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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자유와 억누름을 공존케 하는 나라

 

2015년경 도쿄 길거리를 걷다가 봤던 한 장면이 뇌리에 박혔다. 여자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본 특유의 공사 현장 유니폼과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행인들에게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한번은 여성이 사다리 위에서 가게 간판을 고치는 장면을 보았다. 전문 간판 수리공이 아니었다. 간판이 내걸린 가게 사람 같았다. 업무 중 올라간 듯 긴 치마를 입고 사다리 위에 올라가 간판을 손보고 있었다. 

 

일본에서 2년 사는 동안 박스를 옮기던 많은 여자 택배원들을 보았다. 밀차를 밀며 시부야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여성 택배원들이 생경해서인지 기억에 남았다. 요즘 한국에서도 없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당시까지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하던 광경이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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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대학생 때 유럽 여러 나라·미국·캐나다·멕시코·일본 등 다양한 대륙의 국가를 여행 다니며 다른 문화를 접했다. 그 후 복학하고 어색하게 느낀 게 있었다.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동안 여성분이 청소하는 거였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노동 문화지만 20대 중반 때부터 이상하게 느꼈다. 청소는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한국 사회 고정관념에서 연유하는 바도 있을 터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남성이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이 흔했다. 

 

여성 친구 중 일본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고 여행도 자주 한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일본 가서 생활할 생각은 없어? 일본 좋아하잖아"

 "일본은 여자 살기 힘들어요. 차별이 심해."

 

일본에서는 직업에 관한 성 역할 고정관념이 약하며 개성(個性)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고 여겼다. 한편 일본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보다 더 차별받는 면도 있다고 느꼈다. 전자에 끌리는 한국 여성들은 일본에 정착하고, 후자에 방점을 두는 한국 여성들은 일본을 좋아해도 여행에 만족하곤 했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이 있다. 다보스 포럼 또는 세계경제 올림픽이라 부르기도 한다. 2006년부터 매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를 발표한다. 완전 평등을 1, 완전 불평등을 0으로 산정한다. 2021년 한국 GGI는 0.687이다. 조사 대상 156개국 중 102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곳은 일본 0.656(120위)·터키 0.638(133위)뿐이다. GGI는 절대적인 인권 수준을 보여준다기보다 정치·경제·교육·건강 각 분야에서의 양성 간 상대 격차를 산출하는 데에 방점을 둔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부터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를 공개한다. 유리천장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29개국의 성별 임금 격차·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기업 내 여성 관리직·임원 비율·남녀 육아휴직 현황 등 10개 항목의 각 나라 현황을 종합해서 산출한 지수다. 2022년 유리천장 지수 상위 1~4위는 스웨덴·아이슬란드·핀란드·노르웨이가 꼽혔다. 하위 26~29위 국가에는 스위스·터키·일본·한국이 꼽혔다. 하위 4개 나라의 순위는 모두 10년째 같은 자리다. 

 

<이코노미스트>는 

 

"여성이 여전히 가족이나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본과 한국은 하위 2자리를 채웠다"

 

고 언급했다. 한국과 일본은 도긴개긴이기는 하나 젠더 인식이 다르다. 사회 각 영역마다 차이가 있는 걸 일본에 머무르며 보았다. 

 

필자는 89년생으로서 세대마다 성역할이 미세조정됨을 느낀다. 삶을 겪으며 성별마다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다고 느꼈다. 성별은 여성과 남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도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오랜 시간 있었다. 문명 국가들의 역사가 승자의 역사이면서 남성의 역사인 건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세상의 반은 여성(을 포함한 비남성)인데 50%의 역사만 학교에서 배운 건 아닐까, 라는 질문에서 이 글을 비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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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 입고 바이든에게 차 대접하는 기시다 유코 여사

출처-<일본 총리 관저 트위터>

 

아래는 기득권 남성이 오랜 세월 눈 가리고 보지 않았던 그리고 눈 가려 보지 않게 했던 비(非) 남성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 언급한 지수(指數, index)와 순위에 담긴 일본 젠더에 관한 글이다. 가장 소외된 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의 LGBTQ(제3의 성)에서 시작하여 여성, 남성에 이르고자 한다. 남성에 관한 이야기엔 일본이란 선진국이 젠더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담았다.

 

2. LGBTQ들이 사는 세계

 

젠더(gender) : [사회] 생물학적인 성에 대비되어 사회적인 성을 이르는 말. 1995년 9월 5일 북경 제4차 여성 대회 정부 기구 회의에서 섹스(sex) 대신 사용하기로 했다. 섹스가 남녀 차별적인 의미를 지닌 것인 반면 젠더는 남녀 간의 대등한 관계를 내포하며,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1995년으로부터 다시 시간이 흘렀다. 여권(女權) 변화의 밀알이 있던 동안 그늘에 가려진 이들이 있다. 여성·남성으로도 불리지 않는 성소수자(또는 제3의 성)다. 성소수자는 낯선 존재다. 살면서 절대 다수는 여성·남성으로서 사는 법을 배울 뿐이다.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드물다.

