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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국 국왕, 찰스 3세

 

엘리자베스 2세 서거 후, 찰스의 첫 행보 중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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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즉위식.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려는 순간이다. 찰스는 책상 위에 이미 준비된 만년필을 쓰지 않고, 자신의 옷에서 꺼낸 만년필로 서명하려 했다. 그러다 책상 위에 준비된 만년필이 거슬렸던지 치우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수행원이 만년필을 치웠지만, 찰스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지금도 이 일에 대한 왈가왈부는 계속되고 있다. 책상 위에 있던 만년필은 윌리엄/해리 형제, 그러니까 찰스의 아들들이 선물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만년필이었지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용하지 않고, 치우라 짜증까지 내며 자신의 만년필을 사용했다.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아들이 선물했다고 무조건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날도 아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수백 년 전통을 이어온 영국의 국왕으로서 즉위 선언문에 서명을 하는 날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날 공식적인 자리에서 짜증 내는 모습은, 왕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사람이라기보단, 인격이 덜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스스로 이뤄낸 게 없는 찰스

 

왜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을까. 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리숙한 처사였다. 사회생활이라곤 1도 안 해본 티 팍팍 내는 찰스. 무엇이 찰스를 이리도 어리숙한 사람으로 성장시켰을까? 

 

따지고 보면, 찰스는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 빼곤, 스스로 해내거나 이뤄낸 게 거의 없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마음이 여렸다고 한다. 다소 거칠었지만, 진취적이고 추진력이 강했던 아버지 필립의 성향은 동생인 앤이 물려받으며, 필립의 사랑은 앤에게 더 향해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찰스는 상당한 열등의식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학창 시절, 동급생들로부터 놀림받기도 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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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아들 찰스(큰 아기)와 딸 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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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방향으로) 셋째 앤드루, 둘째 앤, 넷째 에드워드,

필립, 엘리자베스 2세, 첫째 찰스

 

공부를 잘했냐. 그것도 아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영국에서 모든 과목을 A/A+ 받아도 갈까 말까 한 대학이다)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찰스의 고등학교 과목 성적 대부분은 C였다. 단지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케임브리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참고로 케임브리지 대학은 역사적으로 영국 왕실과의 교류가 깊다. 때문에 왕족이라면 누구나 성적에 관계없이 케임브리지에 입학할 수 있다. 뭐 왕족에게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고 하지만, 이조차도 실상은 다이애나 영향이 컸다(관련 내용 지난 편 참조). 그리고 그 결혼도 찰스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을 받은 채, 실패로 끝났다. 유일하게 성공한 게 있다면 20대 때부터 사랑했던 한 여인을 위해 본처를 버리고 결혼에 골인한 불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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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다이애나와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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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현 왕비 카밀라와 결혼

출처-<AP>

 

엘리자베스의 첫째 아들, 후계자라는 후광 때문에 결혼 전엔 나름 인기를 누렸다고는 하나 만년필, 잉크 좀 마음에 안 든다고 즉위식에서 짜증이나 내고 있는 찌질한 찰스의 인성이 갑자기 생긴 게 아니듯, 그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으스대고 인정받기만 바랐을 뿐, 인정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보여준 바가 없기 때문에 찰스는 대중들로부터 꾸준히 인기가  없었다. 

 

 

무능한 찰스로 군주제와 영연방은 끝날까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무능한 찰스가 군주제를 종식시키고, 영연방의 해체를 일궈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찰스는 그러한 여론이 들끓지 않도록 조심하겠고, 노력할 것일 테다. 아버지를 통해 몰락한 왕조의 일원이 어떤 불행한 삶을 살게 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찰스의 아버지 필립은 1970년대 몰락한 그리스 왕족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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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국왕이었던 필립의 할아버지 요르요스 1세(좌)와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우)

 

그러나 예민하고 피해의식 있는 듯한 행동을 자주 보이는 찰스가 조심하고 정제된 행동을 보이며, 리더쉽을 발휘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다시 한번) 그러나! 

