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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1) 지난 편과 마찬가지로 세종대왕께는 계속 존대를 사용한다.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필자의 마음이 만드는 글 길이라 그대로 두기로 했다.

 

2) 필요한 근거나 설명인데 본문에 싣자니 글이 길어지고 맥도 끊겨 각주를 달았다. 각주는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마음은 읽어 주길 바라지만..).

 

 

지난 글에서 세종대왕께서 과학자 또는 연구자로서 현대 과학자들도 부러워할 자질과 환경을 겸비하셨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는 왜 세종대왕께서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난 과학 천재인지를 설명할 차례다.

 

이를 설명하려면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새로운 음성학 이론과 훈민정음을 현대 음성학의 입장에서 다루어야 한다. 훈민정음을 음성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글이 한자와 음성학 전문 용어들로 도배 될 터이다. 그런 글은 전문학술지에나 어울릴 일이다.

 

재미·양식·감동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도 실릴까 말까 한, 쓸데없이 높은 딴지일보의 기준에 맞추는 게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한자들과 음성학 전문용어를 가급적 한글과 일반 용어도 바꿔 쓰며, 쓰고 지우기를 거듭하는데 너무 힘들다. 쓰고 지우는 왕복 달리기가 마라톤 수준이 되어 숨이 넘어갈 지경인데 요즘 글쓰기의 연료가 되는, 화를 돋우는 일이 자꾸 벌어진다.

 

틀린 글자까지 모조리 베낀 박사학위 논문이 문제없다고 우기는 것도 같잖은데(Yuji), 국사 시험은 늘 빵점 맞았을 것 같은 정치인 하나가 되레 역사 공부하라고 호통치는 바람에(정진석) 사그라지던 불꽃이 다시 타올랐다. 21세기 첨단 과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세종대왕 음성학과 훈민정음의 참모습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독자들이 판단할 터이다), 이 모지리들 때문에 일단 달려 보기로 했다.

 

1. '훈민정음 모방설'이 개소리인 이유 

 

정치인이 정치 기술만 있고 정직함이 없으면 정치가 아닌 협잡을 하게 된다. 학자도 마찬가지다. 얕은 기술만 연마하고 정직함을 갖추지 못하면 학문도 협잡이 된다. 틀린 것은 틀렸고 부족한 것은 부족하다 인정하고 반성하며,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지 않으면 학자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이런 기준에서 훈민정음 모방설은 협잡이고 사기다.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만들 때, 매번 수학의 공리, 변수, 연산 기호를 설명하거나 새로 만들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쓰는 개념과 기호로 자신의 새로운 생각과 이론을 전개한 결과, 새로운 상수가 만들어지거나 여러 연산 과정이 축약된 새로운 연산자 기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양자역학에서 자주 쓰이는 플랑크 상수 ‘ℏ’가 좋은 예다. 막스 플랑크가 이 값을 얻는 과정은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라면 아무 의심 없이 가져다 쓰는 변수, 상수, 연산자 기호들과 씨름한 결과다. 이렇게 막스 플랑크가 기존의 수학 공리, 기호, 연산자 등을 썼다고 그가 누구를 모방했다거나 뉴턴 같은 선대 과학자에게 그 이론의 기원이 있다고 하진 않는다.

 

훈민정음은 사람 말소리의 초성(자음)을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즉, 어금닛소리(牙), 혓소리(舌), 입술소리(脣), 이빨소리(齒), 목구멍소리(喉) 5음을 기본 삼아 분류한다. 훈민정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발간된 한자 음운서들도 기본적으로 이 5음 분류를 따른다. 이 5음 체계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에서 유래했다.

