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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월급 100만 원 시대가 열렸다. 환영할 만한 소식이지만, 기쁘지 않다. 이건 뭐 깽값도 아니고. 병장 월급 100만 원은 병사와 간부 사이의 역차별, 남성과 여성의 국방의무 문제, 군인과 공무원의 차이 등 산적한 수많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 소식에서 조선을 읽는다.

 

안타깝게도 조선은 국방 분야에서는 그리 탄탄한 나라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예산도 많이 쏟고 신경도 썼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나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강제 병합이라는 조선사의 곡절은 PTSD가 되었고, 강한 국방력을 강조하는 반면교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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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는 게 아니라 모델 삼아 백투더 조선을 하고 있다. 우려스럽다. 디벼보자.

 

변질된 복지, 환곡

 

조선의 지식인들이 상소에 수도 없이 썼던 말이 있다.

 

“군역(軍役)이 고르지 않아 그 폐단이 심하오니...”

 

정말 많이 나온다. 조선 후기의 일도 아니다.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군역(軍役)의 불공정은 일상적인 문제였다. 왕부터 노비까지 이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고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체제로부터 비롯된 문제, 즉 나라를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는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탄생을 떠올려보자. 조선은 ‘사대부’들이 ‘쿠데타’로 설립한 나라다. 사대부가 지향하는 나라는 이런 모습이다.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사는, 농업에 기반한 자급자족 공동체 국가

 

여기에 군대가 끼어들 틈이 있는가? 없다. 군대는 도덕을 쌓는 수양에 방해되고,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에도 방해된다. 게다가 수틀리면 왕을 갈아 치운다. 따라서 군대는 국가 운영의 우선순위가 아닐뿐더러, 철저하게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했다. 이로써 지휘계통이 엉망이었던 조선의 군 조직 문제가 시작됐다.

 

조선에 있어 국방보다 더 중요했던 건, 복지였다. 다음의 기사를 보자.

 

1423년 9월 16일 - 『세종실록(世宗實錄)』

 

의창(義倉)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나라의 창고는 군대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필요가 점점 더 커져 부득이 군용미를 빼서 의창에 투입하니, 정말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투입된 곡식이 100만 석입니다. 이제 백성들에게 빌려준 곡식을 받아, 군용미를 채워 넣어야 합니다.

 

농업에 기반한 자급자족 국가를 만들기 위해 조선은 두 가지 재정 운영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낮은 명목세율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의 확충이었다. 후자의 일환으로,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와 함께 받는 환곡을 시행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국민연금이랄까.

 

그런데 이 제도는 시작부터 국방 예산을 털어서 만들어졌고, 조선 후기 아전들은 아예 일상적으로 군용미를 털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다. 심지어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서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의 군용미 비축을 중대한 국방 임무로 삼았으나, 그렇게 비축한 창고마저 털어 백성들에게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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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군도>

 

이렇게 조선의 환곡 예산은 나날이 커져, 1808년에 이르면 장부상 규모가 약 1천만 석에 이른다. 환곡과 유사한 제도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 있었지만, 어떤 국가보다 인구 및 예산 대비 가장 큰 규모의 환곡을 굴렸다. 이 시기의 환곡은 더 이상 복지가 아니라 조세 시스템이었고, 다른 부처의 예산이나 복지 예산도 여기서 나왔다. 즉, 조선은 복지가 모든 정책을 추동하는 중대한 정치적 명분인 나라였다.

 

복덕방 차린 군인들

 

반면, 국방비는 초라했다. 조선이 한때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던 적도 있었으나, 조정은 일관되게 군축을 시행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조선의 1년 예산으로 대규모 상비군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낮은 명목세율 때문에 제한되는 예산으로는 군대가 잡아먹는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군대는 필요했다. 놀랍게도, 조선은 부족한 보급을 개인에게 맡기는 식으로 해결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군인은 직업 군인이 아니라, 농사짓다가 징발되면 머릿수 채우고 오는 사람들이었다. 군인으로 징발되면 농사를 짓지 못해 생계를 꾸려나갈 수도 없었고, 필요한 장비와 보급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심지어는 식사마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던 때도 있었다. 즉, 군역을 지면 질수록 혹독한 마이너스였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지방군은 기본적인 제식훈련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낙후됐다.

