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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중현의 3대 명반이라는 김정미의 앨범 수록곡 ‘바람'이다. 신중현이 작사 작곡해 1973년 발표한 이 노래는 당시 금지곡이었다.

 

제목이 ‘순자의 바람’도 아니고(전두환 시대 노래 제목에는 이순자 여사의 이름이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심수봉의 ‘순자의 가을'이 금지곡이었음), 송창식의 ‘왜 불러(반말투이고 반항적 정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처럼 반말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이유로?

 

"신음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창법이 저속하다."

 

와...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무려 박통 유신독재 시절,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에서 내린 공식 결정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상생활 가능하세요? 혼이 비정상인가?? (하긴 그러니까 미니스커트도 자로 재고 다녔겠다) 

 

머릿속에 온통 음란마귀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 저 꼰대들, 지금도 ‘생수' 마실 때, ‘첵스’ 먹을 때마다 심쿵하고, 신문 읽을 때 ‘애널리스트'나 ‘일본 자위대' 같은 단어가 나오면 호흡이 가빠지고, ‘썩쎄쓰’, ‘엑쎄쓰’,’애널리스트’ 같은 단어는 발음 못할 거라는 데 내 첵스 한 봉지를 건다.

 

지들이 맨날 술 먹고 가는 곳이 뻔해서 그랬던 것일까. 저 몽환적 창법조차 그렇게밖에 해석을 못 하는 변태 꼰대들의 사례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의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를 옛말로 표현하자면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돼지의 눈에는 모두가 돼지로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두가 부처로만 보인다. 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이요, MZ느낌으로 줄이면 ‘돼눈돼 부눈부’ 되겠다.

 

2.

 

‘빈곤 포르노 사태'를 바라보며 이 '돼눈돼 부눈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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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캄보디아 순방 중 김건희 대통령, 아, 아니 김건희 여사께서 심장질환 소년과 사진을 찍었다. 순방 중 이런 사진을 찍은 것도 뜬금포지만, 해도 너무 과도한 설정샷이라 여러 말이 나왔다. 장경태 의원은 이 설정샷 논란을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가난과 고통은 절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

 

이 발언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 반발하며, 장경태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며 이 사태가 시작되었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국모'입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

 

"'여성혐오'와 '아동비하'로 휴머니즘 파괴에 이른 저주와 타락의 장경태는 즉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라." (국민의힘 여성의원들)

 

"참으로 천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

 

"아픈 아이를 위로한 김 여사에 대해 ‘빈곤 포르노’ 운운하며 고상한 용어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이것은 명백한 악의적 성희롱이다. 포르노가 주는 단어의 뜻이 국민들에게 일반적으로 먼저 인식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아프리카에서 그런 활동을 한 소위 오드리 헵번이나 앤젤리나 졸리나 또 우리나라 배우들 정우성, 김혜자 이런 배우들이 다 포르노 배우란 말입니까."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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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 우리, 차분하게 무릎을 맞대고 생각해보자.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는 단어는 사전에 등재된 시사 용어이고, 학문적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는 단어다(관련 기사 : <뉴스톱> [팩트체크] '빈곤 포르노'는 사전·논문·언론에 나온 용어다?).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어지간히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흔히 봤을 용어다. 심지어 저들이 성경처럼 읽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도 이 용어를 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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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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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무엇인가를 ‘빈곤 포르노'라고 칭했을 때의 일반적인 반응은 "이건 보여주기식 쇼가 아니다" 혹은 "이런 방식이 아니면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는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 논의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가난을 전시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알릴 방법이 있을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까 등등.

 

그런데 상대가 다짜고짜 빈곤 "포르노" 라고? 포르노? 포르노!! 포르노??? 포르노!!!!?!?????이렇게 나와버리면, 모든 게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상황처럼.

 

가정해보자. A라는 여성 국회의원이 있다. 국회에 연설하러 나왔는데 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바지를 입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패션이다. 한 언론이 이를 포착해 기사로 내보낸다.

 

‘A 의원, 유니섹스 패션으로 국회 연설에 나서…’

 

이 기사를 두고, 저 A 의원이 유니"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성희롱!!!!!!!!!!!

