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의 왕관을 받고 형의 약혼녀와 결혼하다
조지 5세는 왕위에 오를 인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앨버트 왕자다. 왕위 계승권자였던 앨버트는 살아있는 동안 ‘스캔들’을 몇 번 일으킨 것 빼고는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던 왕자였다. 그의 죽음이 독감이 아니라 매독 혹은 독살이란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왕위계승권자의 급작스러운 사망에 따른 ‘부작용’일 뿐이었다.
앨버트가 죽자 얼떨결에 왕위 계승권자가 됐던 게 바로 조지 5세다. 당시 조지 5세는,
"왕은 형이 할 거니까 난 군대나 가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어린 시절부터 사관학교 생활을 했는데 형이 죽고 갑자기 인생 행로가 틀어진다. 형에게 가야 할 왕관을 넘겨받고, 동시에 형이랑 결혼할 여자(형수가 될 뻔한)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앨버트 왕자의 약혼녀였던 메리와 결혼을 하게 된 거다(막장 드라마다!).
어쨌든 조지 5세는 형의 왕관과 형의 여자를 동시에 얻게(?) 됐고, 아버지 에드워드 7세가 죽자 영국의 왕으로 즉위한다. 이때가 1910년 5월 6일이다. 그리고 얼마 뒤인 1911년 킹 조지 5세(King George V)란 이름의 전함이 취역한다.
형수.. 아니 부인 메리와 킹 조지 5세
1년도 안 돼서 2만 5천 톤급의 전함을 뚝딱 만들 리는 없다. 이전부터 만들고 있었던 배다. 당시 영국 해군은 오라이언급 전함(슈퍼 드레드노트급이란 ‘이름’을 만든 전함으로 주포를 일렬로 배치해 일제 사격이 가능하게 했다는 게 특징이다)의 후계함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게 로열 조지급이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로열 조지급 4척을 건조하기로 했는데, 이때 덜컥 조지 5세가 즉위하게 된 거다. 영국해군의 전함 명명 관례를 보면, 갓 즉위한 왕의 이름을 새로 건조한 전함 이름으로 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로열 조지급은 얼떨결에 킹 조지 5세급이 됐다.
이 킹 조지 5세급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돼 전쟁을 맞이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다.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활약한 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고, 킹 조지 5세급은 뭐랄까...‘머릿수’를 채워주는 역할 정도라고 해야 할까? 어찌어찌 1차 대전을 넘긴 다음에 한숨을 돌리는 듯했는데, 또 다른 전쟁이 킹 조지 5세급 전함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Washington Naval Treaty)"
이다. 전 세계 해군 열강들이 모여, 전함 숫자를 줄이겠다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거다. 이때 목록에 오른 전함이 바로 킹 조지 5세급이었다.
"1차 대전 때 써보니 애가 좀 애매해."
"퀸 엘리자베스급 정도면 쓸만한데, 이건 좀 애매해."
"글치? 발도 느리고..."
"장갑도 독일 전함에 비해서 우위에 있다고 보기도 그렇고..."
"이거 해체할까?"
"해체하자!"
킹 조지 5세급은 이렇게 해서 4척 모두 해체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다. 그동안 킹 조지 5세는 온갖 못 볼 꼴을 다 보게 된다. 고종사촌(독일·빌헬름 2세)과 이종사촌(러시아·니콜라이 2세)이 왕좌에서 쫓겨나는 걸 봐야 했고, 유럽의 수많은 왕가가 위기에 몰린 것도 봐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1차세계대전은 군주제의 몰락을 선포한 전쟁이었다).
전쟁이 끝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이젠 대공황이 터지는 통에 영국이 휘청였다. 이 와중에 히틀러가 집권했다. 전 세계가 다시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다.
2. 말썽꾼 장남
밖이 시끄러우면 안이라도 잠잠해야 하는데(아내 메리와 관계는 좋았다. 형수님이 될 뻔한 아내...), 자식들이 문제였다. 장남인 에드워드 8세는 너무도 유명하다. 국내에선 잘못된 광고 때문에, 세기의 로맨스라고 알려졌는데... 사실 그냥 ‘쓰레기’였다. 친나치 성향에 인종차별 등은 긴 이야기 될 터이니, 일단 여기선 넘어가자. 중요한 건,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국왕의 책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조금 전 저는 왕위를 포기했습니다."
