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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내용이 좀 깁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정밀하게 다루고자 했습니다.

가독성을 위해 인터뷰는 모두 반말로 정리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새 대통령이 당선 직후 내린 첫 결정은, 집무실 이동이었다. 구중궁궐에서 제왕적 대통령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럴싸해 보였다. 그때까지는.

 

그러다 당선 열흘 후, "봄꽃이 지기 전에 국민 여러분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라는 낭만 터지는 대변인의 멘트와 함께 난데없이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로 용산 국방부 청사가 급부상한다. 결국 3월 20일, 당선인은 인근에 조성될 용산 공원에서 산책하며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소통왕 다운 각오를 다지며 새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확정 짓는다.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이 새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는데,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일이었다. 그게 새 시대 국정운영에 도움이 된다면야 열두 번도 더 옮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게 정말 국익을 도모하는 길이라면 주변이 혼잡해서 불만이 많은 용산 사는 친구에게 일미집 감자탕에 소주를 사주며, "니가 좀 참아야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인데 새꺄" 하고 달래줄 준비, 되어있었다.

 

그런데 언뜻 생각해도,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이 동네 점빵 아저씨도 아니고. 단 한 순간도 유고 되어서는 안 될, 우리의 대빵 아닌가. 취임 후 국방부 청사로 출근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걱정이 많았다. 잘은 몰라도... 경호 시설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일 터지면 막 이 사람 저 사람 후다닥 모여서 회의도 해야 할 거고, 진지 잡수시다 체하시기라도 하면 대한민국 최고 명의가 날아와 손이라도 따줄 수 있는 그런 게 잘 마련이 되고 일을 시작한 걸까. 나 진짜 걱정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취임 5개월. 여기저기서 성급한 이사의 후유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한남동 외교부 공관이 대통령 관저가 되면서 중요 외교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최근 이 문제를 제기한, 외교통일위원회 김홍걸 의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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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 (이하'근') : 한남동에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사)에는 직접 가본 적 있나?

 

김홍걸 (이하'김') : 가봤다. 오래전에.

 

근: 오래전이라면. 언제쯤?

 

김: 정확히 연도는 기억 안 나는데...

 

근: 아버지께서 청와대 계실 때 그때쯤인가?

 

김: 맞다. 행사에 잠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근: 외무부 장관의 행사에 초청된 건가.

 

김: 그렇다.

 

근: 업무동, 주거동 이렇게 나눠져 있었다고 들었는데,

 

김: 구석구석 다 보지는 못했고, 주로 연회장에 머물렀다.

 

근: 새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는 삼청동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도 가봤나?

 

김: 잠시 들러본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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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장관 공관(주거동)으로 사용될 예정인

삼청동 구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내부 공사 중으로, 입구는 폴리스 라인으로 막혀있다.

 

근: 거기는 주거 기능 정도만 갖춰져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김: 순전히 100% 주거용 건물이다.

 

근: 바로 맞은편에 있는 대통령 안가를 행사용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아직 구체적 계획이 나오지 않았던데. 삼청동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주거동), 대통령 안가(업무동)가 과거 한남동 외교 공관의 기능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그곳을 모두 가본 사람 입장에서?

 

김: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근: 예전보다 좀 비좁더라도 어떻게든 이러케 저러케 비빌 수 있을 가능성은 없나?

 

김: 안가란 것은 원래 한두 사람 불러다가 밀담을 나누는 곳이다. 외교 사절을 대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예전 공간에 비해서 진입로도 좁고 주차장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건물 구조나 면적도 연회장으로 쓰기에는 매우 부족한 곳이다. 가정집 구조라고 보면 된다.

 

근: 비서실장 공관, 대통령 안가 두 곳 모두?

 

김: 그렇다. 일반 가정집치고는 좀 넓다고 할 수 있지만 규모 있는 모임을 하기에는 굉장히 협소하다.

 

근: 그렇다면 외교 장관이 새롭게 마련된 공관에 입주한다 해도, 행사는 지금처럼 계속 밖에 호텔을 돌아다니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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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한남동 공관에서

한-아세안 대화 참석자들과 음료를 나누며 대화하는 모습

출처 - 외교부

 

김: 이전 한남동 공관에는 6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이 있었다. 이 정도 공간을 지금 서울 시내에서 새롭게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구한다 해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근: 지난 4월 새 대통령 관저 후보가 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 공관으로 옮겨 갈 때, 외교부 관계자도 같은 말을 했었다. 현 외교 공관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 어디에도 없다고.

 

김: 당연하다.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예전 외교 공관은 사용 목적상 숲으로 둘러싸여 경내가 넓었다. 그런 공간을 지금 서울에서 어떻게 구하나? 70년대니까 가능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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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올해 9월부터 대통령 관저로 바뀐 구 한남동 외교 공관은, 원래 해병대 통신부대가 있던 자리였다. 1970년 1월부터 외교부가 장관 공관으로 사용했다.

 

공관은 왜 필수 자산인가 : 신뢰와 보안의 공간

 

근: 외교 전문가들은 외교 장관의 공관은 외교활동의 필수 자산이라고 하더라. 어떤 점에서 필수적인 건가?

 

김: 외교 공관은 신뢰와 보안의 공간이다. 조금은 사적인 자리에서, 장관이 외교 사절들에게 식사와 차를 대접하면서 친분을 쌓고 인맥을 넓히면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해야 할 일들이 있다. 사람이 아무래도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느낌이 달라지지 않나. 숙소로만 사용되는 다른 공관과는 분명 사용 목적이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장관은 가지지 못하는 그런 공간을 외교부에 배려해 준 거다. 70년대에도 말이다. 그때보다 외교의 중요성이 더 커진 지금, 외교 자산을 거꾸로 축소하고 왜소화했다. 완전히 시대에 역행한 거다.

 

근: 70년대 외교와 지금 외교는 무엇이 다른가?

 

김: 70년대는 미국이냐 소련이냐 양자택일의 냉전 시대였다. 그때는 그냥 미국하고 같이 가고 서방 세계와 같이 가면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국제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동맹끼리도 또 협력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옛날처럼 미국이 동맹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 형편이 좋지 않은 미국도 이제 자국 우선주의다. 트럼프 때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다. 바이든으로 바뀌었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맹과 같이 가면서 윈윈하겠다는 게 아니고 일단 미국 이익부터 챙기고 보는 식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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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하는 소리지만 안보는 미국과 깊이 연관이 돼 있고 경제적으로는 아직은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아주 애매한 상황이다. 70년대의 외교가 단순한 산수였다면, 지금의 외교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대책 없는 외교 공관 이전 문제부터 최근의 외교 참사까지, 이번 정부가 이 외교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아서 생긴 일이다.

