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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실의에 빠졌다. 너무도 황망한 참사다.

 

정부는 애도 기간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두고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애도 기간도 이제 끝이 보인다.

 

비극적인 현실이 지나가면, 슬픔과 분노가 남는다. 사람의 감정이란 무릇 그런 것이다. 모두가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군가는 비극이 더 커지지 않도록 수습해야 하고, 누군가는 비극의 원인과 책임을 명명백백 밝혀야 하며 누군가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 어렵고 막중한 임무를 위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권한과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대통령의 격노

 

윤석열 대통령이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대규모 압사 사태를 감지할 수 있는 112 신고를 받고도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고 격노했다.

 

대통령이 격하게 노한 다음 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조사가 끝나는 대로 상응하는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

 

라고 밝혔다. 사고 발생 나흘 만의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12 신고 내역이 공개되면서 156명 사망이 오롯이 정부 책임인 것으로 됐다. 누군가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 장관과 청장의 경질설을 논평했다.

 

위의 내용이, 대형 참사 직후 언론에 보도된 대한민국 행정 수반의 의사결정 흐름이다. 일견 사고를 수습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상식적인 게 하나도 없다. 국민 156명이 희생된 참사에 관련된 신고 접수 사실을, 사고 사나흘이 되어서야 인지하게 된 대통령. 신고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으면 정부가 책임을 피해 갈 수 있었을 거란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대통령실의 메시지 관리 등등.

 

하지만 그 모든 것들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

 

참사 앞에 드러난 대통령의 감정이다.

 

'격노'

 

대통령의 역할

 

참사와 재난은 대부분 인력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 발생한다. 대통령이라도 단숨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 있을 리가 없다. 더불어, 대통령이 현장에 상주하며 모든 일을 관할하고 지시할 수 없다. 경제, 국방, 외교 등 또 다른 위기를 관리해야 할 최고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참사 앞에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태도다. 대통령이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관련 결정권자들과 실무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명하고 확실한 태도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판단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뒤늦게 구멍을 발견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책임자를 엄중 색출하겠다는 대통령의 태도. 그 태도 앞에 어떤 공무원이 제 역할을 찾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원인 규명도,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도,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한 진정한 추모와 위로도 아무것도 없이 지나갈 것이다. 마치 며칠 동안의 공허한 애도 기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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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살 혹은 먹통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자.

 

참사 직후,

 

인파가 예상보다 너무 많이 몰렸고,

 

경찰 소방 인력을 투입했어도 예방을 못 했을 것이고,

 

나아가 '주최자 없는 행사'는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

 

며 한 발 빼던 정부와 지자체 인사들이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돌연 태도를 전환한 시점은, 112 신고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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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사링크

 

사고가 발생하기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왔으나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는 112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모든 책임의 화살이 경찰로 쏟아졌다. 대체 뭐 했냐고, 시민이 위험에 처해있다는데 어디서 뭘 한 거냐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시민의 부름에 불성실한 존재인가? 한 번이라도 112에 신고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모두 기록한다. 후에 민원과 신고가 어떻게 조치됐는지 결과를 신고자에게 통보까지 한다. 들어온 신고를 일선 경찰관들이 자의적으로 절대 묵살할 수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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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신고 접수가 된 지 4시간 동안 출동 조치가 취해지지 못한 이유는 뭘까. 단순하다. 출동할 인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경찰관들은 한 번의 신고로 출동하면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이상 신고 현장에서 사고 처리를 한다. 그러니까 술 마시고 난동 부리는 아저씨가 있다는 신고만 받아도 2명의 경찰관이 최소 30분 이상 술 마신 아저씨와 실랑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로윈 당일 이태원엔 10만 명이 훌쩍 넘는 인파가 모였다. 이태원 일대를 관할하는 이태원 파출소엔 20명의 직원이 있었고, 11시부터 투입된 휴무/비번까지 포함하면 총원 32명이 일대 치안을 맡았다. 당일, 참사 시간대에 신고 건수는 230건이 넘었다. 230건은 홍대 앞 지구대 주말 전체 신고 건수와 맞먹는 수치다. 인파에 순찰차는 움직이지 못했다. 도보로 모든 출동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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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경찰서 이태원 파출소

 

이태원 파출소는 대한민국에서 이태원의 할로윈 데이가 얼마나 특수한 날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태원 파출소장은 지원 병력도 요청했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은 묵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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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사링크

 

일선 파출소의 요청 외에도, 이태원 일대에 경찰 기동 병력을 배치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하나 더 마련되어 있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자치 경찰제도에 따르면, 매년 10만 명 이상 운집해 혼란이 예상되는 행사에 관하여, 안전 관리를 위한 경찰 기동 병력을 요청할 권한과 책임이 지자체장인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에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았다.

 

전조 : 이상한 간담회

 

과연, 이 묵살이 경찰 조직의 단순한 나태와 태만으로 볼 수 있는가.

 

경찰의 치안 서비스가 특정 시점, 특정 공간만 먹통이 될 수 있는가.

 

언제나 어디서나 안전을 위한 펜스를 치던 경찰 기동대는, 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동에만 출동하지 못했는가.

