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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7. 수요일

그럴껄+bitterun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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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terunsweet의 뜨거운 감상 - about mad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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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dinsky, 1913>



70이 넘은 어르신들이 꼰대질 하기에 급급한 나라에서 살다보면, 내가 뭘 하다 지금의 모습이 된 건지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남들이 하는 걸 따라가기도 지치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 진절머리 나는 애잔한 자화상을 마주하며 지키기도 수백 번.


나는 가난해도 세상은 좋아졌고, 돈은 남들이 벌지만 작게나마 돈 쓰는 재미라도 느껴보고자 슈퍼 영웅들이 떼거지로 나오는 영화, 잘생기고 예쁜 사람 많이 나오는 영화들을 봤다. 문화생활 한답시고 이렇게 애써 사람들이랑 말 한마디라도 섞어 보려는 생각도 있었고. 그렇게 대자본이 만든 극장에 앉아서 틀어주는 영화나 구경하러 따라 다닌 지 몇 년 째.


그러다 문득 어떤 영화 한편이 내가 이래서 영화를 좋아 했구나, 이런 게 극장에서 큰 소리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재미구나 알려주더라. 나이 70먹은 할아버지가 만든, 30년 전 작품을 다시 만든 그 영화가.


<매드맥스> 시리즈는 처음부터 원초적인 영화였다. 제작비가 없어서 연기도, 배우도 다 어설펐지만 카체이싱(car-chasing: 자동차 추격) 하나만은 똑바로 만들라고 애쓰던 1. 1편의 성공으로 번 돈을 써서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서 걸작이 된 2. 이래저래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 영화 저 영화 섞어버리다 산으로 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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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1 1979>, <매드맥스2 1981>, <매드맥스3 1985>


<매드맥스>가 시리즈는 망했고, 2편은 걸작이라고 할 만 하지만 별로 볼 필요는 없는, 영화사 서적에서나 기록될 시리즈 영화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외국인 할아버지는 꼬마 돼지나 펭귄들이랑 놀면서도 정신과 열정은 하나도 안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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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돼지 데이브>와 <해피 피트>를 제작한 그가 <매드맥스>의 감독 조지 밀러

출처 - 네이버 영화


<매드맥스:분도의 도로>는 목적이 확실한 영화다. 때리고 부수고. 시끄러운 엔진음에 뜨거운 사막.기름 냄새, 땀 냄새, 목마름. 그걸 관객에게 전달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영화는 모든 걸 단순화 했다. 이야기, 인물, 관계까지. 심플하게 뺄 수 있는 부분은 줄이고 또 줄였다. 이 영화의 대사를 다 모아봐야 시나리오 20페이지도 안 될 거 같다. 인물들은 다들 츤데레라 자기 할 일만 한다. 그러다 딱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연결된다. 여기저기서 터지고 달리는 자동차들은 따로 놀 것 같지만 모아 놓으니 오히려 강렬하다.


<매드맥스>는 시리즈이지만 시리즈라고 하기에는 연속성이 애매한, 조금씩 다른 성격의 영화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일정한 방향성은 계속 유지했다. out-in-out 의 반복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들어가고 나가고 들어간다. 각각의 동선에는 딱 필요한 만큼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이 단순한 구조를 끊임없는 액션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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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는 어떤가? 인간 스턴트맨보다 디지털 스턴트맨, 제작의 편의성과 화면의 화려함으로 채워지는 그래픽, 촬영기간 보다 몇 배는 더 길고 비싼 후반작업, 찍은 건지 그린건지 모를 화면들 일색이다. 수만 명의 엑스트라를 들판에 세워놓고, 스턴트맨이 다치더라도 실제로 마차를 부딪히며 찍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현장감 같은 건 이제 없다고 모두가 단정 짓고 있던 시대였다.


이 와중에 <매드맥스>는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단순한 쾌감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쉬지 않고 달려 나가는 위대한 감독을 바라보는 경이로움을 영화에서 맛볼 수 있다. 100년 전,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스크린 위에서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놀라서 피하던 관객들, 그 사람들이 스크린을 향행 느낀 경외감과 같다.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는 본질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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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화로 꼽히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당시 관객들은 영사기에 비친 영상을, 진짜 열차가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여 도망갔다고 한다


그런데 관객이 문제다.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게들 살다보니,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페미니즘, 포스트 아포칼립스, 자원 문제, 종교적 상징성, 매니악한 장르적 영화까지. 전체 보다는 요소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집착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보지도 않은 영화에 편견을 가지고 무시한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다른 영화를 보게 되고, 극장은 벌써 스크린 수를 줄이려 한다. 그 줄어든 스크린을 채우는 건 봐도 모르겠고 안 봐도 알겠는 거기서 거기인 영화들.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매드맥스>는 극장에서 보시라. 3D, 4D, 아이맥스 보다 클래식하게 2D에 소리 큰 극장에서 보시면 된다. 앞으로 적어도 5년 동안은 이런 영화관람 못 할 거다. 그저 극장에 편히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건 그냥 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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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껄의 차가운 감상 - out of mad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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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rian, 1929>



1. 개가 똥을 못 끊듯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시타델은 임모탄의 몸에 난 종기처럼 부패의 사슬이 끊임없이 엉켜있는 도시다. 자원이 없는 세상에서 식물을 지배하고, 기름을 지배하며, 물을 파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그가 부패하지 않길 바라는 건 개가 똥을 끊길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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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임모탄


건강한 여자와 자원을 독식함에도 어떻게 그가 어떻게 사람들의 저항 없이 살 수 있었냐고는 물어보지 말자.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우리는 독재의 씨앗이 어떻게 집권하는지를 눈으로 직접 목도했으니.



