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일하면서 경계하는 것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속한 정당에 유리한 뉴스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핸드폰을 열어 유튜브 앱을 실행해 본다. 추천 영상엔 내가 좋아할 만한 정치적 의견들이 빼곡하게 줄을 서 있다. 알고리즘은 내가 민주당 지지자를 넘어 민주당 보좌진이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를 쫓고 사는지. 그것을 늘 돌아보는 이유는, 이곳 국회라는 공간은 잠시만 방심하면 확증편향의 덫에 걸려들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후, 이래저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고 빡치는 일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대중의 온도보다 조금 더 뜨거운 정도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주변 이들에게, 대통령에 관해 최근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이것이다.
“윤석열 탄핵해야 하는 거 아니냐? 가능하냐?”
그러면 나는 늘 대답한다.
“박근혜가 탄핵 될 때 지지율이 4%였다. 지금 윤석열 지지율은 20%를 훌쩍 넘는다. 아마 20%가 그의 최종 저지선이 될 거라고 본다. 저 선이 깨지면 줄줄이 무너질 것이지만, 그전에 탄핵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다들 한숨을 푹푹 쉰다.
“경제는 파탄 났고, 애먼 사람 압수수색이나 하고, 사고 치고 거짓말만 하는 걸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봤는데, 대체 지지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동시에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 못하는 섬뜩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진짜 이러다 무슨 큰 사고라도 터지는 거 아닐까. ’
애도 기간이라는 바리케이드
주말 밤이었다. 기나긴 국정감사에 몸이 녹초였다.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러 업무 단톡방이 빨간 알림들로 가득했다. 용산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할로윈 파티에 갔던 사람들이 인파에 밀려 부상도 당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끼어 죽는다는 걸. 그것도 무려 154명의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날이 할로윈인지도 몰랐던 나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여의도 호사가들과 몇몇 호들갑 떠는 기자들이 만든 한심한 찌라시인 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초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뉴스는 사망자, 부상자 소식, 실종자 연락망 구축, 사고의 경위, 원인 분석이다. 그리고 뒤이어 곧장 책임 소재를 묻게 된다. 그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흐름을 거스르는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정부는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 채 24시간이 되지 않았을 때다.
물론, 국가적 재난 앞에 애도 기간을 설정한 일 자체만 놓고 본다면 나쁜 일은 아니다. 또한, 끔찍한 사고를 겪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생각할 때 정치적 공세를 자제해달라는 말은 일견 타당한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앞서 선포된 애도 기간은, 참사에 대한 다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 재갈을 물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애도 기간 앞에 관련한 어떠한 질문도 정치적 공세가 되는 프레임이 짜여진 것이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출처 - 행안부 '시·도 부단체장 영상회의 자료'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피해자'를 '부상자'로.
공문에 '객관적' 용어로 통일하라는 정부의 지침과 이에 따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의 브리핑을 확인했을 때, 확신할 수 있었다. 공허한 애도 기간에 묻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밝힐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가해자와 책임 부분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거나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립적 용어가 필요해 이렇게 사용하고 있다"
-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애도 기간 선포, 용어 정리.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부 대처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가 있다.
'정부는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들의 진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 이태원에 예년과 비슷한 정도의 인파가 몰렸고
2. 사고 당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 병력들이 분산되었으며
3. 경찰 병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수 없었다.
라고 발표했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현재 경찰 권한으로 선제적 대응 어렵다"
"이번 사고와 같이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인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며 손바닥을 맞췄다. 이를 바꿔 말해보자.
현행법상,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책임 소재는 정부에 있지 않다.
이게 애도 기간 동안의 대통령과 장관의 진심이다.



모든 길은 검찰로 통한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사고대책본부를 대검찰청에 꾸렸다. 소방청도 경찰청도 아니다. 검찰이 대형 참사를 수습하는 기이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본부장이 된 대검 형사부장은 이태원을 관할하는 서울서부지검을 중심으로 경찰, 소방청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서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재판을 집행하는 사법관인 검사가, 대형 참사 사고 수습의 최일선에 섰다. 대검찰청 형사부장이 사고 수습과 안전대책에 관한 어떤 전문성과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가장 익숙하고 잘 드는 칼로 이슈를 관리하겠다는 의지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검찰 말고는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대통령의 의중까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뒤로 제껴진 재난 안전 관리 전문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는 틀렸다는 것이다.
하다 하다 재난 컨트롤 타워까지 검찰이 올라선 건, 상상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국회 생활 10년 짬밥 헛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언론에서도 이 이상한 사고대책본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모든 기자들도 알고 있다. 모른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그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범행 현장 찾은 검사의 모습, 딱 그랬다.

이날,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참담했던,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
대체 참모라는 작자들은 대통령에게 사건 브리핑을 얼마나 개떡같이 해놨길래, 저딴 소리를 할 수 있는 건가. 애써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해놓고 초등학생이 전쟁 유적지 탐방 가서 할 법한 소리를 하는 대통령은,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해 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진실은 경찰청에 있다
할로윈 데이에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은 연례행사다. 시간대별로 어느 골목에 어느 정도의 사람이 밀집되는지, 이태원을 관할하는 경찰서나 구청만큼 정확한 데이터를 가진 곳도 없다. 굳이 과거 뉴스 보도나 유튜브 게시물을 뒤질 필요도 없다. 용산 경찰서의 10월 말 이태원 일대 출동 계획과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과거 같은 시점에 이태원 일대에 경찰이 얼마나 배치됐었는지, 구급 인력이 어디에 어떻게 대기하고 있었는지, 인파 관리는 어떻게 했었는지, 하물며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했었는지 등등 과거 자료에 모든 답이 나와 있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 파악은 단숨에 끝낼 수 있는 아주 명징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서의 문은 굳게 걸어 잠겼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시대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정부는 판단을 한참 잘 못한 거 같다. 타조가 모래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들, 사냥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시민들이 내놓은 증거가 진실인지 아닌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 국회의 몫이다. 정부에 이런 자료를 요구하고 찾아내는 게 국회 보좌진이 해야 하는 일이다. 밝혀내야 할 것이 있다면 한치의 소홀함이 없게 임할 것이라고, 이 지면을 빌어 다짐한다.
그것이 '사망자'들이 아닌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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