 

실마리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1월 3일 TBS 뉴스공장에 출연한 손병호 변호사는, 10월 26일 용산구청이 주관하는 할로윈 기간 경비안전대책 간담회에 용산경찰서의 경비과장과 교통과장이 참석했다는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경찰로부터 교통 통제와 혼잡 경비인력을 지원받아야 할 구청에서 담당 책임자들을 간담회에 부르지 않은 것이다. 즉, 처음부터 이 간담회의 주안은 안전의 통제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위한 간담회였나. 다시 간담회의 참석 명단을 주목해 보자.

 

용산경찰서 형사과장

용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물론, 마약 수사를 하는 형사과와 성범죄를 다루는 여성청소년과가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대책 마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문제는, 대책 마련에 참석한 과장이 이 둘뿐이라는 거다. 경비과장과 교통과장이 빠진 간담회의 주안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간담회는 할로윈데이에 성실하게 반영되었다. 참사 당일, 서울 용산경찰서는 이태원에 총 137명을 배치했다. 약 40%는 형사 부서 소속 경찰이었다.

 

3일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성만 의원실에 따르면, 용산서는 지난달 29일 이태원에 교통기동대 20명, 교통과 6명, 생활안전과 9명, 112상황실 4명, 외사과 2명, 형사과 50명, 여성청소년과 4명, 이태원 파출소 32명, 관광 경찰대 10명 등 총 137명을 투입했다.

 

마약사범 등 기타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과 인력이 교통 통제인력의 2배 넘게 배치되었다. 거리에 쏟아지는 10만 인파를 통행 관리와 혼잡 경비를 할 '치안의 대상'으로 본 게 아니라 잠정적 범죄자들이 섞인 '단속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고, 출동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검사들의 꽃놀이패

 

다시 시간을 한 달 전쯤으로 돌려보자. 이야기는 마약을 투약한 한 유명인의 체포 뉴스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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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사링크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라는 어젠다가 세팅되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마약 문제를 환기 시키는 듯한 여론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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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사링크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선포되는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은, 다른 어떤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 없는 선과 악이 분명한 일이다. 단속하고 수사하는 측이 무조건 선이 된다. 단 한 명의 마약사범을 체포해도 승리하는 전쟁이고, 아무 실적이 없다 해도 선제 조치로 거리에 마약이 사라졌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꽃놀이패다. 그리고, 검사들의 전공 분야다.

 

이 전쟁의 공과 스포트라이트는 고스란히 검사 출신 대통령 윤석열과 법무부장관 한동훈이 받게 되어있었다. 단속은 경찰이 하겠지만, 정책 방향을 그쪽으로 설정한 윤석열과 한동훈이 마약 사범과 싸운 정의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어 있는 구조다. 잃을 게 없는 싸움, 정치적 자산을 쌓을 수 있는 아이템. 마스크를 벗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이태원은 이 기획의 최적지였다.

 

사고 당일 오후 10시, 용산경찰서는 기자단에 마약 단속 나가겠다는 단체 문자를 보냈다. 기동대 배치 요청은 묵살하면서 마약 단속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홍보까지 했다. 단속 경찰들에게는 사복을 입게 했다. 경찰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이태원 가까이에 올수록 주머니 속의 마약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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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입기자단 공지 캡처

 

일은 꼬였다.

 

마약 단속은 실패했고, 생때같은 젊은 청춘 156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배운 게 도둑질

 

국회 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부터, 지역구 달동네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욕망의 파도와 생존의 간절함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은 가끔 기이한 모양으로 보일 때도 있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사는 별의별 공간이 있다.

 

그중 내가 경험한 가장 기이한 공간과 사람들은 검찰과 검사들이다. 아직 큰 사고를 친 적이 없어 서초동 취조실에 앉아본 적 없지만, 거기 출신 사람들, 국회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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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기간 중에 드러난 대통령의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행태에는 그의 국정운영에 관한 많은 힌트가 숨어 있었다. 무소불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쥐고 있는 검사적 세계관 안에서 청년 시절부터 사회화 과정을 거쳐온 그들이다. 그들에겐 세상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기준이 매우 특별하다. 거기에 무례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은 검찰청 밖에서나 통용되는 상식인 거다. 그들에게 타인은 두 종류다. 벌할 자와 봐줄 자.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지난 외교 참사 그리고 이번 이태원 참사까지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의 문제 해결 방식을 되짚어 보자.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동맹국의 국가 원수를 모욕해놓고, 논란이 커지자 사태의 진상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본인이 본인 입으로 말한 사건의 진상 파악을 지시한다.

 

언제나 갑과 선의 입장에만 서 있었던 검사의 관성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분노의 여론이 들끓자 전방위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야당 당사 압수수색이라는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살다 살다 경찰서도 압수수색 당하는 그림을 보게 됐다.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서울시소방재난본부와 서울종합방재센터,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심지어는 이태원역, 다산콜센터까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털었다. 

 

사태의 심각성도 사태를 수습할 방법도 모르는 검사들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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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사링크

 

지하철역을 압수수색한 건 두고두고 회자될 촌극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한번 대통령의 격노에 대해 생각한다. 대통령은 왜 화가 났을까에 대하여.

 

서초동에서는 쉽게 되던 일이 용산에서는 뜻대로 잘되지 않아서였을까. 일은 자꾸 꼬여만 가는데, 할 줄 아는 기술이 변변치 않아서였을까. 검사적 세계관이 대통령실에서 자꾸 충돌하는 데에 대한 짜증이었을까.

 

그게 뭐든, 대통령이 빨리 깨닫지 못하면 지금 이 비극은 어쩌면 서막일 수도 있다.

 

격노를 받아야 할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