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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핫이슈, 평화헌법 개헌 

 

지난 7월의 일이다. 일본의 상원격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당 연립정권이 승리를 거두며 2/3 이상의 의석을 개헌 세력이 확보했다. (디테일한 의석수 비율은 지난 기사 ‘앞으로의 일본 2(完): 산 기시다와 죽은 아베의 싸움이 시작됐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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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헌법개정을 원하는 일본의 개헌 세력은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개헌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아베 전 총리 피살 충격 속에서 치러진 참의원 선거는 예상대로 여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그 후 피격 사건의 동기와 배경 등이 밝혀지면서 일본 정치와 종교의 유착 관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자민당은 작년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했다는 것에 도취해 있을 여유 따위는 사라지고, 코로나 대책과 종교와의 유착관계 등에 대한 해명, 대응으로 인한 곤혹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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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당장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충분한 개헌 의석이 확보된 상태인 만큼, 잠재적 핫이슈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바로 평화헌법 개헌 논의다. 

 

 

남의 나라 개헌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금의 일본은 과거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이를 미화하는 역사수정주의가 발호하며 우경화되고 있다. 이런 일본이 현재의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한다면, 피해국가인 우리로선 그 방향과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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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관심을 기울이려 하면, 디테일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표면적인 정보야 한국의 여러 언론에서도 다뤄지지만, 일본 헌법을 개정하는 개헌이 어떤 내용이며, 그를 추동하는 세력은 어떤 자들이고, 그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 어디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지, 또한 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과 전망은 어떤지 등 디테일한 정보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본 연재물에서 현행 일본 헌법의 탄생 배경과 그 이후, 개헌을 둘러싼 주요 동향을 살펴본 후, 앞으로 일본의 개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다뤄보려 한다. 

 

모든 세세한 내용을 다 다루기는 힘들지만, 일본이 왜 70년 이상 유지해 온 헌법을 지금 이 시점에서 개정하려고 하는지, 또 그렇게 되면 무엇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정도는 본 연재에서 풀어보려 하니, 미래의 위험 요소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최초 근대 헌법, 명치 헌법의 탄생

 

일본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대일본제국 헌법’, 이른바 ‘명치 헌법(메이지 헌법)’이 동아시아 국가 최초로 성립된 근대 헌법이라는 점이다. ‘대일본제국 헌법’이 정식 명칭이고, 줄여서 부를 땐 ‘제국 헌법’이라 한다. 명치 시대에 만들어졌으므로 ‘명치 헌법’이라고도 하고, 현재 ‘일본국 헌법’과 구분하는 의미로 ‘구 헌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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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 헌법

 

명치 헌법은 일본이 명치 유신(메이지 유신)으로 에도 막부체제인 봉건제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명치 헌법은 1889년 2월 11일에 공포되고, 1890년 11월 29일에 시행되었다. 

 

명치 헌법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중심으로 한 명치 건국 중신들이 유럽에 건너가 유럽 국가의 통치체제에 대한 학습과 조사를 하고 일본으로 귀국 후 만들어졌는데, 총 7장 76조로 구성된다. 이 헌법은 입헌주의와 '덴노'의 통치를 기본으로 하는 ‘국체(国体)’를 병기한 흠정헌법(欽定憲法, 군주가 만드는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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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건너가 여러 나라를 학습한

'이와쿠라 사절단'의 지도부

(왼쪽부터) 기도 다카요시, 야마구치 마스카,

이와쿠라 도모미(상투머리), 이토 히로부미,

오쿠보 도시미치. 

사진은 1872년 런던에서. 

 

당시 일본은 독일(당시 프로이센) 헌법을 크게 참고했다. 명치 유신 후, 일본은 이전의 봉건제를 타파하고 '덴노' 중심의 군주제에 의거한 정치체제를 갖추는 것이 근대국가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게 된다. 당시 명치 신정부가 모델로 했던 나라는 군주제를 취하고 있던 영국이 아닌 프로이센이었다. 

