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언제 다시 하향곡선을 보일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전기, 가스 요금이 급등했다. 하지만 우리네 임금은 작년과 그대로. 올라도 그 상승폭은 미세하다.
<출처 - 연합뉴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산 상위 20%가, 하위 20%의 64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2년 이후로 최대치다. 자본주의 최극단에 이른 지금, 노동자 계층이 가장 먹고살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 화물 연대 파업이 있었다. 지역 화물차 9백여 대가 운행을 중단하며 정부와 교섭을 요구했다. 대부분 업체가 파업을 대비해 물건을 조기 출하한 덕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일상생활 침투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에서 '파업'은 많은 국민들의 이유 없는 반발심을 일으켰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길. 기사님은 파업 현장을 보고 여지없이 말을 꺼낸다.
"어이구. 우리나라는 큰일이야. 강성 노조 때문에 나라 경제가 말이 아니야."
"귀족 노조들은 갈아엎어야 돼. 정부가 잘하고 있어."라는 반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영국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철도, 병원, 우체국 등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노조 파업이 시작됐다. 시민들의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하지만 이를 대하는 정부의 대응, 국민의 태도 모두 우리와 다른 양상을 띤다.
영국 노조 파업 현장
<출처 - AL MAYADEEN>
트레이드 유니언(Trade Union)이라 불리는 영국의 노동조합은 시민 사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리고 두 개념은 역사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오늘은 영국 초기 사회주의부터 그것에서 비롯한, 노동조합의 역사와 연방 유지 비결을 연결해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자 파업은 곧, 나의 권리 쟁취
먼저 영국 지하철 파업을 보자. 영국의 지하철은 1863년에 개통되어, 현재 150년을 훌쩍 넘긴 노후된 터널을 사용 중이다. 그래서 영국 국민들에게, 출퇴근 전 지하철 정상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파업이 겹치는 날이면, 평소보다 더욱 세심하게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 운행 정보 알림 사이트
위 사진은 12월16일 업데이트된 자료다. 파업이 시작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어떤 노선이 하루 종일 운행을 중단하는지, 일시적 중단인지 혹은 연착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잠정적 운행 중단 같은 애매한 정보는 없다. 파업 일정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노동조합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파업을 지지하는 국민의 수가 상당하다.
무려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산책길에서, 출근 중인 지인을 만났다.
나: "왜 다들 버스 정류장에 나와 있는 거야? 지하철 안 타?"
지인: "오늘부터 지하철 파업 시작했어. 지금 버스 타야 정시에 출근할 수 있을걸?"
나: "불편하겠다. 귀찮게 됐네?"
지인: "전혀. 불편한 건 잠시 감수하면 되지만, 급여가 오르지 않으면 1년 동안 고생하잖아?"
파업 당일, 영국 지하철 상황
<출처 - The Independent.co.uk>
또 한 번은 런던에서 직장 생활을 할 당시 있었던 일이다. 파업 때문에 지각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차는 오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역사로 들어왔다. 잘못하면 줄줄이 밀려 사고가 날 것 같았다. 그때, 역사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민들은 내용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르신과 잠깐 대화 나눌 기회가 있었다. 파업때문에 불편하지 않냐는 내 질문에, 그는 십 년 전 지인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상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마땅하다고.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나에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파업이 일상화된 국가의 시민들이 '노동'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랬다.
영국의 사회주의 활용법
한국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여전히 팽배하다. 이념 전쟁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매카시즘으로 비롯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캐치프레이즈는, 한국 국민들에게 지금도 굳건히 공포와 반감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반일 감정을 집어삼킬 만큼 강력한 반향이 된다. 반면 영국에서 이러한 이념은, 사회 운동이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초기 사회주의는 기독교(감리교)인이자 성공한 사업가, 로버트 오웬(Robert Owen)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방직 공장을 운영하며 큰 사업적 성과를 이뤘다. 그 과정에서, 동료 자본가들의 노동 착취 현장을 목도했다. 그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동안, 사회적 약자 계층인 노동자, 여성, 아이들은 혹독한 노동 환경에서 근무하며 생업을 이었다. 오웬은 산업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현시대 노동조합의 원형인,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가 꿈꿔온 이상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수십 년간 그의 노력은 노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출처 - britannica>
산업 혁명 시기, 노동 현장은 가학적이었다. 남녀노소 불문, 하루 20시간 넘도록 노동에 시달렸고, 사고가 발생하면 이는 노동자 개인의 실수로 기록됐다. 사측에 책임을 물 수 없는 시대였다. 오웬 2세대들은 직종 별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이름이 바로, 전국노동조합 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이다. 이 조직은 운영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영국은 노조를 만드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당시, 노동자들은 본인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물건을, 시장에서 비싼 가격을 주고 사야 했다. 이를 막기 위해, 노조가 움직였다. 노조는 사측의 가격 단합을 막고, 추가적인 노동자 착취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이는 사회주의 이념과 맞닿은 부분으로, 영국이 '노조의 힘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한' 시초라 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시위 현장
<출처 - KQED>
이러한 사례는 현대 영국 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 예로, 1960년대 루스 글라스(Ruth Glass)에 의해 명명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있다. '중간 계급이, 도심과 도심 주변의 저소득 주거지에 오래된 주택을 수리하고 이주함으로써 기존 저소득층을 대체하는 과정'. 산업 혁명 시대의 '노동'이, 현대 사회에서 '주거'의 형태로 변모해, 사회적 약자에게 고충이 가해졌다. 두 시기 모두, 이를 극복하는데 지역, 노동자 연합, 협동조합이 역할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결국, 노동자들의 더욱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노동조합 역사는 300년을 훌쩍 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곧 나의 투쟁이 된다는 걸, 긴 시간 체험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성공적인 권리 쟁취를 응당한 일로 여기는 영국 국민의 태도는, 위와 같은 역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노동이 가치로운 나라
영국 연방의 유지 비결을 다룬 이전 편들에서는, 이민자에 대한 영국인의 시선과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다뤘다. 영국의 속국 생활을 하던 외국인들이, 영국으로 넘어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기까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동'에 대한 영국의 인식이었다.
영국 이민자의 차별 반대 시위 현장
<출처 - 가디언즈>
차별과 학대가 존재했던 과거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영국은 대안을 마련해, 수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다양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국가 발전과 개인 역량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참고기사: <영연방 유지의 비밀 3 - 영국의 이민정책> 링크).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앞으로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참고해 볼 부분이기도 하다.
50여 개국이 넘는 국가들이 스스로 영국 연방 국가로서 코먼웰스 조직에 가입했다. 이는 영국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만악의 근원'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무시무시한 일을 벌였던 것도 사실이고 이제 선진국이 된 한국 입장에선 브렉시트 이후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영국 따위(?)에게 뭘 참고할 게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먼저 겪고, 먼저 골머리를 앓아 봤다는 것에서 참고할 부분이 많다.
특히 노동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한국의 현실에서 일하러 온 이민자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은데, 노동조건까지 좋지 않다면 유입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현재 일본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국가 재정도 서서히, 악화된다. 한국의 미래는, 노동인구가 줄기에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국가 재정이 바닥을 보여 고생,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그 돈을 메꿔야 해 고생이다. 여러모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
파업에 관대한 나라는 빨갱이의 나라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탄생지인 영국이 그랬듯, 한국이 미래에 살아 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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