 

근: 70년대보다 훨씬 복잡해진 국제 정세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국격 신장은 그에 걸맞은 섬세한 외교가 같이 가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김: 맞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안보실장 차장 이런 사람들을 다 자기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 위주로 뽑은 건,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하신 말씀처럼, 국내 정치는 한 번 실수한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오지만, 외교에서는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그게 영원히 회복이 안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지 않고 친소 관계로 사람을 쓴다는 것은, 외교 안보 문제에 있어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을 못 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 외교부 장관을 다른 정당에 있었던 분을 기용했다. 심지어 주미대사는 1년 전까지 반대편 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사람을 썼다. 경선에서 이겼다면 대선에서 맞붙었을지도 몰랐을 그런 분을 삼고초려해 미국 대사로 가달라고 한 거다.

 

근: 초당적으로 사람을 써야 할 만큼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김: 그렇다. 정파적 이익이나 개인의 친소 관계보다 국익을 더 중요시하셨던 거다.

 

근: 그런 고차방정식을 푸는 데 있어서 광화문의 외교부 청사 같은 공식적인 공간 외에, 좀 더 친밀감을 도모할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 외교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보나?

 

김: 그렇다. 대통령도 물론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외교부 장관처럼 수시로 이 사람 저 사람 불러서 만나지는 않지 않나. 그리고 원래 외교장관이 썼던 한남동 공관의 연회장이 대통령의 영빈관으로 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으면 영빈관 새로 짓겠다는 얘기가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근: 그랬겠다. 그곳은 뭔가 좀 오픈돼 있고 좀 더 공식적인 광화문 외교부 청사보다, 대화의 톤이랄지 무드 같은 것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세밀하게 조성된 공간이니까.

 

김: 뭐 리셉션 할 때 칵테일 마시고 식사하면서 편하게 대화를 하면 아무래도 더 친밀해지고 그러니까. 외교 공관은 그런 용도의 공간이다.

 

근: 이번에 대통령이 입주한 한남동 외교 공관은 경치가 끝내준다고 들었다. 군부대가 있던 자리를 외교 공관으로 세팅할 때 뷰까지 신경을 썼다고 그러던데.

 

김: 남산과 서울 시내의 전경이 잘 보이는 곳이다.

 

근: 지금 새 외교 공관의 외교 행사장으로 사용될 예정인 옛 대통령 안가의 뷰는 어떤가?

 

김: 거긴 뭐 그냥 좁아터진 골목 안에 있어서 밖에 보이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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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외교부 장관 공관(주거동) 맞은편에 위치한

구 대통령 안가(좌측).

정부는 이곳을 개보수해

외교 행사장(업무동)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근: 음식과 경치 이런 요소들이 대화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

 

김: 아무래도 세심한 것까지 배려를 해주면 또 그거에 대한 고마움을 갖게 되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그러면 또 얘기가 더 잘 풀리기 마련이다.

 

근: 바꿔 말하면, 한남동 외교 공관이 새 대통령 관저로 결정된 4월 24일부터 지금까지 그런 내밀한 외교의 공간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적어도 최근 5개월 동안은 그런 밀도 있는 대화가 중단되었다고 봐야 하는 건가?

 

김: 그렇다. 그렇다고 매번 호텔 빌려서 하자니 예전보다 예산이 훨씬 많이 들고 이러니까, 외교 장관이 처음 취임하고 나서 5개월 동안 그런 모임을 10번도 못했다.

 

근: 그 10번의 모임의 성과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무리 호텔을 잘 세팅을 한다 해도 아주 오랫동안 편안한 대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독립적인 공간을 오픈된 곳에서 구현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밀도 있는 대화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김: 내 집이 아니고 남의 집을 임시로 빌려서 하니 그럴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지난 외교부 장관 청문회 때 그 점을 지적했었다. "외교부 장관 공관이 그런 행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걸 내주고 딴 데로 가면 이제 앞으로 오늘은 이 호텔, 내일은 저 호텔 이런 식으로 다녀야 할 텐데 그걸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이렇게 질문을 했는데, 뭐 그냥 "방법을 찾아보겠다." 이렇게 넘어갔다.

 

근: 외교가 사실 공식적이면서도 굉장히 사적인 부분도 있지 않나. 당사자들 간의 주관적인 인상이나 느낌이 개입될 여지도 있고. 상대의 집에 초대되어 따뜻한 밥을 먹고 그 사람의 생활공간을 공유하며 이야기하는 경험과, 남의 식당을 빌려서 행사를 치르는 것은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지 않을까?

 

김: 백악관 바로 옆에 블레어 하우스가 있다. 미국에 국빈으로 방문하는 국가 원수들이 자고 가는 곳인데, 사실 건물 자체는 뭐 그렇게 호화롭고 최신식의 시설은 아니다. 19세기에 만들어졌으니, 언뜻 봐서는 낡은 옛날 건물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국빈을 대접하는 이유는 그곳에 전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근: 아무래도 복도든 가구든, 고풍스러운 맛도 있을 거고. 역사가 담긴 건물 안에서 하루 묵으며 방문한 나라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과 그냥 세계 어디 가나 똑같은 호텔방에서 이해하는 건 좀 다른 문제니까.

 

김: 맞다. 우리로 치면 옛날에 대감이 살던 99칸 기와집 같은 거다. 잘 보존된 한옥에서 외국 손님을 묵게 하는 그런 형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근: 지금 대통령이 관저로 쓰고 있는 한남동 옛 외교 공관이, 그런 것들이 모두 치밀하게 계산돼 있는 공간이었다는 건가?

 

김: 그렇다.

 

근: 역사고 전통이고 뭐고 현재는 공간마저 없어서 호텔을 전전하고 있는 중이고?

 

김: 맞다.

