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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1945

 

"국가, 국민을 지켜내겠다는 총리대신으로서의 사명을 단호히 완수해 나가겠다는 결의로 국가안보 전략을 개정했습니다."

 

2022년 12월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발언이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미국은 이례적으로 빨리(아주 신속하게, 아니 미리 준비했다는 듯) 성명을 발표했다. 새벽 시간에 그것도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가 동시에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덤으로 국방부도 끼어들었다. 하긴, 국방부가 빠지면 섭하지).

 

"우리와 우리의 파트너들이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 번영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적인 새 국가안보 전략에 대해 기시다 총리와 일본 국민에게 축하를 보낸다."

-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의 발언 中

 

"일본의 새 전략은 인도·태평양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증진하고 질서에 기반한 규칙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 동맹의 능력을 재구성했다."

- 국무부 대변인 베단트 파텔의 발언 中

 

"(미일)동맹은 인도·태평양 평화와 번영의 초석으로 남아 있으며, 미국은 양국 전략에 명시된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 미국 국방성의 성명 中

 

미국은 환영 일색이다. 하긴 얼마나 기쁘겠는가? 일본은 미국의 파트너로 대(對) 중국 방어선의 핵심 축이다. 그런데 언제나 전수방위 원칙에 가로막혀 ‘반쪽짜리’ 군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제 대놓고 싸울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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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도쿄 육상자위대 주둔지를 방문해

10식 전차에 탑승하고 있다.

출처-<링크>

 

전수방위, 그리고 자위대

 

<일본 국가 안보 전략>이란 건 간단히 말해서, 국가안전보장 전략, 방위계획 대강, 중기 방위력 정비 계획 3개를 묶은 거다. 즉, 국가 군사력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계획하고, 이 계획을 통해 나라를 어떻게 지켜나갈 건가를 정리한 거다.

 

일본은 9년 만에 이걸 개정하면서 아주 중대한 ‘변화’를 추진한다. 바로,

 

"자위대의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부여"

 

이다. 1988년 고단샤에서 나온 <침묵의 함대>란 만화가 있다. 만화 좀 보신 분이라면 제목이 눈에 들어올 거다. 카와구치 카이지(꽤 유명한 분이다)가 그린 이 만화를 보면 일본 자위대 함대가 두들겨 맞아 가면서도 끝까지 함포 사격을 주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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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좀 봤으면 알만한 "침묵의 함대"

인기가 어마어마해 애니로도 나왔다.

출처-<링크>

 

당시 카와구치 카이지는 이 만화를 통해 일본의 ‘전수방위’에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이래도 돼?"

 

(카와구치 카이지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전수방위’에 끈질기게 의문을 표했고 그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전수방위(専守防衛). 간단히 말해서 일본은 적이 침공해 오더라도 그 방위력 행사에 제약이 걸린다는 거다. 즉, 자위대를 포함한 일본의 모든 전략자산은 일본의 영토·영해·영공 방어만을 위해 사용되며 그나마도 적이 일본을 공격한 후에, 일본 영토 안에서만 행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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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프랑스 파리 열병식에 참여한 자위대

출처-<링크>

 

미국이 헌법을 만들어 준 나라, 일본

 

이 전수방위 전략은 자위대 창설과 그 맥을 같이 한다. 6.25 전쟁으로 기사회생한 일본에 공산주의가 득세하자 미국 전략이 틀어진다. 농업국가로 만들려던 일본을 공산권 세력을 막아내는 방파제로 역할을 바꾼다. 문제는 일본이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전범국가’란 점이다. 이미 평화헌법이 1946년 11월에 공포되지 않았는가? 이 평화헌법 9조를 보면,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라고 나와 있다. 이 9조는 사실상 일본이란 나라의 ‘성격’을 규정한 조항이다. 일본 헌법의 1조부터 8조까지는 덴노(天皇)의 지위가 어떻고, 세습은 어떻게 하고, 황실 재산은 어떻게 한다 등, 덴노에 관한 이야기다. 즉, 실질적인 헌법 1조가 바로 9조다. 그런데 그 9조 내용이,

 

"우리는 전쟁 안 할 거고, 군대도 안 만들 거야."