 

당나라 때 수온이라는 승려가 고대 산스크리트 문자로 쓰인 불경을 원음대로 읽으려고 하니 범자의 소리를 중국 한자로 음차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불교는 산스크리트어 원음대로 독경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된 한자음 5음 분류는 이후 중국 음운서의 기본 골격이 된다. 나중에는 5음에 반혓소리(반설음)와 반이빨소리(반치음) 두 가지 음을 더해 칠음 구조로 한자의 소리를 분류했다.1) 세종대왕께서도 이 칠음 구조로 초성(자음)을 분류하셨다. 세종대왕께서 5음(혹은 칠음) 분류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은 당시에는 5음 구조가 음성학의 공리(公理, 자명한 이치)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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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음 분류

출처-<한글학자 김슬옹 님 자료>

 

유라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 다섯 가지 발성 부위를 중심으로 말소리를 만든다. 그래야 말소리를 잘 구분해서 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우리 청각도 다섯 가지 발성 부위에서 나는 말소리를 좀 더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2) 현대 음성학의 음성 분석도 이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첨단 관측기구로 무장하고 더욱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으로 발성 부위와 기관의 운동을 세분화하지만, 5음 구조를 버리면 현대 음성학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세종대왕께서도 굳이 5음 체계를 손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일종의 공리로 받아들여 그대로 쓰셨다. 그런데도 훈민정음이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 글자의 다섯 소리 분류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완전히 독창적이지도 않고 어딘가 기원이 있는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은 ‘공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열심히 미분방정식을 푸는 수학자와 다르지 않다. 공부하면서도 몰랐다면 안타깝고, 다른 뜻이 있어 알면서도 그런다면 괘씸하다. 정말 저질 중의 저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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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이자 현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김슬옹 박사

출처-<KBS 한국의유산>

 

2. 세종대왕의 음성학은 과학계로 치면 상대성 이론이다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주류가 된 양자역학과 빅뱅 이론은 모두 아인슈타인에게서 시작되었다. 그가 없었다면 손에서 시끄럽게 울어 대는 휴대전화나 지 혼자 움직이는 전기 자동차는 여전히 상상 속의 물건이었을 것이다.

 

물리학계를 천지개벽한 상대성 이론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한 발상에서 시작했다. 아인슈타인 이전까지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은 별개의 독립적인 것들이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크기를 갖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생각에 ‘정말?’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3)

 

- 광속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 시간과 공간은 한 몸이다

-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시간은 늘고 공간은 준다

 

이 세 줄로 1905년에 발표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은 모두 설명된다. 아인슈타인은 기존 생각을 뒤집은, 이 간단하고 명료한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좀… 많이 복잡한 수학 이론으로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뉴턴의 우주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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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세종대왕의 새 음성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간단하고 명료한 생각 뒤집기에서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서 시작된 양자역학으로 도약하는 것에 실패했지만 세종대왕께서는 서구에서 19세기 말에나 시작된 현대 음성학의 수준을 15세기에 훌쩍 뛰어넘으셨다는 점이다.

 

3. 소리가 먼저, 문자가 나중이라는 혁신 

 

세종대왕 대뿐만 아니라 19세기까지도 동아시아 사람들은 한자는 고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창힐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후한 시대, 서기 100년경에 허신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는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 권위의 한자 교과서다. 문자깨나 읊고 쓰는 식자라면 누구나 곁에 두는 책이었다. 당연히 세종대왕이나 당대 지식인들도 이 책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런 설문해자에서 허신이 한자는 창힐이 만들었고, 창힐이 한자를 만들 때 기호에 소리를 더해 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 때, 종류에 따라 기호를 만들었는데, 이 기호를 문(文)이라고 했다. 기호를 만든 다음 소리를 더해 글자(字)를 만들었다."

 

그런데 세종대왕께서는 창힐이 만든 기호와 소리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기호와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인 소리가 아니라 가리키고 싶은 대상의 본성(혹은 의미)이 담긴 '고유한 소리'와 '고유한 모양'을 취했고 순서도 소리가 먼저라고 생각하셨다.

