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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히로시마

출처-<U.S. National Archives>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1946년 공포된 현행 일본국 헌법에 대한 일본 국내 반응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점령군에 의해 ‘강요된’ 헌법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일본 스스로가 만든 ‘자주 헌법’을 가져야 한다는 개헌파

 

“(전쟁을 일으키고 무수한 피해 및 고통을 강요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이루어진 평화 헌법을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는 호헌파

 

이 두 세력의 양분 상태. (패전 이후 현 일본국 헌법이 만들어진 연합국과 일본 정부 사이의 과정은 지난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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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헌법 (평화 헌법)

당시 덴노 히로히토와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의 서명이 보인다.

 

그리고 현재 평화 헌법 개헌 관련하여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다.

 

• 전문

• 제1장 덴노 (제1조〜제8조)

•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 제3장 국민의 권리 및 의무 (제10조〜제40조)

• 제4장 국회 (제41조〜제64조)

• 제5장 내각 (제65조〜제75조)

• 제6장 사법 (제76조〜제82조)

• 제7장 재정 (제83조〜제91조)

• 제8장 지방자치 (제92조〜제95조) 

• 제9장 개정 (제96조) 

• 제10장 최고법규 (제97조〜제99조) 

• 제11장 보칙 (제100조〜제103조) 

 

 

평화 헌법 제9조와 자위권의 해석 문제 

 

제2장 전쟁의 방기(放棄, 포기)

 

제9조 ①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希求)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방기(포기) 한다.

 

②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이것을 보지(保持, 유지)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은 '전쟁의 포기와 군사력 및 교전권의 부인'을 규정한 조항이다. 즉 일본은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전쟁이나 무력 수단을 영원히 포기하고, 육해공군의 군대를 보유할 수 없으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은커녕 일절 무력 수단을 동원할 수도 없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말 그대로 평화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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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일본은 누가 뭐라 해도 과거 전쟁을 일으키고 주변국가와 세계를 상대로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입힌 전범국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무장해제, 전쟁을 비롯한 무력 행사를 포기, 육해공군 등의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 또한 인정되지 않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일본에 갖는 감정을 빼고 드라이하게 본다면) 국가의 기본 책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과연 제9조 조항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만이 독립국가로서 타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와 질서는 일촉즉발의 상태이며 시시각각 변모한다. 비록 일본이 평화헌법을 준수함으로써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무력 행사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국의 공격이나 위협을 받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진 일본으로선 고민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화헌법을 준수하더라도, 일본에게는 자국에 대한 도발이나 공격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를 ‘자위권’이라고 한다. 국제법상으로도 이런 자위권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이 보유하는 군사력은 ‘군대’가 아닌 ‘자위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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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자위권에는 ‘개별적 자위권’ ‘집단적 자위권’이 있는데, 이중 일본에게 어느 범위의 자위권까지 허용되느냐는 것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의견 차이가 일본 내 개헌과 호헌 세력을 가르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의 차이는 주로 제3국과 협력하여 방위를 하는가에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개별적 자위권 : A가 B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A가 자국 방위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권리

 

집단적 자위권 : A가 B의 공격을 받았을 때, 직접 공격을 받지 않은 제3국이 A와 협력하여 방위를 하는 권리

 

이 두 종류의 자위권은 국제연합에 가입한 나라에게 모두 인정되고 있으며, UN 헌장 제51조의 규정에 의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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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해공 자위대 연례 열병식

출처-<EPA연합>

 

일본 정부는 전후 줄곧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 있지만, 행사할 수 없다(금지한다)’는 방침을 유지해왔다.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 있으면서 행사할 수 없다는 건 이상하지 않느냐’며 이를 둘러싼 공방이 있어왔지만,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개별적 자위권만이 인정된다고 하는 것이 오랜 기간 일본 정부의 견해였고, 그 방침을 유지해왔다.

 

이런 방침이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한 건, 2차 아베 정부부터였다.

 

 

자위권에 대한 해석을 바꿔버린 아베 정권

 

아베 정권은 2014년 7월 1일 각의 결정에서 기존 정부 입장을 바꾸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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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뿐만 아니라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고, 국민의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 권리가 뒤집히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소위 존립 위기 사태)일 경우, 무력 행사를 할 수 있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방침을 변경하는 순간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자위대의 해외 파병도 가능해지고 전투 참여도 가능하게 되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그 후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을 뒷받침하는 법적조치를 취하기 위한 자위대법 개정 등 소위 안보법제를 국회에서 강행 통과시킨다. 이 과정에서 안보법제 반대를 외치며 수많은 시민이 국회의사당을 둘러싸고 반대 집회를 개최하는 등 전에 없던 긴장된 정국이 이어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부터 이어져 내려온 아베의 오랜 숙원은 헌법 제9조로 상징되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었지만, 개헌의 허들은 만만치 않았기에 자위권에 대한 해석을 변경하여 자위대법을 개정함으로서 실질적 헌법 개정과 같은 효력을 내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해석 개헌'이라고도 한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호헌 세력들은 이러한 아베 정권의 강권 통치에 저항하며 임시국회 소집 요구를 했다. 하지만 아베와 자민당은 무시하고 응하지 않았다. 헌법 제53조에 ‘내각은 국회 임시회 소집을 결정할 수 있다. 어느 쪽(중・참의원) 이든 총의원의 1/4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내각은 그 소집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무시로 일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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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날 그래봐~ 내가 나가나 ㅋㅋ

