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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 노무현>을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며칠 전 게시판에 영화 홍보 글 '영화 <시민 노무현> 만든 백재호라고 합니다(링크)'를 남겼던 영화 <시민 노무현> 감독 백재호입니다. 개봉 당시 관객 수에 육박하는(...) 조회수와 많은 추천 수에 깜놀+감동했어요. 감사드립니다. 살다 보니 딴지 일면에 가는 경험도 해보네요.

 

글을 올릴 때 딴게이 지인들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왕 홍보하는 거 썰 좀 많이 풀어달라고요. 어떻게 더 홍보하냐, 민망하다 했더니, 얼마 전에 함께 했던 북토크 때 풀었던 영화 썰 같은 거 재미있었다면서 그런 것도 좀 함께 나누자고 하더라고요.

 

(박사랑님, 죽돌이와 함께했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노무현입니다> 북토크. 이때 죽돌이랑 친구 먹었…)

 

그게 뭐라고… 사람들이 얼마나 흥미를 느끼겠냐 싶지만, 글 끄적여서 한 분이라도 영화를 보러오신다면야... 해야죠! 

 

2. 영화 <시민 노무현>을 연출하기로 하다

 

제가 자기 소개할 때 자주 하는 멘트가 ‘오늘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입니다. 영화 만들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만,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영화는 보는 거지, 만드는 게 아닙니다. 명심하세요!).

 

때는 2017년, 저는 두 번째 연출작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영화 그만두고,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영화 감독이 돈이 어디 있겠어요. 좋은 방법이 없나 고민하던 중에, 메일함에서 노무현재단에서 '노무현 리더십학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메일을 보았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를 가르쳐주고, 무엇보다 수강료가 다른 곳보다 저렴했습니다.

 

그래도 독립영화 감독이 돈이 어디... 그런데 리더십학교 안내문에 추천인이 있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노무현재단 혹은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나... 떠오른 분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최초의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제작한 조은성 피디였습니다. 피디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는데,

 

"너 딱 걸렸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 감독은 너다"

 

...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고사했습니다. 서거 10주기에 맞춰 개봉될 영화라는데, 부담이 안 될 리가 있겠어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본 적도 없었구요.

 

거절할 때마다 자꾸 제안해 주시니, 리더십학교 다니면서 배운 것들, 느낀 것들,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점차 떠올랐습니다. 슬금슬금 넘어가기 시작했지요.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연락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투자는 <변호인>을 만들었던 NEW(자회사 콘텐츠판다), 제작은 조은성 피디, 프로듀서 전인환 감독(무현, 두 도시 이야기 연출), 연출은 저로 세팅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2017년 말, 영화 제목을 <바보, 농부>라고 정하고, 봉하마을로 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누고자 했던 가치를 담아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2018년과 2019년의 봉하마을을 담자. 노무현이 심은 쌀 한 톨이 무수히 많은 쌀이 되어 퍼져나가고 있다. 그 전 영화들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가 무엇을 했고, 왜 했는가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봉하마을이 있는 진영읍에 살면서 사계절을 담고, 노무현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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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민 노무현>를 이미 보신 분들은 위 내용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일단 제목부터 <바보, 농부>가 아니지요.

 

3. 봉하마을에서 보낸 시간들

 

봉하마을에서 보낸 사계절은 최고였습니다. 첫날 새벽,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겨울의 화포천을 걸었을 때가 떠오르네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요. 봉하마을에 가실 일이 있으시다면 꼭 해 뜰 무렵의 화포천을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물안개 가득한 화포천과 수천수만의 철새들이 장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화포천 정화에 신경 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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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천

 

시골 마을 하루는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납니다. 해가 중천에 뜬 낮에는 크게 할 일이 없어요. 숙소에 돌아와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들이나 노무현재단에서 받은 자료들을 보고 공부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나 고민한 시간이었죠.

 

서거하신 지 10년이 다 되어갔지만,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분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또 많이 다녀갔습니다. 꾸준하게 다녀가신 분들을 위한 자원봉사 10주년 행사도 기억에 무척 남습니다(평창올림픽 때라서 봉화산 정상에서 다 함께 컬링 경기를 봤더랬죠).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저는 그분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함께 청소하고, 함께 장군 차를 심었던 분들이니까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그걸 넘어서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그분들의 웃는 얼굴에 담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잘 담으면 되겠다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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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리농법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꾸준히 친환경 농사를 지어와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유기농 인증을 받은 봉하 쌀의 재배 과정을 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전국에 몇 없는 유기농 인증 쌀이지요.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서 잡초를 직접 손으로 뜯어야 하는 고생이 있지만(촬영팀들도 고생했고요), 이 과정들을 담으면서 제 다음 목표가 고향(전남 장흥)에 가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것이 되기도 했습니다.

 

봉하마을에서 촬영한 수십 테라바이트 촬영본을 가지고 서울에 돌아와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제 인터뷰만 하면 되는데 지금(2018년) 만들려고 하는 영화가 2019년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담은 것일까'

 

하고요. 2018년 말 대한민국은 2017년에 예상했던 대한민국과 달랐지요.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그토록 원하던 분(제 데뷔작이 2012년의 대선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연출 방향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투자사와 제작사도 당황했을 거예요. 감독이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촬영했던 것들을 사용하지 않고, 초반 기획했던 것과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으니까요. 예정했던 개봉 날까지 남은 시간도 많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끝까지 믿고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 바지런한 대통령

 

