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벤투호의 빛과 그림자

 

역대 국가대표팀 최장수 감독. 파울루 벤투호가 쌓은 4년의 열매가 열렸다. 우루과이와의 무승부는 남은 조별리그를 기대하게 할 만큼 단단한 경기력이었다.

 

4년 전, 슈텔리케라는 보따리 장사의 PPT에 속았던 탓에 벌어졌던 촌극, 그리고 신태용호를 둘러싼 내외의 비판은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최소한 아시안 컵까지는 기회를 받았어야 했지만, 곧 파울루 벤투가 선임됐다. 김판곤 위원장은 감독 선임을 준비하며, 월드컵까지 이어질 한국 축구의 철학을 이렇게 제시했다.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능동적으로 전진하는 축구"

 

그렇게 선임된 벤투가 보여준 전술적 고집은 한국 최 씨 고집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벤투가 4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며 보여준 전술적 철학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1) 수비형 미드필더 1명(원 볼란치)가 센터백&골키퍼와 함께 빌드업을 시작한다.

 

2) 양쪽 풀백은 직선적으로 높게 올라가며, 그 빈 자리를 미드필더가 채운다.

 

3)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압박의 시작 지점, 압박 강도를 다르게 한다.

 

4) 확고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페널티 박스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투입하여 득점 가능성을 높인다.

 

KakaoTalk_20221125_104430861_04.gif

 

아시안 컵 – 월드컵 지역 예선 – 최종예선 – 평가전을 거치며 이어진 벤투호는 뚜렷한 장단을 남겼다. 한국은 항상 아시아 예선에서 수비적으로 임하는 팀을 만났다. 하지만 그런 팀을 상대로도 압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벤투호가 언제나 상대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팀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승리를 가져왔고, 팬들에게 이런 인상을 남겼다.

 

“한국도 점유율 중심의 축구가 가능하다.”

 

비판도 있었다. 특히, 축구 커뮤니티에서 월드컵을 대비한 평가전에서 벤투호에 대한 비판은 대단했다. 벤투호의 약점은 다음의 4가지로 요약됐다.

 

1-1) 센터백-원 볼란치에서 시작하는 빌드업에 강하고 조직적인 압박이 들어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 브라질전에서 이 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빠르고 강한 압박에 한국의 빌드업은 질식당했다. 몇 번의 장면을 제외하면 전방에 있는 공격수들이 공을 거의 못 잡는 장면이 반복됐다.

 

2-2) 준수한 풀백이 없다. 김진수-이용/김문환으로 구성된 좌우 풀백은 기본적인 볼 터치, 좋지 않은 크로스, 판단력 미스, 패스 미스로 인한 역습 허용 등의 문제를 노출했다. 즉, 풀백이 올라가서 공격 작업을 제대로 돕지 못해, 90분 동안 1~2개의 크로스로 마무리되는 경기가 많았다.

 

3-3) 압박의 질이 좋지 않다. 특히, 상대 팀에 볼을 매우 잘 다루는 선수들이 많으면, 한국 선수들의 압박을 위한 전진은 손쉽게 벗겨졌고, 이어 치명적인 역습 찬스로 이어졌다.

 

4-4) 골을 만드는 효율이 떨어진다. 점유율은 높게 가져가지만, 점유율일 뿐이다. 월드클래스 공격수 손흥민은 언제나 중앙으로 내려와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황의조-손흥민 조합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외에도 이강인 기용에 대한 비판, 언론의 압박, 한일전 참패, 김학범 호와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벤투는 지난 2번의 월드컵이 조별 예선 참사로 나락 갔던 것과는 달리, 어쨌든 최종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월드컵 직전에 감독이 경질되는 비극을 멈추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이 비극을 멈춘 것만으로도 벤투 감독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월드컵은 월드컵. 여러 불안함을 남긴 평가전을 보면서 벤투호에 대한 걱정이 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벤투호는 단단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마치 그동안의 평가전은 트릭이었던 것처럼.

 

유효한 철학, 두 개의 타협

 

선발 라인업은 지난 4년간 자주 봤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축구 팬이 부상으로 빠진 황희찬 자리에 나상호/권창훈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다. 빌드업과 공격 전개 작업 또한 익히 보던 장면들이었다. 