 

LGBTQ는 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와 성소수자 전반을 뜻하는 퀴어(Queer) 혹은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Questioning)을 칭한다. LGBT에서 비롯된 이 말은 LGBTAIQ(무성애자[Asexual]· 간성[間性, Intersex] 포함)나 LGBTAIQOC(범성애자[opensexual]·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 포함) 등 다양한 파생이 있다. 

 

미국에서는 1945년 이전에 출생한 사람 중의 1.4%만이 스스로 LGBT라고 간주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1990년 출생)에서 그 비율이 8.2%에 이른다. LGBT가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닐 터이다. 사회 인식이 바뀌며 과거보다 LGBT라 공개적으로 밝힌 이들이 많다고 본다.

 

뉴질랜드·호주·독일·네덜란드·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2010년대 들어 제3의 성을 인정했다. 여기서 제3의 성이라 함은 세 번째라는 의미보다 젠더 이분법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뜻이 강하다.

 

뉴질랜드는 전 국민 대상 인구 조사 성별란에 남성·여성과 함께 제3의 성을 추가하였다. 호주는 출생 증명서 성별란에 제3의 성을 기록할 수 있다. 2011년부터 여권 성별란에 제3의 성을 표기한다. 

 

독일은 유럽 최초로 제3의 성(간성, intersex)을 공식 인정했다. 2019년부터 국가 공식 문서에 이를 표기하도록 한 법이 발효됐다. 2017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남성, 여성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성 정체성도 인격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

 

고 판결했다. 성별을 표기하는 문서에 남성·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적어 넣도록 하거나 성별 작성 자체를 없애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독일은 앞서 2013년에는 부모가 출생신고서의 성별란을 공란으로 남겨둘 수 있게 하였다. 나중에 아기가 자신의 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미국은 2022년 4월 11일부터 여권에 남성(M), 여성(F)이 아닌 제3의 성(X) 표기를 시행했다. 'X'는 넌바이너리(non-binary, 남녀라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간성(남성이나 여성의 정의에 규정되지 않은 신체적 특징을 지닌 사람)·성별 구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도입됐다. 여권뿐만 아니라 출생신고서·인구조사에서도 제3의 성을 표기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성별 표기 자체를 없애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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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미국의 여권

출처-<링크> <경향신문>

 

2021년 12월 기준 전 세계 31개국이 동성혼을 합법화하였다. 서유럽에서는 2021년 스위스가 동성혼을 합법화함으로써 서유럽 전체가 동성혼을 합법화하였다. 아시아에서는 2019년에 대만이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였다. 민주주의 국가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이미 제3의 성과 동성애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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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마켓>

 

3. 성소수자들에게 일본은 어떨까?

 

성소수자들에 관한 사회 인식은 일본이 한국보다 낫다. 물론 일본에서도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혹은 직장 등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우려하며 느끼는 정신적 부담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LGBTQ와 관련한 사안이 곧잘 동성애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뜨겁게 번지는 한국보다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장벽이 낮은 게 사실이다. 

 

일본 텔레비전 방영물 중에 <심야식당>이 있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었다. 작품에 게이바(gay bar) 마담 캐릭터가 나온다. 그런데 한국에서 김승우 주연으로 2015년에 <심야식당>을 리메이크하면서 게이바 마담 캐릭터를 없앴다. 두 나라 간 성 다양성에 대한 온도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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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심야식당>

출처-<링크>

 

일본을 제외한 G7 국가들은 동성혼을 인정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본도 합류할 조짐이 나타난다.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삿포로 지방 법원 판결이 일본 최초로 2021년에 나왔다. 

 

일본 LGBT 인구는 얼마일까? 일본 국내 거주자 4만 명을 대상으로 한 2007년 앙케트 조사 통계에 따르면 남녀 동성애자, 즉 LG(레즈비언과 게이) 인구가 274만 명으로 추산된다. 레즈비언 인구는 166만 명, 게이 인구는 108만 명이다. 이는 일본 성인 20~59세 인구의 3.9%에 달하는 수치다.

 

2015년 조사에서는 일본 전체 인구의 7.6%, 즉 약 13명에 한 명이 성소수자 층에 해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주식회사 덴츠[株式会社電通] 산하 연구소 덴츠다이버시티라보가 2015년 4월 전국 20세에서 59세까지 약 7만 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조사 실시). 또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일본인 중 LGBT에 해당하는 사람은 약 5.9%, 기타 성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약 2.1%였다고 발표했다(주식회사 하쿠호도 DY그룹[株式会社博報堂 DY グループ] 산하 LGBT 종합연구소가 2016년 5월 성소수자에 관한 인식조사를 전국 20세부터 59세까지 10만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상에서 실시).