 

그렇다면 중앙군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은 훈련도감, 이른바 수도방위사단을 설치하고 병력을 끌어모은다. 그런데 지방에서 뽑혀 올라온 병사들은 잘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이미 한양은 주거난이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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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결국 주택 임대라는 대안을 만들어낸다. 재밌게도 17세기 이후 서울에 주택 임대 제도가 자리 잡은 원인 중 하나는 형편없던 군대 보급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은 조선의 최정예 군사였음에도 낮은 급료 때문에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주택 임대 제도에 빠삭했던 그들은 가쾌(家儈), 즉 공인중개사라는 부업을 선택했다. 훗날, 훈련도감 자체는 세도 정권과 결탁하여 그들의 권력 기반이 되었다.

 

몰빵 징병제

 

군역의 불평등과 군인에 대한 낮은 처우는 결국 징집 대상자의 이탈로 이어졌다. 사대부라서 빠지고, 노비라서 빠지고, 돈 많아서 빠지고. 돈 없고 힘없는 백성이 군역을 묻고 더블로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백골징포(白骨徵布, 죽은 사람에게 세금을 때린 후 유가족에게 받아내는 것), 황구첨정(黃口簽丁, 14세 이하의 어린이를 군역 대상자로 지정하는 것)이 이때 횡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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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과도한 군정에 견디다 못한 백성이

 자신의 성기를 자른 광경을 보고

'양물을 자른 것을 슬퍼하는' 한시 '애절양'을 남겼다. 

출처 - 영화 <자산어보>  

 

숙종 시대를 대표하는 관료 남구만(南九萬)은 당시의 국방 제도를 이렇게 평가한다.

 

나랏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양반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농사를 핑계로 국방의 의무와 세금을 피합니다. 이렇게 온 식구가 놀고먹는 자가 나라 안에 10분의 6, 7할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힘없는 백성들만 군역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또한, 훈련도감은 가만히 앉아서 밥만 먹는 서울 안의 병사들입니다. 5,000명에 불과했지만, 이제 이들이 나라 예산의 3분의 2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보급 비용을 호조와 병조에서 다 끌어다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어영청(御營廳)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이들이 쓰는 식량과 물자를 후원인에게 공급받는 제도는 좋지만, 부하 병력을 마음대로 늘리고 있어 서울에서 밥만 축내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나라에 군을 통제하는 좋은 수가 없어서 생긴 일입니다.

 

수치는 조금 과장됐겠지만, 조선의 현실을 꿰뚫고 있다. 사람들은 군역을 피하기 위해 도망 다녔고, 피하지 못한 백성들이 두 배 세 배로 의무를 짊어졌다. 군대는 국가 예산을 통째로 잡아먹고 있었고, 이미 예산을 아득히 넘어선 규모였다.

 

남구만의 말은 조선이라는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다. 군인은 ‘밥만 축내는’ 존재이며, 군대는 ‘통제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 낮은 명목세율과 농업 기반의 자급자족 공동체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위치를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국방보다 복지를 택한 조선의 선택이 아무런 효과가 없던 건 아니다. 조선을 휩쓸었던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전란 과정에서 백성은 나라로부터 기대어 목숨을 연명했다. 위기로부터 회복하는 탄력성과 융통성은 예산의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하지만 개중에 몇몇은 불공정한 징병제에서 초래된, 막을 수도 있었던 위기였다.

 

'느그 아들'의 군대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잘 알듯, 인구 절벽은 우리의 현실이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15년 전에 폐교됐고, 중학교는 폐교 위기에 놓였다.

 

병역의무자는 2025년 22만, 2039년 15만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국방혁신 4.0’에는 여전히 상비병력 50만을 유지하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당연히 괴리가 발생한다. 대통령께서는 이를 ‘AI 기반의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로 단계별 전환’과 같이, 무인화 군대로 그 공백을 메우겠다고 한다.

 

스무 살 무렵, 나는 신검이 정말로 나의 몸이 군 복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할지 판단하는 곳일지 알았다. 웬걸,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검사하는 의사들은 하나같이 불친절했고, 아픈 곳은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아프다는 곳이 있으면 슬쩍 보고는, “에이~ 문제없네.”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때 알았다. 대한민국 징병제의 현실을.

