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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용 요약>

 

소개: 94년생. 직업 없음. 대학 졸업장 없음.

경력: 몇 개의 사업 경험 +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 생활 1년 6개월.

 

이후 필자는 택배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1.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어머니 찬스

 

"돈 좀 빌려주세요."

 

어색하게 생전 처음 해보는 말을 꺼냈을 때, 어머니는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 있니?"

 

걱정스러운 물음에 흔쾌히 택배 일을 할 거고 차 살 돈 8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빚을 지거나 하진 않았다는 점에는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택배’라는 단어에 사색이 되었다.

 

"안돼. 돈은 빌려줄 수 있지만 택배는 안 돼."

 

"빠른 시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에요."

 

"힘든 일이니까 돈을 많이 주는 거지. 어쨌든 안 돼. 몸 상해."

 

생각지도 못했던 강경한 반대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머니한테 돈을 빌리는 게 지금 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년 반의 정체기와 메마른 통장 잔고는 은행권에서의 정상적인 대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3개월의 아르바이트 경력 가지고는 대출은커녕 통장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웠다.

 

"저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새로 사업을 하든 뭘 하든 다시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합법적으로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건 이 일밖에 없어요.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순 없잖아요."

 

어머니는 한참 말없이 나를 보다가 한마디를 했다.

 

"내가 그런 일이나 시키려고 널 이렇게 힘들게 키운 줄 알아?"

 

어머니 말씀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었다. ‘그런 일’이라고 비하하고 싶은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머니 심정도 이해는 갔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어머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고집스레 선택했다. 어머니는 남다른 교육열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잇따른 투자 실패 때문에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강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해주고자 했다. 다만 어머니의 기대보다 내 고집이 더 강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내게 기대가 컸다. 특히 학교 성적에 대한 기대가 커서 만점, 1등이 아니면 내심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셨다.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학교 공부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운동신경이 좋고 또래보다 발육이 좋은 편이라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분출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시절엔 전교에서 벌점이 두 번째로 높은 문제아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억울한 측면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때리고 다니거나 협박하는 소위 ‘일진’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학교 시절의 남자아이들을 지배하는 힘의 논리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전교에서 왕따당하는 친구랑 어울려서 ‘왜 그런 아이랑 어울리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내가 공부 쪽으로 소질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어머니는 나에게 운동을 배우게 했다. 태권도와 합기도 같은 비교적 평범한 종목부터 시작해 야구·골프·킥복싱까지 안 배운 운동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스포츠는 나를 더욱 운동신경 좋은 말썽쟁이 소년으로 만들었을 뿐, 체육 꿈나무로 자라나게 하진 못했다. 모든 운동을 어느 정도는 다 빨리 배우고 잘하는 편이었지만 어떤 운동도 내 장래로 삼을 만큼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지금도 어린 시절부터 한 운동을 시작해 평생을 그 종목에 바치는 스포츠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이해는 잘되지 않는다. 운동이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인데, 어린 시절에 평생 몰두할 업을 결정한다니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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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후 잠시 스피닝과 여타 운동 강사를 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이렇게 자라나는 내내 어머니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던 나는 고등학교 때는 헤르만 헤세를 시작으로 고전문학에 빠져 공부는 뒤로하고 소설책만 잔뜩 읽었다. 졸업할 무렵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평생 어머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집구석에 틀어박히더니 갑자기 ‘택배 일’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어머니로서는 당황스러웠을 거다. ‘택배’를 진지한 업으로서 해보겠다는 선언은 택배 상하차나 주유소 일 따위를 아르바이트로 하겠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일이었고 어머니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이번에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택배도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요즘 사람들 택배 기사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그리고 나 정말 절실하게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내 힘으로 1억 벌어볼게요. 그러고 나서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잃었던 돈 8천만 원, 누구는 적다고도 할 수 있는 돈이죠. 요즘 서울에선 반지하 방 전셋값도 안 되는 돈이에요. 물론 제가 그 돈의 액수 때문에 그동안 집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기회비용이 더 컸고, 소송을 진행하면서 나 자신이 너무 많이 소모됐고(동업자의 배신으로 송사를 겪었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결국 모든 건 그 돈 8천만 원이 원인인 건 사실이잖아요. 다시 벌어보고 싶어요. 사업같이 하던 사람들이, 어쩌면 내 친구들이 가장 밑바닥으로 보는 그 자리에서 내 힘으로 땀 흘려 벌어볼 거예요. 도와주지 못하시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 볼게요.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그날이 가기 전에 어머니는 1,000만 원을 입금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훗날 통장에 조용히 찍힌 그 액수를 보고 나는 조금 먹먹해졌다. 3개월 안에 갚아드리자. 이렇게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트럭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2. 친구 결혼식에도 끌고 간 중고 택배차 구입 노하우

