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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에 해외원조를 제공하는 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이 글은 몇 주 전 네팔 북서부에 소재한 차멜리야 수력발전소에 출장을 다녀오며 경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네팔 전력청(Nepal Electricity Authority)이 건설한 수력발전소에 대한 '완공평가'를 실시하기 위해 5일간 다녀온 출장이었다.

 

1. 육로로 자그마치 1,200km를 이동하는 출장길

 

해외 원조사업이 마무리되면 이른바 '완공평가'라는 것을 한다. 국민의 귀한 세금을 원조사업에 사용했으니 애초에 목표했던 대로 공사는 제대로 되었는지, 댐이나 도로나 공항이나 항만을 지었으면 당초 계획대로 잘 건설되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원래 완공평가는 공사가 끝나자마자 이루어져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 발생 직전에 수력발전소가 완공되는 바람에 2년 가까이 완공평가 출장을 가지 못하다가 코로나 사태가 그나마 조금 진정되면서 완공평가를 위해 출장을 갈 수 있었다. 토목 분야와 기계 분야의 외부 전문가 2명과 일정을 조율한 후, 2022년 11월 중에 출장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비행기를 이용하여 뉴델리에서 네팔의 당하디 공항까지 이동한 후 거기서부터 약 270km를 육로로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집에서 뉴델리 공항에 도착한 후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까지 간 뒤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당하디까지 도착하는 시간과 뉴델리에서 직접 차를 몰고 당하디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를 굳이 탈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선진국이라면 600km 거리는 예닐곱 시간만 달리면 되는 단거리 여행이지만 인도와 네팔에서는 장거리 여행이다.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이다. 무리해서 밤길을 달릴 수도 있겠지만 초행에다가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하는 길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결국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씩 이동해서 이틀에 걸쳐 사업지에 도착한 후 돌아올 때도 이틀에 걸쳐 복귀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작 회사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이렇게 장거리를 운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사무실로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왕복 1,200km 거리인데 운전해서 갈 수 있겠나?"

 

네팔 출신 운전기사는 그리 큰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인다.

 

"제가 고향으로 휴가 갈 때는 쉬지 않고 30시간씩 버스 타고 가곤 합니다.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 운전해 이틀 동안 이동하는 거는 별거 아니에요." 

 

나흘을 꼬박 왕복으로 달려야 하는 출장길의 부담감을 제대로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운전기사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결국 뉴델리에서 출발하여 장장 600km가 넘는 길을 편도 이틀에 걸쳐 사업 현장에 도착하여 현장을 점검하고 관계자와 면담을 한 뒤 또다시 600km가 넘는 길을 이틀에 걸쳐 되돌아오는 일정을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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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도-네팔 육로 국경을 넘어가다

 

출장 첫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우선, 300km 넘게 이동해서 인도-네팔 국경을 육로로 넘어가야 한다. 인도 북부의 우타란찰주(Uttaranchal 또는 Uttarakhand)에 있는 국경도시인 반바사(Banbasa)에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네팔의 북서부와 인도의 우타란찰을 가르는 자연 국경선인 사르다 강(Sarda River, 네팔인들은 Mahakali River라고 부르기도 함)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자 인도 측 국경검문소가 나타났다. 국경검문소라기보다는 시골의 신작로에 덩그러니 서 있는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이다. 인도와 네팔 국민들은 여권이나 비자 없이 양국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1950년에 서명된 양국 간의 우호조약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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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네팔의 국경지대인 반바사에 있는 교량.

이 다리를 건너면 국경 검문소가 있다

 

하지만, 인도나 네팔 국적자가 아닌 사람은 당연히 국경검문소에서 출국 사실을 확인받고 네팔에 입국해야 한다. 후덕한 시골 아저씨와 아주머니처럼 생긴 국경검문소 직원 2명은 인도인 특유의 느릿느릿한 일 처리 속도를 한껏 뽐냈다. 결국 1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여권에 출국 도장이 찍혔다. 자신들의 느린 일 처리에 조금은 계면쩍었던지,

 

"지난 2년간 이곳을 통과한 대한민국 국적자는 당신이 처음이다. 그래서 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라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인도 영토를 벗어났다.

 

몇십 미터 지나지 않아 인도 군인들의 초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국경초소였다. 제아무리 인도인들과 네팔인들은 자유롭게 통행한다지만 엄연히 국경이다. 소지품 검문검색이 이루어지고 나 같은 외국인들은 이름부터 연락처까지 꼬박 다 적어야만 국경초소를 통과할 수 있다. 다시 차에 올라타 1분 정도 가다 보니 이제는 네팔 국경검문소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역시 국경검문소라기보다는 시골 초등학교 앞에 있는 복덕방 같은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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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국경검문소. 소박한 모양새가 시골 초등학교 교문 앞에 있는 복덕방 같다. 내 뒤에 독일인 커플이 합류하면서 좁은 국경검문소가 금세 꽉 찼다.

