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탈리아를 보는 영국의 시선
이탈리아 총리 ‘조르지아 멜로니’
지난 10월 22일, 이탈리아에 새 총리가 취임했다. 그 총리가 나름 화제다. G7에 포함되는 국가이니만큼 이탈리아의 새 정치지도자에 대해 다른 국가보다 더 관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가 더 있다.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이며 극우로 분류되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영국에 살고 있다. 영국은 이탈리아에 대해 큰 관심 없다. 영국은 다른 데 큰 신경을 쓸 상태도 아니다. 국가 파산이네 뭐네 하며 44일 만에 총리가 교체됐고, 인도계 총리가 새롭게 수상 자리에 올랐다. 최초의 비백인 총리라며 한바탕 이슈 몰이를 했지만, 난민 관련 문제가 이슈가 되며 시끄럽다.
이런 마당이니 누가 이탈리아 총리가 됐는지 큰 관심 없다. 실제 BBC와 같은 공영방송에서조차 뉴스로 다뤄지는 비중이 별로 없다.
게다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게 유럽은 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이 되었다. 현재 이탈리아에 대한 시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도가 대부분이다.
①알프스와 지중해를 지닌, 휴가를 즐기기 좋은 나라라는 좋은(?) 이미지
②유럽의 코로나 발원지라는 나쁜 이미지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이탈리아는 많은 미움을 샀다)
영국의 국제 전문가들이 예측한 이탈리아 전망
(영국은 관심이 크지 않을지라도) EU는 당연하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새로 취임한 이탈리아 총리에 다른 때보다 관심이 더 있는 건 사실이다. 이탈리아 최초 여성이 총리가 된 것도 관심거리일 수 있지만, 전술했듯 극우 인사가 총리가 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극우 인사가 정치 리더쉽을 갖게 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최고 권력자이자
파시즘의 정신적 지주였던 ‘베니토 무솔리니’
냉전이 끝난 1990년 초부터 세계는 급속도로 하나가 되었다. 그리하여 보수적인 성향보다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구촌이 움직였다. 내가 살고 있는 영국도 1997년에 토니 블레어가 정치권력을 잡으며 제3의 길을 추진했다. 귀족 세습제로 이어져 왔던 귀족 중심의 상원 제도를 중단했고, 이민제도를 대폭 수정하며 세계화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대부분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세계화가 활발히 일어나며 장점들도 많았지만, 폐해들도 있었다. 그 폐해가 쌓여가며, 일부 선진국이라 불리던 국가들에서는 자국중심주의, 보수화의 물결이 커져 왔다(물론 이런 자국 중심 보수화 물결의 폐해도 급속도로 나타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13년간 보수당이 집권하며, 브렉시트를 필두로 자국중심주의, 보수화로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다.
현재까지의 결과로 보면, 보수화 물결은 영국에 도움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렀다. 지난 13년간 영국에선 보수당이 내내 집권했지만, 임기를 다 채우고 내려온 총리는 한 명도 없다.
