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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분적 동원령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즉, 현재 예비역인 시민만 징집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에서 복무했던 이들 중 특정 군사 특기가 있으며 관련 경험이 있는 경우가 동원 대상이 될 것이다.』

 

- 2022년 9월 21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텔레비전 연설 중 발췌

 

푸틴의 연설 직후 러시아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실시간 검색어로 ‘팔 부러뜨리는 법’이 올라올 정도가 됐고,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의 비행기 표는 몇 배씩 뛰어오르게 됐다(이 와중에 터키는 또 신났다. 러시아 여권으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터키다).

 

러시아 38개 도시에서 동원령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체포되는 등 러시아는 지금 난리가 났다. 이 동원령을 순순히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예비역을 소집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새로운 막이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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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동원령 발표직후, 국외로 도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린 러시아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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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원령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하나씩 살펴보자.

 

전쟁인 듯 전쟁 아닌 전쟁 같은 작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러시아는 러-우 전쟁을 ‘전쟁(war)'으로 지칭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 즉 ’작전(operation)’으로 정의 내렸다.

 

“전쟁인 듯 전쟁 아닌 작전!”

 

이 개념은 러시아로서는 양날의 검이었다. 당장 전쟁이 아니라 ‘작전’이기 때문에 러시아 내부 동요를 막았고, 국제사회를 향해서도,

 

“이건 그냥 우크라이나에 소란이 있어서 잠깐 군사작전 펼치는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었다. 모두가 다 ‘전쟁’이라고 알고 있지만, 러시아 국민들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이걸 전쟁이 아니라고 믿었다(아니면, 자기들 인생이 상당히 골치 아파지는 걸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러-우 전쟁을 말 그대로 ‘전쟁’이라고 말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하게 됐다. 자, 문제는 이렇게 내부 단속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때문에 러시아는 한 팔을 묶어놓고 전쟁을 치르게 됐다. 당장, 병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이건 예비역을 동원하기 전의 문제다.

 

“나보고 우크라이나를 가라고? 가기 싫은데?”

 

“이 자식이 군인이 가라면 가야지! 너 명령 불복종이야! 당장 널 처벌할 수도 있어!”

 

“그러슈, 우크라이나 가서 죽는 거보다는 낫지.”

 

만약 전시(戰時)였다면, 군법회의에 넘기든 즉결 처분을 하든 제재 수단을 고를 수 있겠지만, 이건 전쟁이 아니라 ‘작전’이다. 전쟁이라면, 국가 위기... 전쟁 앞에서 적전(敵前) 도망이라며, 현장에서 즉결 처분을 할 상황이라도 작전이란 거다. 누구나 다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러시아는 지금 평시(平時)에 군사작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쪽으로 향하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 배속을 거절한다는 건 평시에 명령을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형태가 된다. 이 경우는 딱히 제재 수단이 없다. 잘해봐야 ‘해임’이다. 이러다 보니 투입되는 군인들 중에서 명령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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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저녁, 러시아 경찰에게 끌려가는 예비군 동원령 반대 시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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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의 함정

 

자, 이제부터 잘 따라와야 한다.

 

푸틴 대통령이 전쟁 초기 ‘징병된 자원’들은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말한 대목을 곱씹어 봐야 한다. 푸틴도 여론을 생각해서 징병 병력을 전선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기서 우리는 러시아의 병역 시스템이 ‘징병+모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재 러시아군은 122만 명 정도이다. 이중 육군 병력은 28만 명 정도 된다.

 

그렇다면, 이번 러-우 전쟁에 투입된... 그러니까 전선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실 병력은 얼마나 될까? 러시아군과 체첸군,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그리고 남오세티야 군대까지 다 포함해서 약 24만 정도다. 이중 순수 러시아군 병력이 약 20만 명 정도다.

 

러시아는 끌어모을 수 있는 육군 병력의 대부분을 여기에 투입한 거다. 자, 문제는 푸틴이 했던 말을 생각해 보자.

 

“징집병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

 

- 2022년 3월 7일 푸틴의 발언 중 발췌

 

실제로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당장 국내 여론을 생각해 봐야 한다(우크라이나군에 포로가 돼서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통화하는 러시아군 포로들을 보며 러시아 여론이 어떨까 생각해 봤는가?). 문제는 28만 명 중 20만 명 이상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했다는 거다. 현재 러시아군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로 치면 논산훈련소의 조교와 교관이 되는 교도대의 병력까지 전선에 투입 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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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병력을 양성해야 할 병력을 빼내서 전선에 투입했다는 건 나라가 망조가 들었을 때나 보는 경우다(전쟁이 거의 막판에 몰린 상황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이러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되거나 재투입 될 병력이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 거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작전’이지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정확한 병력 피해를 발표하지 않아 예측할 뿐이지만, 서방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보수적으로 보면 4만 명 안팎, 평균적으로 7~8만 명의 병력 피해를 봤을 거다.”