 

이 수치는 미국의 3.4%, 영국의 1.5%에 비해 높다. 다만 조사 신뢰도는 갤럽·정부 기관이 각각 조사를 담당한 미국·영국에 비해 사설 컨설팅 회사가 수행한 일본 조사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LGBT 인구가 상당한 규모라 할 수 있다. 참고로 2012년 조사한 미국의 3.4%는 LGBT가 모두 포함된 수치이며 2010년 조사된 영국의 1.5%는 BT(양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제외한 결과다.

 

1960~70년대 미국의 소위 ‘게이 혁명’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유명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인 도고켄(東郷健)은 1971년 동성애자임을 공언했다. 동성애자의 존재 인정과 권리 획득을 위해 참의원(일본 상원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였다. 일본 선거에서 동성애 권익 문제가 논의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1971년에는 최초의 남성 동성애자 전용 게이 잡지인 <장미족(薔薇族)>이라는 서적이 창간되었다. 1976년 11월에 최초의 게이 단체인 <일본동성애자해방연합(日本同性愛者解放連合)>이 결성되었다. 참고로 한국 최초 게이·레즈비언 전문 잡지 <BUDDY>는 인권운동가 한채윤 씨가 1998년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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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켄 관련자료

 

1971년 일본 최초의 레즈비언 서클 ‘와카쿠사노카이’(若草の会, 새싹모임)도 시작하였다. 회장이 레즈비언으로서 잡지와 텔레비전에 나갔고 회원 모집을 했다. 21세기 오늘날 일본 미디어에는 마츠코 디럭스(マツコデラックス)·미와 아키히로(美輪 明宏)·IKKO(잇코) 등 유명 연예인 중에 제3의 성을 지닌 자들이 예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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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젠더리스(genderless) 모델 겐킹.

2018년경 성전환 수술 이전 활동 모습

출처-<링크>

 

4. 정치권에 진출한 LGBT

 

일본 정치에는 성소수자들이 진출해 있다. 가미카와 아야(上川 あや, 1968년 1월 25일 ~)는 2003년 일본에서 LGBT 최초로 도쿄 세타가야(世田谷) 구 구의원이 되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다. 2003년 봄 제15회 지방 선거에서 일본 최초로 성 동일성 장애(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의 불일치로 인한 공황 때문에 극심한 갈등으로 일상에 문제가 생기는 증상)임을 공표한 후 입후보하여 당선했다(입후보자 72명 중 6위). 2007년 봄에 행해진 2기 선거에서는 현직 톱(입후보자 71명 중, 제2위)으로 재선. 2011년 봄에 3선(입후보 82명 중, 6위), 2015년 4월에 4선(입후보 82명 중, 3위), 2019년 4월에 5선(입후보 75명 중 2위)을 이루었다.

 

2003년 오사카(大阪)부 의원에 당선된 오쓰지 가나코(尾辻かな子)는 재임 기간 중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했다. 2013년 그녀는 비례대표 승계를 통해 일본에서 커밍아웃한 최초 국회의원이 되었다. 더불어 2011년 통일지방선거에서는 동성애자(게이)임을 커밍아웃한 두 명이 구의원으로 당선되었다(도쿄 도시마[豊島]구 이시카와 다이가[石川大我]와 나카노[中野]구 이시사카 와타루[石坂わたる]). 

 

2010년 10월 국회 참의원(상원) 결산위원회에서 민주당 의원 마쓰우라 다이고(松浦大悟)는 증가하는 자살자 대책에 관한 대정부 질의 중 자살 고위험군으로서 성적 마이너리티를 언급하였다. 국세 조사(国勢調査. 정부가 전국적으로 행하는 인구 동태 및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조사)에서 배우자 기입란에 동성 배우자로 하면 오류 취급되는 것에 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질의 중이었다. 이것은 그전까지 성 동일성 장애인 특례법 제정(2004년 7월 시행) 때를 제외하곤 일본 국회에서 LGBT에 관해 언급과 논의가 거의 없었음을 감안하면, 뜻하는 바가 크다. 

 

2017년 무렵 일본 사회에서 LGBT의 인권 옹호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지방 차원에서는 본인 자신이 성소수자인 5명의 지방 의원이 주축이 되어 2017년 7월 LGBT단체의원연맹을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전국 각지에서 LGBT의 인권 옹호로 이어지는 조례 제정 등을 추진했다. 국가에 차별 해소를 위한 법 정비 등을 촉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단체의 취지에 공감하여 전국의 현의회 의원(県議)나 시·구·정(한국의 읍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의회 의원 78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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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미국의 일부 여자대학에서는 의학적인 수술 없이도 여성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의 입학을 허가한다. 일본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성소수자인 수험생을 고려해 입학지원서의 성별란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 중이다. 2016년 후생노동성은 직장 내 ‘성희롱(セクハラ)’의 범위를 LGBT 등 성소수자까지 확대했다. 일본에서는 4월 4일로 오카마의 날(트랜스젠더의 날)도 있다. 

