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만이 모이다, 모디 총리의 미국 방문
2019년 9월 2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NRG 스타디움에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민주국가 수장이 손을 잡고 입장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였다. 행사 시작 한참 전부터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약 5만 명의 관중들은 "Howdy Modi(안녕하세요. 모디)"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띤 두 사람은 서로를 '진정한 친구', '충직한 동료'라고 치켜세웠다. 듣기 좋은 소리로 가득 찬 열정적인 연설로 관중들을 흥분케 했다.
하우디 모디 행사에 입장하는 인도와 미국 정상
출처-<The Economic Times>
자, 그렇다면 이날 NRG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던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인도계 미국인들이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재미교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도에서는 이들을 '인도 출신 해외 시민(OCI:Overseas Citizenship of India)'이라고 부른다. 2018년 기준 인도 외무부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1,870만 명이 흩어져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약 318만 명이 미국에 산다.1) 그 밖에 인도 인접 국가들인 말레이시아(276만 명), 미얀마(200만 명), 스리랑카(160만 명)에 OCI들이 많이 산다. OCI들은 대부분 정착한 나라에서 성실하고 근면하게 돈을 모아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 아주 특별한 이유가 아닌 이상 인도로 되돌아갈 계획을 하지 않는다.
헌법에 따라 이중 국적을 불허하는 인도 정부는 과거에 이런 해외교포들을 인도출신시민(Persons of Indian Origin: PIO)이라고 분류하여 15년짜리 장기 비자도 발급해주었다. 인도에 머물 때는 체류 일자가 180일 이내면 체류증을 발급 받아야 하는 의무도 면제해주는 등 나름 편의를 봐주었다. 이들이 인도 국내에서 소득을 올릴 경우, 내국인에 준하는 비교적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등 경제활동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해외교포들의 경제력도 성장하고 이들의 정치적인 입김도 세지면서 일부는 인도 정부에 이중국적을 갖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이들이 인도에 자본을 투자하고자 하는 관심과 능력이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인도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총리에 당선한 모디 총리에게 해외교포들의 자본은 놓칠 수 없는 돈이었다. 인도 정부는 해외교포들에게 평생 유효한 입국 비자를 발급해주고 체류증을 발급받아야 할 의무도 전면 폐지한 OCI 제도를 도입하였다. 기존의 PIO 카드 소지자들에게는 별다른 절차 없이 OCI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했다. 인도 정부는 자본과 투자 의지를 가진 해외교포들을 인도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고, 해외교포 입장에서도 비록 이중국적은 얻지 못했지만 인도 국적자처럼 편하게 인도를 왕래하며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죽어 나가는 인도 국적 해외 노동자
이와는 달리 인도 국적은 유지한 채 해외에 체류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비거주 인도인(Non Resident Indian: NRI)'이라고 불리는데, '인도에 거주하지 않는 인도 국적자'라는 뜻이다. OCI가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라고 한다면 NRI는 인도 국적을 보유한 해외주재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인도 일반 시민들은 OCI와 NRI가 지닌 차이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을 그들의 국적과 상관없이 NRI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NRI들은 어느 나라에 많이 주재하고 있을까? 인도 외무부 자료에 따르면 UAE(342만 명)·사우디아라비아(259만 명)·미국(128만 명)·쿠웨이트(103만 명)·오만(78만 명)·카타르(75만 명) 순으로 NRI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전 세계 NRI 인구가 약 1,345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NRI의 약 64%인 약 856만 명가량이 중동 다섯 개 나라에 모여 있다. 물론, NRI 중에도 미국이나 영국에 주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거주 국가에 상관없이 고소득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해외 거주 NRI의 대부분은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는 인도인들이다. 이들은 중동의 노동 현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칼리파 국제 경기장에서
일하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
카타르 칼리파 국제 경기장
인도 외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카타르·오만·UAE 등 중동 여섯 개 나라에서 총 33,988명의 인도인이 목숨을 잃었다.2) 머나먼 이국땅에서 하루 평균 무려 20명, 거의 한 시간에 한 명씩 꼬박꼬박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고되고 혹독한 노동환경이다. 무더운 날씨, 위험한 작업환경, 이에 따라 누적되는 피로와 부상 등이 겹치면서 인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실제로 2018년 한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이들 중동 국가에서 사망하는 인도인들의 주요 사망원인은 심장마비와 기타 심혈관계 질환·자동차 사고·추락사·익사·자살·뇌졸중·기타 감염질환 등으로 나타났다.3)
이 밖에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강요, 비인격적인 대우 등을 하거나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의료보험도 제공하지 않아서 부상 또는 질병이 악화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중동 국가들에서는 출국할 때도 출국 비자가 필요하곤 하는데, 계약기간이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출국비자 발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발급해주지 않아서 반강제적으로 발이 묶이는 경우도 많다. 살아 있는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도 중동국가를 떠나기 힘들다. 인도 현지 언론은 한 인도인이 카타르에서 일하다 죽은 친척의 유해를 운구하려 했더니 운구비용으로만 50만 루피(900만 원)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참고로 인도의 1인당 1년 GDP가 2,00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260만 원이다.
