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같고, 다른 공휴일

 

전 세계에는 문화와 종교가 다르지만 공유되는 명절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추석이, 중국에는 중추절(仲秋節)이, 일본에는 오봉(お盆)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러시아에는 성 드미트리 토요일(St. Demetrios Saturday)이 있다. 모두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추수의 기쁨을 함께하는 날이다. 기독교 기반의 그레고리력이든, 음력이든, 이슬람력이든, 힌디력이든 새해를 축하하는 날 또한 (비록 날짜는 다르지만) 중요한 명절이다. 양력 1월 1일에 기독교도들이 새해를 축하하고 나면 2월쯤 한국, 중국과 동남아에서 음력 설날을 지내고, 3월경에는 페르시아력으로 설날인 노루즈(Nowruz)가 이란계 및 터키계 민족에게 찾아온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동남아 사람들이 '송끄란 축제'를 즐기며 물에 흠뻑 젖고 나면 8월경에는 이슬람력 새해 첫 달인 '무하람'이 시작된다. 유태인들은 9월을 전후하여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를 지내며 새해를 축하하고 인도인들은 통상 11월에 돌아오는 '디왈리(Diwali)'를 지내며 새해를 축하한다.

 

한 나라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손쉽게 알아보는 방법은 그 나라의 휴일과 국경일을 살펴보는 것이다. 국경일과 휴일에는 나라의 역사와 정신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15일의 공휴일(대체휴일 포함)을 지낸다. 이중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이렇게 닷새를 국경일로 지정했다. 2차 대전을 전후하여 독립한 신생 독립국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제헌절이나 광복절 같은 국경일이 있다.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국 고유의 알파벳 시스템(한글)을 기념하는 독특한 국경일도 있다. 그렇다면 인종과 종교 언어 등 사회 모든 면에 있어서 ‘다양성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이자 세계 6위의 경제 대국 인도에서는 어떤 휴일과 어떤 국경일을 지키고 있을까? 흔히 인도인들은 자국을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가진 나라라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국경일과 휴일에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 나타날까? 

 

인도의 휴일과 국경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일단, 28개 주(state)와 8개의 중앙정부 직할지(union territories)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휴일부터 살펴보자. 중앙정부에서 정하여 인도의 모든 지역에서 지켜지는 이러한 휴일을 Gazetted Holiday라고 부른다. 2022년의 경우 16일이다. Gazette는 정부의 소식이 실리는 ‘관보(官報)’인데, 관보에서 정한 휴일 즉, 정부에서 정한 휴일이라는 의미이다(팔이 쭉쭉 늘어나는 형사 가제트가 먼저 떠오르셨다면 당신은 아재 인증 제대로 한 거다). 이 중에서 나라 전체가 공식적으로 경축하는 ‘국경일(National Holiday)’로 정해진 날은 '공화국의 날'(Republic Day, 1월 26일)·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8월 15일)·간디 생일(10월 2일)로 세 개에 불과하다. 이 3개의 날은 해가 바뀌어도 날짜가 변하지 않으며 모든 공공과 민간부문이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는 휴일이다.

 

국경일 하나. 1월 26일

 

‘공화국의 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금방 감이 잡히지 않을 텐데, 이날은 1950년 1월 26일 인도의 최초헌법이 공포된 날이다. 우리나라의 제헌절인 셈이다. 인도 제헌의회에서 인도 최초의 헌법을 의결한 것은 1949년 11월이었는데 인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인도 국민의회(Indian National Congress)가 ‘인도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1930년 1월 26일을 기념하고자, 다음 해인 1950년 1월 26일 헌법을 공포하였다. 자연스레 ‘공화국의 날’로 정해졌다. 이날에는 인도 육해공군 의장대와 군악대가 대통령궁(Rashtrapati Bhawan)에서 인도문(India Gate)까지 연결하는 라즈파트(Rajpath, 왕의 길이라는 뜻)를 행진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한다.

 

0.jpg

출처-<위키피디아>

 

솔직히 제헌절에 군사 퍼레이드를 한다는 게 좀 생뚱맞기는 하다. 게다가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까지 등장하는 나름 느낌 있는 퍼레이드의 중간에 낙타부대는 물론이고 모터사이클 위에 십여 명의 사람이 꼬치에 꿰인 어묵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모습도 빼먹지 않고 등장하니 우리와 같은 외국인 눈에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제헌 헌법이 공포된 1950년부터 시작하여 단 한 차례도 빼먹지 않고 실시된 유서 깊은 행사이다. 인도가 헌법을 채택함으로써 독립국임을 세상에 선포한 날임과 동시에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지킬만한 군사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행사이다. 인도 시민들과 정부가 느끼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0 (1).jpeg

흔한 군사 퍼레이드

출처-<링크>

 

국경일 둘. 독립기념일

 

두 번째로 중요한 인도 국가공휴일은 단연코 독립기념일로서, 우리나라 광복절과 같이 8월 15일이다. 인도는 1947년 8월 15일 영국에서 독립하였다. 인도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을 상징하는 장소를 뽑으라고 하면 백이면 백 명 모두 뉴델리 북동쪽에 위치한 레드포트(Red Fort)를 선택할 것이다. 왜 그럴까?