 

2002년 일본 문부과학성(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Sports, Science and Technology,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은 동성애 관련 문제에서 그 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문부성은 교과서 검정 시 동성애 커플을 새로운 가족 형태의 하나로 용인했다. 가정과 교과서에

 

 "이제 동성애 커플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없다.",

 

 "동성애 커플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라는 기술이 등장했다. 동성애자의 존재를 문제시하였던 문부성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동성애자와 동성애 커플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5. 일본이 LGBT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

 

일본이 한국보다 성소수자에게 관대한 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원인 1. 일본이 상대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짙다.

성 정체성은 지극히 사적인 사안이다. 동성애 문제에 공적인 판단을 개입시키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라고 여기는 일본인이 많다. 상대적으로 타인 일에 간섭·참견·오지랖을 꺼리는 일본 문화가 있다.

 

원인 2. 전통문화에서 연유하는 바가 있다.

역설적으로 남성 우월주의 문화가 성소수자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7)에는 여자들과 노는 게 저속하다고 생각했다. 난쇼쿠(男色, 남색) 또는 슈도(しゅどう [衆道], 비역)라 하는 동성 간 성행위가 있었다(일본의 남색 문화를 마냥 예외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여러 사회에서 남성 우월주의 의식이 저변에 깔린 채 게이와 레즈비언 간에 서로 비우호적으로 보는 심리 기제가 있다). 

 

남색의 뜻에 비춰봤을 때 여색(女色)은 여성들 간의 성교를 뜻할까? 그렇지 않다. 남성이 여성과 하는 성교를 뜻했다. 즉, 남색과 여색이란 단어 모두 언제나 성 욕망의 중심에 남성이 있었다.

 

일본에서 동성애를 비정상의 틀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의 성 관념이 도입된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부터다. 근대 문명국가 설립을 목표로 서구열강의 시선을 의식하였다. 남색을 부도덕하고 외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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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일본을 방문한 조선 선비의 반응이라고 한다

출처-<링크>

 

원인 3. 기독교 신자가 적은 영향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종교적 이유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나라가 70개국이 넘는다). 일본 기독교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서구와 달리 성소수자를 금기시하는 종교적 전통과 조직적인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없었다.

 

한국에선 2012년 TV에서 방영된 트랜스젠더 토크쇼 <XY그녀>가 1회 만에 거센 항의로 폐지된 적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여러 차례 입법이 무산되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성소수자들을 반대하는 집단이 강력히 자리한다. 일본이라고 해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거세게 반대하는 집단은 없다. 

 

원인 4. 구미와 같은 수준(modernization)을 지향하는 일본으로서는 현대에 들어서도 발맞춰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 동성 간 결혼 인정 등 성소수자의 후생을 위한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가운데 일본만 뒤쳐질 수 없다는 의식이 있다. 

 

유엔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LGBT 관련 국제적 규범을 내놓으면 일본은 이를 바로 수용하는 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1960~70년대의 미국의 소위 ‘게이 혁명’이 일본 동성애운동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 최초의 성소수자 단체도 IGA(국제 동성애자 협의회) 유럽 본부에서 의뢰받아 그 지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는 어떤 의미에서도 치료의 대상이 안 된다."

 

고 표하자, 일본 후생성은 1994년 이를 받아들였다. 문부성도 학생 지도서의 성비행(性非行) 항에서 동성애를 제외했다. 2011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유엔에서 LGBT 인권에 관한 성명서가 채택되었을 때, 일본은 이에 찬성하여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서도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야 한다는 정권의 의식이 있었다. 보수적 정부 주도로 철저하게 기존 혼인제도를 지키면서도 해외의 동성애 관련 제도에 보조를 맞추고자 했다. 일본 거주 외국인 등을 위한 별도의 제도를 애써 마련했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필요를 느꼈던 터이다.

 

6. 일본 성 다양성의 앞날

 

2015년부터 도쿄도 시부야구에서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시행했다. 부부와 똑같은 수준의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업자나 병원 등에서 ‘동반자 관계 증명서'를 소지한 동성 커플을 법적 부부와 동등하게 대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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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부야구에서 일본 최초로

동성 파트너십 증명서를 발급한 모습

출처-<링크>

 

지방 자치 단체 수준에서 동성애를 존중하려는 움직임이다. 동성결혼을 이성결혼과 동일하게 취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성혼을 했던 이들에게 제공하였던 혜택들을 동성혼을 한 이들에게도 제공하려는 취지다. 

 

외국의 동반자 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동성 커플에게 이성 커플과 똑같은 법률혼을 인정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벨기에·노르웨이·스웨덴·포르투갈·아이슬란드·독일 등이 동성 간의 혼인을 인정하고 있다.