 

흰둥이는 중고차 판매 앱에 올라와 있는 유일한 택배차였다. 택배 일을 할 수 있으려면 화물차 중에서도 수납공간이 많은 하이탑 차여야 했는데 그런 차는 중고차 매물이 정말 귀했다. 새 차는 부품 공급 차질 때문에 돈은 둘째 치고, 주문하면 기본 4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출고되는 상황이었다. 중고차를 구하고자 엔카·케이카·차차차 플랫폼을 뒤지다 원하는 조건의 새하얀 화물차 한 대가 매물로 올라와 있는 걸 봤을 때 그 반가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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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구글플레이 갈무리>

 

택배차로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현대 포터2, 기아 봉고3이었다. 두 트럭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똑같은 차 아냐?’ 할 정도로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포터2는 부드러운 주행과 승차감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봉고3는 무거운 걸 잘 실을 수 있는 튼튼한 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듯했다. 처음에 생수 배달로 일을 시작할 마음이었기에, 승차감을 포기하고 더 단단한 느낌이 있는 봉고3를 선택했다. 흰둥이의 스펙은 이랬다.

 

봉고3 익스(하이)내장탑* 1톤 킹캡* CRDI / 초장축* / 2498cc·133마력 / 

14년 5월식 / 19만 킬로 / 디젤 / 자동 변속기 / 무사고 차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기어가 자동 변속기냐 수동 변속기냐였다. 내 면허는 2종 보통이어서 수동 변속기의 차량을 몰 수 없었기도 했다. 수동은 불편해서 1종 면허인 사람들도 자진해서 수동을 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가격 차이가 100만 원 이상 나는데도 그랬다.

 

"뭐 2종 보통? 여자냐?"

 

친구들이 놀리는 소리가 벌써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요즘엔 어떨지 모르지만 90년대 초반생인 내가 면허를 따던 20살 무렵만 하더라도 면허의 실제 쓰임새와 관계없이 남자는 무조건 1종을 따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러다 보니 2종 보통면허를 갖고 있다고 하면 남자가 무슨 2종이냐고 놀리는 친구들이 아직도 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이런 놀림이라니. 2종 보통 면허를 가진 남성들이여, 당당해지자. 우리는 트럭도 끌 수 있다. 간혹 큰 차를 몰려면 무조건 1종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어지간히 큰 차도 2종 면허로 다 끌 수 있다. 면허를 딸 때도 그 점을 알았기에 굳이 1종을 따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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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다행히 흰둥이는 자동 변속기를 가진 차여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다른 조건에 있어서는 썩 좋은 차는 아니었다. 2014년도에 생산되어 주행한 거리가 곧 20만 킬로를 넘어가는 오래된 차였기 때문이다. 주행거리 20만 킬로미터는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에서 어떤 마지노선으로 여긴다. 20만 이상 킬로 수의 차라면 엔진오일과 변속기(트랜스미션) 오일에 누유가 생긴다든지, DPF(Diesel Particulate Filter·디젤 미립자 필터. 미세먼지 배출을 저감시키는 장치)나 인젝터(연료 분사 노즐)쪽에 성능이 많이 저하된다든지, 하체 부품 쪽에서 소리가 난다든지, 아니면 실내 사용감이 많아서 대대적 복원이 필요하든지, 무슨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이 있다.

 

