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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2022년 3월 10일. 왜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책이 자꾸 떠올랐을까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필자는 이 책을 무려 35년 전에 읽었습니다. 이제 갓 세상의 부조리에 슬슬 눈뜨는 그 시기, 서점에 갔다가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없는 용돈에 거금 3,200원을 들여 구매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정독하고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두었고, 이사하면서 정리했던 어느 박스 안에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몇 번이고 처분할까 고민하다 책을 버리지 않는 습성 때문에 그대로 박스에 넣어두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먼지가 쌓인 박스를 꺼내 책을 꺼내기보다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더니, 역시나 헌책으로 판매하고 있더군요. 일단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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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예스24 화면캡쳐>

 

이 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35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과 매우 맞닿아 있으며, 필자가 연재할 글의 핵심을 관통하는 의미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자기 존재 증명이 지금 우리 주변의 자영업이나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입금지보다는 자(者)에 집중하면,

 

이 책은 서울 변두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성수 씨가 자신의 가게에 출입을 못 하는 사람을 매일 칠판에 적었던 걸 모아 출판한 책입니다. 칠판에 적은 사람은 내 분식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적은 몇 년간의 기록입니다. 정말 다양한 내용의 출입금지 사유(?)들이 나옵니다. 그 내용들 대부분은 지금보다는 언론다운 신문 기사에서 나온 것들이 주였습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들로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진에 있는 김학의도 못 알아본 대검찰청 검사 OOO 외 몇 명"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 사저에 가서 고성방가를 일삼는 극우 유튜버 OOO"

"가습기 살균제를 시중에 판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OO산업 대표이사 외 임원진"

"블로그와 타인의 논문을 표절한 김건희 논문에 사인했던 교수 오승환·전승규·반영환·송성재·오명훈"

"한국 전기차를 판매할 수 있게 해야 할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막말하여, 향후 10년간 한국 전기차 시장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대통령 윤석열 "

 

공정과 정의와 상식에 배치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은 자기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들어올 수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 분식집은 서울 변두리에 있고, 파는 음식들도 십 대 학생들이 즐겨 먹을만한 떡볶이·라면류입니다. 위에 이야기한 사람들이 분식집에 올 리도 만무하건만 김성수 씨는 1년간 오롯이 출입금지자를 기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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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에는 "우리 시대의 외로운 자기증명" 이란 제목하에

 

"억압된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해방된 기쁨, 그 자유로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 소시민의 자기증명을 확고하게 보여준 유일한 보통사람"

 

이라고 기재하였습니다. 지금이야 좀 다르지만 당시만 해도 군부정권의 폭압이 공공연히 횡행하던 시대라, 비록 자신이 운영하는 분식집이라 해도 정권의 아픈 곳이나 소위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떳떳이 기재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소시민의 자기증명이라 기재한 듯합니다. 책의 앞부분에는 저자 김성수 씨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사연으로 지금 분식집을 개업하게 되었는지, 부인은 어떻게 만났는지 그런 일상들의 이야기가 적혀있습니다.

 

사실, 필자가 처음 책을 접할 때 이 부분은 별로 심각하게 읽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보다 20년은 더 나이 먹은 사람의 삶을 이해할 만큼의 깜냥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헌책을 구매해서 다시 한번 읽어보니, 아 그럴 만했겠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 뒤에 저자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고, 이 안에서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습니다.

 

"인내천(人乃天)"이란 이름의 분식집은 저자에겐 일종의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년의 시간 동안 인명 경시 풍조의 사회에서 출입금지를 당할만한 사람들의 행동을 기재하면서 자기성찰을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타인의 행동을 비판하며 그 비판을 공식화하는 과정에서의 자기성찰은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닌데, 1년이란 시간이 그 성찰의 진정성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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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몇몇 사례를 소개합니다

 

오늘의 출입금지자 1호는 아래와 같이 적었네요.

 

"물품을 사들일 때 계열 회사로부터는 비싼 값으로 구입하면서, 여타 기업들에 대해서는 차별대우를 하는 등 불공정거래를 하고, 또한 이를 감추기 위해 공정거래실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현대건설 및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30년 전이니 계열사 몰아주기가 훨씬 더 심했겠지요. 공정 거래처가 아닌 실에 제출한다는 걸 봤을 때,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 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출입금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 분식집에 오라 해도 오지 않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구청이나 관계기관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다양한 탄압도 받았다고 하네요. 시설보완이란 이유로 철거 명령도 내려졌다고 합니다. 

 

"부천서 성고문 만행사건 재판과 관련 범인 문귀동의 가증스럽고도 악랄한 구체적 범행 사실을 서울고법이 인정했음에도 피해자 권모 양에게 징역 3년을 구형, 피해자 권모 양은 아직 감방에 갇혀있는데 범인 문귀동은 오래전에 풀려나와 대로를 활보하고 다니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연출하여 재판의 근본모순을 드러낸 인천지검 검사 남충현, 재판장 윤규한 및 대법원장 김용철"

 

저자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서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출입금지자 목록에 꾸준히 올려놓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저자에게도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신민당 의원들을 빼놓은 채 국회 별관에 모여 새해 예산안을 2분 만에 변칙 통과시킴으로써 현 체제가 변칙 체제임을 드러낸 민정당 대표 노태우 및 민정당 전 의원"

 

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DNA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죠. 

