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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삶의 한가운데 : 소녀를 사랑한 중년 남자의 인생

 

(27) 아내가 결혼했다 : 두 남자와 결혼한 여자

 

(28) 변신 : 버러지가 된 가장의 비극적 인생

 

 

소설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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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음사>

 

등장인물 히스클리프의 집 이름 ‘워더링 하이츠’에서 ‘워더링’은 이 지방에서 사용하는 함축성 있는 형용사다. 폭풍이 불면 위치상 정면으로 바람을 맞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 대기를 표현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워더링 하이츠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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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2012)>

 

워더링 하이츠가 위치한 언덕은 바람이 거셌다. 전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가시나무는 태양의 자비를 갈망하듯 모두 한 방향으로만 가지를 뻗고 있었다. 워더링 하이츠로부터 2마일 떨어진 곳. 그곳에는 ‘드러시 크로스’라 불리는, 히스클리프 소유의 저택이 있었다. 

 

세상과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싶었던 ‘록우드’는 드러시 크로스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그는 집주인 히스클리프에게 인사 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하늘과 언덕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바람과 눈발이 매섭게 휘날렸다. 궂은 날씨 때문에, 록우드는 예상치 않게 워더링 하이츠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그는 그 집의 사나운 개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이상한 차를 마셔야 했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일에 대한 집주인 히스클리프의 무례한 태도에 격분했다. 가정부를 따라 계단 위,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그날 밤, 자신이 머무를 방을 훑어봤다. 방안 곳곳에는 페인트를 긁어 쓴 글씨들이 있었다. ‘캐서린 언쇼’. 똑같은 이름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록우드의 몸은 으스스 떨렸다. 현기증이 났다. 이내 졸음이 몰려왔고, 미몽 속에서 헤맸다. 꿈을 꾸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다.

 

누군가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얼음처럼 싸늘한 작은 손이었다. 이어서 흐느끼는 듯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이름은 ‘캐서린 린튼’이며 방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했다. 록우드는 공포에 휩싸여 고함을 질렀다. 그의 큰 소리에 집주인 히스클리프가 나타났다.

 

록우드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악몽이었다. 무서운 꿈을 꿔 잠결에 소리를 질렀다고, 히스클리프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꿈을 꿨는지 이야기했다. 내용을 들은 히스클리프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침대 뒤로 꺼지는 듯하더니 마침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올랐다. 창문을 열고 울음을 터뜨렸다.

 

"들어와! 들어와!" 그는 흐느꼈다. "캐시, 제발 들어와. 아, 제발 한 번만 더! 아! 그리운 그대,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주오. 캐서린, 이번만은!"

 

록우드는 당황스러웠다. 아침이 되자, 그는 워더링 하이츠를 뒤로 하고 자신의 집, 드러시 크로스로 돌아왔다.

 

인간이란 얼마나 허황한 바람개비같이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진이 빠지는 하루였다. 집을 구하고 처음 한동안은, 세상과 떨어져 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한 자신의 운명에 감사해했다. 하지만 지난밤 이후, 그는 이상하리만큼 몸이 지쳤다. 무기력한 육체는 그를 우울과 고독에 시달리게 했다. 이때, 가정부 ‘엘렌 딘’ 부인은 구세주처럼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18년 동안 두 집,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시 크로스 살림을 맡아왔다. 록우드는 엘렌 부인으로부터 이곳에 감춰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였다.

 

주어 온 집시 아이, 히스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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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 씨가 리버풀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는 누더기를 걸친 새까만 머리의 더러운 아이와 함께였다. 리버풀 거리에서 굶주린 채, 말도 못 하는 아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고 했다. 비록 얼굴색이 까맣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자고 그는, 아내를 설득했다.

 

캐시(캐서린) 아가씨는 약속한 말채찍을 잃어버렸다는 말씀을 듣고는 화를 내며 그 바보 같은 어린아이에게 이를 드러내고 침을 뱉었어요.

