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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2시간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2번째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정신과 약은 술과 상극이다.” (이건 내 후배가 늘 내게 하는 말이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마시는 게 술이란 사고 패턴을 버려야 한다!” (이건 심리 상담사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러나 내 주치의 선생님은 내 음주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혼술을 하지 않겠다며, 냉장고에 있는 술을 변기에 다 버렸다고 말하자,

 

“그걸 왜 버려? 집 앞에 나오면 다 편의점인데, 그거 버린다고 술 안 마실 거 같아?”

 

“그럼요?”

 

“어차피 마실 거 즐겁게 마셔.”

 

내 음주량과 음주 횟수를 체크하면서 내놓은 결론이다. 어차피 마실 거고, 어차피 반성할 거고, 후회할 거며, 또 반복할 거라면 그 짓을 왜 하냐는 거다. 이게 면죄부가 돼서 난 약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신다. 그리고 이날도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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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4시간 후

 

소주가 몇 병 들어간 뒤 전화를 돌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가'이다. 분명한 건 이 상황을 모르는 이들에게(정확한 표현으론 ‘정신적인 문제’를 겪지 못한 이들에게) 연락을 한다면,

 

“그래, 힘들겠구나.”

 

라는 일반적인 반응이거나,

 

“넌 이겨낼 수 있어! 내가 아는 너라면 다 털고 일어날 수 있어!”

 

라는 상투적인 응원 메시지 아니면,

 

“네 전화 받는 게 이제 꺼려져.”

 

라는 아주 ‘현실적인’ 반응이 나온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계속 이어지다 보면 결국은,

 

“저 새끼는 전화해서 칭얼대거나, 부정적인 기운만 퍼트리는 놈.”

 

으로 낙인찍힌다.

 

우리가 그때 키스를 했으면 어땠을까_ 가장 보통의 연애(최종) 2-57 screenshot.png

출처 -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이런 ‘정신질환’을 앓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리 친하더라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난 내 친가족한테서도 세 번째 반응을 듣고는 급박한 상황이 생겨도 가족에게는 잘 연락 하지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게 ‘홀아비’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결국 미친놈을 이해하는 건 미친년놈들이다.

 

(법상 스님의 ‘가족에게 바라지 말라, 감당하고 받아들이면 사라진다.’란 법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특히나 이쪽에 관해서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절대 바라는 게 있어선 안 된다. 심리상담사, 정신과 의사, 1393 등등 전문가의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다. 우리가 겪게 될 일들은 일반인들의 이해 영역을 벗어난다. 약 하나면 해결될 문제 때문에 칼부림이 날 수도 있고, 약 하나 때문에 사람이 침을 질질 흘리거나 눈이 풀릴 수도 있다. 이걸 일반인이 어떻게 이해할까? 또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약을 먹고, 나른함에 몸을 맡기는 이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란 직업군은 참 도움이(?!) 많이 된다. 주변에 널린 게 정신질환자들이다.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을 사탕 빨듯이 빨고, 고추장에 밥 비벼 먹을 때 참깨 대신 벤조디아제핀(신경안정제)을 뿌려 먹는 애들이 넘쳐난다.

 

(글을 쓰니까 정신질환에 걸리는 건지, 정신질환에 걸려야 글을 쓰는 건지 전후 사정은 모르겠지만, 글 쓰는 직업군 중에 정신과를 다니는 이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물론, 이것도 내 주변에 한정한 경험칙이다)

 

마녀1의 해답

 

“술은 먹지 마.”

 

“이미 마셨어.”

 

“더 마시지 말라고.”

 

“알았어.”

 

정적.

 

“그거 안 해도 살아.”

 

정적.

 

“나도 그때 CJ 거 때려 치웠잖아. 야, 드라마 생방 쓰는 작가도 때려치우는 세상이야.”

 

정적.

 

“도망가는 것도 방법이야. 안 죽어, 다 먹고 살게 돼 있어.”

 

정적.

 

“몇 년 뒤에 문득 생각날 거야.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나도 그때 일 생각하면, 별거 아니었거든? 그냥 요렇게 조렇게 하면 다 될 일인데,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그렇다고, 지금 너보고 일을 하라는 게 아냐. 그 일 접어. 무조건 접어. 다만, 경험자로 말하는 데 몇 년 뒤에 이게 생각이 날 거야. 그때 내가 앞뒤가 꽉 막혀서 방법이 보이지 않았구나. 정말 별 거 아닌데, 눈앞이 막혀서 안 보였구나, 라고 말야.”

 

“... 그래서 하지 말라는 거야, 하라는 거야?”

 

“하지 말라는 거야. 죽었다 깨나도 너 일 못 해. 그리고... 너 회사 관둬라.”

 

“에?”

 

“점점 약이 세지지?”

 

“어”

 

“그거 몸에서 신호 보내는 거야.”

 

“......”

 

“어쨌든 잘 생각해 보고... 이 세상에 ‘절대’란 없어. 딱 하나, 죽는 거 빼고 ‘절대’는 없어. 절대 안 되는 게 어딨냐? 지금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이지? 그걸 극복해 내야 내가 이기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거 같지? 우리 성장스토리 많이 써봤잖아? 그건 정상적인 상황, 좋은 조력자, 훌륭한 멘토가 있을 때나 가능해. 그런데 지금 넌 아프잖아? 이건 명확히 하자. 넌 지금 아픈 거지, 도망가는 게 아냐.”

 

미소가 위스키 마시며 들었을 재즈 🍸🎺 𝓢𝓽𝓪𝓬𝓮𝔂 𝓴𝓮𝓷𝓽-𝓣𝓲𝓼 𝓐𝓾𝓽𝓾𝓶𝓷 [ 영화 음악 _ 소공녀 ] [ 올드팝 l 재즈 ] 0-3 screenshot.png

출처 - 영화 <소공녀>

 

듣고 싶은 말일 수도, 위안일 수도, 선배의 경험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아프다’는 걸 확인하는 거다. 이 상황에 몰렸을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내가 극복할 수 있는데, 도망치는 게 아닐까?”

 

지금 자기가 먹는 약이 무슨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아니다. 지금 내가 먹는 약은 정신과 약이다. 그것도 신경안정제 계열의 약이다. 그 말인즉슨,

 

“극복이고 나발이고, 네 뇌에 구멍이 나서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다!”

 

란 소리가 된다.

 

(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면, 인데놀-긴장완화제-이나 뉴프람-항우울제- 같은 거 몇 알 먹어보면 대번에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우리 몸은 호르몬 변화에 따라 극과 극의 변화를 보인다. 그리고 약 한 알이면 그 변화를 조절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꼭 ‘인지’해야 한다. 약 한 알이면 되는데, 왜 그 약을 안 먹는데?)

 

우리는 곧잘 우리 앞에 놓인 일에 목숨을 걸고 해내려 하고, 어떤 사명은 무슨 일을 다해서도 달성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이 세상에 ‘절대’는 없다. 죽음 빼고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 찌들어 이 ‘진리’를 망각하고 있다. 정신과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