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부(釜) 그리고 뫼 산(山).
가마솥 모양의 산이 있는 마을, 가마뫼.
그리고 거기에 가마솥처럼 한번 끓어오르면 쉬이 식지 않는 330만의 뜨거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
거기에도, 10.29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매주 모여,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원인 규명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떠겁게.
부산 집회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20만이 모였던 지난 19일 서울 집회를 2만 5천으로 줄여 봤던 것과 비슷했다. 한 사람이라도 거리에 덜 모이길, 촛불 집회가 월드컵 열기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묻히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가 단순 사고가 되고, 희생자들이 이름 없는 사망자로 잊히길. 바라고 있다. 간절하게.
그게 그란다고 될 일이가. 택도 없다.
본지, <10.29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부산촛불대행진>이 열리는 부산 서면으로 취재진을 급파했다.
그리고 이 르포 기사는 안타깝게도, 언론 단독 보도다.
붓싼 풀코스 1 : 조잘조잘 조식
26일 새벽, 서울역.
전날 밤늦게까지 기사 마감치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금성무스케잌과 근육병아리.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가 출장 다녀오라며 끊어준 기차표는 무려 오전 6:00.
금성무스케잌 : 선배. 고용노동부 신고는 전화가 빨라요, 인터넷이 빨라요?
근육병아리 : 입석 아닌 게 어디예요. 죽돌님 요즘 많이 따뜻해진 듯...
<촛불로드> 연재 기획에 대해 편집장 죽돌이 외치는
"우리라도 계속 알려야지!"
라는 구호 속 '우리'는 혹시 '나 말고 너희'인 걸까 생각 좀 해보다가,
기차 출발과 동시에 떡실신.
해가 뜨는 아침, 부산역 도착.
#설레는기차여행 #부산에가면 #졸려듸지겠네 #배고프다 #아침뭐먹지
부산 출신 금성무스케잌의 아침 추천 메뉴.
뜨끈하이 복국 한사바리.
아 복지리 좋지.
어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간판인데?
이제 보니 여기는 바로...
대한민국 헌정사의 레전드 법꾸라지 김기춘의 맛집이자, 90년대 대유행어 "우리가 남이가" 발상지.
92년 대선, 나라를 뒤흔들었던 <초원 복집 사건>의 무대, 초원 복국.
과연. 근현대사의 맛집이라 그런가 현관 포쓰가 지린다. 구수한 탕 냄새가 입구부터 진동.
은밀하게 생긴 계단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더 은밀한 룸. 여기가 바로 그 김기춘의 방.
성지순례 느낌으로다가,
역사의 현장에 자리를 잡고,
맑게 잘 끓여진 은복국 한 모금을 뜨려는데,
기분 탓인가...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어디선가 들리는 환청.
김기춘 :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 그때 대구 분들 우리에게 손 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 (일동 웃음) 안 그렇습니까?
박남수 상공회의소 회장 :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이, 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김기춘 : 그래요.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 가야 할 판인데 여당 해야지 그럼 어떡합니까?
김기춘 :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야당에서는 (공무원들이 선거운동하는 데에) 상당히 강경하지만, 아 당신들이야 지역 발전을 위해서이니 하는 것이 좋고, 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를...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웃음)
김기춘 : 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의 발전엔 긍정적이야... 경남, 부산이 580만인가 그런데 80% 투표하면 400만. 그중에서 80% 얻는다 해도 320만인데 그것 가지고 되겠느냐고.
김기춘 :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일동 웃음)
우명수 부산교육청 교육감 : 우리는 지역감정이 좀 일어나야 돼.
김기춘 : 우리가 남이가!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일동웃음)
뭐라카노. 간만에 맛있는 거 먹는데, 누가 옆에서 자꾸 조잘조잘 헛소리를 지꺼리노.
복국이 장수에 좋은갑다. 맹줄이 기네.
붓싼 풀코스 2 : 우국충정 산책로
밥도 한 그릇 자알 했겠다, 기춘할배가 빠져 죽자던 영도다리로 산책을 나가보자.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도개식 가동교인 영도대교. 1934년 일제감정기에 개통된 이래로 부산의 오래된 랜드마크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을 찾아 몰려든 곳이 이곳이었고, 가족의 생사와 행방을 점쳐주는 점바치들과 부모 잃은 아이들이 뒤섞여 있던 곳도 바로 이 영도 다리 밑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 중,
"사실은 니 영도다리에서 주어왔다"
라는 어른들의 짓궂은 장난에 "빼애-" 하고 한 번쯤 안 울어 본 사람, 없을 거다.
그래서 그런지, 영도다리에는 지금까지도 애잔한 전설이 계속 생성되고 있는데.
