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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전역이란 말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말이지만, 요즘 직업군인들에게는 가장 핫한 말일 거다.

 

군 인사법에 의하면, 육군 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는

 

“너희는 의무적으로 10년 근무야!”

 

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법에는 언제나 예외 조항이 있듯, 10년 의무복무 기간의 중간인 5년 차에 한차례 조기 전역할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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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그들이 옷을 벗는 이유

 

의무복무 기간 10년을 규정해 놓은 건 반대로 말하면, 국가가 그만큼 돈을 투자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사관생도 1명을 4년 동안 키우는데 평균적으로 2.3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문제는 해마다 육군사관학교의 자퇴생이 늘어난다는 거다. 2018년에는 8명이었던 자퇴생이 해마다 늘어나서 이제는 평균 20명 내외가 된다. 특히 2020년 이후 자퇴생 비율이 급상승했다.

 

2020년 19명, 2021년 28명, 2022년에는 40명이나 됐다. 자퇴생 비율이 올라가는 만큼 입시경쟁률도 떨어졌다. 2020년에는 44.4 대 1이었는데, 2022년에는 25.8 대 1 이었다.

 

5년 차 전역을 가볍게 흘려 넘기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군 생활하다 보니까 체질에 맞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다. 보통 육사 한 기수가 200명 조금 넘게 임관하는데, 한 기수당 평균 10명 내외가 5년 차 전역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5년 차 전역이 수십 명 단위로 발생한다면, 이건 군대에 대한 경고이며 신호가 된다. 대표적인 예가 육사 52기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언뜻 와닿지 않는 이들에게 잠깐 육사 52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김훈 중위 사망 사건』

 

방송에서 몇 번이나 말했던 미제 사건이다. 군 수사기관에서는 ‘자살’이라고 말했지만, 김훈 중위 오른손에서는 화약흔이 나오지도 않았고(왼손에서 화상 및 화약 잔여물이 나왔다), 총에서는 김훈 중위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몸 이곳저곳에 부상 흔적들이 있었다(머리에 혈종이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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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임에도 군은 김훈 중위를 ‘자살’로 만들었다. 김훈 중위의 아버지가 1군 단장을 역임했던 3성 장군 출신인데도,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이 사건 직후 대위로 진급하게 된 육사 52기 생들 중 33명이 5년 차 전역을 선택했다. 그들에게 김훈 중위는,

 

“우리 군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 바로미터.”

 

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대는 또 다른 ‘경고’를 듣게 된다.

 

메리트가 없다

 

' 5년 차 전역'은 때 되면 한 번씩 꼭 세간에 오르내리는 단어다. 10년 전에도 한 번 5년 차 전역에 대한 논란이 한 번 있었다. 이때 확실히 증명된 한 가지가 바로 ‘인센티브’이다.

 

육사 61기의 전역 연도는 2010년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질 무렵 사관학교에 있었던 그들은 임관한 이후에도 별 탈(?!) 없이 잘 근무했다. 험난한 사회보다는 안정적인 군대를 선택한 거다. 그러나 이후 전역률은 가파르게 상승한다(경제가 살아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육사 62기는 8.8%, 육사 63기는 7.7%, 육사 64기는 9.7%를 찍더니 육사 65기의 경우는 14.6%가 5년 차 전역을 선택했다.

 

(65기가 전역한 2014년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군대를 뒤흔든 ‘폭력 사건’이 연달아 터진 해이기도 하다. 2014년 4월에 있었던 윤 일병 사건. 바로 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이 있었고, 2014년 6월에는 임 병장 사건, 그러니까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죽이고, 7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터졌다. 이때 나온 말이 ‘군대에서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이란 말이 나왔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군을 뒤흔든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초급장교들의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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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65기는 총 212명이 임관해서 이 중 31명이 5년 차 전역을 선택했는데, 이들 중 18명의 전역 사유가 바로 ‘재취업’이었다(경제적인 부분과 군 내부에서의 커다란 사건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을 거다). 사회의 경제 상황에 따라 군의 인원이 움직이는 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시도 경제 불황일 때는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입대가 많지만, 경제가 호황일 때는 중졸, 혹은 고등학교 중퇴자들의 입대가 많다.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더... ‘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거다. 이제 더 이상 사명감을 강요할 수도 없고, 개인의 희생을 ‘애국’이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만은 없게 됐다. 육사 65기의 경우는 52기의 ‘김훈 중위 사망 사건’ 같은 직접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초급간부들의 지휘부담을 고민하게 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여기에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사관학교 출신이 5년 차 전역을 한다면 그 시선에는 묘한 이물감이 섞여 있었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중령 진급은 따놓은 당상인데... 왜 나왔지?”

 

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 그 인식을 넘어서는 개인의 취향, 선택들이 군대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세상이 변화해 가는 거다. 이 변하는 세월을 붙잡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된다.

 

(이 당시 국회 국방위에서 논의되던 게 5년 차 전역을 없애고, 8년 차 전역으로 바꾸자는 의견이었는데, 지금은 뭐... 시대에 뒤떨어진 논의가 됐다)

 

간부 없는 군대

 

군 유인책. 쉽게 말해 ‘인센티브’가 박살 났다는 단적인 예가 바로 ROTC 지원율이다. 이미 ROTC 지원율부터 시작해서 초급장교, 부사관들을 충당하는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초급장교의 70%를 차지하던 ROTC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미 경쟁률부터가 쭉쭉 내려가고 있다. 2014년 6.1 대 1이었던 ROTC 지원 경쟁률은 2021년 2.6 대 1까지 줄어들었다. 경쟁률이 줄어드는 속도만큼 임관하는 장교 숫자도 줄어들었다. 2018년 4,111명이던 학군사관 임관자 수가 2022년에는 3,561명까지 줄어들었다. 