 

근: 아이고... 호텔 이xx들이 예약 승인 안 해 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사의 비용

 

근: 이 문제는 청와대가 용산으로 이전할때 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앞으로 계속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이전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뿐인가. 원래 있던 공관에서 치렀으면 200만 원에 떡을 치고도 남을 행사를 호텔에서 2000만 원씩 들여가며 하고 있고. 사실 그런데 가장 걱정되는 건, 무형의 비용이다. 외교 행사를 치를 섬세한 공간이 사라지면서 생기는 외교적 손실. 돈으로 추산하기도 힘들고, 심지어 뭘 놓쳤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거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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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기식 공관 이동 현황

출처 - 김홍걸 의원실

 

김: 외부 인사와 자주 만나서 관리를 하고 우리 입장을 외국 측에 전하고 또 그쪽 의견도 듣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 하니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근: 새로 맺을 관계를 못 맺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전에 맺어왔던 관계에서도 손실이 크지 않나? 이전에 방문했던 대한민국에 대한 기억은 반질반질한 툇마루가 있는 한옥 같은 곳이었는데, 요즘 손님맞이는 흔하디 흔한 호텔에서 하고 있으니까. 정부의 계획대로 삼청동의 과거 대통령 안가였던 곳에 새 외교 공관이 마련되면, 좁고 사방이 막힌 곳에서 손님을 치러야 하지 않나. 한마디로 급이 떨어져 보일 거 같다.

 

김: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맞게 외교가 더 규모 있게 가지 못할망정 70년대의 외교보다 초라해지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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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새 외교 공관 공사 현장을 취재하러 삼청동 일대를 다녀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청와대 동쪽 삼청동 길을 따라,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등 정부 요인들의 공관들과 대통령 전용 병원이 위치해있고, 지금 새 외교 공관으로 공사 중인 비서실장 공관은 대통령 안가와 마주 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유사시에 국가원수 중심 시스템을 사수하기 위한 '최적화 위치'인 것이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리겠다는 맥락 없는 명분으로 떠나면서 생긴 이 문제는 단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통령을 보호하는 경호처나 군부대 경찰들, 이분들이 번거롭고 고생하는 거 뭐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실을 국방부 쪽으로 옮긴 후에 신속하게 새로운 시설을 짓지를 못하니까 일부는 아직 옛날 청와대 부속 건물을 대기실 내지는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김병주 의원께서도 질의하셨지만, 옛날에는 대통령 전용 병원이 청와대 바로 옆에 있어 대통령이 5분 안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용산에서는 불가능하다. 심장마비 이런 게 있으면 큰일 나는 거다. 청와대 주변에는 여러 가지로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정부 요인과 참모들도 주변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대통령이 부르면 바로 뛰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그런 구조가 지금 다 흐트러져 버린 거다. 그런 기능과 시스템을 예전처럼 모아놓으려면 용산 주변에 다시 또 건물을 짓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야 되는데, 그거는 뭐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고.

 

근: 대통령실 이사 하나로 깨져버린 컨트롤 타워 시스템이 다시 새로운 최적화를 갖출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나?

 

김: 윤 대통령 퇴임 전에 마무리가 될 수나 있을까 싶다. 그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지금의 용산 집무실에 과연 들어가서 일하고 싶을까?

 

근: 그것도 그렇다.

 

김: 안 되는 걸 대통령이 어거지로 지금 막 하고 있는 건데, 다음 대통령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거기 들어가서 일을 하려고 할까? 다른 데로 다시 옮기고 싶어 할 텐데.

 

근: 다시 청와대 시스템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김: 이미 다 개방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단장해놨는데, 그걸 다시 철거하고 다시 옛날 청와대 모습으로 바꿔 놓으려면 그 비용은 또 얼마인가.

 

근: 세종로 1번지 청와대는 지도와 위성사진이 공개되지 않는 1급 중요 경계 시설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만천하에 내부가 속속들이 공개된 마당에 이전에 보안성을 회복할 수 있나?

 

김: 청와대는 이제는 보안 시설의 의미가 없어졌다.

 

근: 다음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고 싶어도, 예전의 최적화는..?

 

김: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같이 외부와 차단된 공간은 이제 구할 수가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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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이후 지도 앱에 검색되는 청와대 경내

 

근: 돈을 들인다고 구할 수가 없는 문제고. 하물며 적절한 외교 공관도 찾지 못하고 있는 와중이니.

 

김: 멀쩡한 산을 갈아엎기 전에는 찾을 수 없다.

 

근: 수도를 옮기지 않는 한.

 

김: 사실 과거에 세종시로 옮기는 게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아예 청와대가 세종시로 가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다 보니 거대한 결론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용산행은 단순히 권력자의 몽니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걸.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윤석열은 한반도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 예정이다.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해석으로 저지된 행정수도 이전의 새로운 단초를 마련한 대통령이 될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있다. 조선 건국 이래로, 광화문 네거리를 국가 행정의 중심부로 하여 6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정도전 디자인'을 마감한 자로 역사에 남을 거라는 것. 정말이지 미친 존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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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막무가내 세입자

 

근: 이번 이슈를 다룬 의원님의 <뉴스공장> 인터뷰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당선자가 인수위 시절, 전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집 좀 보러 가도 되냐고 했다는 거였다. 이거 실환가?

 

김: 그렇다. 방송에서는 시간 관계상 자세히 설명을 못 했는데, 3월 19일에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의 초대를 받아서 공관을 방문한 원로 고위공직자 두 분 중 한 분께 들었다. 장관이 식사 중에 잠깐 전화 받으러 갔다 오더니 "당선자 전환인데 여기를 지금 당장 오고 싶다고 하더라. 근데 손님이 계셔서 조금 곤란하다고 그랬다." 그 후에 당선자 측에서 언제 누가 거기를 보러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한남동 외교 공관은 대통령 관저 고려 대상 중 하나였을 뿐이고 육군 참모총장 공관이 1순위로 거론이 되고 있었을 때다. 그래서 당시 외교부에서는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그런데 4월에 갑자기 외교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쓴다고 전격적으로 발표가 난 거다.

 

근: 전화 온 지 딱 한 달 지나서다.

 

김: 그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것이고.

 

근: 김건희 여사가 반려견과 같이 공관을 둘러보고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김: 그거는 이제 4월 중순 이후에 있었던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누군가 참모총장 공관보다는 외교 공관이 낫다고 대통령 부부에게 얘기를 했을 수도 있는 거고.

 

근: 최근에 인테리어도 했고, 뷰도 훨씬 좋고. 외교의 필수 자산이든 말든 그런 건 모르겠고.

 

김: 뭐 그걸 아는 사람이면 그런 식으로는 얘기 안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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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당선자가 직접 전화했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뭐지? 싶었던 부분은, 그때가 인수위 시절이었다는 거다. 주변에 인수위에서 일해본 사람이 없어 잘 모르겠는데, 인수위 때 당선자는 하루에도 수많은 보고를 받고 결정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하지 않나?

 

김: 정신없지. 신경 쓸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근: 인수위도 경험해 보셨나?

 

김: 인수위에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하신 분들에게 많이 들었고 아버지께서 그 당시에 정신없이 이것저것 챙기시던 모습을 옆에서 봤으니까.