가장 최근으로는, 2016년 새누리당 대표 킹무성의 직인 날인 거부 사태. 일명 '옥새런 사건'이 있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영도다리를 내려다보며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던 그의 우국충정을 기려보기로 하자.
충신은 어디에 서 계셨던 것일까.
지형지물로 위치를 특정해보자.
런무성의 선거 사무소가 있던 건물이...
요거네.
근육병아리 : 서보니 느껴져요? 우국충정?
금성무스케잌 : 선배 아까 고용노동부 신고 전화번호가 뭐랬죠?
아무나 못 느끼는 걸로... 무룡이 나르샤...
붓싼 풀코스 3 : 변호사들
부산은 광주와 더불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이곳은 한국 민주화 세력의 한 기둥이 뿌리내린 본거지이기도 했으며,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 항쟁은,
<부산의 도심 시위>(곽영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로 하여금 박정희의 명이 다하였음을 직감하게 했고, 결국 유신 정권이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었다.
부산 땅에서 나고 자란 부산 사람들의 결기와 의기는,
한 번도, 세상에 소홀한 적이 없었다. 10.29참사 부산촛불집회가 열리는 지금까지.
오늘 서면에 촛불을 들고 모일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그들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흔적을 함 찾아가 보자.
부산 서구 부민동.
대로에서 길을 조금 접어들어가면 조용한 골목에 건물이 하나 나온다.
적당히 낡고 적당히 평범한 이 주거 건물은 오래전에 사무실로 쓰였었는데,
대통령 2명, 국회의원 3명, 법제처장 1명을 배출한, 국내 최강 아웃풋 로펌.
'법무법인 부산'의 옛 사무실 자리다.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간판 흔적.
법무법인 부산의 전신은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다. 문재인 변호사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노무현 변호사와 사무실을 합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등기와 세법을 다루던 변호사 노무현이 부림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면서, 노동법률사무소로 부산지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부산지방법원이 부민동에서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하면서, 법무법인 부산도 이곳을 떠났다.
연식이 느껴지는 내부 타일.
출퇴근길, 변호사들이 오르내렸을 계단.
걍 화분.
지금은 주거용으로 쓰이고 있다고.
떠나는 순간까지 괜히 뒤돌아보게 만드는 매력 발산.
마침 점심시간. 변호사들이 휘적휘적 밥무러 나갔을 법한 주변 식당을 찾아보자.
SINCE 1947년. 변호사들이 점심 회식하기에, 일단 시대 설정은 맞다.
저탄고지가 횡행하는 탄수화물 배척시대에 밥알가득 김/유부초밥은 고난과 오욕의 세월을 견디고 있지만,
겨자장이 출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밥알의 단맛과 겨자의 알싸함이 강대강으로 으르렁대다가 어느 순간 극적 대화합을 이루는, 강렬 서사.
메인 디시, 완당면.
일본을 거쳐 부산에 정착한 완당은, 소를 만두피에 꼬집듯이 빚어 탕국에 끓여 내는 일종의 만둣국이다. 촤밍포인트는 넓고 얇은 만두피. 입술을 홀리고 넘어가는 하늘하늘 푸들푸들 만두피 질감이 일품.
쫄깃한 것들이 점령한 작금의 면식업계에서 멸종된 줄 알았던, 보들보들한 밀가루면.
다음 타자 발국수.
족타를 해서 발국수인가 했더니, 대나무 발 접시에 담겨 나온 메밀면이다.
제면 때 무슨 일을 벌인 건지, 메밀면 표면이 매끈매끈한 게 식도를 미끄러지듯 넘어감.
이만하면, 변호사님들이 점심에 해장하러 왔을 거라는 백퍼 확신이 듦.
다짜고짜 딴지 인증, 대통령 맛집(일 수도 있는) 식당으로 확정.
붓싼 풀코스 4 : 서면, 촛불 든 사람들
2019년, 검찰과 언론이 조국 일가를 탈탈 털고 있을 때. 부산 서면과 부산 지방 검찰청 앞에서 집회가 열렸더랬다.
3차 집회 당시, 서면 젊음의 거리에는 1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시민 발언, 공연이 끝나고 촛불 행진을 시작했다. 쥬디스 태화 앞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서면 사거리를 향해 갔다.
행진이 중앙대로를 지날 때였다.
공수처를 설치하라!!!
사람들의 구호에, 야외 카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들은 행렬 중간에 끼어들었다. 원래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처럼, 검찰 개혁 언론 개혁을 선창했다.
서면 사거리를 돌 때, 이번엔 대학생 무리가 시위대에 합류했다. 술 냄새가 코를 스쳤다. 저녁 식사에 반주 한잔 걸치다가 합류한 듯했다.
그 뒤로도 계속,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줄이 점점 길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행렬은 출발할 때보다 2배 길어져 있었다.