 

다운로드 (1).jpeg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레드 포트

출처-<tripsavvy.com>

 

인도인들에게는 ‘1857년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세포이 항쟁(1857년 5월 10일 - 1858년 7월 20일)은 벵골 지역에서 최초로 점화하여 점차 서쪽으로 전진하였다(세포이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고용한 인도인 용병을 뜻한다). 영국의 기세에 눌려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무굴제국의 수도 델리에까지 세포이 세력이 도달한다. 당시 무굴제국 황제로서 레드포트에 거주하던 82세 바하두르 샤 2세(Bahadur Shah Zafar)는 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군은 세포이 항쟁을 진압하였고, 그렇게 인도 독립을 위한 최초의 무력 항쟁은 실패하고 말았다. 후환을 우려한 영국은 바하두르 샤 2세의 자녀를 모두 살해했고, 늙고 힘 빠진 ‘인도 황제’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버마)로 끌려가 생을 마감했다. 레드포트는 인도가 이루고자 했던 독립의 꿈을 상징하는 것이다. 

 

Vereshchagin-Blowing_from_Guns_in_British_India (1).jpgBahadur_Shah_Zafar.jpg

대포로 처형되는 세포이와

미얀마로 추방된 바하두르 샤 2세

출처-<위키피디아>

 

인도 최초 총리였던 자왈할랄 네루의 입장에서는 1947년 독립기념식을 개최하고 독립국의 초대 총리로서 최초의 대중연설을 할 만한 장소로서 세포이의 뜨거운 피가 묻어 있는 레드포트만큼 완벽한 곳은 없었을 터이다. 이후 매년 독립기념일에는 레드포트에서 독립기념일 기념식이 열린다. 인도 총리는 중요한 국가적 정책을 발표하곤 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광복절이나 개천절에 중요한 대북정책을 발표하거나 정치적 슬로건을 공개하듯이 말이다. 제헌 헌법 공포일을 기념하는 '공화국의 날'이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 기념일', 둘 다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식민지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생 독립국들이 공통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 면에서 인도와 우리나라 국경일의 성격은 유사하다.

 

2014년 총리에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는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주황색 계열의 터번만을 착용하고 행사에 참석했다. 인도의 삼색기는 주황색, 흰색 그리고 초록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굳이 주황색 터번만 착용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인도인들은 다 이해한다. 인도인들은 주황색을 사프란(saffron)색이라고 부르곤 한다. 오래전부터 힌두 신앙 속에서 희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색깔로 여겨왔다. 그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많은 힌두교도 구루들이 주황색 옷을 착용하곤 한다. 한편 초록색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색이다. 실제로 코란에서는 사후의 천국을 상징하는 색으로 초록색이 등장하며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알제리·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오만과 같은 다수의 이슬람 국가 국기에는 초록색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쯤 되면 초록색은 곧 이슬람이라는 공식이 ‘빼박캔트’인 셈이다.

 

indie-premier-modi-chwali-swoj-rzad-na-71-lecie-niepodleglosci.webp

모디 총리

출처-<링크>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힌두교가 우세한 인도 서부 구자라트에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년 동안 주지사를 역임했다. 여세를 몰아 2014년 총리에 당선하였다. 2019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나렌드라 모디가 속한 인도인민당(BJP)의 정신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힌두 우월주의(Hindutva)는 어제의 나렌드라 모디 주지사와 오늘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가능케 한 정치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대중 연설가이자 이미지 메이킹 대가인 그가 자신이 머리에 쓰고 나가는 터번의 색깔이 어떠한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킬지 모를 리 없다. 자신이 착용한 터번 색깔을 통해 명확하고 단호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 온 것이다. 고집스럽게 초록색을 거부하고 주황색으로만 뒤덮인 터번을 쓰고 매년 독립기념식 석상에 나타난 이유는 힌두 우월주의와 맞닿아 있다.

 

힌두 우월주의 득세에 대한 나라 안팎의 우려가 심해지자 2022년 독립 기념식 행사에서는 하얀 바탕에 주황색과 초록색이 골고루 섞인 터번을 쓰고 등장했다. 8년 동안 존재를 무시당했던 초록색이 드디어 독립기념식 석상에 오른 것이다. 그때까지 모디 총리의 ‘지독한 주황색 사랑’에 대해서 입도 뻥긋 안 하던 인도 언론들은 처음으로 삼색이 모두 들어간 모디의 터번을 보고는 ‘Har Ghar Tiranga(인도 독립 75주년을 기념하여 집마다 인도 삼색기를 게양하자는 운동)’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글을 실었다. 여태까지 모디 총리의 터번이 지닌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말을 안 하던 언론들이 모디의 터번에 뒤늦게 ‘쉴드’를 쳐주기 시작한 것이다(“무식한 것들이 떠들어대는 그런 힌두 우월주의 상징이 아니야... 온 종교의 국민을 사랑하는 모디 총리님의 애민을 의심하지 말란 말이야”... 뭐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16605457881660545788_rozzhj.jpeg

2022년 8월 15일 레드 포트

독립기념일 행사 中 모디 총리

출처-<링크>

 

국경일 셋. 간디 탄생일

 

세 번째 국경일은 간디 탄생일이다.