 

두 번째는 동성 간의 결혼을 법률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으나, 동성 커플을 이성 간 법률혼과 동등하게 규정하고 그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동거 동반자 관계(domestic Partnership)다. 2017년 동성혼 합법화 전 독일의 라이프 파트너십(life partnership), 영국의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 등이 이러한 형태의 한 예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 스웨덴의 삼보(Sambo) 법 등은 이성·동성을 막론하고 소위 법적 혼인 이외에 있는 사실혼 커플에 대해 법적 혼인과 동등한 법적 보장을 제공한다.

 

일본의 파트너십 증명은 위의 동성 동반자 제도에 비해 법적 보장이 취약하다. 각 지자체가 조례나 요강으로 이를 정하기 때문에 동성 파트너에 대한 법적 보호와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방향에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는 혼외자(婚外子,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낳은 자식)가 거의 없다. 즉 여전히 이성간 결혼 규범이 강고한 일본 사회에서 동성 간 결혼권에 이르는 중간 단계로서 동성 파트너십이 도입된 것이다. 2018년 6개의 지방자치제가 이 제도 혹은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 2019년부터 후쿠오카시와 오사카시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 2021년 4월 1일까지 일본에서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103개의 지자체에서 실시하였다. 2022년 3월 도쿄 전체가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번 제도 도입을 앞두고 도쿄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시민의 70% 이상이 긍정적이다. 도쿄가 실시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더 확산할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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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 시부야구 동성 파트너십 제도 요강

-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다만 구내 임대주택 입주 신청·특정 보험사에서 사망 시 보험금 수령인 인정·입원 시 면회와 수술 동의 권리·핸드폰 가족 할인 등 혜택이 있다.

- 남녀 혼인 관계와 다르지 않은 정도의 실질을 갖춘다

- 호적상 성별이 동일한 두 사람 간의 사회생활 관계 파트너십으로 인정한다

- 두 사람 모두 1) 시부야구에 거주하고 2) 주민등록이 완료된 경우에만 유효하다. 즉 지역에서 거주하지 않거나, 이후 이주할 경우 증명서를 반납해야 한다.

 

7. 걸림돌은 자민당

 

일본 성소수자들에게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시민들의 여론이라기보다도 정권과 자민당이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층은 기존 양성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한 결혼 제도 변경에 반대한다.

 

한 자민당 중의원은 2018년 방송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개인의 기호, 취미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는 있어도 (차별금지나 동성혼 등을) 합법화할 필요는 없다."

 

라고 하기도 했다. 자민당 의원 스기타 미오는 

 

"동성애로 인해 출산율이 떨어지는 등 생산성 없는 행위"

 

라 언급하였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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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와 스기타 미오(오른쪽)

출처-<facebook/miosugita5>

 

동성혼 이슈를 일본 보수세력의 오래된 염원인 헌법 9조 개헌과 연결하기도 한다. 2019년 초 시모무라(下村博文) 자민당 중의원(자민당 헌법 개정 추진본부장)은 헌법개정에 야당을 포섭하기 위한 제스처로 개헌 시 동성혼 논의도 포함할 수 있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여당 내 반발에 부딪혔다. 자민당에서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일본은 G7 국가 중 유일하게 동성혼을 법제화하지 않은 나라이며, 이에 대해 압박을 느낀다. 자민당은 성소수자 이슈를 정권 연장 또는 헌법개정을 협상하는 카드로 만지작거리는 터이다. 결국에 일본 또한 성소수자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사이 어떻게 하면 이익을 최대한 취할 수 있을지를 고려하는 모습이다. 전술한 2021년 삿포로 지방 법원이 일본 최초로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 또한 고려하며 회로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자민당 정권은 한국의 보수정당처럼 기독교와 끈끈하게 결부되어 있지 않다. 동성애에 반대할 강력한 기제가 없다. 다만, 동성혼에 있어서는 기존 남성 중심 가족 형태를 근간으로 하는 법률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거부감이 있다. 일본 정부는 결혼은 양성, 즉 남성과 여성 간의 결합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1년 삿포로 지방 법원 판결과 반대로, 2022년 6월 오사카 지방 법원에서는 ‘동성결혼 불허는 위헌이 아니다’는 판결이 나왔다. 오사카 법원은 헌법에서 혼인은 양성이 합의해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결혼의 기능은 ‘남녀’가 아이 낳는 관계 보호라는 점을 들었다. 쟁점이 되는 헌법 조항은 제13조·제14조와 함께 제24조다.

 

제24조

① 혼인은 양성의 합의에 기초하여 성립하고,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상호의 협력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② 배우자 선택·재산권·상속·주거의 선정·이혼과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그 외 사항에 관해서, 법률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해 제정되어야 한다.