 

"세상에는 고유한 소리가 있고 그런 즉 당연히 고유한 모양도 있다. 옛사람이 만물의 본성을 관통하며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세가 글자를 쉽게 바꾸지 못했다."

- 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필자 역)5)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유한 소리, 고유한 모양 그리고 순서다. 세종대왕께서는 고유한 소리에 고유한 모양이 더해져 문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셨다. 고유한 소리에 맞는 고유한 모양을 찾으셨던 것이고 완벽에 가까운 소리글자 훈민정음을 만드시게 된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면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로마자(알파벳)를 우리 말 표기 글자로 채택해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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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70호 훈민정음해례본

출처-<KBS 한국의유산>

 

현대인들에겐 말소리가 먼저이고 글자가 나중이라는 순서는 상식에 속하지만 이 순서는 서구에서도 19세기 들어서야 가능했던 생각이다. 제국주의자들이 문명 발상지라 일컫는 식민 지역들을 헤집으며 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고대 유물들을 약탈하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20세기 첨단기기를 이용한 정교한 연대 측정과 과학적 탐사가 가능해진 뒤에나 확고해진 생각이다.6)

 

세종대왕께서 600여 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생각의 전환이다. 아인슈타인이 유일하게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생각했던 것처럼 세종대왕 말고는 소리와 문자의 순서에 의심을 하고 탐구한 사람은 없었다. 세종대왕이 처음이셨다. 더구나 세종대왕께서는 터무니없이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사람의 말소리를 다루셨다는 측면에서7) 광속 하나에만 집중하면 되었던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과학적 성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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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한국의유산>

 

4. 첫 번째 도약: 고유한 소리에 고유한 기호를

 

"세상에는 고유한 소리가 있고 그런 즉 당연히 고유한 모양도 있다. 옛사람이 만물의 본성을 관통하며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세가 글자를 쉽게 바꾸지 못했다."

- 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필자 역)5)

 

위의 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의 인용구가 세종대왕의 새로운 음성학을 위한 기본 명제다. 옛사람이 만물의 본성을 관통하며 고유한 소리에 고유한 기호를 더했다는 이 명제는 동물을 본떠 그린 한자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코끼리, 소, 양 같은 동물들이 내는 울음소리로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단어에 그 동물만의 독특한 모양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을 붙여서 ‘코끼리 상(象)’, 소 우(牛), 양 양(羊)’과 같은 글자를 만들었다. 보통 상형자라고 하는 한자다. 이런 글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코끼리, 소, 양의 고유한 소리와 고유한 모양이 떠 오른다(지금 사용하는 한자들은 매우 추상화되어 사실 글자를 보고 단박에 코끼리, 양, 소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갑골문이나 소전과 같은 옛 한자들을 보면 금세 코끼리, 양, 소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이런 생각은 아래처럼 보기 좋게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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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유한 소리에 고유한 그림을 붙이는 이 순서는 한자만의 순서가 아니었다. 현대 고고학이나 언어학이 추정하는 인류 문자의 역사는 최초 상형 문자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유럽·중동·인도에서 사용하는 문자의 조상은 페니키아 문자로 여겨진다. 이 문자 계열은 원래 사물의 모양이 가진 특징을 구체적으로 본떠 그렸던, 조금 복잡한 상형문자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것이다. 상형 문자로 시작했던 이 문자는 한자와는 달리 그림이 갖는 의미는 버리고 소리만 남겨 소리글자가 되었다.

 

예를 들어 알파벳의 첫 글자 ‘A’는 소를 그린 페니키아 문자의 첫 글자 ‘𐤀(Aleph, 알레프)’가 변한 것이다. 페니키아어로 ‘알레프’는 소를 의미한다. 음의 첫소리 ‘알’이 후에 ‘아’, ‘어’, ‘에이’ 발음으로 남았다. 왜 소를 ‘알레프’로 지칭했는지 정확한 연원은 알기 어렵지만 아마도 페니키아 사람들이 흉내 낸 소의 울음소리이거나 소를 길들이고 몰 때 냈던 소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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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 알파벳 첫 글자 알레프(오른쪽)

 

세종대왕께서 가지셨던 문자 조성의 순서 혹은 원리는 이렇게 현대 과학이 추정하는 인류의 보편적 문자 역사의 변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종대왕께서는 역사상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을 하시고 이론화하신 셈이다.

