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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지난 24일, 경찰 수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조직된 국가수사본부 수장으로 정순신이 임명된다. 검사 출신 인사 등용으로 논란이 일고 있던 와중, 아들의 학교 폭력 전력이 드러난다. 사실 2018년, 정순신 아들 학교 폭력 사건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당시에 실명이 언급되지 않았을 뿐, 검찰 내부에서는 누구의 아들인지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자진 사임 후, 대통령실의 임명 철회까지 28시간. 드라마 <더 글로리>로 학교 폭력의 심각성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은 빠르게 반응했다. 국민들이 분노한 지점은 이것. 

 

피해 학생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가해 학생 정순신 아들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과거를 세탁하고 잘살고 있다. 

 

더욱이 아버지의 사회적 배경을 이용해 국가 행정 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이라는 의구심도 드는 상황이다.  

 

2020년 이전에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기구,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서 학교 폭력 사안을 다뤘다(현재는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에서 진행). 학교폭력 자치위원회는 교사와 학폭위원회 부모들로 구성된다. 당시는 학교 측의 권한이 지금보다 훨씬 강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 사안에 관여할 수 있었다. 결정에 불복할 시에는 별도로 재심 청구도 가능했다.

 

이러한 장점이 있음에도 교육지원청에서 통합 운영을 시작한 이유는, 심의위원의 전문성 강화를 통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공정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사건이 축소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장순신 아들 사건은 어떨까. 일반적인 학교 폭력 사건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가해 학생 가족이 보이는 태도, 처벌의 경중, 주변인들의 반응 등.

 

이례적인 부분을 하나씩 살펴보자.

 

#1. 언어폭력으로 강제 전학 조치

 

강제 전학은 ‘퇴학’보다 낮은 단계의 선도 조치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조치이기도 하다. 단순 학교 폭력으로 강제 전학 조치가 떨어지는 경우는 확실히 드문 일이다.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 가능하나, 그마저도 쉽지 않은 조치다.

 

선도 조치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두 가지.

 

폭력의 지속성과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

 

[쏙쏙뉴스] 정순신 아들 '학폭' 피해학생 _무죄판결 받았다고 떠들고, 그걸 듣고 웃고... 다들 악마 같아요_ 2-53 screenshot.png

출처 - <오마이뉴스>

 

즉, 정순신 아들의 학교 폭력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학교폭력 처리 기간 내내, 가해 학생과 그 부모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걸 반증한다. 보통 가해 학생 부모는 자식의 처벌 수준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도 한다. 어디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정순신은 뻔뻔하게 가해 자식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듯한 취지의 발언도 한다.

 

[자막뉴스] _피해자 더 있었다_…정순신, 학폭 진술서 작성 관여 _ KBS 2023.02.26. 1-35 screenshot.png

출처 - <KBS>

 

#2. 언어폭력의 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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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몬몬몬 몬스터>

 

‘강제 전학’ 선도 조치가 나오는 경우는 보통

 

집단 폭행, 성폭력, 최소 전치 4주 이상의 신체적 폭력이다. 

 

정순신 아들의 경우, 신체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으로 강제 전학 조치가 나왔다. 그 사안의 심각성이 신체 폭행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크다는 걸 의미한다. 

 

피해 학생을 ‘빨갱이’라 부르고, 지속해 ‘돼지 새끼’ 같은 인신공격을 한 것은 단순한 놀림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이는 고등학생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다. 실제로 학교 내 직접적, 간접적 증거가 있음으로 나올 수 있는 조치이며, 무엇보다 목격 학생들의 증언도 일관되었다는 의미다.

 

#3. 행정청 심의 기구(학교폭력 자치위원회)의 무력화

 

정순신 아들은 선도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서면 사과문을 작성하지 않고 사회봉사, 특별 교육도 이행하지 않았다. 모든 국민은 행정 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정순신이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활용해 행정심판, 행정소송, 가처분 신청 등 일반인이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방법을 동원했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연수원 동기이자 판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고용했다. 단순히 행정 처분에 대한 이의 제기가 아닌, 행정청 심의 기구 무력화를 꾀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국민은 행정 처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주어진 행정 처분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도 주어진다. 정순신의 행동은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전형적인 권력자의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4. 교사들의 증언

 

[쏙쏙뉴스] 정순신 아들 '학폭' 피해학생 _무죄판결 받았다고 떠들고, 그걸 듣고 웃고... 다들 악마 같아요_ 0-21 screenshot.png

출처 - <오마이뉴스>

 

