이 모여서 얘기하고...

 

죠: 사실 굉장히 미미하지.

 

홀: 그 엄청난 덩치의 차이에도 공감대화가 못지않은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뭐 되겠어?’라는 느낌보다는 지지하는 마음에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묻고 싶다. 온라인이라는 엄청난 폭풍 앞에 오프라인에서 소규모로 진행되는 따뜻한 미풍 같은 움직임이니까. 그런 작은 미풍이 저기에 휩쓸리지 않고 개인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죠: 그건 나도 대답하기 정말 어렵다.

 

홀: 소위 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 있지. ‘그거 뭐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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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 이게 어떤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하셨던 정병호 선생님이 일본에 필드 웍을 하러 가셨을 때 훗카이도 한 시골에서 대안적인 유치원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런데 그 시골 유치원 원장님이 유치원 연구하러 온 미국 대학 소속 한국인에게 너 지금 그거 할 때가 아니라고, 우리 동네에 예전에 식민지 시기에 조선 사람들이 와서 비행장 짓는다고 강제 노역을 엄청나게 했었는데 그때 죽어서 그냥 묻어 놓은, 무덤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가매장 해놨던 이런 게 있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파보니까 진짜로 유골이 나오더라. 그래서 우리가 그 유골을 제사 지내고 동네의 절에 모셔놓고 했는데 이거 한국서 좀 어떻게 모셔가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랬는데 (정병호 선생은) ‘아니, 나 유치원 공부하러 왔다’고 하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맨날 데리고 다니셨다더라.

 

그렇게 해서 이분이 자기 제자들과 97년부터 2년에 한 번씩 홋카이도에 가서 일본 젊은이들하고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마을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어서 유골을 발굴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진행했다. 2015년 정도에 그때까지 모였던 유골들을 한국으로 모시고 오는 일을 했거든. 이게 일본과 한국 사이에 놓인 외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힘은 없지만 적어도 일본의 홋카이도에서도 아주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 사람들과 이런 문제에 관심 있던 일본 전역의 젊은이들, 대만, 재미동포 중에도 이게 어떻게 소문이 퍼져서 한두 명씩 많지는 않지만 그렇게 모여들었다. 한 여름에 같이 모여서 발굴하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많을 때는 한 400명, 적을 때는 100명도 안 되고.

 

정치학자들 중에는 유골들을 한국으로 모셔오는 게 문제가 있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유골이 일본에 있어야 일본과 협상을 통해서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 이건 굉장히 정치적인 이야기지. 근데 정치적인 걸 떠나서 이게 누구의 뼈고 저건 누구의 뼈인지 사실 모른다. 마을 분들이 일본식으로 추모를 한다고 화장을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뼈를 발굴한 것까지는 이분들이 되게 훌륭한 일을 한 건데 여기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그 유골들을 그대로 둬야 DNA가 분명해지고 그래서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범죄가 어떤 것인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데...

 

홀: 일종의 셀프 증거 인멸이 돼버리니까.

 

죠: 그래서 위험하게 보는 분도 있다. 나도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맞는 얘기 같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의 유골을 발굴하고 화장을 해서 이분들의 영혼을 보내드렸다고 하는 일본의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박한 이 천도의 마음을,

 

홀: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잔인한 말이긴 하다. (유골을) 거기 계속 놔둬야 된다는 말이.

 

죠: 글타. 그래서 유족들도 같이 가셨거든. 2015년인가 14년에 같이 갔었는데 유족들도 처음에 당황한 거지. 우리 시동생의 뼈를 가지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뼈가 어떤 건지 화장을 해서 판단이 안 되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이들이 일본 홋카이도까지 끌려갔던 그 길을 반대로 따라서 부산을 통해 서울로 모시고 오는 그런 행사를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이니치(재일동포) 그다음에 일본의 젊은이들, 소위 말하는 총련계와 민단계 젊은이들이 다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수지만 이런 마음들을 모아서 뭔가를 했던 경험이 생긴 거지. 이 경험은 거시적인 차원의 한일 문제하고 또 다르게 미시적인 차원에서 서로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다. 정치적인 성향은 또 다를 수도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유골을 찾아내고, 모으고, 이분들을 위령하려고 하는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양이 다르더라도 모였다는 거다. 그런 경험을 해본 작은 사람들의 경험이 사회의 거시적인 변화와 다른 층위에서 한일 관계의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몇 년 전에 우리도 뭐였더라? 일본 옷 상표.

 

홀: 유니클로.

 

죠: 유니클로. 내가 원래 되게 싫어하는 상표. 옷을 왜 이렇게 그따위로 작게 만드는지 참.

 

홀: 빅 사이즈는 온라인에 있다.

 

죠: 짧다. 사봤거든. 이게 통만 넓지 길이가 짧아서.

 

홀: 키 큰 분이 이런 애환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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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그러니까 유니클로, 문제가 많은 브랜드다. 옷을 그렇게 짧게 만드냐. 어쨌든 그 와중에 일본에서 연구하고 있었던 후배가 그러더라고. 일본의 젊은이들 중에 한일 관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 싶다거나 한국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홀: 그렇게 한국이 싫다고 하면서도 넷플릭스 일본 순위에 한국 드라마들이 줄을 세우고 있잖나.

 

죠: 그러니까 이런 변화들과 내가 이야기한 이런 작은 모임들의 흐름이 실은 거시적인 국가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국가라고 하는 이 단위를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기회들을 계속 제공하고 있다는 거다.

 

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상대 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들어온들 전혀 바뀌는 게 없는데.

 

죠: 거시적인 일본은 싫어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좋아하고.

 

홀: 다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 ‘일본이 그래도 게임은 참 재밌지’라든가.

