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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변신 : 버러지가 된 가장의 비극적 인생

 

(29) 폭풍의 언덕 : 현명한 복수란 무엇일까

 

(30) 아버지의 해방일지 : '오죽해도' 살아내야 하는 이유

 

 

 

소설 『전쟁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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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시아>

 

 

제국주의 무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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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신네 한 사람을 죽이는 동안 당신들은 열 사람을 죽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땅에서 먼저 없어지는 것은 당신들이 될 거요.”

 

-1946년 9월, 프랑스 장 생 트니 소령을 만난 호찌민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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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rip advisor>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 남중국해를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은 나라가 있다. 높은 자존심, 자주성 그리고 강인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 과거의 악연을 넘어 한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국가. 바로, 베트남이다.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베트남은 몽골, 중국, 프랑스 제국을 격파하고,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과 싸워서 이긴 유일한 나라다. 베트남의 역사는 곧 ‘반제 투쟁’이고, 가히 제국주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베트남에 군사 개입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 이후,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였다. 미국은 베트남의 민족 영웅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산당이 베트남을 통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54만의 병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투입했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패배를 인정하고 1973년, 베트남에서 병력을 완전히 철수했다.

 

1965년,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 ‘끼엔’은 북베트남 군인으로 징병 되었다.

 

 

군홧발에 짓밟힌 하얀 브래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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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2월, 향수의 강 모습 

<출처 - AP통신>

 

끼엔은 사람들이 '산 귀신의 것'이라 부르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참으로 슬프고 처참했다. 끼엔은 그것이 남녀가 작별 후, 재회를 약속하며 서로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외침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어둡고 황량한 계곡 아래, 폭포가 떨어졌다. 폭포 근처에는 여러 해 방치된 생산 농장이 있었고, 그곳에 세 명의 여인이 살았다. 끼엔은 소속 소대원들이 밤마다 그곳에 다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눈감아 주었다. 소대원 모두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이들이었기에, 전쟁에서 살인하고 살해당하는 처량한 청춘들의 사랑까지 벌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끼엔에게도 사랑하는 여인 ‘프엉’이 있었고, 고향에 두고 온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사무쳤다.

 

여느 날처럼, 소대원들은 여인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목소리는 메아리쳐 돌아오지 않았다. 끼엔의 소대는 정찰에 나섰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목욕탕 앞 자갈 위에 새하얀 브래지어가 떨어져 있었다. 여자의 속살처럼 보드라운 꽃잎이 수 놓인 브래지어였다. 한쪽 꽃잎에 고무 뒷굽이 밟고 지나간 요철 문양이 찍혀 있었다. 그 옆엔 조그맣게 스며든 핏자국도 보였다.

 

그날 오후, 범인을 잡았다. 적군의 첩보대였다. 그들은 세 여자를 밀림 속으로 데려가 강간하고 살해했다. 범인 중 세 명은 사살하고 네 명은 생포했다. 이 과정에서 끼엔의 소대원 ‘틴’은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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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위치한 포로수용소

<출처 - wikimedia>

 

처형을 앞둔 네 명의 포로는 자신이 묻힐 구덩이 속에서 떨고 있었다. 포박당한 서로에게 의지한 채. 그중 한 놈이 울기 시작했다. 자신은 강간하지 않았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끼엔은 그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AK 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갈겨 구덩이 속으로 도로 처넣었다. 핏물 한 줄기가 놈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피는 콧등을 타고 떨어졌다. 끼엔은 그들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댔다.

 

그 순간, 끼엔은 꿈에서 깨어났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매일 밤,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 장면은 끼엔을 고통스럽게 했고,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의 몸통을 뜨겁게 짓눌렀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지만. 그에게 평화란, 형제들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나무일 뿐이었다. 그에게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종전 선언 후에도 그의 인생은 계속해서 썩어가고 있었다.

 

‘꾸앙’의 배가 터져 창자가 다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온몸의 뼈가 거의 다 부러졌다는 것이었다. 옆구리는 움푹 패어 있었으며, 두 팔은 늘어져 덜렁거리고, 넓적다리는 시퍼렜다.