 

영국의 국왕에게는 실권이 없으며, 성문 헌법이 아닌 관습법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체제였던 것에 비해, 비록 작은 나라지만 구미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프로이센은, 군주제를 바탕으로 제국헌법 이론의 기초를 갖추고 있었기에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프로이센의 정치체제야말로 명치 신정부가 롤모델로 그리는 정치제도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모든 주권은 '덴노'에게 있으며, 최고 통치자인 '덴노'를 통하여 하사된 권리를 신민은 감지덕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본의 명치 헌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주권재민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현재와 같은 헌법 개념으로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헌법이라 하겠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면 나름대로 형식과 틀을 갖춘 헌법이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최초로 서구와 같은 근대 헌법을 갖게 된 일본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당시 헌법이 공포되고 시행되기까지 일 년 이상의 긴 시간을 설정했는데, 무지한 민생들에게 헌법을 홍보하고 숙지시키기 위한 본래의 목적도 있지만, 수백 년 이상 지속된 봉건 체제의 붕괴와 신체제와의 갈등 그리고 민주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권운동 등 신정권에 대한 민중의 불만 및 요구들을 희석하기 위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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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 헌법 하의 통치기구도

괄호 내의 기구에 대한 규정은 헌법에 없다.

출처-<위키백과>

 

명치 헌법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1. 명치 헌법의 기본 틀은 ‘입헌군주제’였다. 

 

권력의 정점은 군주(덴노)이며 군대의 통수권과 통치권, 입법권 등 '덴노' 대권이 부여되어 있다. 

 

2. ‘의회제’를 선택했다. 

 

당시 국회인 제국의회를 중의원과 귀족원의 2원제로 분류하며, 봉건사회 정치체제를 타파했다.

 

전술했듯 현재 기준으론 흠결이 많지만, 당시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하루빨리 서구와 같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국가 형태를 갖추고, 이를 토대로 서구 열강과의 불평등조약 등의 개선을 꾀하려 했던 명치의 위정자들로서는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이라 하겠다. 

 

 

미군과 줄다리기 끝에 탄생한 현재 헌법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면서 무조건 항복했다. 그리곤 연합국의 점령통치를 받게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통치였다. 도쿄에 진주한 더글러스 맥아더가 이끄는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SCAP)는 일본의 전체주의적 국가체제를 해체하고 민주적인 체제를 도입하려 했다. 그 첫 번째 과정으로 ‘대일본제국 헌법’ 개정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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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맥아더 장군과 히로히토

 

점령군의 이런 요구에 일본 정부는 마츠모토 조지(松本 烝治) 국무대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문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 개정 요강’을 작성하고, 이를 점령군에 제출했다. 조사위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마츠모토 시안(試案)’이라 불리는 이 개정 요강은, 전전과 같은 ‘덴노 주권설’을 유지하는 등 소극적 개정안이었다. 당연히 맥아더 사령부는 이 개정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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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될 거 같아? 다시 고쳐와~

 

맥아더는, 

 

①덴노의 지위 변경 

②전쟁의 포기와 교전권 부인 

③봉건제도 철폐

 

를 일명 ‘맥아더 3원칙’으로 결정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개정 초안을 작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맥아더 초안은 일본 정부에 넘겨진 후, 일본 정부와 여러 절충 과정을 거쳤고, 일부 수정되며 헌법 개정안이 작성되었다. 그 후 이 헌법 개정안은 '덴노'의 자문기관인 추밀원의 검토를 거치고, 중의원과 귀족원(현 참의원)에서 약간의 수정을 더 거치며 가결되어, 1946년 11월 3일 ‘일본국 헌법’으로 공포, 다음 해 5월 3일 시행되었다. 이 헌법이 현재 75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일본 평화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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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7일 중의원에서

현행 일본 헌법이 가결되는 모습.