 

죠: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도 경험을 하고 있는 거다. 거시적인 차원과 미시적인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이런 경험들이 작지만 그런 변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홀: 듣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확 든다. 거시적 관점에서의 분노를 느끼다가도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정말 사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 그 나라의 문화나 그 나라 사람에 대해서. 물론 안 좋은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공감대화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거대 담론 이런 걸 떠나서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사적인 관계에서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 훨씬 더 거대담론적인 갈등이나 이런 것들을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죠: 글타. ‘거시적인 이야기가 이 모든 것을 다 덮을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기회들이 되는 거지.

 

‘공감대화라는 미풍이 과연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 대한 적잖이 긴 대답이었다. 한 국가나 사회, 이념 전체를 몇몇 개인이 대표할 수 없듯이 몇몇 사람이 모여 삶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대화가 사회적 문제나 국가적 갈등을 당장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공감대화가 의미 있는 건, 그렇게 쌓인 개인의 경험과 교류가 최소한 ‘구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고 비판하는 것과 태풍이 방향을 틀어 일본을 쓸어주길 바라는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구분’ 말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관계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여전히 싫고 이해할 수 없어도 ‘걘 그런 애’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아득하게 먼 거리가 있다.

 

그러니까 공감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갑분 사회 대통합과 극적인 화해가 아니라 ‘니가 없어져야 내가 산다’는 식의 파국을 막는 정도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우리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이다.

 

다름을 이해하고 같음을 뛰어넘기

 

죠: 예전에는 대화를 나눈다는 게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고 ‘내가 이거 너무 힘들어’ 그러면 ‘이거 이렇게 해봐’라고 하는 어떤 솔루션을 제시하는 게 대화라고 생각했는데 대화의 핵심은 ‘나는 이렇다’라고 얘기하고 ‘어~ 너는 그랬구나. 나는 또 이래’라고 토로하고 그 토로의 과정에서 ‘우리가 이런 공통점도 있었네? 요건 달랐지만 그래도 요 공통점으로 우리가 오늘같이 얘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우리가 어느 순간 대화 그 자체를 내가 생각하는 걸 상대방 귀에 꽂아 넣거나,

 

죠: 글치. 설득하는 거지.

 

홀: 아니면 내 의지를 누군가한테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거지. 사실 대화는 확인만 하는 거거든. 그렇지 않나? 너의 말을, 너와 나의 말을 서로 확인하는 거잖아. ‘너는 거기니? 나는 여기 있었어’라고 얘기하는 거고 그냥 끝나는 건데

 

죠: 대화를 자꾸 우리는 설득으로 생각을 하고,

 

홀: 뭔가 결론을 내길 바란다. 그게 안되면 ‘그래서 뭐 어쩌자고?’ 이게 자연스럽게 되고. 내가 헤비죠의 글에서 굉장히 감탄했던 게 이거였다. 오죽하면 내가 이걸 적어왔다는.

 

죠: 뭔데?

 

홀: 챕터 제목이기도 했는데 ‘다름을 이해하고 같음을 뛰어넘기’. 마지막 부분에서는 ‘같음이라는 강박 없이 다름들이 공존할 가능성을 성찰한다’고. 같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제일 좋았다. 우리가 되게 빠지기 쉬운 함정이잖아. ‘우리 그래도 동포잖아! 한민족이잖아!’

 

죠: 그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민족인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걸 인정해야 된다는.

 

홀: 그걸 강제로 ‘우린 한민족이다’부터 시작하면 사실 그걸 놓고 할 수 있는 나쁜 말이 더 많지. ‘같은 민족이 그래?’, ‘너는 같은 민족이라면서 등쳐먹고 우리한테 그랬어?’ 이렇게 돼버리니까.

 

죠: 맞다. 같은 민족을 강조하게 되면 그런 같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뭔가 정전, 캐논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그 캐논을 그럼 누가 만들 거냐?

 

홀: 같음을 강조하다 보니 그 같음에 속하지 않는 누군가 들을 또.

 

죠: ‘같은 줄 알았는데 너 이게 달랐어? 그러면 너는 빠져’ 이렇게 되는 것들. 그래서 다름의 이야기는 되게 많이들 썼던 것 같다. 근데 같음을 강요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야~ 우리가 이렇게 달랐구나’ 뿐만 아니라 ‘야~ 이런 식으로 우리가 같음을 뛰어넘기가 필요하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제목을 좀 무리하게 지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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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는 민족과 국가 작게는 가족이나 출신까지. 인간이 워낙 외로움에 사무쳐 일생을 내편 찾아 삼만 리 하는 가련한 종족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상대에게서 나와 같은 부분을 먼저 찾아내려고 한다. 허나 같은 것에서 동질감을 획득하고 보는 행위는 안팎으로 구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같지 않은 누군가를 배척할 가능성, 그리고 같음에 묻혀 외면당하는 다름이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헤비죠는 그가 진행한 공감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같음 보다는 다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름을 이해하고 같음을 뛰어넘어 닮음을 찾아야 한다고.

 

『공감대화』는 읽는 사람에 따라 뜯어 먹는 맛이 다양하게 날만 한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다문화 가정이나 고려인, 재일동포, 조선족에 대한 시선을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의 경계선 혹은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듣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나처럼 대화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 더 크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겠다. ‘나는 얼마나 잘 듣는 사람이었나’ 이 책이 나에게 건넨 가장 묵직한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9년 전, 헤비죠를 처음 만나게 한 너부리 전 편집장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드랬다. 독서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책을 읽는 행위가 남의 말을 경청하는 연습이 되기 때문이라는.

 

그 연습, 기왕이면 『공감대화』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