출처-<뉴스1>

 

아직 국민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많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헌데 아베 정권 같은 보수 우익 세력은 왜 강권 정치를 하며 어떻게든 개헌을 하려고 하는 걸까. 그 배경에는 ‘역 코스’라는 일본의 전후 초, 점령 통치 재고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점령 통치와 역 코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미국의 점령통치를 받게 되면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전체주의가 해체되고 민주화가 진전되어 갔다. 미국의 점령통치는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선상에서 이루어진 항복 조인식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 4월 28일까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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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 서명하는

당시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

 

이 기간에 일본의 신헌법 제정, 주권재민과 상징 덴노(일왕)제, 삼권분립, 남녀평등, 재벌해체, 농지개혁, 교육개혁, 인권 보장과 언론의 자유 등 현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법제・교육・문화 등에 대한 원형이 대부분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헌법은 전술했듯 점령군과 일본 정부 사이의 밀고 당기는 검토와 조정을 거치며, 명치 헌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일본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방향으로 완성된 헌법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패전 직후, ‘강요된 헌법’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당시 점령군과 패전국 정부의 입장과 파워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을 터이니, 이런 감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점령 통치 기간에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냉전체제가 형성되었고, 그 체제의 첫 전쟁으로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발발했다. 국제사회는 급속도로 대립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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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하하는 북한군

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 6.25전쟁 유튜브>

 

일본에 대한 점령 통치 정책도 이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 점령정책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재고가 허용되는 한편, 패전 직후 공직 추방되었던 전범자들이 사면되어 공직에 복귀하게 된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이때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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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앞줄 가운데 꼬마)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무릎에

앉아 있다.

가장 오른쪽은 아베의 부친 아베 신타로

 

점령통치 정책에 대한 일련의 재고가 이루어지는 이 시기를 ‘역 코스’라 부른다. 앞으로 나가던 방향이 다시 뒤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냉전체제의 심화, 한국전쟁 참전 등으로 미국의 통치 정책이 느슨해진 틈을 타 전범을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이 사면 복귀된 것이다. 그리고 점령 통치 기간에 시행된 제도와 정책의 재고와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 결과, 현행 헌법에 근거해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 가려는 세력과 복귀한 전전 군국주의자 사이의 복잡한 대결 국면이 시작된다. 그중 하나가 현행 헌법에 대한 개헌과 호헌의 대결이다. 

 

 

‘개헌 vs 호헌’ 구도의 시작

 

일본 현대사를 관통하는 말 중 ‘55년 체제’라는 용어가 있다. 1955년 일본의 강화조약과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대한 견해 차이로 분열되었던 우파와 좌파의 사회당이 ‘보수 세력의 개헌과 역 코스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 ‘호헌’과 ‘반 미일안전보장 조약’을 내걸고 재결합하며 일본 사회당을 결성했다. 

 

이런 진보 세력의 재결합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세력(일본 민주당, 자유당)은 보수합동을 하여 자유민주당(자민당)을 탄생시킨다. 자민당은 신헌법을 ‘강요된 헌법’이라 규정하고 ‘개헌’을 당의 기본방침으로 정하며  ‘보수’, ‘미일안전보장’ 유지를 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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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자민당 창당 대회

 

통상 보수와 진보 세력의 통합으로 양당제 구도가 성립되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일본 사회당은 개헌 발의에 필요한 2/3 의석수를 보수 세력이 확보하지 못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만년 야당의 처지에 안주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민당은 최대 여당으로 집권 정당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이런 구도가 유지되는 것이 55년 체제의 특징이다.

 

이 구도는 1993년 호소가와(細川護熙) 연립내각이 성립하고, 자민당이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여 야당으로 전락할 때까지 38년간 이어진다. 이 기간에 보수 세력인 자민당은 개헌 세력으로, 진보 세력인 일본 사회당 등은 호헌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통상 보수라고 하면 기존 사회 질서 체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진보 세력은 기존 사회질서의 변화를 통한 개혁을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일본에서는 보수가 현행 헌법 체계를 바꾸는 개헌을 주장하고, 진보가 현행 헌법 체제를 고수하는 호헌을 견지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일본이 특이한 나라이긴 하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계속>

 

 

※다음 편에선 '자민당 내에선 개헌에 대해 어떤 입장 차가 있는지, 현재 개헌 강경론자들이 주도권을 잡게 된 과정은 무엇인지, 여태까지 언급되었던 다양한 개헌 방향은 무엇인지, 기시다의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다룬다. 

 

 

 

 

편집부 주

 

30여 년간 도쿄에 살며 일본 정치를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헌모 교수가

재일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일본정치 현장과

일본 우경화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이다.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와 어떻게 우경화가

독주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집어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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