 

다행인 걸까. 아직까지는 현역 판정률이 그리 높지 않다. 2021년 현역 판정률은 83.1%로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1 병무 통계 연보) 오히려 2000년대에는 현역 판정률이 90%가 넘었다. 하지만 앞으로 현역 판정률 수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4급 받아야 할 사람이 3급을 받고, 면제받아야 할 사람이 4급을 받는 일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알다시피, 이런 몸으로 군대 갈 때는 ‘국가의 아들’이었지만, 가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느그 아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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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는 불평등하다. 조선시대 때부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있는 집 자식들은 어릴 때부터 ‘병역의 신’에게 의뢰하여 합법적 병역 회피를 설계한다. 덕분에 신검의 불친절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스무스하게 통과한다. 반면, 정보도 돈도 없는 사람들은 디스크가 터져나가도 꼼짝없이 1급을 받고, 그 몸으로 박격포 쏘다가 다른 관절들도 다 분쇄된다. 위에서 빠져나갈수록, 밑에서 누군가 그 몫을 채워야 한다. 예전에도 이런 나라가 있었다. 조선이라고. 20세기 버전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이 나타날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징병제는(원래도 그랬지만) 모병제보다 불평등하다. 혹자는 모병제를 도입하면, 가난한 사람만 주로 군대에 갈 것이므로 불평등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한국의 징병제는 부유할수록 회피하고 돈도 더 많이 번다. 반면, 가난할수록 현역이고 돈도 훨씬 적게 받는다. ‘똑같은 병역의무’는 빛 좋은 개살구다. 차라리 빈곤을 이유로 자원입대를 한 사람이 더 많은 보수를 받는 모병제가 사회적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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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병의 월급이 100만 원, 단계적으로 200만 원으로 올라갈수록 부사관에 대한 역차별 문제는 뚜렷해진다. 근데 정부는 이 문제에 1도 관심 없어 보인다. 2023년 국방부 예산안에서 초급 간부의 처우 개선안에 반영된 건 주택수당 및 당직수당의 인상이다.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주택수당 10배 올려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뻥카만 남발했다. 업무보고 자리가 술자리도 아니고) 상황이 이러니, 잠수함 승조원이나 파일럿과 같은 고급 인력의 유출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런데 부사관의 장기 임용은 칼같이 컷한다. 이유는 명백하다. 정년까지 복무하는 장기 부사관이 늘어날수록 연봉 규모도 더 커지니까, 다수의 단기 부사관을 자주 뽑아서 때우겠다는 거다. 나라가 대놓고 비정규직을 굴리는 대표 사례로 뽑혀도 좋다. 예전에도 이런 나라가 있었다. 조선이라고. 군인을 뺑뺑이 정해 순번을 돌리며 대충 머릿수만 채우다 보니, 나중에는 제식도 수신호도 모르는 군인이 지방 부대에 빽빽했다.

 

공무원과의 비교 문제도 있다. 최근 ‘누칼협’, 그러니까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는 말이 밈이 되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형편없다는 푸념을 비웃는 말이었다. 다 알지 않은가. 공무원은 정년과 워라밸 빼면 보상이 적다는걸. 그나마 요즘에는 워라밸도 쉽지 않다.

 

하여튼, 공무원조차도 보상이 적다는 불만이 심해지는 마당에, 군 간부는 공무원만도 못하다. 다수의 군 간부는 사실상 비정규직이며, 경찰•소방은 물론 사병보다도 처우가 떨어진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하지 않는 이상 간부 할 만한 사람이 없다. 포방부가 좋은 장비를 찍어내는 건 좋지만, 그 비싼 장비를 굴리는 사람은 결국 부사관 이상의 간부다. 장비를 운용할 인력이 없어지고 있는데, 장비는 늘어난다. 땜빵이 나니 누군가는 메워야 한다. 그 부담을 이제 군무원이 짊어지고 있다. 당직 근무와 경계 근무 등 군인이 해야 할 일을 시킨다.

 

2002년 징병제를 폐하라, 그 이후

 

징병제가 2000년대에는 국가폭력이라는 담론 위에서 논의되었다면, 2020년대에는 불공정 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사병, 간부, 예비군, 젠더 문제까지 군과 관련된 이슈는 불공정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불공정성을 촉발시킨 주요 원인은 자명하다. 인구 감소다.

 

사병 월급 100만 원이 우려되는 건 그래서다. 장병들에게 9급 공무원에 준하는 월급을 지급해도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생각하면 많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사병의 월급이 오르면 장병과 간부의 처우 차이에서 오는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 문제는 연쇄적으로, 간부와 간부 간의, 장병 및 간부와 공무원과의, 공무원 사회와의 차이의 문제로 확대된다.