 

KakaoTalk_20221125_104430861_01.gif

 

특히, 수비 진영에서 빌드업을 통해 무게 중심을 한쪽으로 몬 뒤, 높이 올라간 반대쪽 풀백에게 롱 볼을 때리는 전개 작업은 월드컵에서도 어느 정도 유효했다. 우루과이는 평가전에서 양쪽 측면이 열리는 약점을 노출했었다. 마침 벤투호의 위와 같은 주요 공격 패턴이 몇 차례 적중하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카세레스 등의 좌우 풀백이 오버래핑을 하지 않고 후방에 머무는 선택을 하면서 자신들의 약점을 지켰다.

 

KakaoTalk_20221125_104430861.gif

 

촘촘한 압박과 세컨볼 싸움은 벤투호의 철학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이토록 세컨볼 싸움을 잘 해내는 경기가 있었던가? 원정 16강을 이뤘던 2010년까지 올라가도 그리 흔치 않다. 치열한 중원 싸움과 영리한 볼 탈취를 통해 경기 흐름을 가져오는 것을 보며, SBS 해설 위원 박지성은 말했다.

 

"지금까지 본 월드컵 본선 경기 중에 가장 안정적”

 

레전드 선수의 해설은, 벤투가 4년간 심어놓은 철학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평가였다.

 

타협도 있었다. 벤투가 추구하는 플레이는 중원에서 압박으로 볼을 탈취하면, 신속히 전방으로 다시 볼을 투입하는 축구다. 동시에 중원의 선수들이 페널티 박스로 올라가 수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벤투는 이 전략을 명확하게 수정했다. 이재성-황인범이 압박에 취약한 정우영을 돕기 위해 언제나 함께했고, 특히 이재성은 전방보다 후방에 많이 머물며 마치 투 볼란치처럼 활약했다. 또한, 양쪽 풀백들의 비대칭 오버래핑, 즉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후방에 남아 역습을 대비했다. 중원에서 볼을 탈취해도 선수들은 전진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평가전 이후, 벤투는 고심 끝에 결론 내린 것 같다. 토털 풋볼 형태로 다수의 선수를 전방으로 올려보내는 전술이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월드컵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내기 위해선,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 말이다.

 

브라질-칠레-파라과이 등 남미 팀과의 연속된 평가전에서 한국의 수비수들은 민첩한 상대 공격수의 간단한 동작에 너무나 쉽게 벗겨지는 모습을 보였다. 벤투는 공격진에서의 수적 우위를 포기하고, 많은 시간 수비 진영을 두텁게 하는 쪽으로 타협했다. 벤투의 고민과 타협, 그리고 선택의 요소요소들이 모여 무실점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KakaoTalk_20221125_104430861_03.gif

 

황의조의 결정적 찬스 장면은 '빌드업 – 압박 – 수적 우위'라는 벤투호의 공격 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끊임없는 공격 시도와 압박, 그리고 공간 침투는 황의조의 노마크 찬스로 이어졌다. 황의조의 폼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조금만 더 잘 풀렸다면, 그 찬스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L20221125.99099007897i1.jpg

출처 - 연합

 

두 번째 타협은 이강인의 기용이었다. 그동안 벤투의 이강인 기용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축구 팬은 이강인이 교체로도 뛰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강인은 탈압박 능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패스를 넣어주는 크랙이지만, 그를 잘 쓰기 위해선 팀을 이강인 중심으로 꾸려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강인이 마요르카에서 본격적인 활약을 보여준 시점은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벤투는 팀 전술을 수정하기 어려웠다.

 

 

asfasdfw.JPG

출처 - 연합

 

그러나 후반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이강인이 교체 투입되면서, 축구 팬의 예상은 빗나갔다. 동시에, 벤투가 왜 이강인을 선발로 기용하지 않는지를 잘 보여줬다. 2022년 3월, 3-0 참사가 벌어진 한일전에서 벤투는 이강인을 최전방 펄스나인으로 기용했다. 체격적으로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강인에게는 무리한 롤이었다. 그 후 이강인은 벤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벤투가 이강인과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있었다.

 

우루과이전에서 이강인은 마요르카에서 배운 바를 적극 활용했다. 중원의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와이드 플레이메이커(측면에서 플레이를 풀어가는 선수)로 움직였다. 특히 후반 70분 쯤, 뚝심 있게 유지하던 수비 라인을 내려야 했을 때, 수비 후 측면의 이강인에게 공을 투입하여 역습을 전개하는 장면은 벤투의 축구가 아니라 마요르카의 축구였다. 

