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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를 이어오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한 가지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모병제를 했을 때 과연 적정한 병력 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짧은 문장 안에 수많은 전제가 깔려 있다. 

 

“적정한 병력 수”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북한군의 병력 수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당장 우리가 상대해야 할 북한군의 숫자와 이들의 전략을 고려해 봐야 한다.

 

‘국방백서’ 기준으로 북한군의 숫자는 128만이다. 이 중 70% 정도가 휴전선 근처에 밀집돼 있다. 이들은 전쟁 나면 바로 밀고 내려올 생각을 하고 있다. 핵을 제외하고라도, 대한민국은 전략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전선 길이는 250킬로미터나 되는데, 종심은 불과 40킬로미터 밖에 안 된다.

 

간단히 말해서,

 

“지켜야 할 전선은 넓은데, 한 번 뚫리면 바로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

 

이란 거다. 왜? 40킬로미터 앞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있으니까. 수도권에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과 경제력의 70%가 몰려 있다. 여기가 박살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수도 이전’이란 말이 왜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략적으로 봤을 때 북한군이 128만 이란 병력을 유지하고 있고, 이 중 70%를 전방에 집중시킨 상황이라면 한국의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북한군의 숫자를 줄이거나 북한의 전쟁 의지를 없애는 방법.

 

둘째, 북한군의 숫자에 대응해 병력 수를 유지하는 것.

 

한국군 내 여러 문제점의 핵심은 바로 ‘북한’ 때문이다. 북한이 있기 때문에 50만 수준의 막대한 숫자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거다. 여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미, 중, 러, 일의 군사력을 생각하면, ‘적정 병력 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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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모범적인 사회, 경제적인 대우

 

뜬금없이 모병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망가져 버린 인센티브를 대체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해 보자는 거였다. 물론, 여기서 지금 본격적인 모병제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건 아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건 ‘숫자’다. 우리가 지금 모병제를 시작했을 때 그 숫자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자는 거다. 이 ‘숫자’가 곧 우리가, 우리나라 군 간부에게 쏟아야 할 ‘관심’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징병제 국가의 평균 병력 비율(인구 대비)은 0.84% 정도이다. 한국 평균은 훌쩍 뛰어넘는 1.3%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2.2% 수준이다(이스라엘의 안보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거다. 또한 평균보다 높은 우리나라의 수치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모병제 국가의 인구 대비 평균 병력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징병제 국가의 절반 수준인 0.4% 수준이다. 모병제 국가로서 가장 모범적인(!) 수준의 사회, 경제적인 대우를 해주는 미국의 경우는 0.42%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모범적인 사회, 경제적인 대우’란 대목이다. 이웃 나라 일본 자위대의 경우 늘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자위대 충원율은 평균적으로 60% 수준에 머물러 있고, 전체 자위대원 중 약 40%가 40대 이상인 군대가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상병이 42살인 군대가 자위대인 거다. 

 

이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병제를 선택한 유럽 선진국의 경우, 인구 대비 평균 병력 비율은 0.26% 수준까지 떨어진다. 왜?

 

“군대의 억압적인 문화가 싫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하다.”

 

“살던 대로 사회에서 편하게 살고 싶다.”

 

우리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여론조사까지 갈 필요도 없을 거다. 예비역들의 술자리 단골 vs 논쟁이,

 

“얼마 주면 다시 군대 갈 거냐?”

 

라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군대는 가기 싫은 곳에, 마주하기 싫은 사람과, 원하지 않는 시간 동안 있어야 하는 곳이다. 누가 가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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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202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모병제를 시행한다면, 병력 충원율이 얼마나 될까? 선진국 수준으로만 충원된다고 해도 13만 명 수준일 거다. 이것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한국군이 끝끝내 징병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병제로 했을 때 누가 군대에 오려고 할까?”

 

란 근본적인 두려움.

