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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이민자가 많다. 다민족 국가로 봐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최초의 비백인 총리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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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제 뉴스에서 이민자로 인한 폐해만 접하고 있지만(부정적인 뉴스가 잘 팔리긴 한다) 이 이민자들은 영국이 국제적 파워를 발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해가 지지 않았던 나라에서 저물어가는 해라고 영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누가 영국을 무시할 수 있을까. 영국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영연방'이며, 이 영연방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영국의 이민 정책이다. 

 

지난 편에서 이야기했지만 다시 영연방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영국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치 공화국 또는 식민지 지역을 결합한 연합체로, 총 52개의 국가가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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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Commomwealth) 회원국.

주황색 국가는 아일랜드와 짐바브웨로

옛 영연방 회원국이었던 국가다.

 

이 중 영국의 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국가는 영국을 포함,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며 이들은 따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이라 한다.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며 이들의 수장은 찰스 3세가 되었다.  

 

영연방은 UN과 같은 여타 국제기구처럼 의장국, 상임이사국과 같은 지휘체계가 존재하지 않고 강제력 있는 기구도 아니다. 여러 국가가 자발적으로 모인 연합체이니만큼 공식적인 수장국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국을 중심으로 뭉친 연합체인만큼 영국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때문에 영연방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영연방을 유지&공고하게 하는 것이 영국 왕실의 중요한 임무다.

 

 

영국의 문화외교

 

영국은 영연방 국가들과 외교를 할 때, 주로 ‘문화외교’를 사용한다. 군사력이 아닌 문화, 가치관, 사상을 통해 설득하는 능력을 소프트 파워라고 한다. 제국주의적 외교의 시대가 갔고, 과거의 패권도 사라지며 영국은 이런 소프트 파워를 통한 외교를 발전시켰다. 문화를 교환하고 자신들의 소프트 파워를 퍼뜨리며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및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문화외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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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문화외교에 대한 기사

제목 : 문화 외교와 소프트 파워

<출처 링크>

 

영국은 문화외교에 많은 신경을 쓴다. 현 보수당 정부는 경제적으로 국내 상황이 굉장히 어려움에도 2027년까지 GDP 대비 약 2.4%의 예산인 약 1억 5천만 파운드를 문화외교(Cultural Diplomacy)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문화외교는 세계 제1차 대전 이후인 1916년 당시, 세계에 본국의 문화를 많이 퍼뜨렸던 영국과 스페인 간 우정 협정(Anglo-Spanish League of Friendship)을 맺으며 시작된다. 영국과 스페인, 두 국가는 과거 해상주도권을 위한 라이벌 구도의 관계였고, 18세기를 시작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둔 나라 중 대표적인 국가였다. 

 

두 나라 모두 세계 전반에 걸쳐 많은 식민지를 만든 나라였던 만큼, 영향력은 막대했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전후로 국력이 약해진 것과 더불어 민족자결주의라는 이념으로 인해 제국주의 국가로서 영향력은 약해져 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두 나라 모두 ‘문화외교’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주도권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려 했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 더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영국이다. 스페인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영향력이 집중된 반면, 영국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 세계에 걸쳐 영향력이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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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국과 식민지 국가들 (미국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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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스페인과 식민지 국가들

 

부족해진 젊은 남성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이유이긴 했지만,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본격적으로 이민 정책을 시행, (특히 영연방 국가 출신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이 점은 영연방 국가들과 외교하는데 큰 이점으로 작용했고, 문화 외교의 효과를 증폭시켰다. 이 외에도 영국은 영연방 국가들과의 외교를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우리 인식 속엔 여전히 불량국가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지만, 영국은 과거 자신들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에게 여러 지원을 하고, 활발한 교역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모여 스페인은 과거의 식민지였던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잃은 반면, 영국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화외교를 바탕으로 영국은 현재 세계 3위의 소프트 파워를 가진 나라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 5억여 명의 시청자를 가진 공영방송 BBC(한국에서의 인기가 남다르다!)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등을 바탕으로 지금도 ‘영국’이란 브랜드 가치를 퍼뜨리며 말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국내 문제들도 생겨났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수정하여 이민자 수를 줄일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영국이 지금과 같은 문화외교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을 것이다. 영국이 택한 방법은 다른 부분을 보완하여 이민 정책으로부터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 해결책 중 하나가 ‘CCTV’다.