 

근: 그러니까.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내가 살 집을 보러 가겠다고,

 

김: 한가하게,

 

근: 본인이 직접 전화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다.

 

김: 그렇다.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갑자기 전화해서 "지금 당장 가겠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친구 집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근: 이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는 좀 힘들지. 글쎄... 본인이 그래서 그런 건지 영부인이 (집 보러가자고) 계속 졸라서 그렇게 된 건지는 뭐 알 수 없고.

 

근: 그러니까. 그게 조르려면 조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가능한 건가? 대통령에게?

 

김: 뭐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근: 안 하려면 안 할 수가 있나?

 

김: 뭐 안 하려면 밑에 사람들한테 그냥 알아서 해라 해버리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거고. 박근혜 씨도 그런 면이 좀 있었지 않았나. 위기 상황에서도 안 나타난 대통령도 있는데.

 

근: 거참 이상한 사람이야 하고 넘어가기에는 그는 지금 우리의 대통령 아닌가. 아직 이분이 결정해야 할 수많은 것들과 무수한 시간이 남아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좀 진지하게 고찰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 그분이 당선됐을 때부터 이런 우려를 해왔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일해서 큰 기업을 만든 부자, 예를 들어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 이런 분들 보면 돈을 많이 벌었어도 돈 함부로 쓰지 않지 않나.

 

근: 그렇다.

 

김: 그런데 갑자기 큰돈이 순식간에 힘 안 들이고 생겼다든가 뭐 복권이 당첨됐다든가 하는 이런 사람들은, 신나서 그 돈 쓰기에 정신이 없다. 그런 사람한테 무슨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든가 뭐 기업가 정신 이런 걸 기대할 수 있겠나. 나는 윤 대통령을 일종의 정치적 졸부라고 본다. 본인이 정치를 할 생각도 없었고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도 없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바람에 얼떨결에 대통령이 됐지 않았나?

 

근: 권력의 졸부.

 

김: 노력해서 얻은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사명감도 없고. 이분은 스스로를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근: 정체성 자체가 없다.

 

김: 그렇다. 자기가 속한 정당에 대해서도 부채 의식도 없고 오히려 망해가는 당을 내가 도와줬다고 생각 하고 있고.

 

근: 흥미로운 접근이다.

 

김: 이렇기 때문에 뭐 여론이 나쁘든 말든, 비판하든 말든, 내가 소속된 정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든 말든 그분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권세를 5년 동안 최대한 누리고 가는 거다. 어차피 5년 임기는 보장돼 있고. 5년 후에는 자기는 할 일이 없거든. 정치 더 할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는 5년 후의 일은 걱정하지 않는 거다.

 

근: 의원님의 다른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 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은혜는 너무 잘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그들에게 은혜를 갚는다면 주변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경계했다는 것.

 

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집권하기 한참 전에도 소위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한테, "항상 공부해서 실력을 키워라. 너희들이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나하고 가까워도 내가 집권했을 때 너희들을 쓸 수가 없다." 이런 말씀을하셨다.

 

근: 준비된 집권의 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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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렇다. 오랜 세월 정치를 하셨으니까 이제 측근 그룹이다, 뭐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 아닌가?

 

근: 당연히.

 

김: 그분들 대부분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임명직의 비서나 뭐 이런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된 경우는 한 명 정도? 한두 명? 그 외에는 없었다.

 

순방의 성적

 

근: 외통위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이번 대통령 해외 순방은 어떻게 보나.

 

김: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물론 대통령이 외교 안보 문제에 있어서 공부한 적도 없고, 어떤 철학이나 소신이 없는 분이라는 거는 뭐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건데.

 

근: 뭐.. 사실 그렇다.

 

김: 그래도 참모진들이 잘해주면 어느 정도 문제없이 가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실의 안보실을 보면 구시대의 사람들, 혹은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그동안 한미관계, 한일 관계를 문재인 정부가 망쳐놨다고 주장을 해왔으니 뭔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고, 또 그렇게 만든 실력도 없고. 이러다 보니 마음만 조급해지고 준비도 합의도 안 돼 있는 것을 해외 나가기만 하면 이루어낼 수 있을 것처럼 미리 큰소리를 쳐가지고 괜히 기대감만 부풀려놨다가 오히려 실망만 크게 하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번에는 이러이러한 상황이라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이런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겠다. 이렇게 겸허하게 얘기를 했었으면 그런 비난은 안 받아도 되었을 거다.

 

근: 대통령 안보실에 결정권자들이 아마추어라고 해도, 그래도 눈 밝은 외교 실무자들은 계속 있지 않나. 그들에게는 지금 이 결정과 계획들이 무모하고, 그렇게 될 리가 없고, 이게 뻔히 보였을 텐데. 그들에게는.

 

김: 그렇다. 그들마저 그걸 모른다면 문제가 있는 거다.

 

근: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성과라면은 그래도 외교를 꼽을 수 있을 텐데. 그때 일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업무의 경험치랄지, 노하우랄지, 하다못해 구축된 외교 네트워킹도 이전보다 넓어졌을, 그런 실무자들이 남아 있지 않나. 외교 라인이 바뀌었을지라도. 이런 사람들이 그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은 도저히 불가능한 건가? 한 명이라도?

 

김: 우리 공직사회 분위기가 직언해서 피해를 본 사람은 많아도 나중에 잘 된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그냥 복지부동, 보신주의로 그저 나만 욕 안 먹으면 된다, 내가 책임질 일만 피하면 된다. 하는 그런 생각이 강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봐야지. 그 사람들이 몰라서 말을 못 한 게 아니고.

 

근: 역시 그런 건가.

 

김: 문재인 정부가 한미관계, 한일 관계를 모두 다 잘했었고, 윤석열 정부 그와 비교해서 전부 못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전 정부에서 했던 것에 대해서 잘한 부분은 잘한 대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이렇게 더 잘해가겠다. 이렇게 말을 하면 되는데, 모든 걸 다 잘못했다고 해버리니까 문제가 된다. 지난 정부에서는 미국하고 약간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되더라도 우리 국익을 위해서 주장할 건 강하게 주장한 한 면이 있지만, 미국이 한국을 골치 아픈 상대로 여긴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근데 이번 정부에서 한미 동맹이 무너졌다, 다시 강화해야겠다. 이러니까 오히려 미국에서는 한국 정부를 만만하게 보고...

 

근: 저자세니까.

 

김: (미국이) 자기의 이익은 취해가면서 한국에 대한 선물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근: 스스로 협상력을 낮춘 것.