 

따라서 발음기관을 본떠 글자를 만드는 것은8) 고유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기호를 찾기에 집중하셨던 세종대왕께서 가셔야 했던 당연한 길로 보인다. 이 원리에 따라 훈민정음 창제의 기본 구상을 위에서 소개한 그림에 대입하면 아래처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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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소리를 만드는 소리에 집중해서, 특정한 소리를 내는 발성 기관의 구조와 작동을 기호화하고 이를 글자로 만드신 데에는 이런 이론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새벽녘 햇살에 문창살을 보다 얻어걸렸다거나 남의 글자를 본떠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소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 학자들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이제 왜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본에 자방고전(字倣古篆)이란 문장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된다. '倣(본뜰 방)'이 들어간 이 문장은 옛 글자의 모양을 베꼈기 때문에 쓴 게 아니라, 세종대왕께서 깨달으신 문자 조성 원리에 따라 훈민정음을 만드셨다는 뜻에서 쓴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자방고전(字倣古篆)의 방()을 국사편찬위원회와는 달리 ‘모방했다’로 번역하지 않고 ‘본받았다’고 번역한다.9) (자방고전 문구가 담긴 세종실록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1편을 참고하길 바란다)

 

5. 불가능에 가까운 노력, 소리 분석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만들고 이를 우주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으로 확장하고자 일반상대성 이론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결과는 대성공.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우주라는 거시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물리학 이론이 되었고 이론의 정합성도 수많은 관찰을 통해 확인되었다.

 

거시적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처럼 세종대왕께서도 새 음성학과 훈민정음을 조선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룰 수 있는 보편적인 이론과 글자로 만드는 데 성공하셨다.10) 소리에 대한 보편적 이론과 체계로서 그 막강한 성능을 훈민정음해례본은 대놓고 자랑한다.

 

"어떻게든 쓰면 갖출 수 있고, 어디를 가든 통할 수 있으니 바람 부는 소리, 학이 우는 소리, 닭이 우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를 모두 취해 쓸 수 있다."

- 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필자 역)11)

 

이런 자신감은 세종대왕께서 오랫동안 사람의 발성과정을 실증적으로 관찰하며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 발음기관을 본떠 그린 발상이 놀랍다. 더구나 이런 성과는 발성의 전 과정에 대한 발성학적, 해부학적 세밀한 관찰과 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종대왕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람의 인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X-ray, 내시경 카메라, 자기공명장치, 음향 분석기 같은 기계들도 없었으니 오로지 사람의 오감에만 의존해 소리를 분석해야 했다. 말소리는 남의 말소리를 듣고 관찰하고, 발성기관의 구조와 움직임은 관찰자 자신의 느낌과 타인의 느낌을 기록하고 비교하며 분석해야 했다. 사료가 없어 세종대왕께서 얼마 동안 훈민정음을 창제하고자 연구를 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공들이신 시간과 노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조건과 환경으로 세종대왕이 만든 새 음성학 이론은 현대 음성학도 미처 따라가지 못한 수준이다. 그 수준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자음과 모음의 완벽한 분리다. 자음과 모음의 완벽한 분리로 훈민정음은 기존에 있었던 문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음석학의 양자역학과도 같은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의 분리에 관한 이야기는 4편에 자세히 할 예정이다). 