 

그는 주어 온 아이를, 어린 나이에 먼저 죽은, 자신의 또 다른 아들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언쇼는 온종일 이 아이에게 정신이 팔렸다. 14살, 그의 장남 힌들리의 바이올린이 부서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막내딸 캐서린과 약속한 말 채찍도 잃어버렸다. 

 

언쇼가 히스클리프를 아낄수록 아이는 집안의 미움을 받았다. 특히 장남 힌들리는 히스클리프에게 거침없이 증오를 표현했다. 아이답지 않은 무서운 반응이었다. 히스클리프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은 존재였다. 언쇼 부인이 죽자, 히스클리프를 향한 힌들리의 학대는 더 심해졌다.

 

이 상황에서, 히스클리프는 아이답지 않은 참을성을 보였다. 힌들리에게 두들겨 맞아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집안 하녀들에게 꼬집혀도 눈을 깜빡이며 참았다. 히스클리프가 유일하게 본 나이로 돌아간 모습을 보일 때는 또래였던 캐서린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캐서린은 아름다운 눈과 앳된 웃음을 가진 예쁜 소녀였다. 한때 히스클리프에게 침을 뱉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그와 들판에서 시간을 보내며 점점 친해졌다. 캐서린도 히스클리프가 좋아졌다.

 

10월 어느 날 저녁, 언쇼 씨는 난롯가 의자에 앉은 상태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를 듣고,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장남 힌들리가 돌아왔다. 몰래 결혼한 자기 아내를 데리고. 힌들리는 워더링 하이츠의 새 집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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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힌들리가 돌아오자 가장 먼저 히스클리프의 지위가 바뀌었다. 언쇼 씨의 양아들에서 하인으로. 그의 처소는 하인들 방이 되었고,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해야 했다. 글을 배울 수 없게 된 히스클리프에게, 캐서린은 자신이 배운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밭에서 함께 일하고 놀았다. 힌들리에게 이 사실을 들킬 때마다, 히스클리프는 매질을 당했다.

 

그분이 그러한 책망을 듣고 한 일은 히스클리프에게는 매질이었고, 캐서린 아가씨에게는 점심이나 저녁을 굶으라는 명령이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히스클리프는 모든 고난을 참아냈다. 캐서린과 벌판으로 달아나 놀 수만 있다면, 그에게 매질과 가혹한 노동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일이었다. 

 

숙녀가 된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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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그 시기, 드러시 크로스에는 ‘린튼’씨가 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드러시 크로스까지 달리기 시합을 한 날, 두 아이는 생나무 울타리에 뚫린 구멍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몰래 응접실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린튼 씨의 아들 ‘애드거’와 캐서린보다 한 살 어린 딸, ‘이사벨라’가 작은 개 한 마리와 놀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장난쳤다. 두 아이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발견하고 놀라 소리쳤다. 빗장 문이 열렸고 둘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쳐, 히스클리프, 도망쳐!" 캐시(캐서린)가 속삭이더군. "이 집 사람들이 풀어놓은 불도그가 나를 물고 있단 말이야!"

 

린튼 부부와 그 집 하인들이 나와 소동을 정리했다. 캐서린은 그 집의 불도그에게 발목을 물려 쓰러져 있었다. 린튼 씨는 캐서린을 알아보고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혼자 남은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함께 돌아가겠다고 버텼지만, 린튼 씨는 하인을 시켜 히스클리프를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갔다.

 

캐서린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그들이 내주지 않으면 그 큼직한 창유리를 산산이 부숴버릴 작정이었거든.

