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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육군 병력을 쏟아 부었다. 이건 평시에도 문제가 된다. 병력이 한 번 전선에 투입되면 주구장창 전선에만 있을 순 없다. 싸우지 않더라도 전선에 배치된다는 건 병사들의 정신과 육체를 소모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서 순환 배치해야 한다. 

 

2차 대전과 6.25 전쟁을 통해 우리는 전투 피로증(Battle Fatigue, Combat Fatigue : 전쟁으로 인한 급성 행동장애)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PTSD다.

 

한마디로 전선에 병사들을 계속 투입했다간, 그 자체로 병력이 소모된다는 거다. 러시아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어디서 어떻게 병력을 뽑아 와야 하는가? 결국은 우크라이나처럼 동원령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을 의식해서 그동안 동원령 선포를 자제해 왔지만, 전선 자체가 붕괴되려는 지금, 찬밥 더운 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동원령을 선포하고 병력을 염출해 봤자 전선 상황이 획기적으로 뒤바뀔 거 같지 않다는 거다. 

 

30만 명 정도의 예비군을 충원해서는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이다. 그리고 충원을 한다 해도 이들을 훈련시키고, 재편성한 다음 전선에 내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의 보급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20만 정도 동원한 지금도 보급 때문에 허덕이고 있는데, 여기에 추가로 30만을 더 투입한다니...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장비를 챙겨주려면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까? 아니, 비용 이전에 그 물자를 어디서 충당할까? 병력이야 어찌어찌 마련하겠지만, 이들을 먹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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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의 동원령을 피해 인접국인 조지아로 넘어가는 탈출행렬

출처 - 링크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러시아가 생각해 볼 군사적인 출구전략은 무엇일까?

 

총동원령

 

지난 5월 2차 세계대전 전승절을 전후해서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푸틴이 뭔가 결정을 내릴 거라는 예측을 했었다.

 

“지금 상황에서 러시아의 출구전략은 총동원령밖에 없다.”

 

총동원령을 내리는 순간 러시아는 약 300만 명의 예비역들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푸틴에게 하나의 카드를 더 쥐여주게 되는데, 바로 ‘계엄령’이다. 계엄령을 통해서 국가 경제, 특히나 생산시설 등등을 국유화해서 국가 총력전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그동안 속을 끓여왔던 두 가지 문제. 즉, 병력 부족 문제와 보급 문제를 일시적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일시적이란 표현을 쓴 게 러시아의 현재 능력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가 총력전으로 모든 가용자원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보급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을 거 같아서 그렇다. 이미, 이란과 북한, 중국 등지에서 무기를 들여와 사용할 정도로 러시아는 몰려 있다. 러시아 자체의 생산능력도 한계가 있고, 서방의 경제 제재 때문에 군사 무기를 만드는 데 여러 가지 애로점이 발생하고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경우는 『최후의 카드』라는 거다. 만약 총동원령을 내린다면, 푸틴의 정치적 생명은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고 볼 수 있다. 부분적 동원령을 내렸을 때 러시아에서 나온 구호가 ‘푸틴의 전쟁에 끌려가기 싫다.’이다. 총동원령이 떨어질 경우, 러시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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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푸틴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며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 말했다.

출처 - AP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인 노력’이 아니라 순 군사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러시아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총동원령을 선포하고 전선을 유지한 채로 대규모 반격을 준비하는 거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보급의 문제와 국내 정치의 문제가 발목을 잡겠지만, 그나마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서 ‘반짝’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총동원령을 선포하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9월 21일에 선포한 부분 동원령이 ‘총동원령’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닌가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당장 동원령을 선포한다 해도 이 병력들을 훈련시키고, 편제를 만들고, 이들에게 쥐여줄 무기를 조달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다. 짧게는 4주 길게는 10주 정도 걸린다. 그 사이 전선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우크라이나군이 턱 밑까지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선택할 카드는 몇 장 없다. 

 

가장 상식적인 접근이 전선을 축소해서 거점 지역 몇 군데를 선택해 방어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벌고, 그 사이 병력을 준비한다. 그렇게 라스푸티차의 계절을 넘긴 다음, 이 병력을 가지고 대대적인 반격 작전에 들어간다는 시나리오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겨울 작전’이 시작된다는 건데, 이건 최대한 긍정적인 상황만 고려한 거다.  

 

만약 이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부분 동원령으로 충원된 병력은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란 의미가 된다. 지금 러시아군의 병력 상황을 보면, 무리한 공세 작전은 불가능하다. 아마 러시아군 내부에서도 전선의 축소와 전략 방침의 변경을 고민하고 있을 거다. 만약 전쟁이 계속 이어진다는 전제하에서 지금 러시아는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 한방은 러시아의 모든 걸 건 한방이 될 거다. 러시아의 산업 역량. 그러니까 군수품 생산능력은 소련 시절의 그것을 한참 밑돌고 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군수품은 분명 한계가 있다. 여기에 보급 능력도 한참 떨어진다. 이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집요하게 러시아군의 탄약고를 타격하고 있다. 

 

러시아가 만약 총동원령을 때리고 겨울 작전에 들어간다면... 이건 러시아의 영혼까지 끌어모은 한방이 될 거다. 