 

<4편에 계속>

 

덧붙임

 

많은 사람이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훈민정음해례본을 음성학 교과서가 아니라 주역이나 종교 경전 다루듯 하는 게 늘 못마땅했다. 정권이 바뀌기 전,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제적인 영향력이 커가는 것을 실감하며 훈민정음으로 우리가 음성학의 종주국을 천명할 수도 있고, 한글을 현대 음성학의 보편적인 도구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었다. 그래서 현대 음성학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첨단 이론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부각하고 싶어 철인 삼종 경기하듯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 현대 물리학을 끌어대는 무리수를 두며 실타래 끝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었다.

 

세월호가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때도 희생자들은 내 아들 또래의 젊은이들이었고 이번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희생자들도 내 아들 또래의 젊은이들이다. 세월호 참사의 깊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는데 그 상처가 더 크고 깊게 벌어졌다.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심리상태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어떤 위로와 애도를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1) 여기에 반혓소리(반설음)와 반이빨소리(반치음)를 더해 모두 칠음으로 훈민정음은 초성을 분류한다. 칠음 분류는 중국의 운서에서 시작되었다. 송나라 시대 정초라는 학자가 쓴 ‘통지’라는 책의 ‘칠음략’에서 처음으로 반설음과 반치음을 더해 음의 분류를 좀 더 세분하였고 세종대왕께서도 이 칠음 체계를 그대로 사용하셨다. 그래도 기본은 인도 범자의 5음 분류에 있다.

 

2) 현대 유전학 기술은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을 아프리카로 특정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6 ~ 12만 년 전 아프리카를 나와 호모 사피엔스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거쳐 한 무리는 유럽으로, 다른 무리는 인도를 거쳐 다시 두 무리로 나뉘어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극히 작은 무리를 이루고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들의 언어는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만큼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변화했으리라 추정한다. 소규모 집단이 다양한 경로로 이동하고 고립되어 단어, 어순, 어법과 같은 언어 구조는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유라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비슷하게 발성한 소리를 조합해서 말소리를 만든다. 이렇게 비슷한 소리를 발성하게 된 것은 폭스피2(FOXP2)라는 유전자의 변이 때문이다. 올해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 박사가 참여했던 2002년 연구를 통해 이 유전자는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는데 필수적인 입과 얼굴의 미세한 운동에 깊이 관여된 유전자로 알려졌다. 침팬지와 분화되면서 인류가 폭스피2 유전자 변이를 갖게 되고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이 변이 유전자는 지금의 형태로 고정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Wolfgang Enard et. al. Molecular Evolution of FOXP2, a Gene Involved in Speech and Language, 2002, nature). 반면 최근의 연구는 사람을 제외한 영장류들도 해부학적으로 인간은 같은 구조의 발성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관찰되었다(W. Tecumseh Fitch et. al., Monkey vocal tracts are speech-ready, 2016, The Science Advances.). 결국 인간의 언어는 발성기관보다는 뇌의 진화에 더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주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소리, 예를 들어 혀를 차거나 숨을 들이마시며 내는 소리 따위들이 아니라면 인간의 발성은 같은 구조의 발성기관과 입 안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혀와 입술의 제한된 움직임을 통해 소리를 내게 되므로 음절 단위나 음소 단위의 소리는 거의 비슷한 소리를 내게 된다.

 

3) 아인슈타인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과학자들이 빛의 속도를 재다 광속은 어떻게 측정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난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을 걸어 실험해도 광속은 초속 300,000km로 측정되었다. 쉽게 설명하면 페라리를 타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내가 재도, 팔자 좋게 휴양지 시원한 그늘막 밑에 늘어져 맥주를 마시는 친구가 재도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시속 200km로 달리고 있으면 광속은 적어도 초속 83m만큼 느려져야 하는데 빛은 아랑곳없이 초속 300,000km로 달린다. 이게 무슨 거지 같은 경우인가 모두가 끙끙대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이 불현듯 나타나 해결책을 내밀었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속도에 따라 늘고 주는 상대적이어서 빛은 언제나 자신의 속도를 초속 300,000km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1905년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이다.

