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간 게 잘못이라구요?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축제 현장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모였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고 삽니다. 서울은 특히 인구 밀집도가 높아 벚꽃놀이, 불꽃축제, 어딜 가도 사람만 보이는 도시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좋으면 우리는 가족, 친구들과 나들이를 갑니다. 대개의 경우, 누가 주최하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혹여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내 나라, 내 조국이니까요.

출처-<노컷뉴스>
이태원 거리만 해도 사람 많았던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참사가 나기 전까지 그 골목은 그저 흔한 서울의 골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목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 죽는 사고가 났습니다. 엄마와 딸이 서로 죽어가는 장면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요.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 사고가 왜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네요.
이상하죠. 우리는 알겠어요. 대체 그 사고가 왜 났는지. 십만 인파가 모였다는데 아무도 통제하지 않았다면서요. 일이 이쯤 되면 사고가 그만한 게 다행 아닙니까? 여기까지도 기가 찰 노릇인데 사고 이후 정부 관계자들은 자꾸 주최 측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입니다. 이에 극우 세력들이 득달같이 몰려 나와 여러 웹사이트를 전전하며 눈물 나는 댓글 분투를 시작했습니다.
'놀러 가서 다친 것 아니냐, 그게 왜 국가 책임이냐'
예? 이게 말이에요 막걸리예요? 이게 어떻게 개인의 잘못입니까? 여기서 어떻게 국가 책임론이 빠지나요.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 한 번 탁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이날 이때까지 한국에서 대규모 인원이 운집한 거, 하루, 이틀 아닙니다. 하지만 이날 이때까지 이런 류의 끔찍한 사고는 겪어본 적이 없기에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참사가 발생한 곳은 서울의 중심부입니다. 목숨 걸고 가야하는 오지나 극지가 아닙니다. 발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그런데 그곳에 왜 갔냐니요. 놀러 나갔으니 죽어도 된다니요. 이게 무슨 말이죠? 저한테는 누구도 백화점에 왜 갔냐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위험한 나라였나요?
참고로 저는 27년 전에 삼풍백화점 참사 피해를 겪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당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남았으니 생존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저는 여전히 그 일에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여태 불안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거예요.
또 사고 이후, 과각성 상태로 오래 살아서 몸도 마음만큼이나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면역력이 나빠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 않습니다. 간단한 외과 수술을 받아도 수술부위가 잘 아물지 않아 재발하고 재발하는 그런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렇듯 참사는 한 순간에 사람의 몸과 마음을 파멸로 이끕니다.
그래서 저는 딴지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2018년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내고 이런 참사가 개인의 서사를 얼마나 바꾸는지. 이런 참극이 왜 있어서는 안 되는지 계속해서 쓰고 말했습니다. 더는 이 땅에서 이런 식의 참극을 그만 보고 싶어서요.
그런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생겼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외부로 향한 채널을 전부 껐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침묵하면 안 되겠다. 숨어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용기 내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그날 그곳에 누굴 죽이려, 본인이 죽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 갔다 참변을 당한 겁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거기 왜 갔냐고 하지 말아 주세요. 이들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 분들께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 계셨던 분들과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 분들 모두,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더라도 혼자 집에 계시지 말고 가능한 빨리 정신과로 가서 진료하시고 국가 트라우마 센터에 피해 사실을 접수하길 바랍니다. 트라우마는 사람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제 경우엔 10년 후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사고 직후는 오히려 경황이 없어 괜찮게 여겨질지 몰라도 나중에 어떻게 그 일이 당신의 일상을 파괴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미리미리 의료기록 만들고 정기적으로 선생님과 만나 상의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사고 직후, 두문불출 혼자 있다가 병을 키웠습니다. 그러니 다들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직장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그 일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세요. 혼자 있지 마세요. 이는 제 의견일 뿐만 아니라, PTSD 치료과정에서 많은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가분들이 해 주신 이야기 입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링크)
그리고 이건 참 슬픈 조언인데요. 유가족들은 세월호에 대해 한 번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사태를 보면 참사 이후,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세월호의 진상 규명은 여전히 답답한 점이 산더미입니다. 결론적으로 누가,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아직 모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살이를 한 걸 두고 세월호로 죗값 치렀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아닙니다. 그분은 국정농단과 뇌물 수수 혐의로 입건된 것입니다. 세월호와는 별개입니다.
또 우병우 김기춘을 위시로 한 당시 정부 수뇌부는 사고 이후 7년이 지난 시점에 열린 공판에서 전원 무혐의 판정을 받았습니다. 법원이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면죄부를 발부한 거죠. 그러니 결국 책임자는 아무도 없었었습니다. 해서,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때 법원과 검찰 지휘부에 누가 있었는지.