 

이 한방이 그닥 큰 효과가 없을 거라는 예상을 해보게 된다. 지난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군은 자신들의 약점, 특히나 보급 능력의 한계와 병적 자원의 한계, 전략의 부재와 러시아 무기의 약점 등을 너무도 많이 노출했다. 그 반면에 우크라이나 군은 미군의 적절한 코치와 압도적인 정보, ‘적당한 수준’의 무기 지원을 기반으로 완전 다른 군대가 돼 있었다. 물론, 이건 2014년부터 시작된 동부전선의 전투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군은 크림반도를 빼앗겼던 시절의 우크라이나 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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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분 동원령으로 소집한 러시아 예비군에게 지급한 소총

출처 - 링크

 

결정적으로 총동원령을 선포할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거다. 만약 러시아가 전쟁의 모양새가 어떻든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총동원령을 선포할 결심을 했다면, 지난 5월... 아니, 더 빨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정치적 모양새를 생각해서 전승절 때 했다면 얼추 가망이 있었을 거다. 

 

지금은 총동원령을 때린다 하더라도 상황이 어렵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 지휘관의 부족.

 

둘째, 장비의 부족.

 

이다. 7개월의 전쟁 기간 동안 러시아는 동원할 수 있는 육군 병력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 밀어 넣었다. 그 결과 많은 위관급, 영관급 장교들이 전사했거나 포로가 됐다. 이미 지난 3, 4월에 러시아군 전사자를 살펴보면 전체 전사자의 20%가 장교들이었다(이들 중 상당수가 위관급, 영관급들이다). 장성급도 죽는 마당에 영관급과 위관급이 죽는 게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건 큰 문제다. 총동원령으로 병력을 만들었다 치더라도, 

 

“야, 저 병력 누가 지휘해?”

 

라는 문제에 봉착한다는 거다. 여기에 더해 물자와 장비의 부족도 한몫을 거들 거다. 전쟁 초반 러시아는,

 

“한 타 싸움에서 밀리면 안 돼! 지금 다 쏟아부어!”

 

를 외치며 가지고 있는 장비와 물자들을 다 밀어 넣었다. 그 결과 치장 장비들까지 탈탈 털어먹은 상황이 됐다(수천 대 단위의 기갑 장비들을 다 잃어버렸다). 여기에 사용한 포탄은 700만 발이 넘어가는 수준이 됐다. 전통적으로 러시아군의 화포 운용 방침은 대규모로 탄막을 형성하는 형태이다. 때문에 일단 쏟아붓는 상황이다. 이걸 다시 보충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선포할 생각이 있었다면, 늦어도 5월에 내렸어야 한다. 지금은 총동원령을 내린다고 해도 군사적으로 어떤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핵전쟁

 

“서방 세력이 러시아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

 

- 2022년 9월 21 푸틴 대통령의 발언

 

이 발언이 나오자 그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바지 대통령을 했었다)가 거들었다.

 

“새로 편입하기로 한 점령지를 포함해 러시아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전략 핵무기를 포함한 어떤 무기든 쓸 수 있다.”

 

이 정도면 위협이 아니라 협박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하긴, 러시아에서 핵무기를 빼면 ‘눈 내리는 나이지리아’란 농담까지 나오는 걸 보면, 핵을 가지고 뭘 하긴 해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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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차 대전 승전 71주년 김념 군사 퍼레이드에 등장한

러시아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러시아가 계속 핵전쟁 시나리오를 흘리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그거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래식 전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압도할 만한 전력이 지금 러시아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가장 유력한 카드가 핵무기이다.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고 할 수 있어!”

 

핵 협박으로 탈출구를 찾아보겠다는 거다. 이게 그닥 특이한 건 아니다. 국제정치적으로 보자면 『미치광이 전략 (Madman Theory)』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북한이 미친 척하고 전쟁을 할 듯, 핵을 터트릴 듯하고 있는 벼랑 끝 전술이 미치광이 전략의 표준적인 모습이다. 

 

“씨바, 나 미친놈이야! 나 그냥 막 나갈 거야!”

 

라고 외치지만, 실제로 이 모든 미치광이 짓은 고도의 계산 끝에 나온 정치적인 행위란 거다. 푸틴이 마치 핵을 쏠 거처럼 말하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핵전쟁에 승자는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전쟁은 절대 시작해선 안 된다.”

 

라고 말했다. 과연 어떤 게 맞을까? 지금 러시아가 흘리는 핵 관련 발언들을 100%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만약 정말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러시아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당장 서방세계가 가만히 있을까? 

 

최후의 최후까지 몰리지 않는 이상,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실제로 거기까지 몰렸다면, 러시아란 나라는 그걸로 끝날 거다.

 

그럼에도 희박하게나마 핵전쟁 가능성이 있다는 점. 그리고 지금 ‘약간’ 맛이 간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푸틴의 손에 7천여 발의 전략 핵무기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음... 그렇다. 

 

그렇다면?

 

러시아에게 있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당장 러시아의 ‘승리’ 기준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나마 지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편입하고(그래서 투표 절차를 밟는 거겠지만), 대충 뭉개고 있다가 협상하자는 건데 우크라이나가 이걸 받아들일 리 없다. 전쟁 초반 키이우를 함락할 듯이 밀어붙이다 주저앉았고, 이후 드네프르강을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땅을 반으로 가르는 안까지 나왔지만,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툭 까놓고 말해서 러시아가 모양새 좋게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이제 없다. 아울러 러시아가 이기는 모양새로 전쟁을 끝내기도 어려워졌다. 푸틴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 거 같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의문이다(푸틴이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분노조절장애가 생겼고, 빡쳐서 전쟁을 결정했다는 의견이 ‘진지’하게 거론되는 게 지금 상황이다). 러시아는 준비도 안 돼 있었고, 각오도 안 돼 있었다.

 

현 상황에서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우크라이나는 장기전을 각오하고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도 장기전으로 나간다면 다음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러시아는 이 겨울 동안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결판을 내려고 할 거다(가스를 가지고 장난질을 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이미 군사적으로는 모양새 좋게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기에 외교적으로 압박해 들어가는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뭐, 그것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정말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