 

김: 맞다. 한일 관계도 물론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좀 더 잘 다뤘어야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일본 측이 70~80% 잘 못 한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어떻게 상황을 풀어보려고 해도, 일본 쪽에서 너희가 먼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까 해결책을 들고 우리한테 찾아와라. 한마디로 저자세로 와라. 서로 노력해서 방법을 찾아보자가 아니고 너희가 우리 입맛에 맞는 해결책 들고 찾아오면 만나줄게 하는 식의 태도였기 때문에 일이 안 풀린 거다. 그런데 그것을 문재인 정부가 잘못했다고 해버리면 일본에서는 "아~ 그러면 우리가 과거에 주장했던 대로 한국이 전적으로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 맞네." 하면서 그럼 새 정부 너희는 우리가 요구한 대로 한번 해봐. 이렇게 나오고 있지 않나? 윤석열 정부 스스로를 이 어려운 상황에 들어가 버렸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격이 되는 거다.

 

그들의 국익

 

근: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은 유독 일본에 우호적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기분 탓인가?

 

김; 아까도 말했지만, 대통령이 어떤 확고한 철학이나 소신이 있어서 그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과거에 같이 했던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분은 자기가 다루던 검찰 일 빼고는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백지에 가깝다. 옆에 참모들이 어떻게 설득하고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느냐에 따라서 왼쪽으로 갈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는, 극과 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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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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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안보실 1차장

 

대통령 안보실의 김성한 실장이나 김태호 차장 같은 분들은 굉장히 우익, 친일 성향이다. 그러니까 한미 동맹만으론 부족하고 일본과도 동맹을 맺어야 한다. 그것도 군사동맹을 맺어야만 우리의 안보가 튼튼해질 수 있다는 그런 어떤 고집, 아집이라고 봐야 한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런 주장을 해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본과 사이에 뭔가 확실한 동맹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조급함이 있는 거다.

 

근: 좀 거칠게 말하면, 친일파들이 좀비 상태의 대통령을 드라이빙하고 있는다는 것인가.

 

김: 이명박 정권 때를 보자. 당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있을 때만 해도 일본과 관계가 좋다가 김태효 비서관이 비밀리에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를 혼자서 준비하다가 그게 발각이 돼서 사표를 낸 후, 이명박 대통령은 갑자기 널뛰기하듯이 정반대 태도로 돌변해 독도 방문하고 뭐 일본 사람들이 들으면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발언을 하고 그랬다. 한일 관계가 나빠진 건 그때부터다. 문재인 정부 때 나빠진 게 아니라. 그러다가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도 처음 3년 동안은 박근혜 씨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아베 총리 볼 필요도 없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180도 돌변해가지고 위안부 합의를 졸속으로 해버렸다. 자기들이 외교를 그렇게 망쳐놓고, 문재인 정부가 망쳤다고 주장을 하는 거다.

 

근: 그렇게 친 일본적인 외교 보좌 라인의 가이드에 의하여 대통령이 무지성으로 따라가고 있다면, 일본 입장에서는 우리를 다루기 쉬운 상대, 즉 호구로 보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김: 이번에도 일본하고 합의도 안 된 상태에서 정상 회담한다고 발표해 버렸다가 일본 쪽에서 우리가 언제 한다고 그랬느냐? 하니까 제발 좀 해달라고 사정사정하지 않았나. 일본이 "그러면 우리 쪽이 정한 장소로 와라"해서 대통령이 다른 행사 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방향을 바꿔서 뛰어가고. 일본 총리는 마지못해 만나주는 형식으로 해서 잠시 대화 나눈 다음에 "이거는 회담이 아니고 간담이다." 이래 버리고.

 

근: 그 촌극은 일본 쪽에서 의도한 연출이라고 보나?

 

김: 그렇다고 본다. 그동안 일본 정치권은 한국 때리기로 정치적 이익을 봐왔기 때문에 한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분위기 좋게 만나는 모습 보여줘 봐야 정치적으로 좋을 게 없다. 만나주더라도 한국이 저자세를 보이는 모습을 연출해야만 자기네들 체면이 산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그냥 대책 없이 말려든 거다.

 

근: 사실 이거는 조금만 경험이 있는 외교 전문가라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아니었나?

 

김: 그러니까. 외교의 기본 상식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런 회담은 하면 안 된다고 반대를 했을 것이다.

 

근: 그럼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대통령 주변에?

 

김: 그렇다. 친일 성향을 가진 분들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고 그분들이 모든 걸 주도하니까.

 

근: 일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하다 보면 좀 지고 들어가야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거는 그냥 갖고 논 거 아닌가. 굴욕을 떠나서 거의 능멸 수준인데. 친일 성향의 안보실 리더 그룹도, 우리가 당한 꼴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을 거 아닌가? 진정 이게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김: 그분들은 그게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옛날에 이완용도 일본하고 합치는 게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나.

 

쪽팔려서 어떡하나

 

근: 사실 지금 가장 핫한 이슈는 대통령의 뉴욕 방문 중 나온 막말과 비속어다. 뻔히 들리는 단어가 그 단어가 아니라고 막는 데 급급하고 있다.

 

김: 이게 무슨 범죄에 대해 재판을 하는 상황도 아니고 계속 오디오 재생하면서 발음이 이게 맞느냐 저게 맞느냐 그런 걸 하고 있어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정말 한심한 거다.

 

근: 언 발에 오줌 누면 잠깐 따뜻하기라도 하지, 이건 뭐 사냥꾼에게 쫓기다 모래에 머리를 박는 타조 같은 현실 부정 아닌가.

 

김: 내가 검사할 때부터 평소 말을 거칠게 하다 보니까 말실수가 나왔다. 미안하다. 이렇게 사과했으면 금방 끝났을 상황을...

 

근: 그걸로 수습이 되었을까?

 

김: 그래도 비판은 받았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다.

 

근: 더 큰 문제는 국제적 이미지 실추 아닌가. 다른 나라 정상 뒷담화 까다가 걸린 건데. 그것도 여당 지지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동맹 최우방 미국 대통령을. 이런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하고 있다는 것도 외신을 타고 다 나가고 있다.

 

김; 그러니까 더더욱 신속하게 사과를 했어야 했다. 열몇 시간을 아무 말 않고 놔뒀다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해명을 하니까. 그 긴 시간 전전긍긍하면서 이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나 고민하다가 어거지로 만들어서 발표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고.

 

근: 이건 외교적 결례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민망한 너무 큰 사안 아닌가.