 

라는 추정을 한다. 지금 투입된 병력에서 사상자를 빼고 나면, 뭐가 남을까? 러시아는 계속해서 병력을 축차 투입(부대를 쪼개서, 투입 가능한 부대 먼저 투입하고 나머지 부대는 준비되는 대로 투입하는 것) 했다. 왜? 구멍 난 전선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우크라이나의 전략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반, 그러니까 러시아가 병력을 키이우에 집결해 젤린스키를 처단하고, 우크라이나의 지휘부를 무력한 시킨 후, 며칠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낙관적인 전략’을 시도했을 때부터 병력의 축차투입을 최소화했다. 이들은 꾸역꾸역 러시아군을 막아냈다. 그리고 병력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3월 3일 우크라이나는 예비역 소집령을 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군의 병력은 13만 명 수준이었는데, 100만 명의 예비역 소집에 나선 거다. 이 병력의 축차투입을 최소화했다. 대신 훈련하고 편제를 갖춘 뒤 편성을 해 놨다. 이들 병력이 9월 대반격의 핵심이 돼 준다(우크라이나 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예비군은 전선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인내심을 발휘했는데, 병력을 다 끌어와 축자투입한 러시아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모래성을 쌓듯 한줌 두 줌 전선에 흩뿌린 러시아군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작전'에 발목 잡힌 러시아

 

물론, 러시아도 가만 앉아 있었던 건 아니다. 러시아는 대대전술단의 한계를 깨닫고 나서는 자신들의 전통적인 방법.

 

“화력으로 밀어붙여서 박살 낸다!”

 

라는 방식으로 돌아갔지만, 이때는 이미 늦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M142 HIMARS를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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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20킬로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사거리(탄종에 따라 500킬로 넘는 것들도 있다. 실제로 미군은 사거리 300킬로짜리 ATACMS를 건네줄 생각이다)로 러시아군의 전략 자체를 뒤집어엎었다. 미군이 제공한 HIMARS와 하이마스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M270 MLRS를 받아든(MLRS는 영국과 독일이 건네줬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야포 사거리 밖에서 치고 빠지는 짓을 계속했고, 하이마스는 러시아의 최고 표적이 됐다.

 

(오죽하면, 하이마스를 몇 대 격파했다는 발표까지 했을까?)

 

우크라이나 군은 하이마스를 들고 러시아군의 탄약고를 집중적으로 노렸고,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탄약고 수십 개가 날아가 버렸다(러시아가 북한에게 탄약 수입을 타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군 정찰위성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군의 탄약고를 하나하나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대포를 쏜다고? 그래 쏴봐! 너희들이 쏠 포탄을 다 날려 버릴 테니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러시아군의 전통적인 방법. 즉, 대포를 다 끌어와 전선을 초토화해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방법으로 돌아왔는데, 그 탄약고를 날려 버렸던 거다. 실제로 하루 10만 발 정도 쏘아대던 러시아군 포탄의 숫자가 급감하게 된다. 이렇게 전선을 안정화한 후 우크라이나는 서서히 반격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비군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치 헤르손을 칠 거처럼 하다가 동부전선의 하르키우.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로 치고 들어간 거다. 정보전에서도 화력에서도, 병력에서도, 사기에서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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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르키우 전투에서 우크라이나는 이지움을 탈환하게 된다. TV와 언론에서는 이지움 탈환 직후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학살 사건에 주목하지만, 전략적으로 이지움이 중요한 게 이곳에 러시아군의 보급기지가 있었던 거다. 수백 대의 탱크와 엄청난 양의 장비를 노획했다. 

 

그리고 이지움을 발판으로 다시 러시아군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러시아는 말 그대로 전선 붕괴 직전까지 몰린 상황. 현재 다닥다닥 긁어모은 병력을 가지고 어찌어찌 전선을 유지했지만, 그 전선 자체가 붕괴했다. 봄부터 시작해 여름 내내 확보했던 점령지가 단 한 순간에 우크라이나로 넘어가게 됐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군의 카드가 다 봉쇄됐다는 거다. 전통적인 화력 우위는 미군이 지원한 하이마스에 의해서 그 효과가 차단됐고, 러시아의 방공망도 미국이 제공한 와일드 위즐(Wild Weasel : 적의 대공망을 제거하는 SEAD 작전을 펼치는 기체) 장비들을 통해 러시아군의 방공망을 하나둘 붕괴시키고 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한참 전부터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곧 동원령을 선포할 거란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전선을 유지하는 게 힘들 거다.”

 

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현실이 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