 

라는 거다. 당시 일본이 전범국가란 걸 고려하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국제정치에서 주권이란 곧 군사력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일본이란 나라는 모래성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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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무대신

출처-<위키피디아>

 

늘공을 군인으로 만들려는 야심 

 

결국 자위대가 만들어졌으니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자위대는… 좀 애매하다. 군대인데, 군대가 아닌 뭔가 좀 공무원스러운 조직이다(자위대 장갑차량이 훈련하러 나가면 일본 경찰이 딱지 떼는... 그런 곳이다). 그래도 얘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전투기에 전차, 군함까지 가질 건 다 가진 조직이란 점이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군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이 자위대의 성격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이거 군대잖아!"

"이름만 바꾼 유사 군대!"

"그럼... 평화헌법 위반 아냐? 일본이 다시 전쟁하는 거 아냐?"

"일본은 육·해·공군 전력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이런 논란이 불거지자 자위대의 창설 이듬해인 1955년 7월, 당시 방위청 장관인 스기하라 아라타(杉原荒太)가 쌀로 밥 짓는 소리를 내뱉는다.

 

"외국을 공격하지 않을 거고, 그래! 자위대는 오로지 방위에만 올인할 거야. 봐봐라 쟤들이 어떻게 외국으로 쳐들어가냐? 다들 걱정 붙들어 매!"

 

이렇게 설레발을 쳤고, 이게 1960년대에 들어가면 방위전략으로 굳어지게 된 거다.

 

"정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 아니냐? 자위대 영상 보니 가질 거 다 가진 거 같던데?"

"그래, 군함에 대포도 달려 있고 전투기에 미사일도 달려 있었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무기란 게 다 같은 무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전투기와 폭격기가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전투기가 훨씬 더 멋있고 대단해 보일 거다(탑건의 F-14 같은 거). 미사일 주렁주렁 달고 다니지만, 결국 적 전투기를 상대하기 위한 무장이다. 즉, 지상의 기지나 항공기를 공격하는 게 아니다(물론, 기관포로 쏠 수 있겠지만...). 전투기에 폭탄을 달 수도 있고, 공대지 무장을 장착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걸 장착할 수 있을 때의 일이다.

 

반면에 폭격기를 보자. 이건 명백하게 적의 영토로 들어가 폭탄을 떨구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기체다. 아니면? 쓸모가 없다. 일본의 입장에선 전투기에 대공 미사일을 달고 날아오를 순 있지만, 이 전투기에 폭탄과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고 적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제한이 걸려 있다.

 

우리가 미친 듯이 찍어내고 있는 탄도미사일을 생각해 보자. 미사일은 명백히 말해서 ‘공격무기’다. 작정하고 적을 타격하겠다고 만든 무기이다. 일본은 이런 미사일 전력이 상당히 뒤떨어진다(일본 NHK가 일본의 공격 미사일 운용기지를 취재하러 갔다가 입구 컷 된 영상이 꽤 유명하다. 우리가 보기엔 별거 아닌 수준의 미사일인데, 일본 자위대 입장에서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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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공자위대의 F-4 팬텀과 F-35A

출처-<링크>

 

즉, 때리면 막을 무기는 있지만 상대를 때릴 무기가 부족했던 게 일본 자위대이다. 이번에 <일본 국가 안보 전략> 수정 전후로,

 

"앞으로 10년 안에 음속 5배 이상의 극초음속 유도 미사일을 개발할 거다!"

"12식 지대함 미사일을 개량해서 사정거리를 900킬로미터 늘이겠다!"

"당장 적을 타격할 무기가 필요하다... 내년에 2조 원을 들여서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00기를 살 예정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공격무기를 늘려가고 있다. 그동안 전수방위 족쇄에 묶여 있던 일본이 작정하고, 공격무기들을 개발하고, 사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