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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턴의 반복 : 대통령의 말실수 >> 대통령실의 설명

 

이란이 발끈하고 나선... 윤 대통령의 '적' 발언은_ [뉴스케치] _ YTN 1-3 screenshot (1).png

출처-<YTN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가 던진 파문이 일파만파 번져나가고 있다. 당장 이란 측이 반발했다.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과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의 역사적, 우호적 관계와 이와 관련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긍정적 발전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나세르 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 중 발췌

 

그동안의 패턴, 그러니까

 

① 대통령이 말실수한다.

② 대통령실이 대통령의 발언을 부연 설명(해병 혹은 변명)한다.

 

가 다시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발언이 나가자마자, 바로,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의 말씀이었다."

 

라는 원론적인(!!)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뒤이어 외교부가 해명하기 시작했다.

 

"이란과의 관계 등 국가 간의 관계와는 무관한바, 불필요하게 확대하여 해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1962년 수교 이래 이란과 오랜 우호 협력 관계를 이어온바, 이란과의 지속적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변함없이 확고하다."

 

이 정도면 여야를 떠나 모두 ‘문제의식’을 공유했을 터이다. 외교 무대에서 발언은 기본적으로 ‘포괄적’인 게 상식인데, 발언이 구체적일수록 그건 ‘족쇄’가 돼서 말한 당사자의 발목을 잡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답답하게 여기지만 외교적 발언은 언제나 두루뭉술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적’이란 개념을 대놓고 외교 일선, 그러니까 외국, 그것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뱉었다.

 

이따금 한국의 노쇠한(?) 정치인들은 

 

‘적(enemy)’

 

이란 단어를 거리낌 없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한다. 툭 하면 튀어나오는 ‘주적개념’이 단골이다. 놀라울 정도로 ‘적’을 규정해 말하고, 외교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사실 보수 정치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도대체 여기엔 어떤 사고 방식이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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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통령실>

 

2. 노쇠한 정치인들의 단골 단어, '주적개념' 

 

북한과 한국은 현재 휴전 상태이고, 휴전 와중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싸웠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적’이란 개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냉전 시절도 마찬가지다. 동서방 양 진영은 서로 명확한 ‘적’이었기에 적이란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툭 까놓고 말해서 미국도 중국을 표현할 때 ‘적(enemy)’이란 개념이 아니라 ‘위협적인 세력’으로 돌려서 말한다. 왜? 그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그게 내 발목을 잡는다. 그렇기에 외교 용어는 포괄적이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쌀로 밥 짓는 소리."

 

그게 외교적 발언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다자구도 외교무대에서 섣불리 ‘적’이란 표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류 공동의 적 같은 경우, 그러니까 명분상으로 이건 누가 봐도 때려죽여도 될 놈이란 것들, 예를 들어 ISIS나 탈레반 같은 경우, 겨우 쓸까 말까다.

 

즉, 상식적으로 21세기 외교무대에서 ‘적’이란 단어를 쓰는 건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야 아직 냉전 체제 속에 머물러 있기에 ‘주적개념’을 넣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하면서 싸우고 있지만, 그건 한반도 안에서나 통하는 소리다. 정치인 토론에서 아직도 이런 걸 봐야한다는 게 너무 유치할 뿐이다. 너무나 당연히, 한반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적’이란 개념을 함부로 내뱉는 건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이 외교인데,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건 스스로 목을 조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에서 말했지 않은가? 지금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다자구도로 변해가는, 그야말로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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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국과의 안보협력 최일선에

민폐 끼치고 온 윤 대통령

창피함은 국민의 몫입니다

 

3. 윤 대통령 때문에 난처해진 UAE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가장 난감한 곳은 UAE다. 

 

"우리는 형제 국가야!"

 

라는데, 그 형제 국가가 나서서

 

"우리 형제의 적은 이란이야!"

 

라고 말한 거다. 이건 해명하자니 껄끄럽고, 안 하자니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상황이다. 실제로 이란과 UAE가 영토분쟁을 하고, 수니파, 시아파 사이의 충돌(수니파 대부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했는데,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이에 반발해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한다. 이것 때문에 둘 다 외교관계를 단절해 버린다)도 있는 터라, UAE도 눈치 보며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대사급에서 공사급으로 낮췄다. 이게 겉으로 보면,

 

"씨앙, 이란하고 UAE하고 싸우는 거네! 적이네 적!"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란에게 UAE는 ‘빨대’다. 전술했지만, 이란과 UAE는 영토분쟁이 있는 사이다. 이건 달리 말하면,

 

"지리적으로 꽤 가깝다."

