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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법률 플랫폼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와 간편하고 빠르게 접촉할 수 있다는 게 이 서비스의 핵심이죠. 법률 플랫폼에 대한 변호사들의 반대는, 얼핏 보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서비스에 반발하는 밥그릇 싸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변호사들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 법정에 설 수 있는 일반 시민의 밥상도 엎을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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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21년 변협 선거 당시 홍보물 중 일부

 

법률 플랫폼은 광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

 

경제학에서는 광고로 인한 비용 지출이 대개 상품의 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호사 업계에서는 다릅니다. 변호사업이 고도의 노동집약적 사업이고(쉽게 말해 노가다...), 대량 생산과 대량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한 사람이 동시에 담당할 수 있는 사건의 수는 대략 50건이고(이 경우 물론 야근은 기본), 사건 하나는 대략 1년 정도가 걸립니다. 즉, 월 4건 정도의 사건이 들어온다면 혼자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월 4건 정도의 사건이 꽉 채워 들어온다고 하고 한 건당 500만 원이라고 할 때, 세금과 운영비 등을 빼면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은 1,000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특별한 경력이나 연줄이 없는 청년 변호사는 월 4건의 수임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광고비로 월 300만 원 이상은 써야 그 반 정도나마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한 사람이 최대한 벌 수 있는 돈은 월 700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큰 금액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최대이고,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아예 공치는 달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광고비는 수임 여부와 상관없이 그대로 나갑니다. 광고비만큼 뽑아내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광고비를 더 많이 써서 사건을 더 많이 수임하되 사건에 시간을 덜 쓰거나, 반대로 광고비를 쓰는 만큼 수임료를 높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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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변호사 업계는 사건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벌 수 있는 돈이 비례하는 업계이므로, 광고비가 올라가면 결국 소비자의 수임료가 올라갑니다. 만약 수임료가 올라가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변호사 한 사람이 한 사건에 쏟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변호사가 사건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대체로 변호사가 사건에 쏟는 시간과 비례하기 마련인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당연히 질도 떨어집니다.

 

법률 플랫폼의 첫 번째 문제는, 이러한 광고 경쟁을 가속한다는 것입니다. 네이버에서 ‘이혼’ ‘상속’ 등의 키워드는 10년 전과 비교해서 20배 정도 광고비가 올라갔습니다. 신규 플랫폼이 하나 생기면 금액이 처음에는 적지만, 이후에는 한참 올라갑니다.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이후 음식 가격이 오르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수임료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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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여기 종속된 자영업자들은 서로 합쳐 얼마를 ‘배민’에 내야 할까요? 답은 최소 6조 원입니다. 독일 자본이 배민을 6조 원에 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독점 플랫폼에 매겨지는 가격입니다. 법률 시장도 엄청나게 많은 돈을 내야 할 것이고, 이것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부담됩니다. 금액이 그대로라면 양이 줄게 됩니다. 음식은 양과 질을 떨어뜨리면 금방 티가 나지만, 변호사의 사건 관리는 그만큼 티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개인의 인생에 양 적은 치킨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광고비의 문제뿐 아니라 광고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넓고 넓은 웹에서 선택되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단어, 근거 없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거나 변호사 수를 부풀리는 등의 광고가 횡행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도 손해는 결국 소비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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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 광고의 예(...)

 

플랫폼은 브로커가 될 수 있고, 독점 플랫폼은 독점 브로커이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감정, 대리, 중재, 화해, 청탁, 법률상담, 법률관계 문서 작성, 법률 사무 취급 등을 하는 것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무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입니다. 단순히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저런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알선하는 것도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법무사나 변리사가 상대방에게 전화해서 합의하는 것, 피해자가 보험설계사를 고용해 설계사가 보험사와 합의해서 합의금을 받는 것 등등이 모두 불법입니다.

 

법에서는 비슷한 규정들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법입니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의료인 아닌 사람이 의료인을 고용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에도 엄격하게(10년 이하의 징역, 1억 원 이하의 벌금) 처벌받습니다.