 

우리나라와 안보 환경이 비슷했던 대만의 경우, 모병제로 전환하는 걸 세 차례나 연기하고 나서야 겨우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병력 충원율은 81%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은 이보다도 더 심각하다. 인구 절벽 수준에 달해있기 때문에 병력 충원을 하는 게 더 어렵다. 한국 국방연구원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모병제로 돌아설 경우, 20세 남성 10명 중 1명이 입대해서 12년 이상 장기 복무를 해야 겨우 30만 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수치가 무시무시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대우를 해주는 미군의 지원율보다 2배나 높은 수치란 점이다(유럽의 3~4배 수준). 

 

그들은 왜 군대에 지원하는가

 

그럼 인구 대비 평균 병력 비율 0.42%를 자랑하는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청년 20명 중 1명이 자발적으로 입대하는 나라다. 미국의 군인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대우는 상당히 촘촘하고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다.  

 

DMDC(Defense Manpower Data Center : 미국 국방 인력 데이터 센터)라는 게 있다. 여기서 하는 일은 민간인, 현역, 예비역 등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조사한다.

 

“너들 군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뭐 필요한 거 없어?”

 

“살만해?”

 

ARI(Army Research Institute for the Behavioral and Social Science : 육군 행동 및 사회과학 연구소)라는 것도 있다. 여기선, 

 

“너희들이 어떻게 인력 충원하고, 임무 부여하고, 훈련해야 하는지 연구해 줄게.”

 

한마디로 병력 자원을 뽑고 관리하고, 훈련하는 걸 도와준다. 인원 구성을 보면, 120여 명의 민간인... 이들의 95%는 심리학자이다. 군인은 딱 2명뿐이다.

 

이건 새 발의 피다. 미군은 수많은 연구기관, 여론조사기관을 운용하면서 군 내부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정책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일례로 미군은 APSP(Army Personnel Survey Program : 군 인력 조사 프로그램)이란 걸 운영하고 있는데, 이걸 통해서 현역 병사는 물론, 그 가족들의 의견과 그들의 행동 특성, 태도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이들이 원하는 걸 정책으로 반영한다. 미군은 이런 조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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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P

 

이런 연구와 조사의 결과 중 하나가 MWR(Morale Welfare Recreation : 사기, 복지, 레크리에이션)이다. 미군을 대표하는 복지제도 중 하나인데, 단순히 돈을 많이 준다고 모병이 되는 게 아니란 걸 단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한국군이 보기엔 꿈같은 제도인데, 돈 보다는 그 ‘배려’가 눈에 띈다. NWR은 기본적으로 군인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에 대한 배려가 물씬 배어난다.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보면, 

 

① 공동체 지원 서비스(Community Services)

 

“어, 너 이번에 독일에 있는 5군단으로 간다면서?”

 

“아, 진짜 그거 때문에 고민이다. 이사는 어떻게 할 거며, 애들 학교는...”

 

“뭘 걱정해? 우선 돈부터 보자... 재정계획은 이렇게 짜고, 집은 가족용으로 나온 관사 잡아 놓을게, 애들 학교는...”

 

이건 정말 일부다. 군인과 가족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준비해 주고 있다. 당장 어디로 발령받더라도 이사를 어떻게 하고, 집을 어떻게 구할 거며, 그때 들어가는 비용을 군에서 어떻게 보전해 줄 거며,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할 것이며... 등등등 모든 걸 도와준다. 

 

(이와 함께 배치전환 프로그램도 있어서 배치전환에 대한 상담과 비품 등의 무료 임대도 해준다. 하긴, 전 세계적으로 군대를 파견하는 나라다 보니 이런 것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② FAP(Family Advocacy Program : 가족관계 고취 프로그램)

 

미국 특유의 가족주의라고 해야 할까? 미군은 건강한 가족관계 형성에 목숨을 걸었는지 부부 갈등 관리부터, 해외 복무 후 귀국 군인의 스트레스 관리, 청소년 자녀를 상대하는 프로그램 등등 수많은 가족 프로그램들이 있다. 심지어 군인들의 자식을 위한 아동 및 청소년 지원 서비스도 존재한다. 부모를 따라 이사를 자주 하는 군인 자녀들이 학업과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교육은 물론, 교우관계, 진로까지 군인 자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치밀하게 짜여 있다. 심지어 영아에서 12세까지 군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프로그램도 있고, SLO(School Liaison Officer : 학교 연락장교)라고 해서 부모 따라 전학 온 아이들을 위해  공립, 사립학교의 등록, 졸업, 전학 문제뿐만 아니라 홈 스쿨링까지 지원하는 인원이 따로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군인 복지가 준비되어 있고, 군인을 지원해 주고 있다. 미군 젊은이 20명 중 1명이 괜히 군대를 가는 게 아니다. 