 

김: 잘못 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잘못 들은 거라면은 왜 바로 해명을 안 하고 그거 좀 보도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여기저기 통지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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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속어 논란 보도가 나가기 직전,

기자 매신져에 돌던 메시지.

 

근: 국제무대에서 회복할 수 있는 실수라고 보나?

 

김: 당장 구체적인 어떤 사안에서 불이익을 보는 건 아니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가 수준이 저 정도구나 하는 것은 이제 국제사회의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근: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해명 논란까지 전부 다 번역해서 나갔고.

 

김: 일반 정치인도 아니고 국가 원수가 저렇게 육성으로 욕설이 나간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옛날에 미국 닉슨 대통령이 상대 당 후보 사무실을 도청했다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당했다. 탄핵 투표 일보 직전에서 사퇴했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상당수의 국민들이 에이~ 설마 대통령이 그런 지시까지 했겠나? 대통령이 설마 저렇게 대놓고 거짓말을 하겠나? 이렇게 믿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된 계기가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를 안 내놓고 버티다가 법원에 판결로 어쩔 수 없이 내놨는데, 그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을 듣고 국민들이 경악했다. 그 테이프에는 사실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하는 범죄행위를 입증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대통령이 자기 참모들하고 얘기하는데 대통령이 온갖 욕설을 다 했다는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국민들은 가지고 있던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다. "대통령이 설마 거짓말하랴?" 하던 사람들도 "저런 수준의 사람이면 거짓말할 수도 있겠는데"로 바뀌어 버리니까. 신뢰도가 추락해서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거다. 이 점을, 윤석열 대통령이 명심해야 한다.

 

근: 명심이 될까?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대처를 보면, 이 사안의 심각성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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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김: 당장 이거 큰일 났으니 얼른 가서 사과하십시오. 이렇게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해도 문제고, 그 말을 듣고도 난 안 하겠다고 고집부렸다면 그것도 문제고.

 

근: 대통령실의 위기관리 능력까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대통령을 트럼프와 비교하면 어떤가?

 

김: 남들이 안 듣는다고 생각하면, 자기편끼리만 있다고 생각하면 욕설과 비속어를 그냥 평소에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겠다. 이게 갑자기 나온 말도 아니고. 사람이 화가 나면 좀 욕을 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지 않았나. 가볍게 그냥 내뱉는 그런 말이었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 익힌 평소의 언어가 그랬다는 얘기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외교 안보 참모진들의 무능이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 다른 나라들이 한국과 외교 협상할 때 한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나?

 

하인리히 법칙 : '해당 사항 없음' , '사업계획서 없는 예산'

 

근: 국가 안보실과 외교부의 관계는 어떻게 보나?

 

김: 외교부의 직업 외교관들은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 간다. 그 사람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이제 대통령과 대통령 참모들의 역할인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지시를 안 하고 너희들이 알아서 해봐 이렇게 했을 때보다도 더 못한 결과가 지금 나오고 있는 거니까.

 

근: 외교에는 서로 약속된 프로토콜 같은 게 있지 않나. 쓰이는 용어랄지 의전 순서, 예의와 결례의 기준 이런 것들. 외교의 필수 자산인 공관 같은 게 삭제되면, 분명 그러한 프로토콜에 손상이 갈 거고 그것을 보완하고 대체하는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날벼락 맞은 외교부는 그것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을 거고. 외교 공관 이슈만 봐도 이렇게 막무가내인데,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있는 건가?

 

김: 우리 의원실에서 한남동 외교부 공관을 대통령실에서 가져가는 과정에서 어떤 식의 협의가 있었고, 어떤 걸 요청하는 공문이 오고 갔는지를 알아보려고 자료 요청을 했는데,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이 왔다. 해당 사항 없다는 게 무슨 의미냐면, 기밀이라서 못 보여주겠다가 아니고...

 

근 : 애초에 대통령실과 외교부 간에 협의 자체가 없었다?

 

김: 그렇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인 거다. 그러니까 결국 점령군처럼 그냥 차지해 버렸지, 뭐 협의를 하고 이런 건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좀 미안했는지 삼청동 새 외교부 장관 공관 옆에 마련한 연회장으로 쓸 대통령 안가, 그 건물 보수 공사를 하는데 드는 21억, 그거에 대한 예산에 대해서는 사업 계획서도 없이 예산 승인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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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또 그걸 안 해주면 본인들의 실수가 또 드러날 테니,

 

김: 안 해줄 수도 없고 하니까 그냥 기재부에다가 이거 사업 계획서 없더라도 좀 해줘라. 이렇게 지시를 한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으면 기재부에서 그런 예산을 주겠다고 할 리가 없다. 그거는 뭐 상식 밖의 일이니까.

 

근: 외교 공관 하나 밀어내는 데에도 이 정도면, 대통령실이 입주한 국방부는 더 엉망진창일 가능성이 높겠다.

 

김: 국방부는 예산이 몇십 조고 세분화하면 너무도 많은 분야의 예산을 쓰니까, 안 쓰고 남는 것이 많다. 그것을 이제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해 파생돼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돈. 그 분야에다가 이걸 전용해서 써버리면 일단은.

 

근: 티가 안 나지.

 

김: 그것 때문에 발생한 예산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고 한동안은 숨길 수 있는 거다.

 

근: 근데 언젠간 드러나게 되어 있고.

 

김: 그렇다.

 

근: 규모가 작아 불용예산이 없는 외교부는,

 

김: 어쩔 수 없이 요청해야 되고.

 

근: '해당 사항 없음.' '사업계획서 없는 예산 집행' 이번 외교 공관 이전으로 드러난 이 단어들은 어쩌면 아주 경미한 징후일 수도 있겠다. 진짜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의. 집권 이후 5개월 동안의 정부 운용방식을 엿볼 수 있는 단면 이니까. 앞으로 뭘 하게 될 건지에 대한 섬뜩한 예고편이기도 하고.

 

김: 웬만한 사람이면 몇 번 혼이 나면 아~ 이거 내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구나. 좀 바꿔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텐데 과연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할지 좀 의문이다. 이분에게는 남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뭐 대단한 업적을 세워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권력을 휘둘러 보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대통령 스스로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또 영부인이 말리지 않을까.

 

근: 당장 외교 공관 이전에 관련해서 의원님이 제기한 문제만 두고 봐도, 정부와 대통령실에서 지금 디펜스를 전혀 못 하고 있다. 나중에 국방부 예산 문제 같은 정말 큰 건이 터지면 어떻게 하나? 시간 문제 일 텐데.

 

김: 지금까지 의혹이라든가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 중에 제대로 좀 말이 되는 해명, 남들에게 정말 빈축을 사지 않고 비웃음을 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해명이 나온 적이 거의 없다.