2. 시타델 주민이나 우리나


폭등했던 부동산 열매의 부채의식 때문에 군사정권을 지지했던 자들의 자녀들은 이제 집을 포기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부모는 유일한 노후대책인 집값이 떨어질까 전전긍긍이고, 자식들은 결혼해서 살 집이 없어 애 낳기를 포기한다. 이 기가 막힌 아이러니의 시작은 ‘나만’ 혹은 ‘나도’로 시작되는 작은 이기심이었다.


자원에는 주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누구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다. 시혜를 베풀듯 하층민들에게 찔끔 물이나 뿌려주고는 많이 마시면 중독된다고 이내 끊어버리는 임모탄의 행위는 지탄받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은혜’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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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를 5분만 돌리면 양적완화를 종료하는 미국의 정책 덕분에 금리가 조만간 급하게 오를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벽을 향해 돌진하는 막차에 초저금리(그것도 변동)로 올라타라는 정부의 속삭임이 ‘시혜’인양 들리는 까닭은, 그동안 자녀의 미래를 담보해서 무위의 소득을 올린 경험이 있는 학습 때문이다.



3. 우리가 환호하는 열풍에는 경향이 보인다


거칠게 생각해본다면 최근 '국제시장'의 거부감과 '토토가'의 환호와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의 열광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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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0대에게 자신의 노후를 위해 부동산을 강매하려는 5, 60대의 이기심은 현 정부를 낳았다. 그렇기에 가난한 자식세대에 의지하지 못하는 외로운 이들의 불안함은 오롯이 세상과 단절된 채로도 '알콜달콩'하게 살 수 있다는 한 노부부의 판타지에 열광한다.


이해찬 세대를 겪어낸 현재 1, 20대의 보수화의 배경에는 노무현 정부 때도 막지 못한 가파른 등록금 상승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졸업할 때부터 채무자의 신분으로 세상에 나온다. 이러한 1, 20대와 단절된 3, 40대의 불안감은 자신들을 20대로 회귀시켜줄 대상을 찾다 '토토가'와 '응답하라'의 뽕을 맞고 그 불안을 지운다.


5, 60대는 '국제시장'에 핏대 올리며 우리가 이렇게 살아냈다고 자위하고 3, 40대는 '변호인'을 보며 지켜내지도 못한 노무현을 떠올리며 땅을 치고 후회한다. 더불어 1, 20대의 우경화와 정치외면은 기성세대가 싸놓은 이기심이라는 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5, 60대는 3, 40대에게, 3, 40대는 1, 20대에게 채무가 있다. 우리는 그 채무의 변제를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받고 싶어하지만, 잠깐의 현실도피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매드맥스는 그 지점 너머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MTV에서 시작된 뮤직비디오를 통해 우리는 기승결을 뺀 ‘전’만 가진 플롯을 어떻게 즐기면 되는지 학습했다. 그러니 이 노련한 노년의 감독은 소위 ‘신자유주의’사회의 모순으로 인해 결핍된 욕망을 채우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의 코드가 세계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우리와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4. 미생 속의 맥스


맥스의 삶은 무한경쟁에 놓인 우리의 자화상이다. 자신을 옭아매는 회사에서 탈출하고 보니 대출금과 카드 값이 존나 무섭게 우리를 쫒아오고 있다. 도망치는 와중에 겁나게 이쁜 누나들을 만나 무임승차하게 되고(물론 여기서부터는 구운몽) 녹색 땅으로 가는 여정을 찾아가지만 녹색 땅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다시 사장 의자를 찬탈하러 가는 몽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만 설교하지 않는 대신 몸으로 보여준다. 한 편의 무언극처럼 영화는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면서 우리가 어떤 시대에, 어떤 비겁함으로, 얼마만큼 타협하면서 사는지 박박 벗겨내 버리고 만다. 브레이크가 없는 것은 비단 화면뿐만이 아니다. 빨간 비닐내복의 손끝에서 끊임없이 연주되는 ‘롸킹’한 사운드는 40줄 넘은 아재들 전립선도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마력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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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기타 사운드를 자랑하는 빨간 내복의 기타리스트


이 거대한 스케일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줄의 대사도 없이 만들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건 놀라움을 너머서는 무엇이다.



5. 원래 인생은 세 줄 요약

 

매드맥스 봐라.

 

매드맥스 두 번 봐라.

 

거기 주민들이 우리들이거덩.










그럴껄+bitterun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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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