 

삿포로 지방 법원 판결과 달리 여전히 일본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 셈이다. 일본 입법부와 사법부는 변화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그 행보가 느리다. 관료 사회와 달리 일본 기업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8. 기업들의 한발 앞선 행보와 그 내막

 

1) 기업 내부 복지의 변화
일본 대기업들은 동성 커플을 인정하는 흐름에 한발 앞서 있다. 세계화가 진전된 기업을 중심으로 동성 커플에게 이성혼 커플과 동일한 결혼휴가·복지제도를 제공한다. 

 

2015년 경부터 일본 대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발맞추어 성소수자를 배려하고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취했다. IBM·파나소닉·소니·덴츠(세계 5위 광고대행사)·다이이치생명(第一生命) 등 30개 기업과 단체들은 LGBT 직원들을 환영한다고 표했다. 축하 보너스와 각종 파트너 혜택 제공 등의 형태로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 화장실·탈의실 등 성 중립적 시설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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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레인보우 퍼레이드

출처-<링크>

 

2016년 10월 1일 소프트뱅크주식회사(ソフトバンク株式会社)는 사내 규정의 배우자 정의를 바꾸었다. 동성 파트너를 배우자에 포함했다. 동성 파트너를 배우자로 둔 직원은 결혼 휴가·경조사 위로금·전근 때 별거 수당 등 직원의 복리 후생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17년 7월 대기업인 기린홀딩스(キリンホルディングス)는 성적 소수자에 관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기업경영이 법령·규정·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맞도록 하는 내부통제 장치) 개정을 발표했다. 개정 후에는 동성 결혼이나 사실혼을 한 사원들도 경조 휴가와 수당·사택 등의 각종 사내 제도를 법률혼 배우자와 동등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 직원이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 등 의학적 조치를 받을 때 최대 60일의 유급 휴가를 얻을 수 있다. 

 

닌텐도는 직장 내 동성혼과 사실혼 관계의 직원들에게 법률상 혼인자와 동등한 혜택을 주기로 했다. 2022년 7월 12일 공식 홈페이지에 갱신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보를 통해 2021년 3월부터 혼인 관계에 준하는 동성 파트너가 있는 사원에 대해서 혼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파트너십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닌텐도측은 

 

"인종·민족·국적·사상·종교·신조·출신·사회적 신분·사회적 지위·직업·성별·연령·장애 유무·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이나 차별로 이어지는 언동을 하지 않기로 정했다"

 

"이번의 파트너십 제도 도입에 더해,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성차별 발언이나 아웃팅(타인의 성적 지향을 본인의 승낙 없이 제3자에게 공표하는 것) 행위를 명확하게 금지했다"

 

고 밝혔다. 

 

2016년 11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LGBT 친화 기업 목록인 ‘프라이드 인덱스’를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유니레버 등 글로벌 기업 말고도 일본항공·파나소닉·후지쓰·라쿠텐 등 일본 토종 기업까지 모두 53곳이 LGBT 평등 지수 최고 레벨인 ‘골드’를 받았다. 

 

2021년 기준 일본 주요 100대 기업 중 중 84군데가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문화하였다. 사내연수를 실시한 곳이 81군데이며 상담창구의 설치한 곳은 74군데이다. ‘동성 파트너에게도 배우자와 같은 복리후생을 일부 혹은 전면 적용한 곳이 51군데였다. 이는 성적소수자에게도 편안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여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2) 시장 변화에 발맞춰 움직이는 기업들

2015년 시부야구에서의 동성 파트너십 조례가 통과된 후부터 기업들은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을 내놓았다. 라이프넷생명보험주식회사(ライフネット生命保険株式会社)는 2015년 11월부터 동거 기간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동성 파트너를 보험금 수취인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전일본항공(ANA)은 2015년부터 가족 마일리지 프로그램 <ANA 카드 패밀리 마일>에서 동거를 증명하는 주민표(住民票, 한국의 주민등록표에 해당)가 있으면 동성 파트너와의 마일 공유를 인정했다. 일본항공(JAL)도 2016년 2월부터 마일리지 서비스인 <JAL 마일리지 뱅크>에서 동성 커플을 마일리지 혜택을 이용할 수 있는 가족으로 새롭게 포함하였다. 가족이 모아둔 마일리지를 합산할 수 있는 서비스 <JAL 카드 가족 프로그램>에서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 LGBT는 인권 의제는 물론 경제 전략이 된 지 오래다. 구글·애플·스타벅스·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기업은 LGBT를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이른바 ‘레인보우 마케팅’이다. 일본 기업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2015년 광고회사 덴쓰는 일본 LGBT 시장 규모가 6조엔(약 60조원)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핑크 머니’(LGBT의 구매력을 말함)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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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가 되고 인구가 감소하는 등 인구 구조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기존 고객층에게만 유행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기 어려워졌다.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고객’을 수요층으로 삼은 것이다. 전술한 것처럼 일본 내 LGBT는 약 8%다. 적지 않다. 