 

간디를 빼고는 현대 인도를 설명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간디의 탄생일인 10월 2일이 인도 3대 국경일로 정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편 그는 평생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음주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인도 헌법 제47조에는

 

‘정부는 금주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는 조항이 담겼다. 음주를 금하는 강제조항은 아니고 권고조항이기는 하나, 한 나라의 헌법에 금주를 권하는 조항이 버젓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간디의 금욕주의 정신은 헌법뿐만 아니라 인도의 달력에도 자취를 남겼다. 10월 2일은 간디의 금욕주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서 '술을 팔지 않는 날(dry day)'로 지정하여 지키고 있다. dry day라는 말은 비가 안 오는 건조한 날이라는 뜻이 아니다. 술을 팔지 않는 날이라는 뜻이다. 뭐 그렇다고 술 좋아하는 인도인들에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필자도 인도에 도착한 첫 가을에 리커샵(liquor shop, 인도에서는 술을 아무 데서나 못 산다) 앞에 엄청난 인도인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걸 한번 목격한 적이 있는데, 회사에 있는 현지 직원에게 물으니 간디 생일이 오기 전에 술을 미리 사 놓으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세상 어딜 가나 다 살아가는 방법은 있다.

 

26157_24039_2850.jpeg

 

6개 종교 기념일을 쉬는 나라

 

3대 국경일을 제외한 나머지 휴일들을 살펴보자, 통상 3월에 찾아오는 홀리(Holi) 축제는 ‘봄의 축제’, ‘색채의 축제’로도 알려져 있는데 힌두교 축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축제이다. 11월에는 인도의 새해라 할 수 있는 디왈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 두 개의 축제일을 포함하여 총 5일의 힌두교 관련 휴일이 있다. 힌두교의 나라이니 ‘힌두교 관련 휴일이 많은 게 당연하겠다’라고 생각이 들 텐데 그다음부터가 재미있어진다.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이슬람교와 관련된 휴일이 4개나 된다. 라마단 금식 기간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이드알피트르(Eid al-Fitr 또는 Idu'l Fitr)는 물론 예언자 모하메드의 탄신일 등이 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는 물론 부활절 직전 금요일인 성금요일(Good Friday)이 인도에서는 공식 휴일이다. 치킨집보다 교회가 많다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식 휴일이 아닌 성금요일이 생뚱맞게 인도 한복판에서 휴일로 지켜지고 있다.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에 이어서 인도의 4대 종교라 할 수 있는 시크교(인도 인구의 약 1.7%)의 초대 교주인 구루 나낙(Guru Nanak)이 태어난 날 역시 인도의 공휴일이며, 부처님 오신 날에다가 자이나교라는 소수 종교(인도 전체 인구의 0.4%)의 창시자 생일 또한 휴일이다. 한마디로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시크교·불교·자이나교 등 여섯 개 종교의 다양한 기념일들을 인구 비례에 맞춰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인도는 독립 국가로서의 인도를 만들어낸 제헌절과 독립기념일, 그리고 간디의 탄생일을 국경일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식민지 신세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나머지 10여 개의 휴일은 단 한 개도 예외 없이 인도의 다양한 종교에서 파생된 기념일들이다. 종교별 인구의 비율과 비슷하게 종교별 휴일도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을뿐더러 비록 인구 비중은 작지만 의미가 있는 소수 종교에도 최소한 하루의 기념일을 허락하는 아량도 보인다.

 

잘은 모르지만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 무려 6개나 되는 종교의 기념일을 골고루 지키는 나라가 인도 말고 또 있을까? 글쎄···. 인도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일컬어 흔히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가진 나라라고 말하곤 하는데, 인도가 지키는 휴일이야말로 ‘다양성(10여 개의 종교 휴일) 속에서 통일성(3대 국경일)’이라는 인도의 건국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뱀다리 1 : gazetted holiday는 인도 중앙정부가 정한 휴일이다. 28개의 주는 개별 주에서만 지키는 휴일을 추가로 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뉴델리에서 지켜지는 휴일이 첸나이에서는 휴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뱀다리 2 : 대개 힌두교도들은 디왈리와 같은 큰 힌두교 명절에는 정부에서 정한 하루 이외에 개인적으로 휴가를 사용하여 며칠간 쉬기도 한다. 그렇다면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보통 휴일 당일만 휴식하고 나머지 날은 출근하여 정상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