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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로이터

 

전설적인 공격수, 독일 국가대표와 바이에른 뮌헨 등 강팀들의 감독을 맡았던 위르겐 클린스만. 그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국대 감독 이슈는 언제나 커뮤니티를 뜨겁게 불타오르게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 선임 이슈는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아시안컵이 코앞이다. 클린스만은 대체 어떤 감독이며, 축구 협회의 의도는 무엇인가. 디벼보자.

 

저니맨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올드팬들에겐 꽤나 익숙한 이름이다. ‘축구에 낭만이 살아 있었던 시기 80~90년대. 그의 전성기였다. 그는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80년대 독일에서 프로 데뷔를 한 이후, 짧게는 한 시즌 길어봐야 4시즌 동안만 팀을 유지했다. VfB 슈튜트가르트(독일), 인테르나치오날레(이탈리아), AS 모나코(프랑스), 토트넘 훗스퍼(잉글랜드) 등의 클럽을 오가며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선수를 축구계에서는 ‘저니맨’이라고 부른다.

 

대체로 저니맨들은 실력은 어느 정도 되지만, 팀의 에이스가 되지 못하는 선수들이다. 회사 생활도 비슷하지 않은가?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을 영입할 때는 딱 그 정도의 기대치를 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대우도 떨어진다. 실제로 클린스만은 8~90년대의 한 팀에서 오래 뛰면서 팀의 상징이 된 선수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시대를 상징하는 공격수가 되었다. 뛰었던 팀마다 밥값을 톡톡히 하며 꾸준한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이 강등 위기에 휩싸이던 1998년, 홀연히 토트넘으로 돌아와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며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때 클린스만이 아니었다면, 토트넘은 지금도 2부나 3부를 전전하는 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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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클린스만의 토트넘 데뷔전 데뷔골 세리머니

 

무엇보다 그가 국가대표팀에서 펼쳤던 엄청난 활약은, ‘어차피 우승은 독일’이라는 축구계의 오래된 농담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서독이 우승했던 1990년 월드컵, 마지막으로 유로 챔피언을 먹었던 1996년, 팀의 중심에는 클린스만이 있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한국을 상대로 터트렸던 멋진 터닝슛은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장면이 되었다. 3:2로 석패한 경기였기에 더욱 강렬했던 기억이다.

 

감독 클린스만 : 국대는 괜찮, 클럽은 폭망

 

좋은 선수가 반드시 좋은 감독이 되는 건 아닌 법.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이자, 한국 축구에도 레전드(?)인 울리 슈틸리케라는 선례만 봐도 알 수 있다. 클린스만의 지도자 경험을 살펴보자.

 

클린스만이 선수 시절 유럽 대륙을 주유했다면, 감독 시절은 아예 세계를 일주했다. 2004년 독일 국대로 첫발을 내디딘 후, 바이에른 뮌헨(2008), 미국 국대 (2011), 헤르타 BSC(2019)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 유럽 → 북아메리카 → 아시아를 거친 셈. 이런 경우는 드물다. 아마도 그의 일관된 성격, 그러니까 한 팀에서 무언가를 이뤘다고 생각하면 홀연히 떠나 새로운 도전을 찾는 그의 성향이 유럽 출신 감독으로서는 흔치 않은 커리어를 만든 배경일 것이다.

 

국대 감독으로서 약 20년간 세계 일주를 하면서 빛나는 성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2006년 독일 월드컵 3위. 우리가 기억하는 2002년의 독일 대표팀은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한 팀이었지만,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하며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었다. 그때 등장하는 클린스만. 독일 축협은 감독은 고사하고 코치 경험조차 없었던 그를 선임한다. 그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선택으로 독일 대표팀을 대수술한다. 역대 최초로 흑인 선수를 발탁하고, 전술 훈련은 내팽개치고 주구장창 체력 훈련 뺑뺑이만 돌리며, 훗날 독일 대표팀의 중추가 되는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 페어 메르테사커 등의 선수를 발탁하고 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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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누르고 3위를 확정짓는 순간

출처 - 연합

 

미국 국대 감독에서의 성과는 반반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끈끈한 조직력과 시원시원한 공격 전개로 16강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독일과 호각을 겨뤘다. 미국은 이미 1994·2010 월드컵에서 16강, 2002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던 적이 있었으므로 클린스만이 엄청난 족적을 남긴 건 아니지만, 3~4티어로 분류되는 미국팀이 16강에 오른 건 높이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는 졸전이 이어지는데, 후술할 클린스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종합선물세트로 다 튀어나와서 맺어진 결과였다.

