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아닌 자기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 대부분은 현장 일을 계속하려고 했다.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던 O인 형님을 제외하곤 대부분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해도 기력이 닿는 한, 건설 현장 근처에서 일하고자 했다. 그러면 풍족하진 않아도 대충은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숙소에 살던 이들은 해체일은 물론, 노가다를 오래 할 생각들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사업모델을 만들고 실행하려 했다. 가장 먼저 모방한 것은 오야지인 팀장의 사업모델이었다. 전직 포주였던 O연과 사채업자였던 막내는 숙소에서 나와 근처 원룸으로 들어갔다. 둘이 한동안 뭔가 꾸미더니 팀장과 다투고 2018년 말에 자기 연장들을 챙겨서 사라졌다.
대부분 둘이 별도의 팀을 꾸릴 거로 추측했다. 팀장은 아예 확언했다. 자기들은 ‘노가다 안 합니다’라고 말하고 나갔지만 둘 다 자기 연장들을 가져갔고, 반장급 1인과 사채업에 연결된 적이 있던 사람의 결합이기 때문이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일단 이걸 이해하려면 O연과 막내 사채업자의 독립을 보고 뭔가 다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인, 팀장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1. 배신자(?) 팀장의 과거와 그걸 따라한 O연의 현재
나중에 O덕 형님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다. 인력사무소 해체 반장 셋이 모여 작당한 적이 있는데 이 셋 중 한 명이 팀장이었다. 팀장은 사채업자들과 함께 자기들이 들고 튈, 기존의 각각 세 인력사무소와 관계를 맺고 있던 현장 소장들을 먼저 만나고 다녔단다.
현장이 있고, 그 업체들의 자금력을 확인한 사채업자들은 일단 필요한 자금을 팀장에게 대출해줬다. 팀장은 그 돈으로 세 인력사무소에서 끌고 나온 인원들에게 주급을 줬다. 추가로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이들을 확보했다. 건설회사에서 돈 주는 것은 대략 3~6개월 텀이었으니 그동안 자신이 사채업자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자+자기 일당+사무실 운영비'를 빼고 일당을 지급했다.
하도급사에선 대략 기술공 일 인당 18~19만 원 선에서 돈을 받아 기술공에게 13만 원 주는 걸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불법체류자들의 숫자가 좀 차기 시작하면서 해체일을 도급으로 받기 시작했다. 단가를 꽤 후려쳐서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기술공 기준 9만 원을, 그 이외엔 7만 원을 줬다. 그렇게 단가 후려치기가 가능했던 것이고. 처음 1년은 거의 사채업자들의 가마우지 신세였단다. 열심히 벌어서 이자 주고 나면 자기 일당이 간당간당하는 상태로 유지되었단다.


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
출처-<EBS 세계테마기행 캡쳐>
그러다가 외국인들의 저임금으로 도급 계약 몇 개를 확장하면서 가마우지 신세에서 탈출했다. 이때가 대략 2018년 가을 정도였다. 경리라고 와 있었던 분은 사실 사채업자의 파견 직원이었다. 그즈음까진 주로 경리직원 명의의 통장에서 돈이 입금되었다. 경리직원이라고 하던 분이 나가고 나서부턴 팀장이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에서 ATM기로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ATM기 한 대에서 보낼 수 있는 돈의 제한이 있으니 그게 가끔 섞여서 다음날 입금되는 경우도 생겼다.
숙소에 있던 이들은 팀장이 술 먹다가 혹은 밥 먹다가 전화하던 내용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전직 사채업자와 같이 방을 쓰던 O연은 처음부터 독립할 생각이었고 자기 사업 모델을 팀장의 모델에서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2019년 연말쯤에 다시 팀에 복귀했다. O연은 사채업자에게 수천만 원 빚만 생겼다고 한다. 이자 올라가는 빛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있던 재산 털어 넣고 팀장에게 일당의 80%를 매일 차감하는 조건이었다.
도대체, 왜.
2. 전직 포주 O연의 실패 : 사람을 굴리기만 하는 사장
난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한미 정상이 처음 만났던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계장공으로 일하고 있었다(계장공은 건물 안에서 전기와 설비가 가동될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일당이 높지 않음에도 잔업이 많다. 한겨울에 실내 작업이었던지라 불문곡직 달려갔었다. 마침 마나님도 본국에 잠시 돌아가 계셨던 터다).