 

이를 두고 경제 논리에 따랐다며 기업들의 의도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LGBT를 위한 방침들, 제품들을 내었을 때 그것들을 시민들이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으리라 본다. 기업은 사회의 욕구와 욕망에 보조를 맞추어 정책과 상품을 내놓는 터이다. 

 

이는 도시 단위 경쟁이 강조되는 오늘날에 도쿄도가 움직이는 방향을 봐도 알 수 있다. 파리·뉴욕과 같은 수준의 국제도시의 위상을 원하는 도쿄는 LGBT를 대하는 자세 또한 다른 세계적 도시에 발맞춰 갈 필요가 있을 터이다. 그러하기에 중앙정부와 달리, 한발 앞서 LGBT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여긴다.

 

한편 2016년 20대 청년 호시 겐토가 LGBT를 위한 기업 평판 공유 사이트 ‘잡레인보우’(jobrainbow.net)를 만들었다. 잡레인보우를 통해 일본 기업 내에 은밀하게 잠복해 있던 LGBT 차별과 혐오 사례를 드러냈다. 스타벅스 일본이 대표적이다. LGBT 직원이 잡레인보우에 나쁜 평가를 올린 것을 계기로 스타벅스 일본은 동성 배우자에게 이성 배우자와 동일한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LGBT 차별 금지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호시는 2018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8 아시아의 30살 미만 리더 30인’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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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 겐토(오른쪽)와 성소수자 채용 플랫폼

‘잡레인보우’를 통해 취업한 나카소네 다다시

출처-<한겨레21>

 

엇갈리거나 속력의 차이를 보이는 정치권·법조계와 기업 간의 차이를 보면서 문득 화혼양재(和魂洋才, '화혼'이란 일본의 전통적 정신을, '양재'란 서양의 기술을 말한다)가 떠올랐다. 정치권·법조계는 보수적인 정통 관료들이 중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변화에 조심성을 띤다. 반면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고자 감각을 예민하게 트랜드의 선두에 맞춰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방 세계의 변화에 협조하는 면이 있다. 화혼과 구미 문화가 충돌하는 또 한 면을 성소수자 화제에서 볼 수 있다.

 

다양성에 관하여 덧붙임. 젠더 주제가 2편으로 늘어난 이유

 

흑인 레즈비언은 흑인이라서 차별당한다. 여성으로서 차별당한다. 게다가 흑인 여성과 구별되어 레즈비언이라서 차별당한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교차성이다.

 

교차성 (Intersectionality)

상호교차성 또는 교차성은 성별·젠더·성 정체성·인종·민족·계급 따위의 정체성이 결합되었을 때 원래 없던 차별이나 특권이 생기는 경우를 말하는 개념이다. 흑인 여성주의에서 고안된 용어이지만, 인종 외에서도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있다. 상호교차성 이론에 기반한 여성주의를 교차여성주의 또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 위키백과 발췌

 

교차성은 실체다. 가령, 부유한 엘리트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그녀는 기득권 여성의 삶의 처지만 대변할 가능성이 있다. 애플의 수장 팀 쿡이 남성 백인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애플의 리더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성 레즈비언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 놓이면 우위에 선 계층이 되기도 또는 소수권자가 되기도 해서이다(사족이지만 종종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게이였다면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 인식이 지금과 사뭇 달랐으리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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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이 LGBT 축제를 축하했다

출처-<팀쿡 트위터>

 

필자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왼손으로 글씨 쓰고 젓가락질한다고 어른들께 혼이 났다. 그게 자의식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그래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왼손잡이들이 사회생활에 어떤 불편이 있는지 오른손잡이들은 신경 쓰고 살 필요가 없다.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이 성소수자만큼 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하철 개찰구, 바지 지퍼, 마우스 사용, 군대에서의 총기 적응 등에 관한 문제는 성소수자의 불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닐 터이다. 

 

그럼에도 왼손잡이로서, 필자가 느낄 수 있는 소수 층의 처지를 생각하며 성소수자(그리고 여성)에 관하여 이 글을 써보고자 했다. 왼손잡이라는 특성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특정 영역에서 모두 소수자가 될 수 있으리라. 

 

일본 최초의 게이 의원 이시사카 와타루는 2007년 첫 선거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4년 뒤 2011년 선거에서는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LGBT의 처지와 권익만을 대변하고자 했던 이전의 자세에서 탈피해 LGBT를 포함한 장애인·노령자·외국인 등 다양한 마이너리티의 주장을 아우르는 ‘소수자 간의 연대’를 기치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LGBT 문제가 성적 소수자들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결혼제도·가족제도·취업 등과 같은 사회 기초적 시스템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며 현대의 다양한 사회적 약자 문제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메시지가 유권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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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5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본의 성소수자 권리보호 활동 중인 시민단체

출처-<EqualityActJapan>

 

미국 LA에 머물던 시절 횡단보도가 기억에 남았다. 횡단보도에서 차는 무조건 멈췄다가 간다. 횡단보도가 없는 한적한 주택가 교차로에서조차 차들은 일단 멈췄다가 갔다. 필자는 그게 약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라 여겼다. 도로에서 차에 탄 운전자는 강자, 보행자는 약자의 포지션이라 본다. 미국이란 사회가 오늘날 선진국일 수 있는 연유에 약자를 유념하는 문화와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약자와 소수를 유념할 수 있는 사회, 그게 튼튼한 사회, 선진국이라 느꼈다. 