 

기 싸움도 아니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 벤투가 생각하기에 이길 수 있냐 없냐의 문제였을 뿐이다. 3-0 한일전 참사에서 이강인의 펄스나인 기용은, 이강인이 전방에서 공을 받았을 때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냉정하게 테스트한 경기였다. 그 선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오늘의 이강인 기용에는 동의한다. 비록 골은 없었으나 이강인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투혼의 부활

 

2014-2018 월드컵을 거치며 축구 팬들은 투혼이 사라졌다는 말을 반복했다. 선수들은 분명 열심히 뛰었으나, 팬의 평가는 달랐다. 휘슬이 불면 손부터 올라가는 수비진, 중원의 볼 다툼에서 조금씩 밀리는 플레이, 후반 85분에도 최전방까지 달려 나가는 스프린트. 그런 것들은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2-0 승리를 제외하면 쉬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번의 월드컵을 거치는 동안, 대표팀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 평가전 준비는 엉성했고, 감독 교체와 경기력에 대한 비판으로 대표팀의 멘탈은 탈탈 털렸다. 월드컵을 앞둔 상황에서 소속팀은 선수를 갈면서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졌다. 홍명보호-신태용호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과 컨디션 저하로 풀 핏을 가져갈 수 없었고, 3차전에 이르러서야 풀 타임을 뛸만한 경기 감각을 갖췄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벤투가 최종예선을 잘 치러낸 것을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벤투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게 아니라, 선수들을 지켜냈다. 선수들의 비판으로부터 보호했고, 그들의 몸 상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미 우승이 물 건너갔음에도, 김진수를 풀 타임 출전시킨 전북을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전북 현대의 입장에서는 최종전에서 팬들에게 유종의 미를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다. 선수의 몸 상태를 두고 국대 감독과 클럽 감독이 신경전을 벌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하지만 사실상 축협의 욕받이였던 홍명보, 신태용 모두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선수들에게는 감독과 팀에 대한 믿음이 올라가는 발언이었을 것이다.

 

img_177574_1.png

출처 - 뉴스1

 

결과적으로 벤투의 이런 리더십은, 선수들에게 이번 우루과이전 대등한 경기력을 펼칠 수 있는 멘탈리티로 돌아왔다. 체력적으로 아주 잘 준비되어 있었고, 팀과 동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우루과이는 더 이상 한국 축구의 킬러가 아니라, 늘 상대하던 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의식이, 그라운드 위에 선수들을 지배했다. 그 결과 투쟁적인 중원 싸움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한 세컨 볼 싸움의 승리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관대한 심판에 빠르게 적응해, 판정에 항의하느라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정신적으로 잘 무장된 팀의 전형이었다.

 

우리는 이 유산을 잘 기억해야 한다. 정신력은 노오력만으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4년 동안의 명확한 플랜과 그 이행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이제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12km, 13km를 뛰어도 투혼이 없다고 욕을 들어먹는 억울함을 없애야 한다.

 

우루과이와 한국의 차이

 

현재 남미의 많은 대표팀은 노쇠화라는 고민을 안고 있다. 늘 월클 선수가 샘솟는 브라질은 제외하고, 칠레와 우루과이는 노쇠화의 길을 걷고 있고 파라과이는 세대교체를 진행 중인 팀이었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하던 팀 칠레와, 지난 3번의 월드컵에서 4강 – 16강 – 8강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우루과이는 모두 왕성한 활동량과 강한 압박을 무기로 쓰던 팀이었다. 그러나 두 팀은 노쇠화로 두 무기를 잃었다. 한국은 상대의 압박이 강하지 않을 때(우루과이전, 칠레전)는 좋은 모습을 보였고, 압박이 강력한 팀(브라질, 파라과이) 상대로는 너무나 취약했다.