1936년 12월 11일 라디오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 에드워드 8세의 연설이었다(윈스턴 처칠이 작성한 걸로 알려져 있다). 당시 에드워드 8세가 사랑한 여인은 평민이며, 미국인이었으며, 2번이나 이혼한... 데다가 나치를 추종하고, 스파이 혐의가 있던 심프슨 부인이었다. 심프슨 부인의 이혼을 위해 영국 첩보부가 미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다.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
(사족. 에드워드 8세는 행적과는 별개로 당대 패셔니스타였다)
에드워드 8세는 불과 11개월 만에 스스로 왕위에서 내려왔다. 이걸 보면서 왕위를 가볍게 버린 거 같은데, 절대 아니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위도 지키며, 심프슨과 결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볼드윈에게 ‘귀천 상혼(貴賤相婚, morganatic marriage)’을 제안하기도 했다. 귀천 상혼이란 가문의 격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결혼을 말하는데, 귀족과 평민의 결혼 같은 걸 뜻한다. 이때 둘 사이의 자식은 부모 중 격이 높은 쪽의 작위와 특권을 상속받지 못한다. 즉, 왕위 계승권도 사라진다는 의미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왕실이 변방의 후작, 백작 정도 귀족과 결혼을 해도 귀청 상혼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2번이나 이혼한 미국 평민 여자와 결혼한다니, 영국이 뒤집어 질만한 일이었다.
에드워드 8세가 자신의 왕위를 걸고 사랑을 불태우는 동안 상대였던 심프슨 부인은... 1936~1937년 사이에 북부 잉글랜드 출신의 자동차 세일즈맨과 바람이 났다. 둘은 꽤 심각한 관계였고, 심프슨 부인이 많은 선물과 돈을 건넨 걸로 알려져 있다. 세기의 로맨스라고 해서 둘 사이가 뜨거운 것처럼 나오지만, 실상 에드워드 8세가 더 뜨거웠던 걸로 보인다. 어쨌든 에드워드 8세의 사랑은 영국이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대사건이었다.
좌우간 에드워드 8세는 재위 11개월 만에 결국 왕위에서 내려왔다. 1937년 프랑스 로이어밸리의 한 성에서 불과 16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심프슨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하객 16명 중 5명이 기자였다).
1937년 프랑스에서 결혼식 직후 찍은 사진
영국 왕가에서는 결혼식에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3. 왕이 되기 싫었던 차남
에드워드 8세의 동생인 조지 6세는 모든 면에서 형보다 훨씬 나았다. 말을 더듬는 걸 빼곤 말이다. 그러나 이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건 완벽했다. 부부생활은 이상적이었으며, 내성적이지만 사려 깊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지 6세는 왕위에 오르지 않겠다며 울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떨어진 의무를 인정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그의 부인은 영화나, 드라마에 표현된 것처럼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남편이 일찍 죽었다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조지 6세는 왕관의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었다. 이 때문에 결국 폐암에 걸려서 1952년 56세에 죽게 된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모델, 조지 6세
장황하게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의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온 건 소위 ‘세 왕의 해(Year of the Three Kings)’라 불리는 1936년 때문에 벌어진 ‘전함의 이름’에 관한 논쟁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1936년을 세 왕의 해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왕인 조지 5세가 이 해에 죽었고(1936년 1월 20일), 아버지의 자리를 장남인 에드워드 8세가 넘겨받아서 11개월간 왕위에 올랐다(1936년 1월 20일~1936년 12월 11일).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에게 떠난 뒤 남겨진 왕위를 동생인 조지 6세가 떠맡은 게 1936년 12월이었다.
자, 문제는 이 1936년이 영국 해군에게는 중차대한 시기였다는 거다(지난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제2차 런던 해군 군축 조약(Second London Naval Treaty)을 체결한 상황에서, 영국 해군은 다가올 전쟁을 대비해 신규 전함을 만들어야 했다. 영국을 제외한 열강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새로운 전함들을 속속 찍어내는 상황에서 영국도 이에 대응해야 했다.
"킹 에드워드 8세급"
이라고 명명돼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방향을 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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