2022년 11월 26일. 같은 장소에서, '10.29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제10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3년 전 서면 집회는 그래도 포털 뉴스나 TV에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당연했다. 현장에 카메라 든 기자는 없었다. 이번 집회에도.
집회 시작은 5시.
한 시간 일찍 서면에 도착.
부산 촛불 행동 봉사자들이 윤석열 퇴진 100만 서명을 받고 있다.
훗날 역사에 길이 남을 5인방의 얼굴도 보인다.
일찍 도착한 시민들은 서명 후 플래카드를 챙겨,
자발적으로 길가에 선다.
남녀불문,
나이 불문,
청년,
그리고 아이들까지.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많다.
5시 정각.
10.29 참사 희생자 추모 묵념으로 집회가 시작된다.
5시 20분.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빈자리가 메꿔지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중간 집계 시작.
보즈아... 출발 지점에서 엘지 유쁠까지 45m니까...
딴지가 도입한, 본격 정밀 수기 계산 시스템
저녁 5시 40분. 부산 서면 촛불 집회 인원, 딴지 추산 336명(정확도 100%, 오차 없음).
공연이 시작될 즈음,
부산 시민, 젊음의 거리 접수 완료.
KT매장 라인까지 가득 채워, 1/3 인원 추가.
대략 503.
시민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대통령실 관점으로 시민 사회 동향을 파악해보자.
보고사항 1 : 진보단체가 상황 변화를 주시 중.
보고사항 2 : 정부 규탄 논리를 모색 중.
보고사항 3 : 정부를 성토하는 여론 형성에 주력.
보고사항 4 : 세월호 사고와의 연계 조짐 감지.
보고사항 5 : 정부 대응 미비점을 집중 날조 중.
보고사항 6 : 집무실 이전에 따른 관저 문제와 연계해 미흡점을 찾으려는 시도 중.
보고사항 7 : 아무튼 부산 분위기도 심상찮음. 클났음.
부산이 구우래? 그럼 2차는 낙곱새로 가자구.
6시 정각, 행진 시작.
서면 사거리 방면으로 크게 한 바퀴 돌 예정.
이렇게.
지나가던 학생이 인증샷을 찍는다.
와... 사람 개 많노.
뒷줄 찍고 다시 앞으로 뛰간다.
서면역 2번 출구 도착.
계단을 올라온 시민들은 거대한 행렬에 행리둥절.
오늘도 수고하시는 경찰 공무원분들.
안전 제일 행진.
초 겨울밤. 사람들의 구호가 서면 밤거리를 울린다.
욱일기에 경례하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행렬이 행인을 잡아끈다. 줄이 길어진다. 부산답다.
마이 참아따 마이 참아써.
6시 40분, 행진 끝.
아직 한 발 남았다.
어, 저거 뭐꼬? 항공샷 플래카드?!
다짜고짜 뛰어 올라간 근처 피씨방.
PC방 주인 : 뭡니까?
금성무스케잌 : 아.. 저 딴지일보에서 취재 나왔는데, 저것 좀 찍어도 될까요?
PC방 주인 : (내려다 보고) 그라소 마.
가까스로 성공.
윤석열 퇴진 플래카드 날리면서,
집회 마무리.
피켓을 손에 꼭 쥐고 귀가하는 시민들.
11월 26일 기준,
부산. 대구. 포항. 창원. 울산. 광주. 군산. 군제. 부안. 익산. 춘천. 원주. 수원. 제주 그리고 프랑스 파리.
국내외 곳곳에서 10.29 참사 진상 규명과 윤석열 퇴진을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언론은 최선을 다해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첨단의 첨단에 올라선 뉴미디어 시대에, 아직도 언론의 의지 하나로 이렇게 거리의 사람들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백 명은 모일까.
휑덩했던 서면거리를 보며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여기서 집회를 하는 걸 알기는 아는 걸까.
아니었다. 부산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건, 모른척하는 건, 정부와 언론뿐.
서면 현장에서 직접 들은 한 부산 시민의 외침을 용산 집무실에 전하며,
'촛불로드 부산 편' 여기서 마무리한다.
"마, 고마쎄리 다 때리뿌사삔다."
글/사진 : 금성무스케잌, 근육병아리
본지, 써먹어 주시라.
정부가 축소하고, 언론이 외면하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매주 수만의 시민이 추위를 견디며 서 있어도 대부분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담아야 할 장면과 담아야 할 생각을 기존 언론에만 맡기기에 현 상황은 후짐의 극치다. 당신의 생각, 당신의 장면을 전하고 싶다면 시간, 장소, 연락처와 함께 사연을 메일로 보내주시라.
매주 토요일, 본지가 찾아가겠다. 우린, 그러라고 있는 곳이니까.
금성무스케잌 제보 메일: jihyegong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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