 

때가 어느 때인데 열정페이인가. 선택해서 갔든 끌려갔든 적절한 처우와 보상이 제공된다면 누구든 수긍할 것이다. 이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이대남을 배신한 깽값으로 군인 월급 몇 푼 올려주며 끝내려는 대통령의 호탕함이 그저 부럽다. 인생 참 쉽게 산다.

 

이렇게 높아진 장병 월급은 자연스레 대안적 병역제도를 고려하게 한다. 장병과 부사관의 임금 차이가 줄어들므로 당연히 그 대안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대안에 대한 오랜 논의가 있었다. 필진 펜더님이 딴지일보에 <징병제를 폐하라(기사링크)>라는 전설의 기사를 쓴 지가 벌써 2002년이다. 그 내용을 잠시 보자.

 

2010년부터 모병제로 전환한다면, 아마 35만의 사병을 유지하기 위해서 5년간의 계약 기간이라는 전제하에서 연간 7만 수준의 병력이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남녀 공동 모병으로 간다면, 7만 정도의 수급은 충분히 가능한 문제라고 본다. 문제는 초기에 35만의 병력을 다 끌어모은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므로, 이때부터 점차적으로 1년에 7만씩 받아들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2010년부터 완전 모병제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이 징병제+모병제 사이클은 2015년경이 되어야 모병제 체제로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 기간이라면, 재원 마련이나 기타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 방안이 나올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2015년 경이면, 청년층의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노령인구가 늘어나 사회적으로 노동인구의 감소가 문제가 될 시기인 것이다. 타이밍이 맞을 거 같지 않은가?

 

펜더님이 예측한 모병제 전환 가능 시점은 2015년. 이때 우리는 공주님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20년이나 지난 지금, 펜더님이 지적한 징병제의 문제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병제의 필요성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논의되었지만, 도입되지 못했다. 왜일까?

 

그 이유는, 먼저 최소한의 군사력 규모다. 국방부가 제시하는 최소 기준은 상비군 50만. 인구가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 집념만큼은 돌덩이 같다. 뭐 있겠는가. 그냥 월급 100~200만 원으로 계속 굴리고, 모자라는 건 정신력으로 커버치겠다, 그 수밖에 더 있겠는가. (진짜다. 국방혁신 4.0에서는 ‘장병 정신전력 강화’가 주요 과제로 선택됐다.)

 

병력 확보의 가능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모병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가 병력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력 규모를 감축해서 모병제를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15만~20만의 모병 인구를 모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돈 1억 주면 군대 다시 감 가능 vs 불가능” 놀이가 나오는 건, 어지간한 처우로는 자발적 입대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예산 문제가 있다. 우리가 복지국가라 부르는 유럽의 나라들, 그리고 1년 예산의 상당수를 복지정책에 투입했던 조선의 공통점은 국방 예산의 최소화였다. 복지 예산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 수가 없다. 저출산-고령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데 복지 아니면 무슨 수로 그 구멍을 메우겠는가. 복지 지출이 늘어날수록, 국방 지출의 증가는 계속해서 제한될 것이다. 즉, 모병제가 실현되지 않은 까닭은, 징병제의 무수히 많은 폐단을 불구하고, 계산기를 때려보니 사이즈가 안 나온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은 입영 자원의 여유도 있었고.

 

여전한 문제들

 

그런데 이제는 인구 절벽이 현실이 됐다. “상비군 50만 명”을 목 놓아 외쳐도, 사람은 없고 기술적 특이점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말 대안을 고민해야 할 것 아닌가.

 

이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확실한 방향성을 보여줬다. 병의 봉급과 처우를 개선하면서, 비전투 분야의 민간 인력 및 여군 비중 확대를 진행하고, 부대 해체를 통해 규모를 줄였다. 그 세부적인 과정에서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방향은 뚜렷했다.

 

‘병역 인구 축소에 대비하기 위해 군의 규모를 줄여나가면서, 동시에 장병의 처우 개선을 통해 군 복무의 인센티브를 높인다.’

 

이렇게 했더니 돌아온 건 “여성도 군대 보내라”였지만.

 

이재명의 공약도 그 연장선이다. 현행 징집병 규모인 30만을 15만을 줄이고, 이 자리를 전투 부사관+민간 인력+군무원 등으로 채워나가겠다는 선택적 모병제이다. 국민 개병제라는 전제는 여전하지만, 이 역시 청년 인구가 줄어든다는 현실 위에서 보다 합리적인 병역제도를 위한 고민이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된 우리 굥카께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쪽(모병제)으로 가지 않겠느냐.”라면서 졸라 관심 없음을 드러내셨다. 누구와 결별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처럼 말씀하시는 그 호방함, 진짜 다시 한번 부럽다. 인생 참 쉽게 산다.