 

 

영국 이민 정책의 마인드 ‘Give and Take’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는 도시는 어디일까. 미국의 USNEWS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대 도시 중 중국을 제외한 으뜸은 단연 런던이다. 도시의 인구수와 전체 CCTV 개수를 비교해 1,000명당 몇 대의 카메라가 작동되는지 순위를 매긴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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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USNEWS> 링크

 

다른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해 낸 곳도 있다. 인도타임즈(Indiatimes). 해당 언론사는 면적당 CCTV 갯수를 계산해서 통계를 냈다. 이 자료에서는 런던이 2위로, 1위인 인도의 델리 다음으로 CCTV가 많이 설치된 도시로 나타났다(출처 링크). 평방마일당 CCTV가 1,138.48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1mile=1.609344kn).

 

중국과 인도가 각각 14억의 인구를 보유한 인구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를 운영하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그중에서도 런던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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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때문이다.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런던은 전체 인구의 약 70%가 외국인이다.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영국에서 출생하지 않은 이를 외국인 수에 포함하면 더 많다. 

 

세계대전 후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이제 런던은 각각 300여 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소수 언어 포함. 영연방 유지의 비밀 3: 이민 정책은 어떻게 영국의 영향력을 유지시키는가 - 참고 링크) 서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엄청난 치안 유지 문제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 이후부터 전투적으로 CCTV를 설치했다.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등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종국엔 의회에서도 허가하여 엄청나게 많은 양의 CCTV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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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Get Licensed>

 

런던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1980년대 미국에서 발생했던 LA 흑인폭동과 비슷한 사건들이 수없이 많았다. 1970년대에는 런던의 범죄율이 심각한 수준으로 올라가며, 기존 영국인들과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민을 까다롭게 하여 이민자 수를 제한하는 방법 대신 CCTV와 같은 다른 해결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했고, 차별도 (존재했지만)없애려고 노력했다. 이런 방향에는 ‘그동안 남의 땅에서 많이 빼앗고 성장했으니 이제 우리도 남을 받아들이고 베풀어야 한다’는 방향성이 있다. 

 

 

이민 정책이 준 선물, 브랜드 파워

 

CCTV 이외에도 치안유지를 위해 필요한 정부 예산은 천문학적이다. 경찰 수도 늘려야 한다. 비자 시스템 개발과 이를 위한 인력개발, 이민자들을 위한 복지정책도 필요하다. 늘어나는 학생 수와 영어 교육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교육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이 외에도 사회/문화/정치/경제/교육 등 각 분야별로 이민자들을 위한 정책 마련 및 실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해야 할 게 굉장히 많다. 무척 힘든 일이고, 많은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영국은 지속적으로 투자했고 노력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함께 변해갔다. 이로 인해 영국의 중심지인 런던은 세계의 대표적인 국제도시,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난다. 관광이든, 유학이든, 거주든, 런던을 경험한 이들은 늘어났고, 직접 와서 보고 느끼고 생활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영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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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전투적인 이민 정책을 통해 영국은 브랜드 파워를 얻게 된 것이다.

 

 

영연방을 유지해주는 브랜드 파워

 

영연방은 영국이 억지로 끌어들여 만든 기구가 아니다. 제국주의가 종식되고 대부분 영국 식민 지배를 받던 국가들은 독립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진해 영연방이라는 기구를 조직해 갈등을 봉합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본인들 스스로가 모여 영국을 중심으로 뭉치자 했던 것이다. 영국이 쓸데없이 형님(?) 노릇을 하려하거나 식민지에 대한 반성 없이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일이다.

 

물론, 지휘체계가 존재하진 않지만, 실질적으로 영연방은 영국이 주도한다. 그리고 영연방 국가 중 영국의 국왕을 군주로 명시하는 나라는 여전히 존재한다. 즉, 영향력은 건재하다. 식민지 시절을 겪었던 한국인 입장에선 '아니, 자존심도 없나? 과거 식민지였는데 지금도 기는 거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는 국제사회에서 철저하게 실보다는 득이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까지 영국이라는 이미지, 영국이라는 브랜드 파워와 함께 하면 국제 사회에서도 득이 되기 때문에 모인다는 말이다. 

 

영국도 이 브랜드 파워가 유지되어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힘은 이민자에 대한 영국의 태도에 따라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다. 해서, 영국은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투적인 이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나가는 짤막한 뉴스만 볼 땐, 영국이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이민정책을 고집하는 이유가 의아하지만 영국도 나름대로 수십 년에 걸친 논의와 시행착오를 거쳐서 국익에 가장 이롭다고 판단한 것이 지금의 정책인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