 

이번 모험을 계기로, 히스클리프는 더욱 불행해졌다. 이제 캐서린에게 말만 걸어도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캐서린은 발뒤꿈치 치료를 받으며, 한동안 드러시 크로스에 머물렀다. 5주가 지나고, 집으로 돌아온 캐서린은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거친 계집아이가 아니라 아름답고 정숙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숙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 모습을 본 힌들리는 기쁜 마음으로 캐서린을 반겼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찾자 힌들리는 그가 자리로 나올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에게 다른 하인들처럼 캐서린 아가씨에게 인사를 시켰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반가운 마음에 키스를 날렸고, 그의 옷이 더럽다며 깔깔 웃었다. 깔끔하게 변한 그녀의 모습에, 히스클리프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부끄러움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더욱 심해진 힌들리의 학대

 

히스클리프에 대한 그의 학대란 성인(聖人)도 악마로 만들기에 족한 것이었어요.

 

힌들리가 린튼 씨 가족을 초대했다. 린튼 가의 두 남매, 에드거와 이사벨라는 두툼한 외투와 털가죽에 쌓여 자가용 마차에서 내렸다. 깨끗한 모습으로 그들을 마주하고 싶었던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긴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힌들리는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에드거가 말을 덧붙였다. 히스클리프의 머리는 너무 길어, 마치 망아지 갈기가 눈을 덮고 있는 것 같다고.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히스클리프는 맨 처음 손에 잡히는 대로, 뜨거운 애플 소스가 든 그릇을 집어 들어 에드거의 얼굴과 목덜미에 끼얹었다. 에드거는 비명을 질렀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의 침실로 끌려가 몸이 뜨거워질 때까지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다락방에 갇혔다.

 

남은 사람들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캐서린은 일부러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려 줍는 체했다. 식탁보 아래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식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음악을 틀어 춤을 췄다. 캐서린은 몰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아래층에서 파티가 열리는 동안,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벽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히스클리프가 듣지 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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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그러자 용모까지 정신적인 타락과 보조를 같이하여 걸음걸이도 단정치 못해지고, 얼굴도 비열해졌지요. 타고난 무뚝뚝한 성품이 과장되어서 거의 바보처럼 지나치게 붙임성 없는 침울한 성격으로 변해 버렸어요.

 

캐서린은 교양을 갖춘 품격 있는 여인이 되어갔다. 반면 언쇼 씨의 죽음 이후, 교육받지 못한 히스클리프는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와 격차가 벌어졌다. 여전히 둘은 친구였지만, 히스클리프는 어느 순간 스스로 그녀와의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가끔 에드거가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할 때면, 그 차이는 더욱 도드라졌다. 값비싼 옷과 세련된 교양미를 갖춘 하얀 피부의 에드거. 그의 세계가 아름답고 기름진 골짜기라면 히스클리프가 있는 곳은 황량한 언덕배기의 검은 탄광 지대에 불과했다. 

 

캐서린이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에드거의 청혼을 승낙했다. 그는 미남이었고 드러시 크로스 저택을 비롯해 많은 재산 상속이 예정되어 있었다. 캐서린은 근방에서 제일가는 귀부인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가정부 엘렌을 불러 속마음을 털어놨다. 자신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와 결혼하면 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대화를 엿듣고 충격에 휩싸인 히스클리프는 이내 집을 떠났다. 캐서린의 뒷말을 듣지 못한 채.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엘렌),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돌아온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가 폭풍의 언덕을 떠난 지 삼 년이 지나고, 그는 부자가 되어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히스클리프는 드러시 크로스로 향했다. 그를 본 캐서린은 뛸 듯이 기뻐했다. 남편 에드거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참아 달라는 캐서린의 부탁으로 인내했다. 엘렌 부인은 히스클리프를 거실로 안내했다. 캐서린은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실에 탁자 두 개를 놨다. 하나는 린튼 가 사람들의 것, 또 하나는 신분이 낮은 히스클리프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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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그는 키가 크고 튼튼하고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이 되어 있어 그 옆에 선 우리 주인은 아주 가냘픈 소년 같아 보였지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럴수록 에드거의 불쾌감은 커졌다.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였다. 변신한 히스클리프의 모습에 반한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바로 에드거의 동생인 열여덟 살의 소녀, 이사벨라였다. 