카타르 월드컵 개최 확정 이후 이주노동자 6,750명 숨졌다.
사망자 주요 국적은 인도·네팔·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다
출처-<가디언 캡쳐>
3. 카타르 노동자의 목숨값
이렇게 많은 자국민이 부당한 대우와 혹독한 환경에서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지만 인도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중동 국가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 자국민들을 무시하고 있는 인상이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인도 내에서도
'돈 많고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선진국 거주 OCI들은 인도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노동자 계층이 주류를 이루는 중동국가 거주 NRI들은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
라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4) 여기에는 냉혹하고 무서운 정치적·경제학적 배경이 숨어있다.
우선, 선진국에 거주하는 OCI나 NRI들은 대개 고등교육을 받고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대개 상위 카스트에 속하며 인도 기득권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세계 유수의 IT 기업에서 CEO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순다르 피차이(구글)·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아빈드 크리슈나(IBM)·샨타누 나라엔(어도비) 같은 사람들이 아주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렇다 보니 인도 정부 역시 이들의 요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출처-<한겨레신문>
반면 중동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고 카스트 계급도 낮은 사람들이다. 케랄라·타밀나두·카르나타가·텔랑가나 등을 포함한 남부 몇몇 주 출신들이 중동 진출 노동자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저소득층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도 정부 행태와, 뿌리 깊은 인도 남부와 북부 사이의 이념적·정치적 대립 관계를 떠올려보면 인도 정부가 중동 거주 노동자들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납득이 가는 실정이다.
이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수요자 입장을 살펴보자.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국가의 입장에서는 싼값에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가 서남아 지역에 널려있다. 인도 노동자들이 불평을 제기하면 더 고용하지 않고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을 추가로 고용하면 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의 사망 원인을 포함한 기초적인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도 없고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하지도 않는다. 한창나이인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인 이들 노동자들 절반이 '자연사' 또는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많은 인권 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중동의 정부들과 고용주들은 침묵하고 있다.5)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이들의 비참한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이미 2022년 초반부터 수천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의 노동 환경에 국제 시민사회의 우려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 카타르 정부는 들은 척 만 척이었다.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는 2022년 5월,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을 위해 기금을 모을 용의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카타르 현장 노동자들이 '오히려 보람을 많이 느낄 것'이라는 황당한 드립을 날려 세계 유명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아랍컵 시상식에 참석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왼쪽)
2016년 6월 모디 총리가 카타르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했다. 인도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환경에 항의했다는 신문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모디 총리는 인도인들을 노동자로 불러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4. 중동으로부터의 송금... 피 묻은 돈인가?