종무식 끝나고 연휴라 집에 들어와 밀린 잠을 자고 있었다. 운전할 사람이 없으니 며칠 운전 알바 좀 해 달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나가보니 날라야 할 이들의 반장이 O연이었다. 사람 날라주고 밥 먹고 집에 돌아와서 있다가 퇴근 시간 맞춰서 차 태워주면서 그동안 있었던 대략적인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기가 찼다.
O연이 주목했던 것은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였다. 외부 작업이 끝나면 건물 외부를 둘러쌌던 비계를 철거하는데 비계공들의 임금이 상당했다. 그걸 거푸집 해체와 병행하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런데 현금 장사만 했던 포주 출신이라 돈이 제때 안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업모델을 짰다.

비계 붕괴 현장
여기에 한 가지 더. O연은 외국인들과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팀원 전원을 한국인으로 꾸렸단다. 사실 그즈음부터 거푸집 해체만 전문적으로 하는 팀들은 내가 일했던 팀이 돈 버는 것을 보고 외국인들을 대거 들이기 시작했었다. 인건비로 경쟁이 잘 안되자 팀장은 노동시간을 늘리기 시작했었다. 한국인인 기술공들과 마찰을 일으키면 안 되니까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던 정리팀의 일하는 시간부터 늘렸다. 4시 퇴근에서 5시 반 퇴근으로.
외국인 중에서 기술공 대접을 받았던 이들은 몽골 출신의 가돗과 바랴트 공화국 출신의 바기, 둘이었다. 가돗은 가족이 모두 몽골에 있었고 바기는 아내인 제니아와 우리 팀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다. 꽤 여장부라 바랴트 공화국 출신들의 대장 노릇을 하던 제니아는 임금인상 없는 근로 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조직했다. 팀장은 모두 해고하는 걸로 응답했다. 항복하고 돌아온 이들만 받았고 나머진 대부분 짐 싸서 돌아갔다.
그 소동을 보고 O연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항상 그 임금으로 일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도 좋지 않으니 한국인들로 팀을 구성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출이 큰 상태에서 달리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아예 염두에 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긴 빚을 갚고자 스스로 가마우지가 되어 올해까지도 일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길 들었다.
3. 사채업자 막내의 실패 : 사이버 도박장과 비트코인 환치기
이 과정에서 당연히 O연과 사채업 하던 막내는 원수가 됐다. 이 녀석 역시 다시 탈출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사업모델이라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 사이버 도박장 회원가입 축하금이었다. 그게 사이트마다 미화 10불 언저리고 사이트는 하늘의 별만큼 많으니까 그 돈들을 긁어모으면 몇억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자긴 영어가 안돼서 가입도 못 하니 영어 좀 하는 내가 그 일에 합류했으면 좋겠다는, 꽤나 진지한(!) 제의를 그즈음에 했었다. 계장공으로 평택에서 일할 때였다. 숙소는 오산이라 일주일 내내 오가느라 꽤 피곤했다. 토요일 퇴근하면 일요일 오후까진 거의 밥 먹고 잠만 잤었다. 금쪽같은 휴식 시간에 나오라고 해서 술도 내가 사게 만들면서 그걸 신박한 사업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다.
뭐라고 할 생각도 없어서 구글 번역으로 사이트를 어떻게 하면 통으로 번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언어설정을 하면 이해하기 좀 더 쉽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집에 돌아왔었다.
그 이후에 계속 연락이 없다가 작년에 비트코인 재정 거래에 동참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중국과 한국의 비트코인 거래 시세가 다르니 한국의 돈을 중국에 보내 중국거래소에서 코인을 산 다음, 한국 거래소로 그 코인을 옮겨서 판다는 계획이었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갖고 돈 벌었다는 사람들이 나왔던 게 2017년 언저리의 일이었으니까 대략 4년 늦은 모델이었다.
나보곤 중국 송금할 수 있는 통장을 달라고 했다. 이야기 들으면서 대략 뭘 달라고 할 것인지 짐작되었던바, 네팔에 보내는 돈 송금액이 있어서 금융위에서 종종 전화 오는 것이 내 통장이라고 말했더니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녀석은 그게 몇 개의 법을 어기고 있는지도 몰랐을 터이다. 그즈음부터 중국에서 거래소들을 폐쇄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돈 보내면 받기 힘들 것 같았지만 더 길게 이야기하진 않았다. 내가 뭐라 한다고 해도 해체팀 숙소에서 탈출하겠다는 생각만 하는 이들에게 그 이야기가 먹힐 것 같지 않았던 터다.