 

유사 군인의 군대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 초급 간부 충원율이 떨어지고 있다. 군 내부적으로도 뽑아놓은 초급간부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 핵심은 간단하다.

 

“모병제로 했을 때 누가 군대에 오려고 할까?”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된다. 모병제라 했을 때 오고 싶은 군대 수준까지 만들면 된다. 초급 간부 대신 병사로 입대하려고 하는 이유는, 병사로 병역 의무를 대신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급 간부들이 군을 떠나려는 이유는, 직업군인이 군인으로서의 매력이 없어서이다.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모병제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미군이 미쳤다고, 여론조사 계속 돌리며 군인과 그 가족, 장래 군인이 될 민간인들의 여론을 확인하고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걸까? 그리고 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걸까?

 

간단하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광범위한 유인책을 만들고 군인 복지를 위해 애쓰지만, 경제가 활황일 때는 여지없이 병력 충원율이 떨어지는 게 미군이다. 한국군 내부적으로,

 

“지금 이대로라면 징병제를 포기하고 모병제로 갔을 때 누가 군대에 오려고 할까?”

 

란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한 걱정이다. 이미 초급 간부들의 모습에서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투자를 해야 한다. 그것도 제대로 된 투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군은 대대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군인(그리고 미래 군인 자원과 그 가족들)들의 속내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정책을 개발했다. 

 

한국군의 경우는 이미 군심이 들끓은 상황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 장기(복무)가 됐음에도 군대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보통 사회현상이란 건 어느 정도 진행되다가 이를 정의 내린 ‘단어’가 튀어나오면 사회적으로 폭발하고, 규정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지금 군대는 정의가 내리기 직전의 들끓는 상황이다. 장교 충원을 위한 대체재로 군사학과가 양산되고 있고, 엘리트라 불리는 사관학교 자퇴율은 늘어나고 있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군인력의 질이 떨어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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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문제점도 개선책도, 국방부는 다 알고 있다. 수많은 논문, 연구 조사, 향후 군 인력 설계 방안 등등 무수한 조사와 연구를 했다. 지금 그걸 외면하고 있다. 당장 2025년이 되면 50만 병력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고, 2030년대 중반이 되면 청년 모두가 다 군대에 들어가도 병력이 엄청나게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 초급 간부들의 들끓는 군심은 ‘먼저 온 미래’이다. 인구가 줄어드니 병력 수도 줄어드는 상황. 그 대안으로 부사관을 확충해 전문성을 배가시키려 했지만, 부사관을 포함한 초급 간부들은 군을 떠나려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명확한 상황인식이다. 

 

이제껏 국방부가 보여준 행태는 돌려막기란 느낌이 강하다. 사람이 부족하니 군무원을 많이 뽑아서, 

 

“유사 군인”

 

으로 써먹고 있다. 당직 근무를 시키는 것도 모자라, 총기를 주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ROTC 지원율이 떨어지자 군사학과를 계속 늘려서 싸게 초급장교들을 양산하려 한다(덤으로 퇴역한 장교들에게 교수 타이틀도 주고). 이게 언제까지 먹힐까? 

 

현실을 직시할 때다. 우선 군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맞게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물론, 거기에는 예산이 들어갈 거다. 그러나 돈은 부차적인 이야기다. 돈을 투자했음에도 군대에 오지 않을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다른 나라들도 그랬으니까. 

 

그나마 징병제인 지금 상황에서도 박살 난 인센티브 구조 때문에 흔들리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군대다. 미봉책이지만, 우선은 간부들의 인센티브를 재조정하고, 앞으로의 군 병력 체계를 어떤 식으로 끌고 갈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 더 이상 징병제만을 고집할 시점은 지났다. 지금 군대 초급 간부들의 위기는 곧 닥쳐올 국방의 위기를 예견하는 명백한 시그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