'송금경제'라는 말이 있다. 해외에 취업한 자국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의 경제를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 저소득국들이 이러한 송금경제 비중이 큰 곳에 해당한다. 총 GDP 중 해외송금 의존도가 무려 20%가 넘는 나라도 2020년 기준 14개국이다.6) 대표적인 나라들로는 레바논(25.6%), 소말리아(24.9%), 자메이카(22.2%) 등이 있다. 제법 경제 규모가 큰 나라 중에도 해외송금 의존도가 높은 곳들이 있는데, 필리핀(9.6%)·이집트(8.1%)·방글라데시(5.8%) 등이다. 참고로 한국은 해외송금 의존도가 0.5%다.
그렇다면, 총 해외 송금액 규모로는 어느 나라가 세계 1위일까? 2021년 인도가 약 870억 달러를 해외 송금받으면서 중국과 멕시코(각각 530억 달러)·필리핀(360억 달러)·이집트(220억 달러)를 가볍게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7) 2020년 이후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인도 노동자의 중동 진출이 급감한 까닭에 인도로의 해외송금 중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까지 떨어졌다.8) 이전에는 그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곤 했었다.9) 해외 송금액(870억 달러)이 인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를 넘어서고 있으니 중동 취업 노동자들이 인도 경제의 1.5%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2018년 한 인권 단체는
'중동 국가에서 1천만 달러의 해외송금이 이루어질 때마다 인도 노동자 한 명씩이 죽어가고 있다'
라면서 인도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10) 그러나 냉정하고 무자비한 국제 노동시장의 현실에서 인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인도 정부가 굼뜬 대응을 계속하는 동안 몇 년 치 월급을 털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중동에 취업하던 남인도의 케랄라·타밀나두·카르나타카·텔랑가나 출신 노동자들은 중동이란 곳이 예전만큼 매력적인 노동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가면서 발길을 딴 곳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자 남인도보다 경제적으로 더 빈곤한 우타르 프라데시·비하르·오디샤·웨스트 벵골 등 중부와 북부 출신 인도인들이 그 빈 자리를 점차 채우고 있다. 결국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이라는 시장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또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주
1) 해외거주 인도인 규모에 대한 2018년 기준 인도 외무부의 추산 자료는 인도 외무부(Ministry of External Affairs)의 'Population of Overseas Indians', http://mea.gov.in/images/attach/NRIs-and-PIOs_1.pdf 를 참조
2) '34,000 Indians died in Gulf in five years, 1,200 from Telanggana', '19. 11.22자 The Times of India 기사 참조
3) 좀더 자세한 내용은 Pragati B. Gaikwad와 그의 동료들이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ty Medicine and Public Health에 발표한 'Profile of Indians died abroad: analysis of secondary data of human remains arrived at point of entry in Mumbai', Vol. 5, Issue 8, '18. 8월호를 참조
4) '10 Indian workers die in Gulf every day: RTI', '18. 11. 9자 Deccan Herald 기사 참조
5) 'Up to 10,000 Asian migrant workers die in the Gulf every year, claims report', '22. 3. 11자 The Guardian 기사 참조
6) 세계은행 통계(2020년 기준)에 따르면 해외송금이 총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는 14개 국가는 통가(39%), 키르기즈(31.1%), 타지키스탄(26.9%), 레바논(25.6%), 사모아(25.3%), 소말리아(24.9%), 네팔(24.3%), 엘살바도르(24.1%), 아이티(23.8%), 온두라스(23.5%), 버뮤다(22.9%), 감비아(22.7%), 자메이카(22.2%), 레소토(20.9%) 등이다. 좀 더 자세한 통계자료는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BX.TRF.PWKR.DT.GD.ZS?most_recent_value_desc=true 참조
7) 'With $87 billion, India top remittance recipient in 2021: UN report', '22. 7. 20자 The Economic Times 기사 참조
8) 'Remittances from Gulf countries dropped sharply in FY21 due to Covid: RBI', '22. 7. 17자 Business Standard 기사 참조
9) 'Data Reveals 24,570 Indian Workers Have Died in Gulf Countries Since 2012', '18. 11. 6자 The Wire 기사 참조
10) ''117 Indians died for every billion dollars remitted from gulf countries', '18. 11.5자 The Times of India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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