교사들은 학교 폭력 사안에 대해 함부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중립 의무에 대한 부담감 때문. 그런데, 수년이 지난 사안에 대해 교사들은 그날의 증언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해당 사안이 심각하고 가해 학생 가족의 행위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5. 또 다른 피해자의 존재

 

[쏙쏙뉴스] 정순신 아들 '학폭' 피해학생 _무죄판결 받았다고 떠들고, 그걸 듣고 웃고... 다들 악마 같아요_ 0-6 screenshot.png

출처 - <오마이뉴스>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은 대부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고한 것에 대한 보복 심리를 가지고 피해 학생에게 2차 가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의 선도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계속 등교한 정순신의 아들. 주위의 친구들에겐 아버지의 지위를 운운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주변 학생들에게 자랑처럼 이야기한 것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꼭 피해 학생을 다시 괴롭혀야 2차 가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해자에게는 이전보다 더 큰 두려움을 준다. 

 

이는 또 다른 가해의 형태로, 피해 학생을 다시 폭력 현장으로 내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다.

 

#6. 졸업생의 증언

 

[1일1뉴스] 진술서 코칭, 법적대응 총동원…정순신 아들 서울대 합격 비밀 _ JTBC News 0-25 screenshot.png

출처 - <JTBC>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정순신 아들의 언어폭력은 지속적이었다고 말한다. 졸업 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발언은 동기들 사이에서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서 강제 전학 조치를 받은 가해 학생이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은 것. 그리고 목표하던 대학교에 합격한 모습을 본 학생들은 무력함과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7. 하지만 좌절만 할 것은 아니다

 

처벌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잘 사는 가해 학생은 꽤 많다. 그래서 학교 폭력 상담을 하다 보면, 피해 학생 부모님은 가해 학생 측에서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불안해한다. 혹시나 전관 변호사로 인해 결과가 뒤바뀌게 될 까봐. 우리 아이의 피해 사실이 없던 것으로 될 까봐.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전관 변호사도 학교 폭력 사건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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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피해 학생 부모님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정순신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가해 학생의 아버지는 당시 중앙 지검 검사, 선임한 변호사는 판사 출신. 그 둘의 조합으로도 행정 소송은 모두 기각되었다.

 

이번 기회에 다시 말하고 싶다. 피해 학생 부모님들은 가해 학생 측 변호사 선임에 위축되지 말기를. 변호사로 인해 학교 폭력 사건의 결과가 바뀌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학교 폭력은 정의와 공정의 문제다. 학교 폭력 처리 과정을 통해,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사회 인프라에 대한 신뢰를 쌓는다. 그 과정이 불공정하다면, 피해 학생이 어린 나이에 가지게 된 사회에 대한 불신이 사회에 대한 혐오로,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혐오로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가해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형벌이 이슈화될 것이다. 어느 한 트로트 가수가 그랬듯, 정순신의 아들이 그랬듯. 행정 처분을 무시하고, 혹은 무력화했던 그들은 행정적 처벌보다 더 가혹한 사회적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피해 학생 부모님은 한결같이 말한다. 현재 학교 폭력 선도 조치는 미약하다고. 이걸로는 학교 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시스템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한순간에 형벌을 강력하게 바꿀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해 학생을 기억하고, 사회로 나간 그들을 지켜보는 것.

 

성인이 된 가해 학생들이 나락으로 빠지기를, 사회적 형벌을 받기를 바랄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그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그저 힘 있는 자의 자식이고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정순신의 아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또 다른 가해 학생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는 기록하고, 기억하고 지켜봐야 한다.

 

누군가 나의 과오를 알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무서운 형벌은 없기 때문이다. 

 

 

상처에 경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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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소년시절의 너>

 

피해 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백 마디의 말보다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 학교 폭력을 마주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없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내 자녀가 어느 날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면 어떤 심정일지 누가 쉽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피해 학생이 입는 상처는 학교 폭력의 경중에 비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런 가정을 수없이 봐왔다. 나는 학폭 피해자의 부모이기도 했고 이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지나갔지만, 이런 사건을 보면 역시나 무력감을 느낀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가해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손쉽게 사회의 리더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겠다고. 부족하지만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1) 후불제장례전문회사 주식회사 직장(www.ziczang.com, 24시간긴급장례의전센터1599-9093) 대표
(2) [학교폭력 부모바이블 1] & [아빠가 되어줄게] 저자
(3)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소장 https://blog.naver.com/leehaejune_lab)
(4) 유튜브 [이해준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