 

또 하나의 중대한 불공정의 문제가 있다. 여성 징병제. 남성만 군 복무의 의무를 짊어지는 건 분명한 불공정이다. 그렇다고 당장 여성을 징집하자는 주장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20년 전에 뜨거운 감자였던 모병제가 현실화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 징병제에도 현실적 문제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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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예컨대 해군은 잠수함에 2024년 여군 승조원 3명을 배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여성의 승조를 위해 기존 잠수함 시설을 개보수하고, 신규 건조되는 잠수함에 여군을 수용하기 위한 설계를 반영한다. 하지만 한국은 화장실 등 편의시설 사용 시간을 분리하는, 안구에 습기 차는 형태로 여군을 수용한다. 여군의 잠수함 승조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게 2014년이다.

 

비용 면에서도 그렇다. 완벽한 양성 중립 징병을 위해서 전국의 부대에 대한 어마어마한 개보수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이면 다른 대안을 택할 수 있다. 공정은 꼭 의무를 나누는 것으로만 실현되지 않는다. 의무에 대한 적절한 보수를 지급하는 방향도 공정을 실현하는 대안 중 하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당한 대가’다.

 

조선 후기 빚어진 군역 문제는 불공정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인센티브 대신 의무의 나눔이었다. 군역이 고르지 않다는 폐단이 이어지자, 그 군역을 분담할 여러 장치를 만든다. 첫째는, 위에도 언급한 ‘군역 수행이 가능한 인원’을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는 짬에 짬이었고. 둘째는, 군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3인 1조 형식의 징병제, 즉 형제가 셋이면 한 명만 군대 가고 나머지 둘은 군인의 보급을 돕는 식이었다. 이 역시 짬에 짬으로 이어졌다.

 

징병제의 불공정성을 완화하기 위한 해법은 의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다. 그것도 매우 충분한. 그리고 이 보상은 핀셋이 아니라, 국가에 고용된 모든 사람의 보상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실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증세를 비롯한 어려운 정치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만 후려치자

 

조선과 한국은 다르다. 예컨대 징집 인구의 감소 문제를 보자. 한국과 조선은 징집 가능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 원인은 다르다. 한국의 현상은 젊은 인구가 줄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다. 반면, 조선은 군인의 삶이 너무 고달프고 처우가 안 좋아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군역을 부과하려 했다. 고르지 못한 의무를 여유가 되는 사람에게 짬 때리니, 짬에 짬이 이어졌다. 그 결과, 가장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이 군대로 끌려갔고 국방 세금을 냈다.

 

그런데 체제의 한계가 드러난다. 즉, 조선의 문제는 자급자족 농업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탓에 있다. 그들이 직면한 위협은 작은 공동체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공동체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국방과 복지 예산을 지출했다. 억지로 꾸린 군대는 심각히 열악한 처우를 불러왔고, 열악한 처우는 군역의 이탈로 이어졌다. 군역의 불공정은 그렇게 촉발됐다.

 

맥락은 다르지만, 한국의 징병제도 체제의 문제다.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는 다름 아닌 이윤이다. 거기서, 군인들이 제공하는 국방 서비스의 가치는 간과되기 쉽다. 조금만 생각해 보자. 국방 서비스가 경제 성장과 진정 연관이 없겠는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생각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민의 의무’라는 오랜 관념이 ‘인건비를 후려치겠다’는 속뜻을 대체하여 오랫동안 지배해온 탓이다. 이제라도 국방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조선 꼴 나기 전에.

 

[참고문헌]

 

김대일, 「모병제와 징병제의 소득 형평성 비교」, 경제학연구 68집 제3호, 2020

박진수, 「인구감소시대 대안적 병역제도 연구」, 국방연구 제65권 제3호, 2022

조관호, 「미래 병력운영과 병역제도의 고민」, 국방논단 제1879, 2021

 

 

 

 

추신

 

빵꾼, 인사드립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1.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2.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에 이어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내놓았습니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의 복지 정책을 이야기하며 그 정책들이 백성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로 인해 어떠한 사회 단면을 만들었는지를 야무지게 담아놓은 책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아내고자 시도했습니다.  

 

조선의 복지정책에 대해 다방면으로 열심히 담아놓은 책이니, 자신만만하게 말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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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꿈은잉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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