연식에서도 2014년형이면 오래된 차였다. 나는 오히려 주행거리보다 연식을 따지는 편이다. 우리나라 대표 수출업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엔 최고의 연구진이 동원될 테고, 해를 거듭해 출시되는 새로운 모델들은 당연히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한 더 좋은 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에게 2014년식 봉고3는 모험이었다. 차라리 2018년도 이후에 출시되고 주행거리가 30만 킬로인 차였다면 그 차를 선택했을 것이다. 연식이 짧지만 킬로수가 높다는 것은 고속주행이 잦을 확률이 높고 그러므로 엔진 쪽 상태가 비교적 좋을 순 있다. 하지만 역시 주행거리가 높으면 나중에 다시 팔기가 애매해진다는 단점은 있다. 아무튼 흰둥이는 주행거리도 높고 연식도 오래된 악조건을 가진 차였다.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딜러의 판매 이력과 차의 성능점검표, 보험 이력을 최대한 꼼꼼히 확인했다. 딜러가 전손 차(수리비가 찻값보다 더 나온 큰 사고 차량)나 침수 차를 판 이력이 있는지를 보았다. 아무래도 훼손이 심한 차를 구입하거나 판 경력이 있는 딜러는 양심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또한 어딘지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소문이 너무 안 좋은 수도권과 경기도 특정 지역들의 딜러들도 피했다. 주변에서 중고차 사기를 당한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부분이 그 지역의 딜러들이었다. 나는 그 딜러들을 이길만한 에너지가 없었기에, 너무 소문이 안 좋은 그쪽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 1인 신조(최초 구매자가 중고로 판매하기까지 혼자 운행한 차량)가 아니어도 소유자 변경 횟수는 너무 많은 건 아닌지 확인했다. 주인이 많이 바뀐 차는 겉은 멀쩡해 보여도 무언가 만성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험 이력 상에 주요 골격, 프레임을 교환한 사고 이력이 있는지, 보험 미가입 기간이 얼마나 긴지(보험에 가입되지 않을 경우 수리를 했어도 보험 이력 상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도 확인했다. 만약 사고가 있었던 차라면 사고 발생 시점과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나온 시점 사이가 너무 짧지는 않은지도 확인해야 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얼마 안 있어 중고로 판매하는 차는 그 사고로 인해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흰둥이는 항상 보험도 가입되어 있었고, 무사고여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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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딜러와 차의 서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직접 차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 상태였다. 시동을 걸고 떨림이 심하진 않은지 확인하고 5분 이상 예열을 한 뒤 시동을 끄고 엔진오일 캡을 열어 연기가 나는지 확인했다. 연기가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아주 적은 양의 흰 연기가 나오면 합격이다. 푸른 연기가 나거나 오일이 많이 튀면 엔진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에,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차를 골라야 한다. 안전벨트를 끝까지 뽑아보았다. 안전벨트를 끝까지 뽑았을 때 끝부분의 색이 다르면 침수 차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까지 확인했지만 아직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성실하고 양심적인 딜러들도 그들이 다루는 모든 차의 소모품 부싱류 등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하나하나 다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딜러에게 딜러가 아는 카센터 말고 기아 정식 대리점 기아 오토큐에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딜러와 알고 지내던 카센터의 경우 문제가 있는데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차에 자부심도 있고 양심 있는 딜러라 선뜻 허락해 주었다. 검사 결과 변속기 오일, 서스펜션 부품, 연료필터, 예열 플러그, 엔진·미션 오일 팬, 배터리, 타이밍 벨트, 겉 벨트 세트, 워터펌프, 냉각수 등이 모두 정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새 차 같은 중고차를 사겠다는 도둑놈 심보가 어느 정도 있었던 듯하다. 가격이 싸면 싼 만큼 문제가 있는 게 당연했고, 오히려 완벽하게 수리해 값을 올린 중고차보다 어느 정도 문제가 있지만 가격이 싼 매물이 더 잘 팔리는 게 시장 추세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점을 감안해 어느 정도의 문제는 안고 갈 생각을 했지만, 최소한 크게 사고가 났거나 침수된 적이 있는 차, 혹은 수리비를 들여도 해결되지 않는 만성적 문제를 가진 차를 넘어 최대한 자잘한 추가 비용이 안 들기를 바랐다. 차를 사고자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그 당시 내게는 자동차 부품 하나하나 가는 것도 아주 많은 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자잘하게 고칠 것들은 역시나 있었다. 엔카에서는 타이어를 새것이라 했는데 실제로 보니 마모가 심한 상태였다. 브레이크 패드와 라이닝, 브레이크액과 엔진오일을 교체해야 했다. 또 자잘하게는 적재함 보조 발판이 부식되어 용접해야 했다. 실내에서 블랙박스는 작동도 되지 않고 SD카드도 없었다. 후방 카메라도 뿌옇게 보여 밤에 운전할 때 위험할 것 같았다. 이것들은 추가로 돈을 들여 새로 설치했다. 그렇게 총 10,300,000원을 들여 온전한 택배차를 소유하게 되었다. 고생 끝에 생긴 ‘내 차’라는 애착이 생겨 차에다 ‘흰둥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