 

여기서 중요한 사실 세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일본 정부가 덴노 주권제 즉, ‘국체’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는 사실 

②점령군이 반대하여 덴노 주권제가 아닌 ‘국민 주권’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③일본 정부와 점령군 사이의 검토와 조정・절충 과정을 통하여 현행 헌법이 탄생되었다는 사실 

 

여기서 ③번의 사실로 인해, 현재의 평화헌법은 과거부터 개헌 세력들에겐 점령군에 의해 ‘강요된 헌법’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일본 스스로가 만드는 ‘자주 헌법’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

 

 

역대 일본 헌법의 공통점

 

여태까지 읽었던 내용을 잘 보면, 역사상 일본이 가져봤던 두 개의 헌법(명치 헌법, 일본국 헌법)에는 내용을 떠나 공통점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하나, 일본이 한 번도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의해 헌법이 만들어진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의해 찬반을 묻는 과정은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채 권력자들끼리만 논의하여 헌법을 탄생시켰다.

 

둘,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1890년부터 시행된 명치 헌법은 패전 후 개정을 거칠 때까지 56년간 개정된 적이 없었고, 현행 일본국 헌법은 1947년 5월 3일 시행 이후 75년간 개정된 적이 없다.

 

 

현행 일본국 헌법의 특징 

 

일본 개헌 세력이 현 헌법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길 원하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현 헌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대략적으로 짚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현행 일본국 헌법은 전문과 11장 103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치 헌법과 간단히 비교해보면 아래 표와 같다.

 

헌법헌법비교.PNG

표를 클릭하면 확대할 수 있습니다

 

현 헌법은 3대 원칙을 기본으로 하여 구성되었다고 하며, 그 3대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본에서) 말한다.

 

1. 국민주권

 

현행 헌법 전문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이 헌법을 확정한다’는 문언에서 보듯이, 국가의 정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리(주권)가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로써 국민 주권(주권 재민)의 원칙을 나타내고 있다. 

 

만 20세(2015년 6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권은 만 20세에서 18세로 낮춰졌다) 이상에 선거권을 주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나라의 정치를 담당하는 것은 이런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전전의 명치 헌법에서는 주권을 ‘통치권’이라 하고 이 통치권은 '덴노'가 갖는 ‘덴노 주권’이 원칙이었다. 지금 헌법에서 '덴노'는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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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일본 '덴노' 나루히토

 

2. 기본적 인권의 존중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다. 기본적 인권에는 ①자유권: 사상・양심의 자유, 신교(信教)의 자유, 집회・결사・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거주 이전・직업 선택의 자유, 외국 이주・국적이탈의 자유 등, 평등권: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사회권: 생존권(건강하며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등,  참정권: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 청구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의 여러 권리가 포함된다. 

 

3. 평화주의

 

일본국 헌법 제9조는 국가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도 결코 전쟁을 하지 않는 것과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군・해군・공군 등의 전력을 갖지 않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 국내외 무수한 희생과 피해를 입힌 반성에 입각한 원칙이라 하겠다. 그러나 전후 헌법을 둘러싼 개헌과 호헌 세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다름 아닌 이 9조가 된다. 

 

현행 일본국 헌법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 전문

• 제1장 덴노 (제1조〜제8조)

•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 제3장 국민의 권리 및 의무 (제10조〜제40조)

• 제4장 국회 (제41조〜제64조)

• 제5장 내각 (제65조〜제75조)

• 제6장 사법 (제76조〜제82조)

• 제7장 재정 (제83조〜제91조)

• 제8장 지방자치 (제92조〜제95조) 

• 제9장 개정 (제96조) 

• 제10장 최고법규 (제97조〜제99조) 

• 제11장 보칙 (제100조〜제103조)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와 입헌주의에 입각하고 있으며, 제98조에서는 헌법이 최고 규범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계속>

 

 

다음 편에선 헌법 제9조가 정확히 뭔지, 또 개헌이 어려운 일본 극우 세력은 그동안 어떤 편법으로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려 했는지,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등을 다룬다.  

 

 

 

 

편집부 주

 

30여 년간 도쿄에 살며 일본 정치를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헌모 교수가

재일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일본정치 현장과

일본 우경화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이다.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와 어떻게 우경화가

독주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집어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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