 

새로운 걱정거리란 찾아오는 대로 내버려 둔 손님인 히스클리프를 이사벨라 린튼 아가씨가 갑자기,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좋아하게 된 예기치 않은 불행이었지요.

 

히스클리프는 먼저 노름에 빠진 힌들리에게 접근했다.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원더링 하이츠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했다. 캐서린은 그와의 재회 이후, 그가 돌아온 것은 자신을 자주 만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두 집안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었다.

 

“당신한테 질투하는 게 아니야. 당신을 위해서 질투하는 거야. 얼굴을 펴. 날 보고 찌푸리지 말고! 이사벨라가 마음에 들거든 결혼시켜 줄게. 하지만 정말 좋아해? 똑바로 말해 봐.”

 

히스클리프는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 에드거의 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했다. 처음부터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이사벨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둘은 야반도주를 결심한다.

 

캐서린은 에드거와 싸우다 경련을 일으키며 기절하기도 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에드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냉담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히스클리프의 등장 이후, 평온했던 드러시 크로스에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캐서린,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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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히스클리프와 이사벨라가 사라진 뒤, 캐서린은 고통스러운 날을 보냈다. 악성 뇌막염까지 앓게 되었다. 에드거는 그녀를 정성스럽게 간호했다. 그녀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 히스클리프와 이사벨라가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왔다. 히스클리프는 앨런 부인에게 캐서린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엘렌 부인에게 호소하고, 그녀를 겁박하기도 했다. 캐서린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녀를 빼앗긴 후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만남을 주선해주지 않으면 자신이 찾아가 에드거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엘렌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에드거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방문을 열어 둘의 만남을 도왔다.

 

그들이 얼마나 꼭 껴안았던지 도저히 아씨가 살아서 그 팔에서 풀려날 것 같지가 않았답니다.

 

히스클리프는 다시 만난 캐서린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서 캐서린은, 그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캐서린의 병약한 몸은 격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흥분한 그녀의 심장은 지나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한동안 그의 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캐서린은 발작이 진정되자 입을 열었다.

 

“나를 위해 날 용서해 줘.”

 

“당신이 내게 한 짓은 용서하겠어. 나는 나를 죽인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 바로 당신을! 내가 어쩔 수 있겠어?”

 

임신 중이었던 캐서린은 칠삭둥이, 예쁜 딸을 낳고 숨을 거뒀다. 엘렌 부인은 캐서린 소식을 기다리던 히스클리프가 떠올랐다. 그는 드러스 크로스 옆 숲의 낙엽송 아래 서 있겠다고 했다. 그는 미동도 없이 엘렌 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캐서린의 죽음을 알렸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했지. 그러면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오란 말이야! 죽은 사람은 죽인 사람에게 귀신이 되어 찾아온다면서?”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줘. 어떤 형체로든지.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를 버리지만 말아줘. 아! 견딜 수가 없어! 내 생명인 당신 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내 영혼인 당신 없이는 난 살 수 없단 말이야!”

 

엘렌 부인은 야수처럼 울부짖는 히스클리프를 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에필로그, 폭풍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 히스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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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폭풍의 언덕(1939)>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캐서린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됐다.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의 자식 세대까지 복수는 이어졌다. 워더링 하이츠, 드러시 크로스, 두 집안의 재산이 모두 히스클리프의 소유가 되는 것으로 그의 복수는 완결되었다. 엘렌 부인은 히스클리프의 복수와 그것이 빚어낸 비극을 록우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록우드는 드러시 크로스를 떠났다. 그리고 집 문제로 다시 돌아와 엘렌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 히스클리프가 석 달 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가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러나 얼굴이며 목이 비에 씻기고 침대 홑이불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비바람이 몹시 치던 날, 히스클리프는 쇠약한 몸을 이끌고 창가로 갔다. 창문을 열어, 방안으로 몰아치는 비바람을 보며 잠이 들었다. 온몸으로 비로 푹 젖은 채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히스클리프의 유언대로 시신은, 캐서린과 에드거가 있는 교회 묘지에 묻혔다. 록우드는 히스클리프의 무덤을 찾았다.