퇴임한 노무현이 왜 귀향했고, 봉하마을에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를, 노무현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정했습니다. 봉하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보고 또 봤던 200시간이 훌쩍 넘는 영상에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영상엔 대통령 퇴임식부터 서거 전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1년여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테이프에서 변환된 파일 하나당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 훌쩍 넘었는데요. 와... 보면 볼수록 놀라웠습니다. 영상 대부분은 봉하마을에 방문한 시민들과 나누었던 대화와 함께했던 활동들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정말 왕성한 활동입니다. 주변에서 말렸을 것 같은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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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드릴까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함께 달라붙어서 보고 고민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중요한 영상들을 미리 녹취해놓으셨던 자원봉사자분들 덕분에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제목을 <시민 노무현>으로 다시 정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저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시민들 앞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 것, 그리고 영상을 고스란히 남겨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로 여겼습니다(그중에 하나는 재임 기간 겪었던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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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어가면서 원칙을 세웠습니다. <시민 노무현>은 적어도 필요에 따라 일어난 일의 순서를 바꾸지 말자고 정하였습니다. 454일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게 일어난 일들을 순서대로 봐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장 위험한 점은 관객들이 진짜라고 믿고 본다는 점입니다. 극영화는 어차피 픽션이니까 하며 떨어져서 보지만요). 요 원칙 때문에 다들 고생하긴 했지만, 필요한 것들은 자료 영상 속에 다 있었지요. 늘어가는 흰머리와 고뇌가 담긴 얼굴을 보면 괴롭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눈 똑바로 뜨고 보길 바라며 저부터 하나하나 열심히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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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상자를 정하는 것도 원칙에 따랐습니다. 2008년과 2009년에 봉하마을에서 직접 함께했던 분들로만 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영화인지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화근조차 염두에 두며 엄선하고자 하였습니다. 청와대에 계시거나 해외에 계시는 등, 아쉽게도 담지 못한 분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가능한 한 그 당시를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분들로 선정했습니다.

 

특히 2019년 초 김경수 도지사의 경우, 원래 촬영하기로 한 날 직전에 구속이 되는 바람에 애초에는 인터뷰를 단념했었습니다. 그런데 석방되자마자 먼저 인터뷰하겠다고 연락이 왔고, 제가 곧장 창원으로 가서 촬영했습니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녹취하고, 편집실에서 밤새 편집하여 겨우 영화 속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심신이 아주 지쳐있었을 때고, 석방 직후 일정이 부담스러우셨을 터인데도, 약속 지켜주신 김경수 도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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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화가 뒤늦게 빛을 보고 있습니다

 

<시민 노무현>은 완성되었고, 2019년 5월 23일 서거 10주기에 맞춰 개봉했습니다. 영화가 일반적으로 목요일에 개봉하는데, 2019년 5월 23일이 목요일이었던 것도 신기합니다. 저의 역량 부족으로 극장에서 개봉했던 노무현 대통령 관련한 영화 중에 가장 스코어가... 흑... 더 널리 알려야 하는 것들을 알리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나마 넷플릭스에 등록되어 많은 분이 봐주고 계시지만요.

 

참, 개봉 버전의 <시민 노무현>을 보신 분들은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와 조금 다른 부분을 발견하셨을 텐데요. 자막이 없다는 점입니다. 최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시민들에게 집중해주시길 바라며, 자막을 과감하게 뺐습니다. 자막을 읽다가 놓칠 수 있으니까요(물론 다양한 분들이 보실 수 있게 수어 통역 버전과 자막 버전도 준비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자막을 켜고 보실 수 있습니다). 

 

개봉 수익이 있었다면, OTT 버전은 좀 새로 편집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극장만큼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극장용과 OTT 버전은 조금 다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최대한 잘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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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개봉 당시에 딴지, 총수와 함께 이벤트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노무현재단이 너무 많은 공격을 받고 있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재단에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제작진도 많은 공격을 받았어요.

 

무슨 의도로 만들었냐느니, 돈을 누가 줬냐느니,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했냐느니, 모 모임에서는 보이콧하기까지 했다고... 유언비어가 꽤 돌았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영화를 보시고 난 후에 사과하신 분도 계시지만, 당시에 참 속상했습니다. 넷플릭스 덕에(?) 개봉 때보다 많은 분이 보시고, 좋은 평을 남겨주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회가 생긴 김에 영화에 대해 딴지에 썰을 주절주절 풀어보았네요.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정말 인내력, 집중력이 대단한 분일 겁니다. 제 영화도 끝까지 집중해서 잘 보실 수 있겠네요. 호호...

 

6.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영화를 봅시다

 

이곳 딴지에는 <시민 노무현>을 이미 극장이나 넷플릭스에서 보신 분이 많으시겠지만, 새로 생긴 노무현시민센터에 놀러도 오실 겸 해서

 

12월 1일(목) 19:30

12월 2일(금) 14:00

 

에 보러오시는 것 어떠신지요? 특히 12월 1일에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도 있습니다. 차마 글로 남기지 못한 썰들을 풀어보고, 영화 보시고 궁금한 점들도 여쭤봐 주시면 최대한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상을 서로 나눠보기도 하고요. 비슷한 마음인 사람들과 함께 시민센터에서 영화를 보는 것! 좋은 경험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오셔서 딴게이라고 해주시면... 으음... 제 사인이 필요하진 않으실 것 같고... 으음... 그래도 와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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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은 아래 페이지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https://www.knowhow.or.kr/center/program_detail.php?seq=204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뵈어요!

 

 

추신

자료 영상에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화질! 대부분 SD 화질의 영상이었어요. 테이프에서 변환을 잘못한 것인가 싶어 확인했는데, 그거는 아니었습니다. 2008년이나 2009년이면 HD 화질의 카메라가 있었을 텐데, 대통령을 담는데 왜 SD로 찍었지?! 왜였을까요? 오시면 그 이유도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