 

"현실의 부정부패에 대해 정당하고도 정의롭게 외치고 인간다운 삶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행동하는 양심을, 학원소요 가담자·불순단체 가담자·불법시위 가담자라는 허울로 교사 임용 대상에서 제외한 보복 전문부서 문교부 장관 손제석"

 

알게 모르게 이런 보복에 대한 전통은 90년대 후반 2000년 초반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건국대 사건 때 무려 1천여 명이나 무더기로 구속하던 검찰이, 의료치료기 납품을 둘러싸고 거액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의대 교수 3명이나 훔친 승용차로 절도 행각을 벌인 부유층 자제 고교생 4명을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시, 결국 피의자 신분과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양면성 검찰권을 드러낸 위의 사건 담당 검사 전원 및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김성기"

 

90년대 초반 학번인 필자는 88학번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한 가지가 구속되어보지 않으면 폭압을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1천여 명이나 구속되었던 사건이라, 더욱 공감 가는 내용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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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서울대 박종철 군의 사건을 맡아 지난 1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 영장 없이 불법 연행되어 감금된 인사가 238명에 이르렀음이 밝혀졌는데, 이는 분명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것인 동시에 자유에의 강한 의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야만적이고도 잔혹한 참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인즉, 이 참혹한 탄압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시경국장·치안본부장·국가안전기획부장·내무부 장관"

 

그 옛날에는 아무나 일단 잡아들이고, 취조해서 범인을 만들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좀 덜할까요? 아... 지금은 경찰보다는 검찰이 그렇게 하죠. 탈탈 털어서 별건 수사로 압박하는 검찰이 당시 경찰과 무엇과 다를까요?

 

책의 제일 앞면에는 "이 부끄러운 기록을 역사 위에 놓는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책을 주욱 읽다 보면,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단지 바뀐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출입금지의 항목이 저 때보다는 좀 더 상위 층위의 사회적 고민이라는 점입니다. 맨바닥의 고민보다, 실행하고 개선한 뒤 고민이 한층 진보된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아직 고쳐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작금에 이 책이 떠오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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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마케팅을 해도 먹고살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이 35년 뒤에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고작 247,077표 차이로 당선된 현 대통령을 뽑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TV조선·채널A를 종일 틀어놓는 식당에서 밥 먹는 기분과 오랜만에 탄 택시에서 일부 택시 기사의 정치관을 들을 때 기분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망해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발자취가 많습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저들의 몰상식적인 생각과,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그 모습에 진저리를 치게 되는 과정에서 이 책이 떠오른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주변에서 지켜봐야 하는가? 왜 이들이 깨이길 바라며 열정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이들(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을 사회적으로 고립시켜 목소리를 줄여나가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고민도 생기면서 이 책이 생각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문 사회학자의 통계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고,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번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왕 다운 왕을 만나고 싶습니다

 

2000년대쯤, 밀레니엄의 분위기일 무렵, 한국의 경영학계에서는 몇몇 유명한 경영학 구루(guru)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인 양 포장하는 것이 유행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경영학 공부를 해보신 분들은 들어보셨을 잭 웰치·피터 드러커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이야기에 한국의 경영자들이 열광하며 인용하는 게 대단한 지식인인 양 추앙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객이 왕이다' 식의 이야기를 꺼낸 사람 중에 한 명이 잭 웰치입니다. 고객 담당 부서의 직원이 고객 컴플레인에 소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자 잭 웰치가 호통을 칩니다, "저 고객이 너에게 월급을 준다". 그러면서 "고객은 왕이다"라고 했던 말이 유행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영업 매장마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표어를 붙여놓은 걸 흔히 볼 수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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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2010년 들어 갑질이란 단어가 일반화되면서 어느 자영업자가

 

"왕다운 왕을 만나고 싶습니다"

 

라고 기재해서 갑질을 비꼬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요. 고객이 왕이란 표현은 자영업자건, 사업자던 고객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야기되다 보니,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물질적·정신적 손해에도 불구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통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내 물건을 사주는 고객은 내게 왕과 같은 존재일까요? 차라리, 정말 왕다운 고객을 만나 제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즐거운 경험을 할 수는 없을까요? 2찍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물건을 사는데, 거기에 많이 구매한다고 해도 정말 왕으로 대접해주어야 할까요? 그 2찍으로 인해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되었는데도 왕으로 대접해야 할까요? 좀 더 나아가, 왕 다운 고객만을 선별해서 만날 수는 없을까요? 필자가 거창하게 붙인 이념마케팅의 가장 원초적 질문은 내가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에게만 물건을 판매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마케팅과는 좀 결이 다른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2편에서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조그마한 회사를 경영합니다. 경영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조그만 회사다 보니, 거창한 마케팅의 개념은 생각도, 실행도 그리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넓고 넓은 시장에 혼자서 밑바닥부터 기어나갔습니다. 새삼스레 효율적인 마케팅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하던 중 이런 이념 마케팅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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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마케팅은 추구하는 가치를 자유롭게 표현해도

삶을 지속할 수 있음을 표합니다

 

종종 타깃층을 넓혀야 제품 판매 수익이 확대될 거로 아는 분들이 있는 듯합니다. 대량판매를 통한 극도의 이윤추구를 하다 보니, 무작정 타깃을 늘리려는 건 아닌가 합니다. 말 그대로 타깃은 우리 제품을 구매할만한 소비자를 좁히고 좁혀 정말 구매로 이어질 소비자를 뜻합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보면, 다양한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해볼 만한 시장에 이념 마케팅이란 마케팅 툴이 통한다고 봅니다. 그 안에서 제대로 판매하기만 하면 우리의 사업과 삶은 경제적으로 유지될 거라 여깁니다. 

 

과도한 욕심을 부려서 비생산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기보다, 적절한 타깃을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뚜렷하게 원하는 타깃층에게 상품을 팔려는 효율적인 활동의 일환인 이념 마케팅에 관한 핵심을 2편에 이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스타워즈 덕후, 농구 덕후, 애플 덕후.. 라고 생각만하고, 실제로는 잘 모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