4. 전직 티켓다방 사장 O근의 실패 : 프리메라리가 토토
전직 티켓다방 사장이었던 O근은 이 둘보다는 훨씬 단순했다. 그는 배당을 최대화해서 토토를 긁는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봐도 하던 걸 보고 좀 웃겨서, 나름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좀 확실했던 게임들 몇 개를 갖고 돈 따는 걸 보여줬었다.
스페인 축구 리그인 '프리메라리가(1부 리그)'와 '세군다 리가(2부 리그)'를 오가는 팀 중에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팀들이 있다. 이 팀들의 홈이 스페인에서 워낙 떨어져 있는 관계로 리그 순위권이 되는 팀이 와도 녹아웃되는 경우들이 많다. 사실 스페인 본토보다 모로코랑 훨씬 더 가깝다. 그러니 겨울철에 걸면 거리와 날씨 때문에 유명 팀들도 박살 나는 경우들이 생긴다. 대충 전 게임과 리그 일정표 보면서 적당하게 걸었다. 그게 15배씩 걸려 일당 버는 것을 보여 줬던 적이 있다. 물론 스포츠는 알 수 없지만 이 경우, 데이터가 쌓여 있으니 만약 한다면 이정도로 가끔, 그나마 이성적(?)으로 확률이 높은 쪽에 안정적으로 베팅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O근은 그걸 우스워했다. 그는 그런 게임들이 있으면 더 배당 높은 경기들과 엮어서 배당률을 높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런 도박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렇게 배당만 높은 걸로 가려면 로또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로또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돈 보내려고 조작을 하고 있기에 확률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역시 팀장과 대판 싸우곤 2019년 말에 중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제주도 도박장에 바지사장으로 갔다. 코로나 직전이었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맺음말. 땀 흘려보지 않았던 이들의 사업 모델
사실 이들 대부분은 돈을 벌면 그걸로 뭘 할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사업모델을 만들었던 이들은 모두 거푸집 해체를 하러 오기 전까지 땀 흘리는 일을 했던 이들이 아니었다. 포주·티켓다방 사장·사채업자가 땀 흘릴 일이 뭐 많았겠나. 뭔가 만들어보겠다고 남의 나라 밀림과 해발 3~4천 되는 지역을 돌아다녔던 입장에서 이들의 사고방식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서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을 망쳤다, 뭐 그런 얘기다. 월간조선 기사가 부분적으로 사실(?)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아래 공문을 인천 송도 지식산업단지 현장에서 봤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미웠겠나. 문재인 정부는 값싼 산업용 전기 혹은 농촌용 전기로 암호화폐 채굴하는 것부터 막았다. 거래소 은행 계좌 연결에도 제한을 뒀다. 당연히 조선일보는 그런 게 불만이었나 보다.
하지만 몇 달 내, 저 암호화폐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월간조선은 무어라 말할까(2022년 초, 월간조선 기사에 쓰여 있는 루나 코인에 문제가 발생, 가상화폐 시장 폭락을 초래했다). 애초에 저 매체는 ‘문재인이 나라를 말아먹었어요’를 핵심 구독자들에게 각인시키면 장사가 되는 곳이니 나로서도 할 말은 없다.
사실 코인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변동성’만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이런 상품들도 나오는 거겠지.

2배 레버리지 선물을 사는 것도 ‘야수의 심장’으로 산다고 하는 세상에 변동성 끝장인 암호화폐로 150배가 말이 되는가. 하지만 거푸집 해체팀에서 탈출하는 것이 당대의 지상과제였던 숙소 팀 녀석들은 150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신경도 안 쓰고 살 것 같다.
불법 팀이라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비계에 비 오는 날 올라가던 것이 일상이었던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저게 어마어마한 빚으로 날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보단 한 방에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까닭이었을 터이다. 그 해체팀에선 이게 ‘진리고 법’이었다.
세상 산다는 게 참으로 힘들다. 지친다. 내 몸 누일 집을 찾기도 힘든 세상이다. 이렇게 살다가 평생 일만 하다가, 내 집 하나 가지지 못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어 인생역전을 노리다가 망해버린 중년과 노년을, 나는 자주 본다. 아마도 이 땅의 많은 청년들도 그 함정에 빠질 거다. 정직하게 땀흘려 일해서 먹고 살기 힘든 것도 맞고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게 바보같아 보인다는 것도 안다.
헌데 그렇게 다른 방법도 모르고, 바보같이 묵묵하게 땀흘려서 가족을 건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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