사퇴하는 데이비드 카메론
13년 전 노동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으며 총리로 취임한 데이비드 카메론(보수당)은 결국 브렉시트로 사퇴했고, 후임자인 테레사 메이 역시 브렉시트로 사퇴했다. 다음 총리인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와 술 파티로 사퇴, 리즈 트러스는 무능으로 최단기간 사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으나, 경기침체를 비롯하여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지금의 영국에서 보수당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로부터 극우를 지향하는 후보가 총리에 당선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중적으로는 큰 관심 없으나, (13년간 보수화 물결을 겪으며 폐해를 맛본) 영국의 국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현 이탈리아 정권이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라는 건 중요하지 않은 이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각국에 여성 정치지도자가 탄생할 때 그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영국의 마가렛 대처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 총리나 대통령을 수행한 여성 리더들을 사회적으로 여성이라 보기엔 어렵다고 본다. 그들 대부분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판에 뛰어들어 남성과 같은 말과 제스쳐로 리더쉽을 발휘하여 정치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럼에도 그들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역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조르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총리 후보에 오른 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연설했던 내용을 포함해서, 그녀의 행보를 보면, 기존의 이탈리아 극우 성향 남성 정치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여성 총리라는 수식어 보다는 극단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는 정치인이, 어떻게 세계대전을 치른 이후 처음으로 인기를 얻어 총리까지 될 수 있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유럽에서) 21세기형 파시즘의 시작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유는 파시즘(Fascism), 그리고 여기에 한술 더 뜬 나치즘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파시즘이과 나치즘이냐 하는 데에는 여전히 학자들마다 엇갈린 주장을 한다. 분명한 것은 결속주의(結束主義) 혹은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시작된 세계관으로 국수주의와 권위주의까지 결합한 “내가 제일 잘 나가”주의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뛰어나고, 나와 같은 민족이 가장 우수하며, 타민족은 열등하다는 사고를 만들게 했던 이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전쟁을 통해 결국 무너졌지만, 한때 이탈리아와 독일을 결속하게 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지난 60-70년의 세월이 지나며 이런 극우적 사고는 완전히 사라지나 싶었는데, 다시금 스멀스멀 그 기운을 몰고 나오고 있다.
물론 자동적으로 생긴 건 아니다. 유럽은 그동안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중동 및 아프리카 난민 등이 거쳐 가는, 혹은 정착하는 곳이 되었기에 기존 원주민(백인)들이 겪는 탈도 많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보호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기존의 백인들과 유입된 난민, 이민자들과 갈등은 커져갔다.
헝가리 이주민 수용소 앞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난민들
출처-<Reuters>
헝가리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오스트리아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출처-<NEWEUROPE>
조르지아 멜로니의 삶
1977년생으로 올해 만 45세인 그녀는 로마에서 나고 자란 젊은 정치인이다. 가정불화로 - 회계사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멜로니가 1살 무렵인 1978년 집을 나감 - 일찍부터 어머니와 생활을 이어온 그녀는 노동자 계급이 주로 거주한다는 로마의 가르바텔라(Garbatella) 지역에서 자랐다.
보통 이런 지역에서 자라 정치인이 되는 이들을 돌이켜 보면, 흔히 가치관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1. 가난이 싫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2. 나의 동네, 혹은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
멜로니는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아주 영리했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성공을 꿈꾸는 소녀였다고 전해진다.
15살이던 1992년에는 신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운동(MSI, the Italian Social Movement)당에 가입하여 당시 이탈리아 교육부 장관이었던 ‘로사 루소 이에르볼리노’(Rosa Russo Iervolino, 중도 좌파 성향)가 추진한 공교육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이때부터 리더쉽이 뛰어난 학생으로 인정받았다고 알려진다. 이를 계기로 1998년, 21세의 나이로 최연소 로마의 시의원이 되어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29세가 되던 해에는 기자가 됐는데, 이때 중앙 정계 주요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쾅 찍는다. 멜로니는 당시 (재벌 + 총리였던) 베를루스코니 내각이 통과시킨 경제법안들 - 가령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고소득층의 세금 감세 등 - 을 옹호하는 기사를 보도하여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비롯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대기업에 큰 이익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2006년, 라치오 지역구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2008년에는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청소년부 장관으로 입각하여 최연소 장관이 되었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 형제들당의 당 대표가 되었으며, 2022년 9월 총선을 앞두고는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당,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당과 우파 3당 연합을 결성하여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 3당 중 이탈리아 형제당이 제일 높은 지지율을 받음으로써 당 대표였던 멜로니가 총리로 취임했다.
그녀가 추구하는 것
지난 9월에 치러진 총선의 선거 기간 동안, 멜로니는 국수주의적이고 극우적 발언들을 마구 내뱉었다. 그러나 전문가들 중엔 그녀가 추구하는 방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로마 국제 관계 연구소의 니콜레타 피로치는 멜로니에 대해, 그녀가 확고한 정치적 방향을 지향하기보다는 정치적 실용주의자로서 표가 되는 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는 부류라는 것.