 

1966년, 자신의 첫 분대장이었던 꾸앙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소대에서 살아남은 동료는 단 두 명. 꾸앙은 그중 하나인 끼엔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울부짖었다. 끼엔은 수많은 죽음을 지켜 봐왔고, 분대장의 죽음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끼엔의 인생 마지막까지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참전 후 끝나버린 첫사랑 ‘프엉’에 대한 기억과 함께.

 

 

열일곱 살의 차가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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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P통신>

 

1964년 8월5일,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북베트남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북베트남과 미국의 싸움이 새로 시작되었다. 끼엔은 10학년 동급생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미국의 패배를 단언하며 미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했다. 학생 한 명이 “침략자에게 죽음을!”이라 외치자 모두가 우렁차게 합창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은 학교, 같은 책상을 사용하던 끼엔과 프엉은 열일곱 살이 되었다. 둘의 인생이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소년기가 끝나는 때였고, 프엉은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다. 그들은 평온하고 맑은, 순수한 시절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내 끼엔의 징집이 결정되었다. 하노이를 떠나야하는 전날 밤, 둘은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를 눈에 담았다. 

 

우린 겨우 열일곱 살인데 살아서든 죽어서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난다면 언제, 몇 살에? 그리고 그때도 우린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될까?”

 

 

전멸한 부대와 생존한 끼엔

 

서부 고원에서 시작된 전쟁은 참혹했다. 끼엔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젊은 병사에게 발동한 생존 본능은 강력한 방어 기제로 작동했다. 전쟁 통에서 프엉을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우기가 시작될 무렵, 그가 소속된 27대대가 ‘고이 혼’ 밀림 지대에서 적에게 포위된 채 괴멸당했다. 끼엔은 총에 맞아 온몸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밀림 속을 알몸으로 기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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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로 이송되는 베트남전 참전군

<출처 - 한경DB>

 

학살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밀림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끼엔을 발견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제8 야전병원. 말이 병원이지, 쉴 새 없이 퍼붓는 폭격으로 공간은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끼엔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어둡고 축축한 땅굴 속에 머물렀다. 상처는 썩으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끔찍한 냄새에 모기도 달려들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땅굴에 프엉이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였다. 땀으로 끈적해진 끼엔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거친 손으로 끼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로 상처를 닦고 핀셋으로 그의 썩은 살 위로 우글거리는 구더기를 떼어냈다. 땅굴 속은 어두웠고 끈끈한 습기, 악취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빛나는 그녀의 갈색 눈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끼엔이 211병원에서 깨어났다. 바람이 잘 통하는 깨끗한 병상이었다. 그는 프엉을 애타게 찾았다. 그러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끼엔의 옆에 있던, 두 다리가 잘린 병사가 그에게 모두 착각이라고 했다. 끼엔은 꿈에 나타난 프엉의 간호로 다시 살아났다. 제8 야전병원 부상자, 근무자들은, 끼엔이 후송된 뒤 발생했던 무차별 폭격으로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와 나처럼 심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먼저 수송했는데, 우리가 떠나고 한두 시간도 안 돼서 그곳이 B52 폭격을 받았대. 듣자 하니 완전히 전멸되었다고 하더군. 폭격을 쏟아부은 후에 놈들이 소탕 작전까지 펼쳤거든.”

 

 

마지막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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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P통신>

 

전쟁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미군은 패배 후 베트남 영토를 떠났다. 부패한 남베트남 정권은, 북베트남 군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끼엔이 속한 연대는 ‘부온 마 투옷’ 경찰서를 공격했다. 남베트남 경찰들은 전투병 못지않게 맹렬히 저항했다. 한 시간 총격전 끝에야 비로소, 끼엔의 부대는 건물 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긴 복도를 뛰어다니며 사무실마다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3층의 마지막 방에 다다랐을 때, 하얀 군복 차림의 세 그림자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끼엔의 AK 총구가 불을 뿜었다. 두 명은 잘 익은 자두 색깔의 피를 울컥울컥 분수처럼 솟아내며 즉사했다. 나머지 한 명은 힘이 빠져 벽에 기대어 앉았다.