세월호 참사 관련자 무혐의 종결
출처-<뉴시스>(링크)

10.29. 참사 직후 행안부 지침
출처-<오마이뉴스>
아니나 달라 이번에도 여지없이 국가기관에서 조직적으로 사고를 은폐 축소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행안부에서 지자체에 내린 공문 참조) 그러니 슬프고 힘든 순간임에도 중요한 순간엔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으셔야 합니다.
이런 순간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속히 유가족 비대위를 만들고 정부 당국과 진상조사 피해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 대해 협의를 하셔야 합니다. 또 매 회의마다 녹음기는 반드시 지참하시고 모든 회의는 회의록을 따로 작성하셔야 합니다. 시행내역마다 책임자의 서명을 반드시 받아 두시구요.
훗날 법정에선 백 마디 말보다 증거가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아무도 믿지 마세요. 아무도. 본인의 일은 본인이 챙기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이 슬픔 속에서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은 마음을...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이용하려 할 겁니다. 그렇게 빨리 빨리 애도하고 개개인별로 마무리해서 잊혀지게 하는 게 유리하거든요.
이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하시길 바랍니다. 그 분들이 난생 처음 죽음과도 같은 슬픔을 겪는 와중에 온갖 조롱과 황당한 일로 모멸감을 느낀 사연과 경험들이 실리적인 도움도 되겠지만, 그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겪은 이들이 어딘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때론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저도 그랬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러니 언제든 참사 피해자들께 연락하세요. 제게 연락 하셔도 좋습니다.
시민사회에 고하시길
2014년 봄에도 댓글 부대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처음 인터넷 뉴스에 비상식적인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며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담론이 되고 여론이 되어갔습니다. 그러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졸지에 유가족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습니다. 이윽고 사람들은 유가족을 종북 좌파라 했고 반정부 세력이라고 했습니다. 유가족에 대한 혐오와 조롱, 비방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정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렇게 세월호를 지겹게, 머리 아프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지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이들의 말에 호도되지 마세요. 그렇지 않다고 대응해 주세요. 참사는 사람을 가려 오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불가해한 참사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아 살아있는 겁니다. 그러니 독자분들도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자와 유가족 편에 서 주세요. 진상규명이 완료되고 책임자 처벌이 되는 그날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 주세요. 기꺼이 연대해 주세요.

당국에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안전 사고는 사업주가 책임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미루어 봤을 때 제 생각엔 도로 같은 국가 시설은 국가의 사업장 아닐까요? 사업장을 제대로 관리 못해서 사람이 죽었으면 내 탓, 네 탓할 것 없이 사과부터 하는 게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행사 주최가 없다는 이유로 서로 책임만 전가하고 보여주기 식의 전시 행정만 하시는 건가요? 주최가 불분명하다, 지금은 딱히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 제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질타와 분노는 국민들이 해도 됩니다. 그러니 정부 관계자들께서는 조속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방지 대책을 마련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삼풍백화점을 기억하고 있고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의 눈을 두려워하십시오. 더는 우리를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이른바 세월호 세대로 불리는 이들의 세대적 아픔에 대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깊은 사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고작 이딴 세상을 만들어 놨다는 죄책감, 죽는 날까지 무겁게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참사 피해자 유가족 여러분들은 자책하지 마시길.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 따위 세상에 살게 하고도 책임을 피하고 조롱과 멸시를 쏟는 기성세대들의 잘못입니다.
앞으로 온갖 악플, 조롱과 멸시, 그리고 정권의 황당하고 이상한 대처에 부디 무너지지 말고 잘 견디어 주시길.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