 

인기 없고 무능한 찰스라 할지라도, 영국의 국왕 제도나 영연방 폐지에 대한 미래적 시각, 예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문법의 나라 영국이 전통에 대해 갖는 입장과 시각 때문이다. 

 

영국은 혁명이 없는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가 변화해 가는 것을 기다려주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국민성이 있다. 갑작스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군주제 폐지 그리고 연연방 해체는 먼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전통’의 나라, 영국의 군주제

 

세계대전을 치렀지만, 식민 지배를 당한 적 없고, 엄청나게 전쟁을 해댔지만, 국가를 잃은 적이 없는 현재의 영국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든, 정치든, 국가 행정이든 할 것 없이. 즉, 프랑스 혁명처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적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DNA를 갖고 있다 보니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짝씩 변화를 주며 전통을 유지하다 보니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것이고, 단점은 그만큼 뭔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과정이 복잡하고, 느리다. 코로나 국면에서 영국에서 확진자/사망자가 그렇게 많이 나왔던 것도 즉각적인 결정과 대처가 아니라 느긋하게 토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영국 브리핑 7: 영국은 왜 코로나 방역에 실패했을까’ 링크).

 

즉 아무리 여왕이 죽었어도, 찰스가 (만약) 엄청난 망나니라 하더라도, 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왕실의 존폐를 쉽게 결론지을 수 없다. 1066년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정복한 이후로 천 년동안 그 혈통들이 국왕을 맡아오는 사회가 영국인들에겐 당연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현재의 국왕이 맘에 든다 안 든다로 간단하게 왕실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폐지는) 나라 전체의 시스템을 다 바꿔야 힐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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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uters>

 

뛰어난 군주가 즉위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다하여 없애거나 무력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찰스가 어떤 인물인가, 혹은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가’와 영국 왕실의 존재는 별개다. 그가 어떤 인물이든 아직 그들에겐 그냥 왕은 왕이다. 우리 언론에서 왕실 폐지론자들의 인터뷰를 주요 목소리로 종종 내보내지만, 실제로 영국에서 그런 목소리는 힘이 크지 않다.

 

여론도 그러하거니와 군주제 폐지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워 사실상 실질적인 법 효력을 얻고 왕실이 폐지되는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확률상의 전망이지, 미래를 100퍼센트 예단할 순 없다. 엘리자베스의 남편 필립공이 그리스의 왕족이었고, 그리스의 군주제 폐지로 영국 망명생활을 했던 걸 감안해 보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할 순 없다. 영국보단 그리스가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리스는 그리스고, 영국은 영국이다. 

 

마그나카르타의 발상지이자, 명예혁명으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불문법에 기초한 영국의 군주제는 법으로 보장이 되어 있다. 1603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부 구성 체제를 갖고 있고 이는 법적으로 보호 받고 있다. 게다가 중세 시대에 있을 법한 얘기들, 가령 왕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죄를 지어도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게 여전히 유효하고, 자신을 증명할 어떠한 증명서도 필요 없다. 여권도 필요없다. 1992년까지는 세금도 면제였다. 

 

엘리자베스가 1993년부터, 변화하는 새 시대(?)를 맞아 군주(Monarchy)에서 왕가(Royal Family)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세금 납부를 시작했기에 현재는 면제가 아니지만, 현재도 안 내려면 얼마든 안 낼 수 있는 근거가 법으로 보장된다. 사람들이 엘리자베스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스스로 군주의 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했고, 자진해서 재산을 신고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철저하게 납부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반시민으로의 역할에 충실하려 한 모습을 보여줬다.

 

엘리자베스의 운구차 행렬에 마중나온 시민들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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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의 운구차 행렬에 마중 나온 시민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공화정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절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래서 여전히 고종의 후손들이 경복궁을 지키고 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영국인들의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할 순 있을 것이다. 