 

세 명 모두 여자였다. 탄약 냄새와 피비린내 속에서도 여자 향수 냄새가 느껴졌다. 끼엔과 그의 전우 ‘오안’은 여경에게 두 손을 올리고, 마당으로 이동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 쏘지 않을 거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들이 등을 돌린 순간, 여경은 오안을 향해 총을 쐈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구부정하게 서서 끼엔의 얼굴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사정거리에 있었다.

 

끼엔은 운이 좋았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그녀의 권총 탄창은 비어 있었다. 끼엔은 재빨리 그녀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 총알의 절반을 퍼부었다. 그 많은 총알을 맞고도 그녀는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 했다. 그는 나머지 절반을 모두 발사했다. 7.6밀리미터 총알이 그녀의 하얀 셔츠를 뚫고, 그녀의 등 뒤 대리석 바닥에 퉁-퉁-  떨어졌다.

 

1975년,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 공수부대와의 치열한 교전 끝에 ‘선 녓’ 국제공항을 점령했다. 드디어 전쟁이 끝을 맞이했다. 끼엔의 소대원 중 생존자는 그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다. 한 달만 더 버텼더라면, 동료 ‘오언’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전쟁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적을 죽여야 했다. 끼엔은 자책했다. 여자라고 방심한 결과, 자신을 대신해 오안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프엉과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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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월27일, 파리평화협정에 서명하는 북베트남 외상, 트린

 

삽질을 하다 보면 묘혈의 바닥이 드러나고 그곳을 가득 덮고 있던 죽은 자의 마지막 숨결이 끼엔을 파고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끼엔은 유해 발굴단에 소속됐다. 온 나라 곳곳에 귀신이 출몰했고 온갖 괴담이 난무했다. 요괴를 봤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길가에 송장이 있었고, 손에 쥐면 바스러지는 백골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폭탄에 무너진 참호에는, 서로의 머리를 어깨에 기대 죽어 있는 어린 미군 병사들이 있었다. 끼엔은 다시 악몽 같았던 그때로 돌아가, 유해를 발굴해야 했다.

 

고향 하노이로 돌아가는 날이 왔다. 기차는 환희에 찬 경적을 울렸다. 마치 ‘행복! 행복!’하고 환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뒤라, 끼엔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가슴이 조여왔다. 마치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옆집에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인은 끼엔을 바라봤다. 몸이 떨렸다. 온몸의 감각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전쟁 통에서 보낸 오랜 시간이, 한순간에 응축되는 느낌이었다.

 

“끼엔!”

 

 “프엉... 내 사랑!”

 

아주 길고 정열적인 키스를 퍼부었다. 둘은 서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더 이상 헤어질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프엉을 끌어안은 행복한 그 순간, 끼엔은 약간의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오랜 시간, 슬픔과 좌절의 감정만 느끼던 그에게 행복은 낯선 감정이 되어 있었다.

 

프엉이 나온 문틈으로 얼핏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남자였다. 프엉은 전쟁 기간,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하며 그들의 도움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끼엔은 프엉을 끌어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문지방에 놓여 있던 배낭을 집어 들고 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왔다 갔다, 방안을 정신없이 휘저었다. 프엉을 만난 기쁨도 잠시, 그는 상실감에 빠졌다. 전쟁 이후 자기 삶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한 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잔혹한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내가 살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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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파괴된 마을 모습

 

시체로 산을 이루고 핏물로 강을 이뤘다. 끼엔은 자신의 피를 쏟았고, 살기 위해 다른 이의 피를 냈다. 구국 항전의 아름다운 정신을 가지고 시작한 전쟁이었으나, 전쟁의 비인간성은 추악하고 노골적이었다. 참전한 군인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고통에 시달렸다. 사는 동안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었고,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4년 동안 T54 탱크를 몰았던 ‘브엉’은 심한 멀미에 시달렸다. 종전 후 운전을 생계 수단으로 선택했지만, 심한 멀미 때문에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는 시체 더미의 뼈 때문에 탱크가 흔들릴 때마다 토했다. 살기 위해선 술을 마셔야 했고, 그러면 운전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운전을 포기하고,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끼엔은 프엉을 잃었다. 이번 헤어짐은 영원한 이별이었다. 그녀가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끼엔은 삶의 의미를 잃어가면서, 그의 미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술을 마셔야 했다.