 

왜 이런 법이 있을까요? 단순히 이익집단 보호를 위해서일까요? 면허를 가진 사람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하겠다는 이유도 있겠지만(택시 운전면허와 총 택시 수 제한 등과 같은 논리로), 제일 중요한 이유는 바로 책임의 문제입니다. 의료인이나 변호사는 자신의 행동에 따라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한 번에 잃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꽤나 위험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면허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져야 합니다. 사건을 소개하거나 관리하거나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변호사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변호사는 자신과 이름과 면허가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덜 만들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소비자와 변호사를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물어 와 변호사들에게 뿌려주는 ‘브로커’가 이전부터 늘 존재해 왔습니다. 물고기를 물에서 나오게 하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기만 하는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듯, 이런 경우 사무장에게 종속되기 마련입니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수하처럼 부렸던 브로커의 존재를 기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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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플랫폼은 잘못 운영될 경우,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단순히 변호사들의 광고나 정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만의 기준(때로는 알고리즘)에 따라 변호사를 추천하고 상위에 노출시킨다면, 이것은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알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변호사를 만나기 전에 먼저 플랫폼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특정 변호사를 소개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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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톡의 형량예측서비스, 현재는 중단되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플랫폼이 요구하는 광고비와 조건과 알고리즘에 맞추어, 변호사들은 상위 노출에만 몰두하게 되고, 자신의 이름과 면허를 걸고 일을 하기보다는 플랫폼이 시키는 대로 일하게 됩니다. 소비자들의 후생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AI 플랫폼, 정말 큰일 난다

 

이렇게 보면 플랫폼의 가장 큰 문제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변호사가 아닌 존재, ‘상담 사무장’이나 특히 AI가 ‘알선’을 넘어서 직접 일을 하는 경우입니다.

 

변호사의 업무는, 적당히 보면 꽤나 쉬워 보이는 일입니다. 전문 기술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 말로 하는 일이고, 단어가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일반인들도 쓰는 말이거든요. 어지간한 변호사보다 법률 지식이 많다고 하는 의뢰인도 자주 만납니다. 이런 이유에서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이 상담하고 결론을 내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고, AI가 해도 잘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업무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대단히. 

 

‘비슷해 보이는 사건은 있지만 같은 사건은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사건의 사소한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과정과 결과로 이어집니다.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시험으로 검증받았으며 업무를 통해 경험을 쌓은 변호사들이 해결하는 것이 대체로 안전합니다. 사건의 미세한 차이를 연산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과 면허를 걸고 책임지는 것이 불가능한 'AI 사무장'은, 브로커가 부리는 값싸고 책임 없고 자기 명함도 없는 역사상 가장 무책임한 사무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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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법률 배민’의 위협은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얼마 전 밝혀진 일이지만, 실제로 ‘AI 법률 플랫폼’을 운영하던 사람이 현재 변협의 직원까지 파견받아 공공플랫폼 마케팅을 하고 있고, 오는 16일 있을 변협 협회장 선거의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고 사무실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법률 서비스가 필요한 대한민국 모든 시민이 ‘값비싼 독점’의 사냥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 사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AI 법률 플랫폼’의 운영에 가장 큰 경쟁 플랫폼은 ‘로톡’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특정 후보가 부회장을 역임한 변협 집행부는, ‘로톡’을 상대로 수많은 소송을 걸어 대부분 패소하고, ‘로톡’을 사용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하기까지 합니다. 힘과 권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특정 플랫폼을 고사시키려는 정책에 어떤 이들은 환호했지만, 다른 특정 플랫폼을 운영했던 이로부터 선거운동과 사무실을 지원받는 모습을 보면 그 의도가 의심스럽습니다. ‘법률 배민’의 위협이 모든 대한민국 시민과 변호사들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위협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변협과 법원, 검찰 등이 참여하는 공공플랫폼을 만들어서 시장에서 경쟁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지만, 몇 백억 이상을 투자 받은 사설 플랫폼과 시장 경쟁으로 이길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공플랫폼 운영에 참여했던 외부 업체가 이를 토대로 사설 플랫폼을 만든다면 지금보다 더 무서운 독점 브로커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본질적이어야 합니다. 본질적 해결 없이 업체를 견제해도, 소비자와 생산자의 필요, 그리고 자본의 욕망이 있다면 어떤 업체건 시장에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고비의 상한을 규제하고 과장광고를 단속하며, 플랫폼 내부 운영이 ‘알선’에 해당할 경우 처벌할 규정을 마련하고, 변호사만 직접 광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법률 배민’을 막기 위한 본질적인 규제가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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