 

암튼, 영국에게 있어 전통을 이어가는 건 그들의 역사적 DNA에 박혀있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시대가 변했다고, 사람들이 가치관이 일부 달라졌다고 해서 수백 년간 이어져오던 체제와 시스템을 쉽게 바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럼 영연방은 어찌 될까

 

지금 우리가 부르는 영국이라는 명칭은 ‘잉글랜드(England)’를 음역한 한자어 英國(잉꿔르)를 우리 발음으로 부르는 것이다. 즉 우리가 영국이라고 하는 건 잉글랜드를 나타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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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doopedia>

 

하지만 현재 영국의 공식 명칭은 '대 브리튼(섬)과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위로는 스코틀랜드, 서쪽으로는 웨일즈, 그리고 잉글랜드가 위치한 섬을 ‘대 브리튼(Great Britain)’이라 명칭한다. 그리고 영국은 아일랜드가 독립할 당시 잉글랜드 인들을 아일랜드 북쪽으로 이주시켜 땅을 차지하도록 했는데, 이 지역을 ‘북아일랜드’라 부른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총 4개국의 연합체가 현재 우리가 UK로 칭하는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다. 

 

‘영연방'은 이전 기사(링크)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거나 속령이었던 지역, 현재는 독립해 국가가 된 나라들의 연합체인 국제기구이다. 이는 크게 2단계로 구성이 되어있다. 첫 번째는 영연방 국가이고, 두 번째는 영연방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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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도 보이듯, '영연방 국가들(Commonwealth Nations)'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로 이뤄진 연합기구로, 법적으로 구속력을 지니진 않는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종식된 이후, 각각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했음에도, 자진해서 모여 영연방이라는 체제를 만든 만큼 결속력이 강하고 상호 간 이해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무역을 하거나 재난이 발생하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 간 긴민한 협력이 우선시 되고, 금융이나 기타 공동 펀드도 조성이 되어 있어도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커먼웰스 게임‘이라는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경기를 4년마다 개최하는데, 우리야 그러거나 말거나 별 관심 없지만, 영연방 국가들끼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굉장한 축제다. 특히 크리켓이나 럭비 경기를 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때와 비슷한 국민적 관심을 받는다. 그 영연방 국가들의 수장이 바로 ‘영국 국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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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게임

 

두 번째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 여기에 속한 국가들은 현재까지도 헌법에 근거하여 영국의 왕을 군주로 모시고 있다. 

 

“그레나다, 바하마, 벨리즈,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세인트키츠 네비스, 앤티가 바부다, 자메이카, 캐나다, 뉴질랜드, 솔로몬 제도, 투발루, 파푸아뉴기니, 호주, 영국”

 

이렇게 15개 국가들이 포함된다. (가수 리한나가 태어나고 자란 바베이도스도 영연방 왕국 중 하나였으나 작년 11월 공화정이 되며, 영연방 왕국에서 탈퇴했다) 

 

그리하여 찰스 3세는 영국뿐 아닌 14개 국가에서의 왕이기도 하다. 무슨 얘기냐, 군주제가 폐지되거나 영연방이 해체되려면,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 왕국들에 속한 국가들도 모조리 더 이상 영국 왕을 군주로 여기지 않는다고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각 나라별로 영국의 왕을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혹은 입헌군주제가 웬 말이냐 하는 여론이 과거보다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지만,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30% 이상의 국민들이 군주제를 찬성하는 상황에서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술했듯 영국 내에서도 당연히 불가능. 전통 하나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전통을 버리면 남는 게 없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영국의 독특한 종교 문제다. 가톨릭 하면 바티칸을 떠올리겠지만, 성공회는 본산은 웨스트민스터, 즉 영국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가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를 만들고 시간이 흐르며 영국의 국교는 성공회로 정착되었다. 때문에 영국 왕은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이기도 하다. 군주제가 폐지되면 성공회 역시 조직도부터 해서 대대적인 개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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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와 캔터베리 대주교(성공회의 최고 성직자)

 

찰스가 왕위에 올랐다고 해서 이런 복잡하고도 귀찮은, 거기다 시간도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려야 하는 일이 단숨에 일어나기란 아주 높은 확률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오해들 마시라. 고작 찰스 하나 때문에 수십여 개의 국가들이 개헌을 하고, 영국에서 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니.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