 

글을 써야 한다! 잊기 위해 쓰고 기억하기 위해 써야 한다. 의지하고 구원받기 위해, 견디기 위해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가 생각해낸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조국이 지나온 어두운 벌판의 시간을 기록했다. 프엉과 함께 사라진 사랑과 희망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고, 자신이 그 증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자리 잡게 되었는지 알리기 위해.

 

슬픔이 사라질 때까지 전쟁의 아픔을 되새김질했다. 매일 밤, 술에 전 원고지가 산처럼 쌓였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끊임없이 글을 써내려 갔다.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그의 인생에는 딱 두 번의 사랑밖에 없었다. 한 번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그와 프엉의 사랑. 또 하나는 전쟁 이후의 다른 사랑, 역시 그와 그녀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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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반대 시위 모습

 

 

전쟁을 말하는 자에게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맞붙었습니다. 당시도 지금처럼 북한 핵 문제가 떠오르던 때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위협 요소는 남한 기득권자에게 호재로 작용합니다. 검은돈으로 북한에게 무력시위를 부탁(15대 대선 총풍사건)할 정도로 말입니다. 노무현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이때 노무현이 유권자들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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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링크)>

 

“전쟁이냐, 평화냐.”

 

진정성과 간절함이 가득한 물음에 현명한 유권자들이 답했습니다. 54만여 표 차이로 노무현 후보는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이 0.7% 차로 당선되었습니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중 48.56%가 그를 행정부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로 선택했습니다. 그의 군 경력은 ‘면제’입니다. 1982년, 부동시로 군 면제를 받았는데 1994년 검사 임용 시에는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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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링크)>

 

취임 이후 지금까지, 군 통수권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귀를 의심케 합니다. ‘선제 타격’과 ‘응징 보복’을 이야기하고 ‘핵전력 공유’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물론 미국이 즉시 부인했지만 말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반도 평화 핵심 과제의 첫 단계, ‘종전 선언’까지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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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링크)>

 

들을 때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 주적까지 집어줄 정도로 깡이 있는 사람이니, 단순한 ‘치킨 호크’의 철없는 ‘뻥카’로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노년기에 국가를 위한 아름답고 조화로운 죽음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더 이상 아름답거나 조화로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195km에 불과합니다. 그 중간에는 종전이 아닌 '휴전'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휴전선을 경계로 세계 6위, 세계 28위 군사력이 마주 보고 대치 중입니다. 한반도는 영토가 좁아, 남한과 북한 군사력 대부분이 휴전선 일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70여 년 전에 발생한 한국 전쟁 때도 전 국토가 파괴되었습니다. 지금은 2023년입니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살상 무기들이 생산되었습니다. 거대한 두 무력이 충돌하는 순간, 한반도 전체는 완전히 황폐해질 것입니다. 현대전에서 승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을 행복하게 가꾸면서 말이죠. 하지만 울타리가 무너지고, 집이 불타고, 사람이 죽어간다면, 행복한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곧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 누구도 감히 우리 인생을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속 인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소설은 세계 유수 언론들의 호평 속에서 베트남 최초, 전 세계 16개국에 출판되었습니다.

 

전쟁 소설이자 사랑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치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뉴욕 뉴스데이

 

전쟁을 언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곧 우리네 인생의 파괴자입니다. 작가 바오 닌의 말로 서른한 번째 인생 탐구를 마무리합니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수 없다.

 

-<전쟁의 슬픔>저자 바오 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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