 

근: 그렇다.

 

김: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홍보수석실 사람들이 무능해서라기보다는, 그분들도 뭔가 팩트를 확인을 할 수가 있어야 제대로 대답을 할 텐데 감히 그런 것을 대통령 부부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못하는 분위기 아닌가.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끙끙 앓다가 대답을 하니까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수가 없는 거다.

 

근: 사실 의원님이 제기한 이 문제에 관해선, jtbc 보도도 나갔고 뉴스공장 인터뷰도 나갔다. 충분히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할 문제지만 생각보다 언론들이 받아 쓰지 않더라. 지난 정부에 영부인의 옷가지고는 그렇게 뉴스를 은하수처럼 수놓아 놓고서는. 언론 진영의 문제라고는 보지 않나?

 

김 : 뭐 언론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질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 문제라고 본다. 여러 가지가 지금 쌓이고 있기 때문에.

 

근: 쌓이고 쌓여서.

 

김: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이렇게 가다 보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질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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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평을 해주신다면?

 

김: 글쎄. 그분이 경험은 많은 분인데 여러 가지로. 근데 지금 국회의원은 8년 쉬다 들어오셨고 뭐 외교 쪽에서도 일선에서 뛰신 경험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리고 연세를 감안했을 때 이번이 마지막 공직일 가능성이 많고. 그러니까 그분도 대통령실 사람들과 부딪혀가면서까지 직언해가면서까지 일 할 생각이 없으신 게 아닌가 싶다.

 

근: 지금까지의 행보가 그렇게 보이는.

 

김: 그렇다. 안보실에 있는 분들이 너무 일본 지향적이라면, 박진 장관은 또 너무 미국 지향이다. '친미를 넘어서는 수준이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 균형 잡힌 외교, 우리 국익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외교를 할 수 있을지 좀 걱정된다.

 

헬's 키친

 

근: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새 대통령이 기를 쓰고 청와대를 나오려고 하고, 기를 쓰고 한남동 외교 공관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생긴 문제지 않나.

 

김: 그래서 청와대 옮긴다고 나왔을 때부터 걱정을 많이 하고 지적을 했었지만 그때는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일이기도 하고.

 

김: 그렇다. 그게 왜 위험해 보였냐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 초기에 청와대에 들어갔던 분들의 경험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안 됐을 경우, 청와대를 처음 경험해 보는 사람들이 정권 초기 몇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근: 청와대 동선이랄지, 하다못해 비밀 공간 뭐 이런 것들도 있을 거고.

 

김: 여러 가지 기초적인 업무조차도. 그런데 거기다가 어거지로 좁은 공간으로 이사까지 해야 되니까, 그 어려움이 배가 되는 거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처음 집권하셨을 때 청와대로 인사를 갔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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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여당이 된 것이 아니다. 집권당이 됐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야당일 때처럼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근: 취임 초기에?

 

김: 취임식 날 밤에. 다른 사람 같으면 승리감에 도취돼 있을 그런 시간에 하셨던 말이다.

 

근: 그날만은 좀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슨 소리냐 하면, 대통령 자리만 차지했지 의회권력을 비롯해서 사회 각 분야의 기득권 세력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인데 대통령직만 차지했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인 거다. 게다가 그때는 외환위기 상황이었고.

 

근: 그렇다. 1998년.

 

김: 김영삼 정권 때 있던 사람들을 청와대에 그냥 두면 기밀이 새 나가니 다 내쫓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는 그 사람들 중에 3분의 1 정도를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

 

근: 연속성 때문에.

 

김: 그렇다. 그런 걱정을 지금 정부는 전혀 안 하고 있는 거다.

 

근: 비유하자면 엄청 많은 요리를 해내야 하는 엄청 큰 주방에서, 후드는 여기서 켜고, 냉장고는 여기 가면 있고, 물건은 어디서 받는 게 좋고 이런 걸 익히기에도 바쁜 새 요리팀을 갑자기 비좁고 낯선 주방으로 막 욱여넣어 놓은 것과 같은.

 

김: 그렇다. 여기서 불나고 저기서 막 기름 쏟아지고 막 그런 상황인 거다.

 

근: 주방이 여기저기 엉망진창이니 뭐 어디 물건이 영수증 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냉동실에 가야 할 게 보온통에 들어가고 그래도, 지금은 관심 가질 겨를이 없다?

 

김: 자기들끼리 서로 책임 공방하다가, 정치권에서 들어갔던 비서진들 다 내쫓지 않았나. 그 사람들이 물론 잘못한 게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들만의 잘못은 아닐 텐데. 뭐 영부인 라인, 검찰 후배 라인, 이 사람들은 터치를 못 하는 사람들이니까 결국 그 사람들이 모든 걸 뒤집어쓴 거다.

 

두괄식 레임덕

 

근: 영부인은 직책이 아니지 않나. 그냥 관계지. 역대 이렇게 대통령 부인의 권력이 셌던 적이 있었나.

 

김: 처음인 것 같다. 옛날에 뭐 전두환 씨 부인 이순자 씨가 조금 말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군사 독재 시대니까 그렇다 치는데 그 외에는 이렇게까지.

 

근: 공관 연쇄 이동 문제를 들여다보면 결국 이 질문에 도착한다. '대통령은 대체 왜 청와대를 나오려 한 걸까' 이 정도의 무리수를 둔다는 건, 사회 전체든 하다못해 본인에게라도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청와대를 나와서 좋을 게 아무것도 없다. 상식의 수준에선. 그러니 스승과 법사 같은 단어들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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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문제는 왜 그런 허황된 헛소문을 퍼뜨리느냐고 대통령실에서 화를 낼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그런 말이 나올 빌미를 안 주면 된다. 도저히 대통령실에서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자꾸 있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 아니겠나. 박근혜 씨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온갖 루머가 돈 것도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그 말이 나온 거지 괜히 나온 게 아니잖나.

 

근: 대통령 관저 공사에 김건희 여사의 지인들이 관계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난 만큼, 외교 공관 공사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을 거라고 보나?

 

김: 아직은 모른다. 들여다보는 중이다.

 

근: 취임 반년도 안되어서 이런 의혹과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언제까지 두고 볼 일이 아니지 않은가.

 

김: 글쎄. 취임 초기부터 이렇게 말썽이 많은 경우는 처음이라. 누구에게도.

 

근: 보통 흑막은 마지막에 등장하기 마련인데, 너무 두괄식이다.