 

그런 면에서, 우루과이가 라인을 내리고, 강하게 압박을 걸지 않으며, 점유를 내주고 역습에 치중했다는 건 한국으로썬 고마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팀은 강하게 압박하기를 원한다. 현대 축구의 흐름이 그렇다. 우루과이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수아레즈(35세), 고딘(36세), 카세레스(35세)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노쇠화되었기 때문이다. 전임 감독이 경질된 후 새로 부임한 우루과이의 알론소 감독은 발베르데-벤탄쿠르의 롱패스로 빠른 역습을 전개하는 형태로 팀을 꾸렸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 비교적 안정적인 빌드업을 할 수 있었던 것, 중원의 볼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던 것은 우루과이의 노쇠화된 팀과 압박을 강하게 걸지 않은 전술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루과이는 젊은 스트라이커 누네스의 독박 축구라는 최악의 형태로 변했다. 훨씬 더 강한 압박을 추구하는 포르투갈을 상대할 때 한국은, 이번 경기보다 더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잘 이용하는 것도 축구다. 소속팀에서 날카로운 패스를 보여주는 벤탄쿠르, 발베르데의 잦은 패스 미스를 유도한 건 대표팀의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그럼에도 좁혀지지 않은 차이가 있다. 많은 장면, 한국은 팀으로 싸웠고 우루과이는 개인으로 싸웠다. 하지만 최전방, 중원, 후방에서 보여준 우루과이 선수들의 볼 컨트롤을 이용한 탈압박 능력은 여러 차례 한국의 등을 서늘하게 했다. 똑같이 롱볼 패스를 받아도, 우루과이 선수들은 온몸을 이용한 한 번의 터치로 기회를 만들어 냈다.

 

KakaoTalk_20221125_104430861_02.gif

 

비슷한 장면에서 김진수, 김문환, 나상호, 황의조 등은 그 정도의 터치를 보여주지 못했다(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이것이 우루과이의 한국 사이의 현저한 차이였다. 그 결과 위협적인 슈팅이 없어서 기대 득점 값이 0.5에 그쳤다. 우루과이의 기대 득점 값도 0.5였지만, 두 번의 슈팅이 골대를 맞혔다. 분명, 한국에 운이 따랐다.

 

한국 선수와 유럽/남미 선수의 결정적 차이는 기본기에 있다고 본다. 볼 터치가 더 거칠고, 패스의 강도와 질이 좋지 않다. 반면, 수십 년 동안 ‘선이 예쁜 축구’를 철학을 도입했던 일본은, 지난 월드컵 때와는 달리 역습 형태의 전술을 썼음에도, 기본적인 볼 터치와 패스 능력에서 독일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똑같이 독일을 이겼지만, 우리는 독일을 상대로 기본기에서는 완패했다.

 

다시 말해, 김판곤 위원장이 강조한 ‘지배를 통해 능동적으로 전진하는 축구’를 벤투는 팀 전술적으로는 최대한 구현했다. 하지만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뿌리 깊게 내려진 기본기의 차이는 팀 전술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더 많은 선수를 유럽으로 보내야 하며, 대표팀 성적과 무관하게, 유소년 단계부터 이 철학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루과이를 비롯한 남미/유럽팀과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

 

가능성 그리고 교훈

 

사실, 내가 벤투의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지배하는 축구’가 필수적이란 것은 안다. 그런데 대표팀의 특성상, 그 시스템을 완성하기 어렵다.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벌어진 기본기, 압박 수행 능력, 공간에 대한 이해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의 월드컵 성적을 위해서는, 수비를 기본으로 하되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빠르고 확실한 역습 전개의 축구를 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2002년을 제외하고, 우리가 월드컵에서 필드골을 성공시켰던 모든 장면은 대부분 이렇게 도출됐다. 무엇보다 국대 선수들을 배출하는 자국 리그의 규모와 관중 수를 생각하면, 월드컵에 꾸준히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우리는 지배하는 축구의 가능성을 보았다. 남은 2연전과는 관계없이, 우리가 우루과이라는 강팀과 50:50의 승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대 축구는 선수들에게 더 명확하고 세부적인 롤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미 유소년 단계에서 유럽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축구 팬들이 이 철학을 지지한다면, 그래서 성인 대표팀의 성적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믿음을 유지한다면, 수십 년 뒤 한국 팀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K리그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

 

가나와 포르투갈전이 남았다. 특히, 가나는 귀화 선수의 유입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렸지만, 조직력이 좋지 않아 공수 간격이 잘 벌어진다. 이 지점은 대표팀의 시스템이 스며들기 딱 좋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서 얻은 교훈 덕분에, 축구 커뮤니티는 벤투호에 비판 수위를 스스로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교훈과 우루과이전에서 얻은 교훈들이 남은 2연전에서, 그리고 월드컵 이후까지 지속되기를 바란다.

 

201721145_1280.jpg

출처 - SBS

 

이제, 180분 남았다.

 

건투를 빈다.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https://www.instagram.com/ddirori0_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