 

4) 倉頡之初作書,蓋依類象形,故謂之文。其後形聲相益,即謂之字

 

5)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 여기서 자연(自然)은 ‘고유한’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숲이 우거진 자연이 아니다. 그리고 훈민정음해례본은 당연히 완성되고 난 다음 세종대왕의 확인을 거쳤을 것이므로 이 문장은 정인지의 생각이자 동시에 세종대왕의 생각으로 해석해야 한다.

 

6) 현대 언어학자들은 문자의 발전단계를 음절 문자에서 음소문자로, 음소문자에서 자질문자로 발전한 것으로 본다. 음절 문자는 한자를 생각하면 된다. 글자 하나에 한 음절 혹은 두 음절을 배정하여 읽는 문자를 말한다. 음소는 영어의 알파벳처럼 자음과 모음이 분화된 문자, 자질 문자는 한글처럼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법칙으로 표기되어 있어 사용자들이 기호만 보고도 소리를 짐작할 수 있는 문자를 말한다. 

 

7) 음성학이 다루는 사람의 말소리는 선형적 대상이 아니라 확률 통계적 대상이다. 사람마다 신체조건이 다르고 호흡 습관이 달라 말소리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더구나 관찰이 전혀 쉽지 않다. 현대 음성학이 첨단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소리나 발성 기관 운동을 정량적으로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산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해부학적 접근이나 뇌신경학적 접근은 더더욱 쉽지 않다. 따라서 음성학 연구는 대부분 수많은 사람의 말소리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통계적으로 유사한 소리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 연구의 기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세종대왕의 새로운 음성학은 인류가 20세기에나 시작한 현대과학의 확률 통계적 연구모델을 600년 앞서 사용하셨던 셈이다.

 

8) 이와 비슷한 시도가 4세기 후인 19세기 말에 있었다. 전화 발명가로 유명한 벨의 아버지 알렉산더 벨(Alexander Bell)이 귀를 듣지 못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해서 만든 기호인, ‘보이는 말하기(Visible speech)’라는 발음 기호체계가 있었다. 이 기호체계는 벨만 사용한 기호체계라 600년 동안 일상의 문자로 쓰인 한글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발상을 했다는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9)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고, 소리로 인하여 음은 칠조에 합하여,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 국사편찬위원회 역)

 

10) 훈민정음 창제는 후에 완성되는 ‘동국정운’과 한 쌍을 이루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들은 단지 조선의 말과 조선의 한자음을 통일하려는 목적으로만 추진된 사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정운은 1447년에 완성되었는데, 동국정운의 목적은 조선 한자음의 교정과 함께 중국 운서들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께서는 중국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동아시아 문화의 원형으로서 요순시대를 일컫는 화(華)와 다른 하나는 당대 중국에서 패권을 차지한 왕조로서 정치적 실체로서 중국, 당시는 명(明)나라다. 세종대왕께서는 자신의 조선이 요순의 문화 정수를 잇는 적장자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세종실록에 표현된 세종대왕의 발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읽힌다. 명나라 인종황제와 황제후에게 존시와 존호를 올릴 때 조선을 벽(辟; 제후국)로 칭한 것이나(세종실록 29권, 세종7년 윤7월 28일 기사) 간의대를 만들 때 조선이 비록 멀리 바다 밖에 있지만 요순의 제도를 모두 이어받아 시행했다는(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5월 15일 기사) 표현들을 통해 세종대왕의 이런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조선 중기 이후 유림 사이에서 소중화 사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동국정운은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 때의 고유한 음운을 찾으려는 것이 사업의 주된 목적으로 보인다. 만약 당시 통용되던 조선을 한자음을 정리하려는 목적에 국한되었다면 완성된 지 30년도 못 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 나온 조선의 운서들이나 중국 운서들과 동국정운의 음운 분류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세종대왕께서 말소리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인 훈민정음을 토대로 한자음을 분석하고 분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1) 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