 

학군단의 인기가 줄어드는 이유가 지금 군 간부들이 전역하려는 이유와 비슷하다. 학군단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가 뭘까?

 

“병사보다 군 복무 기간이 짧다.”

 

“월급도 병사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였다. 병사들의 복무기간이 36개월이었던 시절 ROTC는 28개월만 근무하면 됐다. 월급? 이 글을 쓰고 있던 내가 이등병 때 받았던 월급이 9천 원이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ROTC는 장교 월급을 받는다(학생 시절 받는 장학금도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에 나와 취업 할 때도 ROTC는 충분한 메리트가 있었다. ROTC 취업 전형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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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병사의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들었다. 2025년까지 병장 월급은 150만 원 수준으로 인상될 거다. 여기에 전역 시 나가는 내일준비지원금까지 포함하면 거의 지금의 장교 월급을 가져간다.

 

(2022년 소위 1호봉 기준 175만 원의 월급을 가져간다. 물론, 여기에는 수당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비교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오는 고민은 간단하다.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막중한데, 복무 기한은 더 길고, 월급은 비슷해졌다.”

 

“상대적으로 병 생활이 훨씬 더 편해졌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있으며, 예전에 비해 구타 가혹행위도 덜하다.”

 

“요즘은 부모들이 아들 소속 중대 밴드에 들어가 아들의 식단까지 관리한다.”

 

병들의 복지는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다. 국가가 이들에 대해 정당한 보상과 대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걸 반대하겠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징병제’ 국가라는 점이다.

 

선심성 공약이 군대에 미치는 영향

 

작년 12월 28일 국방부는 『2023~2027 국방중기계획』 이란 걸 발표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병역의무이행에 대한 보상을 강화”

 

“간부들에 대한 지휘 및 복무여건 개선”

 

이라는 부분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를 위해 ‘돈’을 쏟아붓는다. 향후 5년간 331조 4000억 원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국방예산에서 ‘전력 운영비’ 비율이 계속해 증가한다는 거다. 2027년이 되면 국방예산이 76조인데, 이 중 48조 5천억이 전력 운영비. 즉, 군대를 유지하는 데 쓰이게 된다.

 

(국방예산을 나누면 크게 ‘병력 운영비’와 ‘전력 유지비’, ‘방위력 개선비’ 3개로 나눈다. 병력 운영비는 말 그대로 병력을 유지하는 비용이고, 전력 유지비는 장비들을 유지하는 비용, 방위력 개선비는 무기를 개발하거나 도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거듭 말하지만, 군인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 1%도 딴지 걸 생각이 없다. 문제는 이게 ‘정치 논리’로 진행된다는 게 문제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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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선 때 뜨거운 화두 중 하나가, 병 월급 200만 원 인상에 관한 논쟁이었다. 윤석열 캠프에서는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이를 실행할 거라 말했다. 이 ‘공약’을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이 공약을 입안한 정책 개발자와의 인터뷰에서 느꼈던 한 가지는,

 

“... 이 공약은 말 그대로 공(空)약이다.”

 

국방비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공약이 지켜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당장 걸리는 게 초급 간부들 보수체계다. 소위, 중위는 물론 하사, 중사들의 월급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앞에서 언급한 ROTC의 존재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초급장교의 70%는 학군단이 채워줬다. 이들이 장교를 지원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유인책’ 때문이다. 그런데, 그 메리트가 사라졌을 경우 장교들을 어떻게 충원할 거냐는 질문이 남는다. 간부로서 의무와 책임감은 그대로 남아 있고, 복무 기한은 더 길고, 월급 차이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장교로 갈 바에는 병으로 짧게 복무하고 나오자.”

 

란 말이 나오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지 않을까?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병사 월급이 오른다면, 거기에 맞춰 초급 간부들의 월급도 올라야 한다는 거다. 아니면, 누가 간부를 지원하겠는가?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걸 정치권에서 내놨다는 거다. 병 복지를 위한 판단이라면 얼마든지 이를 환영할 수 있다. 그러나 병 복지보다는 ‘표’를 염두에 두고, 우선 지르고 보는 식의 선심성 공약을 내던진 거였다. 당장 초급 간부와의 형평성 문제를 어떻게 말할 것이고, 향후 이들에 대한 유인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는 대책이 없고, 우선 표가 되는 이들을 모으기 위해 ‘지르고’ 본 공약이다. 상식적으로 병사의 월급을 그 정도 준다면, 간부들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대우해 줘야 하지 않겠냐는 의문이 들지 않겠는가?)

 

문제는 ROTC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관학교까지 흔들린다는 거다. 군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관학교 출신들도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거다.

 

5년 차 전역에 군인들이 몰리고 있고, 장기(복무)가 된 군인들도 전역을 고민하게 됐다. 각 군의 인력 운영 계획은 인사참모부에서 치밀하게 계산해서 계획을 짠다(이거 진짜 치밀하다). 군별, 계급별로 손실 인원을 예측하고, 적정 진급 수와 초임 획득(신규 임용) 인원을 결정해서 무리 없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을 뽑고말고가 아니라 계급별 장기 인력 예측 결과를 뽑아서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진급 예정 인원도 계산하고, 신규로 얼마나 뽑을지도 계산하고, 전역한 만큼 그 자리를 채우거나 누굴 진급시킬지를 계산할 수 있다. 이거 상당히 복잡하다.

 

지금 한국군은 이 복잡한 인사관리의 첫 단계인 ‘초임 획득’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