 

이렇게 나오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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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지금 상황이 딱 그러하다.

 

원래 이런 상황에 쓰는 표현이라는 해명도, 발가벗고 첵스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설명도 소용이 없다. 버튼이 눌려버린 것이다. 저들에게 ‘포르노'라는 단어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그렇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70년대에 그분들처럼, 우리 국민의힘 의원분들, 첵스 드실 수 있으세요? TV에 애널리스트 나오면 숨이 가빠오나요? 일상생활은 가능하세요...?

 

4.

 

절망하지 마라.

비록 그대의 모든 형편이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마라.

 

이미 일이 끝장난 듯싶어도,

결국은 또다시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

 

그렇다. 우리가 누군가. 불굴의 한민족 아닌가. 절망하지 말자.

 

사방에 음란마귀가 득실대고 오물이 사방에 날아다녀도 절망하지 말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나는 이분에게서 세상의 희망을 보았다.

 

"아프리카에서 그런 활동을 한 소위 오드리 헵번이나 앤젤리나 졸리나 또 우리나라 배우들 정우성, 김혜자 이런 배우들이 다 포르노 배우란 말입니까."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앞서 살펴봤던 이 명랑한 발언을 하신 분이시다. ‘빈곤 포르노’라는 표현은 구호 운동 자체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구호 운동을 ’후지게‘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구호 운동을 마치 포르노처럼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혹은 수혜 대상자를 무기력하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고로 정우성 씨나 김혜나 선생님이 그런 연출로 구호 운동을 하셨다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빈곤 포르노‘라 지적할 수 있다. 그 지적은 더 나은 방식으로 구호 운동을 하자는 제안이자 비판이지, 정우성 씨가 갑자기 발가벗고 포르노를 찍었다는 말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비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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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니세프나 월드비전을 비롯한 한국의 구호 운동은 오랫동안 ’가난 포르노’라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 역시 구호 운동 방식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지 유니세프나 월드비전이 포르노 제작사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걸 왜 설명하고 있어야 하나 싶은 이 당연한 말조차 타협하지 않는 김정재 의원, 당신은 낭중지추요, 내가 찾던 인재다.

 

게다가 이분, 전적이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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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장관의 후보자 시절, ‘꽃보다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지지자들이 후보자에게 꽃을 보내 응원했고, 조국 후보자는 이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이때 등장한 순백의 당시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 굳이 ‘자위’라는 표현을 써가며 논평을 휘갈겼다. 민주당은 즉각 성희롱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김정재 의원은,

 

"단어 하나만 떼어내서 제멋대로 해석하고, 또다시 막말 프레임으로 몰아"

 

"자위(自慰)라는 일상의 용어마저 금기어로 만들겠다는 성적 상상력에 한숨만 나온다"

 

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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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이번 사태와 연결 지어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자위는 되지만 포르노는 안 된다."

 

그... 그런가? 그렇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다. 혹시 그녀를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입을 틀어막아라. 자위와 포르노는 다르니까. 한국에서 포르노는 불법이니까. 자위하는 포르노나 포르노로 자위는 모르겠다. 머리 아프니까 거기까지는 가지 말자.

 

아무튼 하나 확실한 것은 이거다. 김정재 의원, 그는 불법인 ‘포르노’는 토씨 하나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불법이 아닌 ‘자위’에 대해서는 맥락에 따라서 유연하게 성적 상상력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가히 음란물 스캐너라 할 수 있다.

 

이런 전문성을 가진 정치인, 찾기 쉽지 않다. 뭐랄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 신이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탄생한 것이 김정재 의원이라 말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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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쓰시는 표현도 격조 있으신 편

 

이런 귀인이 국회 같은 누추한 곳에서 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니. 오호통재라. 당장 대통령께서는 그녀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해야 한다. 김정재 의원이 자신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물의 음란성을 측정하는 임무를 맡기자.

 

그래야만 우리는 음란마귀로 가득 찬 이 더러운 세상을 조금 더 깨끗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만이 이 음탕한 세상의 유일한 희망일 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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