 

이렇게 괜찮은 국대 감독 성적에 비해, 클럽 감독을 맡았을 때는 그냥 핵폭망이었다. 그의 세계 일주에 클럽 커리어가 없는 것도 그래서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 최고의 빅클럽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에 부임하지만, 온갖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며 1년도 안 되어 경질됐다. ‘21세기 최악의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라는 오명을 남긴 채.

 

헤르타 BSC에서의 성적은 더 처참하다. 여기서는 아예 감독의 역량에 대해서도 평가할 건덕지가 없다. 3개월 만에 ‘런’해버렸으니까. 헤르타 베를린은 2012년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이후, 10년 넘게 강등권과 중위권을 오가는 약팀이었다. 당연히 지출 규모도 높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내세우고, 그에게 전권을 밀어지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한다. 그렇게 투자한 금액이 약 1,000억 정도였다. 이 정도면 분데스리가에서 찐 큰손이다. 결과는? 영입 선수 대부분이 부진했고, 그는 3개월 만에 독단적으로 사임을 발표하며(그것도 페이스북으로) 독일 축구계를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이 양반, 아마 사주에는 역마살과 더불어 충살(沖殺)이 있는 게 분명하다.

 

감독으로서의 장단점

 

클린스만도 한때 2022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스칼로니처럼, 축구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핫한 감독 매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이때가 커리어의 고점이라면, 가장 최근이었던 헤르타 BSC 시절은 최저점이다. 지금 독일에서 클린스만의 선임을 비웃는 까닭은 축구계 인사로서 최소한의 상도덕도 지키지 않았던 그가 다시 일자리를 얻은 것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감정도 있을 것이다. 왜, 우리도 그런 적 있지 않았나. 슈틸리케가 중국 클럽팀을 맡았을 때,

 

‘저 양반이 이 난리를 쳐놓고도 또 감독질을 한다고?’

 

라는 생각.

 

아무튼 감독 클린스만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1) 데이터 기반 리더 혹은 스포츠과학교 광신도

 

스포츠과학이란, ‘결과는 신도 모르는’ 스포츠 세계에서 최대한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과학적인 기술을 도입하는 종합 학문을 의미한다. 대체로 의료 기술이나 체력 훈련에 많이 쓰인다. 미국의 NBA, NFL, MLB 등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스포츠과학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클린스만은 미국에서 오래 산 경험 덕분인지 일찍부터 스포츠과학에 심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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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독일 국대 감독 시절, ‘순수 혈통 게르만주의’에서 벗어나 갑자기 미국인 코치를 데려온 것도, 체력 코치를 4명이나 고용한 것도 모두 스포츠과학을 신봉하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그가 독일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독일 대표팀에 대해 내린 진단은, ‘선수들의 명성에 비해 기초 체력 데이터는 형편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기존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다.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은 손흥민의 개인 트레이너 및 대표팀 의료진과의 마찰을 겪은 바 있다. 이런 부분에서 클린스만의 철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교통정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물리치료라는 방식을 선호하는 선수들의 생각과 어떻게 충돌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다다’라는 비판이 상당하다. 독일 국대 시절부터 미국 국대 시절까지, 클린스만 밑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일관되게

 

“클린스만은 전술 훈련이 없다.”

 

라고 폭로했다. 체력 코치는 4명이나 돌리는데, 전술 코치는 수석코치이자 훗날 독일 국대 감독을 역임한 요하임 뢰브가 다 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대 시절에는 더 적나라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매일 같이 전술이 변화했고, 선수들은 경기 직전까지도 어느 포지션에서 뛸지 알 수 없었다는 선수들의 일치된 증언이 이어졌다.

 

특히, 클린스만이 고점을 찍었을 시기에는 꽤 괜찮은 수석코치의 보좌가 있었는데, 지금은 결정된 코치진이 단 한 명도 없다. 전술은 누구나 머리로 짤 수 있다. 하지만 전술을 경기장 안에 구현하는 건 결국 코치진의 몫이다. 팀으로서 하나의 그림을 같이 공유하며,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역할과 움직임을 주입하는 건 감독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게 되더라도 요행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알 거 다 알고 항상 트렌디한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 선수들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감독이 선임된 것이다. 전술 본체였던 신태용이 빠지자마자 귀신같이 경기력이 떡락했던 슈틸리케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합리적이다.