 

세 개의 무덤이 록우드의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의 가운데 무덤은 히스(진달랫과 관목)꽃에 반쯤 묻혀 있었다. 바로 옆 에드거 무덤은 비석 밑의 잔디와 이끼 덕분에 허전해 보이지 않았다. 오직 히스클리프 무덤만이 벌거벗고 있었다. 나방들이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녔다. 풀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록우드는 비석 둘레를 따라 걸었다.

 

저렇게 조용한 땅속에 잠든 사람들을 보고 어느 누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현명한 복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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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폭풍의 언덕> 초판본

 

황량한 요크셔의 들판, 바람 부는 언덕 위 워더링 하이츠를 무대로 펼쳐진, 비극적인 서사 한 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누군가 <폭풍의 언덕>을 <리어왕>, <백경>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이라 했습니다. 또한 <달과 6펜스> 저자, 서머싯 몸은 <폭풍의 언덕>을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라고 평가했지요.

 

이 소설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과 증오가 결국, 하나의 감정임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의학적으로도 사랑과 증오를 관장하는 뇌 부위는 동일하다고 합니다. 격한 사랑이 격한 증오를, 뜨거운 분노는 뜨거운 사랑을 바탕으로 생깁니다. 그래서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이해됩니다. 그 바탕엔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죠.

 

사랑이 분노로 바뀔 때,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태도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오직 인간만이 회피가 아닌, 해결의 자세를 취하니 말입니다. 사랑이 증오로, 신뢰가 배신이 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복수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예술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모진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어린 녀석의 인생이 참으로 가혹했습니다. 이런 삶에서 그를 지탱하게 한 것은 아름다운 소녀, 캐서린의 존재였습니다. 모진 매질 앞에서도 어른처럼 울음을 꾹 참을 수 있었던 힘의 근원. 자신의 인생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캐서린에 대한 사랑은 히스클리프 인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나에게 절대적인 대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 좌절감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히스클리프 역시 그 분노의 해결책으로 복수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 칼끝은 자신을 향해 있었습니다. 결국, 잔인한 복수는 자신을 해치게 된 것입니다.

 

배신에 대한 정당한 분노와 학대에 대한 해결책으로, 복수를 선택한 하스클리프의 선택을 일부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찜찜함이 드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히스클리프의 인생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이 인생의 전부였으나 그것이 증오로 바뀌자, 인생은 복수로 가득 찼습니다. 오로지 누군가를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나와 내 인생을 해치지 않을, 현명한 복수 방법을 고민해 봤습니다. 이에 대해, 고귀한 인품을 갖춘 성인들의 의견을 찾아봤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견해는 ‘관용’이었습니다. 용서가 진정한 복수라고 말했습니다. 복수를 통해 얻는 만족감은 일시적이므로, 용서를 통해 얻는 기쁨은 영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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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복수할 때 그 원수와 동등하게 된다. 그러나 용서할 때는 원수보다 위에 있다.

- 프랜시스 베이컨

 

그러나 평범한 저로서는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입니다. 어느 정도 인품을 갖춰야, 어느 정도 정신 수련을 거쳐야 복수를 용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인지. 소시민으로서는 아득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직장에서, 사회에서 들리는 소식에 쉽게 분노하는 인생이니 말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에 적힌 말입니다. 이를 부러뜨린 사람에 대한 보복은 이를 부러뜨리는 것.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현대적 표현으로 과잉 형벌 금지의 원칙과 같습니다. 즉, 이러한 시각은 보복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분노 지수 상승 시대의 평범한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사랑이 증오로 바뀌었을 때, 내가 히스클리프의 상황이라면,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과연 용서해야 할지, 아니면 당한 만큼에 해당하는 복수를 할지. 그리고 복수를 결심했다면, 어떤 것이 현명한 복수인지.

 

스물아홉 번째 인생 탐구의 결과, 이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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