 

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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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United Arab Emirates, 아랍 에미리트)와 이란

출처-<구글맵>

 

지금 이란은 서방의 경제제재 때문에 수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그 탈출구가 UAE다. 현재 이란 수입의 68%는 UAE에 의존한다. 그나마도 서방의 눈치가 보여서 그 무역 규모를 축소해서 말하는 거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거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 예측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UAE의 적은 이란이야!"

 

라고 말한다면, 이란과 UAE는 뭐가 되는 걸까? 이란 외무부에서,

 

"이란과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의 역사적, 우호적 관계와 이와 관련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긍정적 발전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란 말이 나온 이유다. 수입의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나라가 적이 될까?(실제로 UAE와 이란은 서로 경제부처 장들을 보내며, 경제협력을 위해 논의하고 있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말이다. 이런 나라들이 서로를 ‘적’으로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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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1 갈무리>

 

4. 이란은 황당하다 

 

설사 ‘적’이라고 해도 외교무대에서 그것도 제3국이 ‘적’이란 단어를 말한다는 건, 아마추어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오죽하면, 이란 외무부에서,

 

『비외교적(undiplomatic)』 

『완전히 무지하다(totally unaware)』 

『오지랖이 넓은(meddlesome)』

 

... 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을까? 안타까운 건 이 말들을 반박하기 힘들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명백히 ‘비외교적인’ 단어 ‘적’이라는 표현을 썼고, 현재 UAE와 이란의 관계에 대해 무지했으며, 제3자가 남의 나라 일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끼어들어 말했다.

 

더 안타까운 건 한국에 ‘테헤란로’가 있다는 걸 윤석열 대통령이 잠깐 잊고 있었다는 거다(알고 그랬다면 더 문제다). 이란과 한국은 62년도에 수교한 이후, 꾸준히 외교관계를 유지해 가고 있었다. 이란이 경제 제재를 당해서 동결된 석유 수출대금 70억 불이 기업은행 계좌에 고이 잠자고 있다. 한참 코로나가 심할 때 여기서 3천만 달러를 빼서 코로나 백신 구입을 위해 사용됐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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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간 교류로 1977년 이름 붙인

서울의 테헤란로와 테헤란의 서울로

출처-<한겨레>

 

이게 뭘 의미할까? 이란과 한국은 경제 교역액이 꽤 된다는 거다. 이란과도 나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졸지에 이란을 ‘나쁜놈’으로 만들었다.

 

5. 황당한 쉴드, 결국 문제는 사람 

 

일각에서는 지난 12월 26일,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사용된 기술이 이란에서 넘어왔다는 주장 때문이란 설이 있다(미 해군 분석센터의 켄 고스 선임 국장이 자유아시아방송에 나와서 ‘이란에서 넘어온 기술로 북한이 무인기를 만들었다!’라고 발언했다. 이란 무인기 기술력에 대해서는 기사에서도 몇 번 언급했다. 이란은 미국 무인정찰기를 나포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나라다. 무인기 분야에서 나름 티어가 높다. 괜히 러시아가 이란 무인기를 가져간다고 하는 게 아니다)

 

만약 이것 때문에,

 

"북한 무인기는 나빠."

"그 무인기 기술은 이란 거"

"이란은 나빠!"

 

(우리가 보기엔 크게 황당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화법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과 이란을 굳이 동시에 언급하지 않았는가?)라는 3단 논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작동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노쇠한, 냉전적인 사고구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렇게 되면 우리는 러시아의 적이 돼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흘러 들어가는 우리 물자들은? 폴란드가 우리 방산 장비를 사들이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냉전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위해 블록 단위로 결집하는 다자주의 구도로 갈 확률이 높다. 이때는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다수 존재하며 각국의 리더는 이 분야의 판단에선 전보다 좀 더 깊이를 보여줘야 하는 게 필수 미덕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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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 때는 안 끼고,

(둘 사이 관계에) 빠져야 할 때 눈치 없이 끼는 사람이 있다

출처-<링크>

 

물론 외교 참사 이전에, 원론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의 부재’,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가 일으킨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뭐, 윤석열 대통령의 참신한 사고구조를 이해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 이렇게 설명하는 게 가장 쉽긴하겠다.  

 

다만 드러난 사실, 즉, 의전 행사에서 보여주는 자잘한 실수들, 그러니까 경례를 계속하거나 하는 것들은... 한 두 번 프로토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혹은 준비하지 못한 실무자의 문제라 할 수 있겠지만, 반복되니 이제는 실수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이야 대통령실에서 마사지라도 할 수 있지만, 영상은 그냥 계속 퍼지니 쉴드에도 점점 한계점이 올 게다.   

 

저레벨에서 실수가 반복되면 이 모든 원인이 명백히 ‘사람’ 문제라는 걸 보수쪽에서도 인지하는 순간이 올 게다. 앞으로의 외교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사고구조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