정계 입문 자체를 파시스트, 극우 정당을 통해 시작했으므로 그녀를 파시스트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총리로 당선된 후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시스트라는 논란에 대해 ‘지나간 역사’라며 잘라 말했고, 파시스트 지도자들을 칭송하는 당원들을 오히려 견제하는 등 파시즘과는 선을 긋고 있다. 총리가 된 후에는 자신의 과거 발언과 충돌하는 언행을 보이며, 본인이 속한 이탈리아 형제들당이 가진 정치색을 희석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극우에서 노선을 변경한 것인가’라며 안심할 순 없다. 이렇듯 표심만 따라서 추구 가치가 움직이는 정치인이 리더가 될 경우, 위기의 상황에서 국익을 위한 판단보다는 야욕을 채우기 위한 결정을 내릴 위험이 있다.
출처-<LocalToday>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부채를 지닌 나라 중 하나다. 그래서 유럽연합의 도움이 없이는 사실상 국가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멜로니는 선거 기간에 유럽연합의 기조와 반대로, 이민자/난민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경하게 표명했다. 특히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국경 강화를 이야기하며, 쉥겐 조약(유럽 국가들끼리 이동을 자유롭게 하자는 조약)을 깨버릴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도 했다.
1985년부터 40여 년간 이어오던 유럽의 질서를 깨버리겠다는 이같은 발언은 주변국들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 멜로니가 표를 집결시키기엔 플러스 되는 발언일지 몰라도, 국익에는 분명 해가 되는 발언이다. 이는 그녀가 총리 재임 중,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가 온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익에 해가 되는 결정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녀의 정책과 처한 환경
멜로니는 이민자/난민에 대해서만큼은 총리 취임 후에도 강경모드다. 그와 관련해서 이미 유럽 내 다른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원래 유럽은 각국 소속 구호단체가 난민 구조선에 이주민들을 태워 유럽 국가에 내려주면 유럽 각국이 이주민들을 분담 수용했는데, 멜로니가 총리가 된 이후 이탈리아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이탈리아 정부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 해양법과 유럽 연대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라고 했고, 독일은
“민간 해상 구조를 막아선 안 된다. 사람들이 익사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도덕적·법적 의무다.”
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탈리아의 행동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멜로니의 정책 중엔 진보적(?)인 정책도 있다. 장애인을 비롯하여, 여성/임산부에 대한 처우와 노년층을 위한 연금 확대 지원, 특히 이탈리아 여성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탈리아에서 진보정당에서 의해 대부분 추진해 왔던 일들이다. 이에 대해선 과거 본인과 어머니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영향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있긴 하다.
이 부분만 보면, '어 이상하지만 괜찮은 사람 아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술했듯 이민자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려 하고 있고, 세금은 균일세를 적용하여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펴려고 한다. 얼마 전 영국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보이지 않은가? 즉, 부자감세를 하여 세수는 줄어드는데, 복지 정책을 위한 지원은 더 확대한다고 하니 서로 상충하는 딜레마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멜로니 정권에서 상충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멜로니와 3당 연합을 맺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진 이탈리아당)와 마테오 살비니(동맹당)는 푸틴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이탈리아 여론은 부정적이고, 멜로니 스스로도 미국과 발을 맞추는 대서양주의자다. 3당이 연합하여 정권을 잡았지만, 3당 내에서도 추구하는 방향이 상충하고 있다.
왼쪽부터 베를루스코니, 멜로니, 살비니
앞으로도 멜로니는 뚜렷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정치하기보단 양날의 검을 들고 저울질하며 그때그때 실용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실용적인 선택은 국가가 아니라 본인을 위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적으로도, 국외적으로도 그녀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정말 영국의 국제 전문가들 말처럼, 그녀는 오래가지 못할까. 아니면 오래도록 정권을 유지하며 현재 유럽의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100여 년 전과 같이 급변하고 있는 작금의 시기에, 그녀의 한 수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