 

선진국이란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다. 민주(民主) 사회다. 소수의 지향과 의견도 존중하는 사회다. 한국의 많은 이들이 그토록 갈급하는 개인주의가 공기 속에 퍼져있고 개성을 개성대로 존중하는 사회다(이따금씩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이기주의[egoism]를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그만큼 개인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방증일 터이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집단에 동조하지 않음으로써 느껴야 하는 위화감이 크다. 그로 인해 심리적 병을 앓는 이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인 이유 중에 하나라고 여긴다. 

 

경제적 부만 생각하는 나라가 반드시 선진국은 아니다. 우리가 카타르·아랍에미리트·사우디 아라비아를 선진국이라 하지 않는다. 경제적 부는 수단이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할 수 있다면 구성원들이 자아실현까지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다. 다양성이란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며 행복을 지향한다는 걸 전제할 터이다. 달리 말해 개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함일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서로 개성과 자유를 존중할 때 그 사회는 인류의 모범인 사회,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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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한국은 2007년 18%, 2013년 39%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출처-<퓨 리서치 센터>

 

전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선진국을 ‘사람이 자유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고 단순명료하게 정의했다. 자유롭고 안전하고 건강해지려면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박해받는다는 인식이 없어야 인간은 안전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눈에 띄는 반가운 단어들이 있다. 이성애다.

 

이성애(異性愛) : 이성 간의 사랑. 또는 이성에 대한 사랑.

- 표준국어대사전

 

이성애를 하나의 단어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동성애 또는 양성애 등도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성애 외에 다른 사랑이 없다면 이성애를 단어로써 구별 지어 칭할 이유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야 했던 것은 아마도 다른 나라들의 단어 사용 기준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리라. 최소한 번역과 통역에 필요할 터이다. 

 

다양성은 선진 사회의 기본 전제다. 선진 사회의 방향이다. 폐쇄적인 사회는 언제나 망했다.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원 전원근 교수가 동아시아 퀴어(queer, 제반의 성소수자)에 관해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Human Freedom Index, Rainbow Europe 등의 지표(인덱스)는 성소수자 인권 친화적인 제도가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가에 따라 국가를 서열화한다. UNDP와 세계은행은 2019년 3월 지속가능개발 목표(SDGs) 의제에 맞추어 51개 지표로 이루어진 ‘LGBTI inclusion index’를 제안하였다. 앞으로도 성소수자 인권 의제는 국가 경쟁력의 주요한 지표로 점점 더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 글을 쓰며 일본이란 사회에서 젠더(특히 이번 편은 제3의 성)가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여러 방면에서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 탐구가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한 개의 디딤돌이라 보기 때문이다. 의식·정치·경제·종교·언어처럼 젠더 또한 한 사회를 이해하는 밑바탕이다. 양성뿐만 아니라 가장 약자인 제3의 성을 그 사회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본다면 그 나라의 의식적 그리고 경제적 성숙함을 가늠할 수 있다(의식과 경제력이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유명 철학자들 대부분 어느 나라들 출신인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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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나라일수록

동성애에 더 호의적인 경향이 있다

출처-<퓨 리서치 센터>

 

그런 뜻에서 일본도 한국도 먼 길을 왔지만 또 갈 길이 멀다. 다음 글에서 일본 여성과 남성에 관해 쓰며 젠더를 통해 바라본 일본 사회 조망을 마치도록 하겠다.

 

사족. 2022년 선진국들의 태도를 보건대, 이쯤 되면 올림픽이나 영화 시상식에서 남녀로 구분하는 종래의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성싶다. 

 

사족 2. 한국 사회에서는 홍석천 씨가 큰일을 했다고 느끼는 2022년이다. 그가 있었기에 2022년 7월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메리 퀴어>라는 성 다양성 예능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다. 10년 전 나왔던 <XY그녀>와 플랫폼도, 색깔도 다르지만 성소수자를 소재로 함은 같다. 두 프로그램 모두 홍석천 씨가 진행을 맡았다. 10년 전 <XY그녀>는 1회 만에 폐지되었다. 이번에는 그때와 사뭇 다른 듯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도 <메리 퀴어>를 주목했다. 타임은 홍석천 씨와 인터뷰도 진행했다. 한국도 10년간 다양성이 있는 사회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하다.

 

 

※ 참고문헌은 7화(젠더편 Ⅱ부) 말미에 함께 실었다. 

이메일 : ddanzi.min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