 

김: 이번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번에 영빈관 예산도 그 많은 예산 중에서 그거를 그렇게 빨리 찾아내서 언론에 나오게 된 게 의심스럽다. 혹시 누가 제보한 거 아니냐? 그런데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권 말에나 있는 현상이다.

 

근: 레임덕.

 

김: 정권 말 현상이 정권 초부터 나오는 이거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을 못 하는 거다. 여당 의원들도 공천 때 혹시 불이익받지 않을까 해서 지금은...

 

근: 입 다물고 있다가.

 

김: 그러고 있는데 나중에 총선 때 상황이 나쁘다든가 총선 결과가 참패로 나온다든가 이러면 어떻게 태도가 바뀔지 알 수 없는 거고.

 

근: 책임이 대통령으로 몰릴 때, 상황이 급 변동할 수 있다?

 

김: 정치인들이 오늘은 뭐 정말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아첨하다가 자기 이익에 반하는 상황으로 가버리면 적으로 돌변하는 거 흔히 볼 수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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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그렇다. 아까 말씀하셨듯, 가랑비 옷 젖듯이 다가오는 것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적응하기 힘든 면도 있고.

 

김: 사건이 하나 나서 좀 잠잠해지려고 그러면 딴 사건 나고 계속 이러니까.

 

근: 이게 대통령의 신망과 지지도가 전례 없이 이렇게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훼손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 또한 전례 없는 일들이 되게 전례 없는 속도로 일어날까 봐 걱정이다.

 

김: 그렇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근: 그게 뭐든 대통령이 심각한 곤란에 처하는 일이, 과연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마냥 사이다 상황일까? 싶기도 하다. 정말 그냥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가 아닐까.

 

김: 굉장히 걱정스러운 상황이긴 하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소한 말과 행동은 조심하셔야 하고, 열심히 일 안 해도 좋으니까 사고만 일으키지 말아 달라는 거다.

 

근: 제발 아무것도?

 

김: 그러니까 뭐 예로부터 무능한데 열심히 일하는 지도자가 제일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나.

 

외교 자산 혹은 폭탄

 

근: 마지막으로, 김대중 정부의 외교는 어떻게 평가 하나?

 

김: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1950년대부터 시작이 된 거다. 우리가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 북한이 우리 말을 잘 들을 거다, 뭐 그런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6.25 전쟁 초기에 인민군한테 붙잡혀서 총살당할 뻔한 그런 끔찍한 경험을 겪은 후, 우리 민족이 힘이 없어 이 강대국의 냉전 속에서 이런 비극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게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군사력을 키워서 그 힘으로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너무 위험한 일이고. 결국은 외교를 잘해서 풀어갈 수밖에 없다. 주변의 강대국들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 거기서 얻어진 힘으로 북한을 설득해 한반도 평화를 이룬다. 이게 햇볕 정책의 기본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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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젊은 나이 때부터 그 생각을 하신 거다 그분은. 그렇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외의 인맥을 만들며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의 외교를 해오셨다. 미국 망명 생활 2년 동안 만들어진 인맥이 나중에 민주화를 이루는 데에나 외환위기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다니셔서 일본어도 유창하시고 일본에 대한 지식이 많으셨기 때문에, 일본 가면은 뭐 일본 뭐 좌측에 공산당부터 시작해서 자민당의 보수파까지 두루두루 사귀셨다. 그 사람들이 우리와 저 사람이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은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분이다 하는 그런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김대중 오부치 선언 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거고.

 

근: 뭐 그래도 아드님인데,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같은 거 없나?

 

김: 언론에는 잘 안 나온 내용인데, 고노 담화로 유명하고 고노 의장, 외무장관도 하셨던 분. 그분은 90년대의 아버지가 야당 총재 입장으로서 일본을 찾아가면 거의 뭐 90도로 인사를 했다. 스승을 대하듯이 그런 태도로.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나 주룽지 총리 이런 분들도 찾아가면 멀리서 친척 형님이 찾아간 것처럼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근: 아시아의 핵인싸...

 

김: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특히 신뢰했다.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WTO 가입이라든가 중국과의 관계 문제에서도 그분에게 조언을 구했었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외교 문제에 대해서 한국 대통령한테 조언을 구한 것은 아마 그게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근: 외교는 파워 싸움이고 어떤 정상의 발언권은 그 국가의 국력에 비례하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도 하기에, 한 국가 정상의 인격과 품위는 굉장히 큰 외교 자산이 될 수 있겠다.

 

김: 그러니까 넬슨 만델라 대통령 같은 경우도 그분 덕에 남아공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지 않았나.

 

근: 외교 전문가로서, 아버님 이외에 또 외교 자산이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는가?

 

김: 노무현 대통령. 균형 외교를 추구하기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도 할 말은 하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근: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어땠나?

 

김: 문 대통령은 그분의 신중한 성격이 외교무대에서 한편으로는 장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실수 없이 안정적으로 차분하게 이렇게 끌고 온 점에서 칭찬할만하다.

 

근: 지금 말씀하신 거를 쭉 들어보니 앞에 나눈 내용들이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외교에 있어 국력만큼 국가 원수의 개인기도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니까.

 

김: 박정희 씨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승만 씨도 그렇고. 요즘 우리나라 외교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승만, 박정희만도 못한 것 같다. 국민들이 밥, 쌀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던 시대에 약소국의 외교만도 못하다. 국력이 약해 저자세의 외교를 해야만 했던 그 시대에도 가끔 한 번씩은 몽니도 부리고 자존심도 세워보고 그런 게 있었는데, 좀 상대가 애타게 만드는. 요즘은 국력이 훨씬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저자세로 가겠다고 고집하는 걸 보면 좀 한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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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에 언뜻 짓는 표정이, 내가 아는 그의 아버지의 얼굴과 너무 닮아 몇 번 움찔했다. 역시 유전자는 무서운 것.

 

김 의원은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 중에 ‘아버지’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공식적인 대담에 걸맞은 단어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언어구조는 그렇게 긴 시간 호락호락하게 컨트롤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평생에 걸친 아버지에 대한 치열한 객관화의 결과일 것이다.

 

준비된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에게 마저, 아들 된 자가 가까이 가는 것을 경계하게 되는. 그래야 그 권력의 정당성과 하고자 했던 일들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얻게 된 권력, 그리고 취임 5개월. 얼떨결에 권세를 손에 쥔 자와 그 달콤한 힘에 끌려 가까이 공전하려는 자들의 궤적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남은 4년 반, 준비되지 않은 권력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부디,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길.

 

사진 : 고려명, 근육병아리

녹취 : 정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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