 

3.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순백색의 히말라야

 

입국 도장을 받았으니 이제 공식적으로 네팔에 입국한 것이다. 네팔 입국사무소 공무원 역시 "이 루트를 거쳐서 입국하는 한국인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네가 처음이야"라는 말을 하며 나에게 여권을 되돌려 주었다. 한 시간 남짓 길을 달리니 드디어 예약해놓은 호텔이 나타났다. 말이 호텔이지 한국이었다면 여관에서 여인숙의 중간쯤 되는 곳이었다. 짐을 대충 풀고 나서 저녁을 주문했더니 방으로 가져다주겠단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 갈 때마다 잊지 않고 그 지역 맥주를 시켜서 맛을 보곤 하는데 이날도 잊지 않고 네팔 현지 맥주를 주문했다. 다만, 영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 호텔에서 온갖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서 주문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100% 채식 식단을 주문하게 되었다. 영어가 단 한마디 통하지 않는 식당 종업원을 붙잡고 "닭고기 요리를 해주세요"라고 다시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먹기로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때로는 빠르게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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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디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 영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주문하다 보니 전혀 의도하지 않게 100% 채식 식단을 주문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호텔에서 나서서 당하디 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카트만두를 거쳐 당하디에 도착하는 기술전문가 2명을 픽업하기 위해서였다. 공항 건물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인사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차에 올랐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해발고도 2,100m가 넘는 산지를 넘어 270km나 떨어진 사업 현장에 도착하려면 한시도 낭비할 수가 없었다.

 

당하디 지역 공항을 출발한 차는 30분 정도 평탄한 길을 달리나 싶더니 어느덧 산길에 접어들었다. 급한 좌회전과 우회전을 몇 번 되풀이한 자동차는 순식간에 깎아지른 절벽을 옆구리에 끼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산길을 돌아서 올라간 자동차는 이제 지상으로부터 수백 미터가 족히 되는 높은 산허리에 깔린 일 차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차량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었다.

 

산모퉁이를 한번 돌 때마다 운전기사는 잊지 않고 경적을 울렸다. 반대편에서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차량에 경고하고자 함이다. 왼쪽 창문 밑으로는 족히 백여 미터는 될 것 같은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몇 시간째 계속되고 있다.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여기서 구르면 최소한 사망이겠구나.'

 

 

처음에는 무섭고 놀라워서 다리가 저릿저릿할 정도였지만 몇 시간이 지나자 그마저도 무감각해졌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네팔 북부의 놀라운 풍광을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새파란 하늘을 캔버스 배경으로 하여 백색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한 히말라야산맥의 고봉들이 손에 잡힐 듯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늘은 어찌나 새파랗고 만년설이 덮인 봉우리들은 어찌나 하얗던지... 두 가지 색깔의 대조가 너무나 선명하여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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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산맥이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산맥이다

 

4. 해가 지고 나서야 간신히 도착한 사업 현장

 

결국 해가 지기 전에 사업 현장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해가 지고 약 30분 더 산길을 더듬어 달린 후에야 힘겹게 사업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언제나 도착하려나 기다리던 현지의 발전소 운영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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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력발전소로 들어가는 진입로. 하룻밤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산책길에 찰칵~~

 

발전소 부지 내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자 발전소에서 제공해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제 당하디의 호텔에서 먹었던 것과 거의 차이가 없는 채식 식단이 등장했다. 어제 한번 경험한 100% 채식 식단이었지만 나와 동행한 기술전문가 두 분에게는 어떨지 걱정이 되어 슬쩍 쳐다봤더니 맛있게 잘 들고 계셨다. 사업 현장에 오는 차 안에서 "워낙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다"라고 말씀한 것이 빈말이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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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력발전소 측에서 제공해준 게스트하우스. 뜨거운 물조차 나오지 않는 낡고 추운 숙소였지만 이틀 밤 지내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워낙에 공기가 좋은 곳에서 푹 잠을 잤더니 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다. 방문을 여니 상쾌하다 못해 서늘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뉴델리의 공기와는 천지 차이였다. 이렇게 깨끗한 공기를 얼마 만에 마셔보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산책하러 나가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원래 수력발전소는 험한 산골짜기에 만들어지다 보니 배후 지역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낙후된 산악 지역일 수밖에 없다. 차멜리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산책만으로도 산골 마을을 둘러보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를 열고자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보자니 '세상 사는 게 크게 다를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마을 전체에 켜켜이 쌓여있는 수천 년에 걸친 가난의 흔적을 바라보자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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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멜리야 수력발전소로 유입되는 차멜리야 강의 모습

 

5. '한국 덕분에 우리 네팔의 1/4이 전기를 처음 경험했어요.'

 

발전소에서 제공해준 아침을 먹었다. 어제 저녁과 똑같은 채식 식단이었다. 발전소 운영진과의 면담과 현장 방문 일정이 시작되었다. 발전소를 책임지는 발전소장은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등장했지만, 기술 부문을 책임지는 수석 기술자(Chief Enegineer)는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출근했다. 이런 산골짜기에서 양복을 입을 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있을까? 사후 완공평가를 받는 자리에 최대한 예의를 갖춰 나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Chief Engineer는 벽에 붙어 있는 네팔 지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한국이 제공해준 발전설비 덕분에 네팔의 1/4이 전기의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지원을 받아 건설된 수력발전소가 수백만 명의 주민들에게 문자 그대로 새로운 빛의 세계를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공급할만한 충분한 전력은 아니지만 수천 년 동안 전기라는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빛'이 공급되었다. Chief Engineer의 첫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편도로 이틀이나 걸려 육로이동을 해야 하는 출장을 가라는 본사의 지시에 투덜거렸던 기억들, 비포장도로에서의 고생스러웠던 기억들, 아찔한 낭떠러지를 끼고 달리던 길에서 느꼈던 서늘한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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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차멜리야 수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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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멜리야 수력발전소 소장이 발전소 운영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산골짜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험준한 동네... 가장 가까운 문명의 끝자락은 자동차로 꼬박 하루를 달려야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다. 이런 곳을 평생에 한 번 잠시 스치듯이 지나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수천 년 동안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이 땅에서 태어나 자식의 자식을 낳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불편과 나의 불만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를 생각하니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네팔 답사기는 Ⅱ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