 

2) 빅픽쳐 전략가 혹은 고집불통 트러블메이커

 

그의 도전적인 성격 때문일까. 그는 맡는 곳마다 항상 새로운 판을 짰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신예들을 발굴하면서 향후 대표팀의 10년을 제시했다. 미국 대표팀에서도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들을 내치고, 어린 선수들을 미국 리그가 아니라 유럽 리그에 보내기 위해 애썼다. 자신이 제시한 방향과 팀의 컨셉을 지키기 위해 거의 모든 사람과 싸웠다. 베테랑 선수는 물론, 언론 관계자들, 축협 관계자들과도 매일 같이 싸워댔다.

 

‘큰 그림을 잘 짜는 전략가’라는 측면에서는 그의 역량이 좋은 평가를 받을 점도 있다. 이를테면, 독일 대표팀을 혁신할 때, 당시 트렌드로 제시되던 ‘빠른 공격 전환’을 내세워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00년대 후반부터 유럽 축구의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게겐프레싱’ 전술, 즉 적극적이고 타이트한 압박 전술 또한 클린스만이 주장해오던 전술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축구를 할 것이 예상된다. 아마 벤투호가 해오던 후방에서부터 하나씩 풀어 나오던 축구와는 크게 다른 모습일 것이다. 좌우 윙을 활용한 빠르고 직선적인 모습이 자주 나올 것 같다. 빠른 전환을 통한 공격 전개는 클린스만이 맡은 모든 팀에서 지향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축구와 한국 축구가 오랫동안 지켜오던 장점이 잘 섞이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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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권위를 존중하는 한국의 문화가 어쩌면 클린스만에게 맞을 수도 있겠다. 최대한 긍정적인 희망 회로를 돌려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김판곤-벤투 체제가 신임을 얻고 최장기 감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프로세스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이다. 그런데 일종의 ‘오너십’처럼 팀을 운영하는 클린스만의 리더십이 요즘 선수들은 물론, 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K리그와의 관계다. 국대 감독과 K리그는 선수 차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클린스만은 미국 국대 감독 시절, 지속적으로 미국 리그를 깎아내리고 ‘기승전 유럽행’을 외치면서 많은 갈등을 빚었다. 심지어 미국 리그 소속의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마음에 열심히 뛸 동기를 잃었다. 어, 어라? 이거, 어디서 본 것 아닌가. 그렇다. 홍명보의 “K리그 선수들은 B급 선수들” 발언으로 촉발된 외부적 논란, 그리고 조광래의 뚜렷한 ‘해외파-국내파 분리’로 인한 선수단 경쟁 실패 등과 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이런 ‘소동’ 중 일부는 선수단 내부에서는 나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홍명보의 발언이 냉정하게 틀린 말도 아니니까. 하지만 좋은 기자회견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자회견에서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면 이런 실수를 한다. 클리어하고 합리적이되, 단어는 세심하게 골라서 말할수록 경기 결과가 나빠도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선수들을 보호해야 할 감독이 선수들을 자신의 방패로 내세우는 순간, 그 감독이 좋은 성과를 거둘 확률은 극히 낮아진다.

 

클린스만이 미국 감독 시절 주구장창 했던 말,

 

“결국 선수가 유럽에서 뛰어야 국대도 경쟁력을 갖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워딩으로 외부로부터의 비판이 강해지면, 결국 선수단 내부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간다. 해외파 감독이니까 이러한 비판은 잘 신경 쓰지 않겠지만, 선수들에게 끼칠 영향이 걱정된다.

 

축구 팬 중에서도 K리그에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는 점, 안다. 그런 의견도 타당하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국대 선수를 발굴하는 풀은 K리그다. 다시 말하면, K리그와 국대가 매끄러운 관계를 맺지 못하면, 국대가 삐걱댈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경기마다 다음 엔트리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스카우터 눈에 들기 위해 뛴다면, K리그 팀으로선 선수를 국대에 보내는 게 물가에 물고기를 내놓는 꼴이겠다.

 

아무리 봐도 짬처리

 

클린스만은 축구 감독으로서는 어쩌면 전술보다 더 필요한 역량일 수 있는 선수단 장악을, 때론 성공했고 때론 실패했다. 사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많다. 좋은 성과를 거뒀던 독일 국대에서도 과연 선수들의 민심을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추측이다. 사실 클린스만이 외부의 평가보다 더 역량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한국 국대와 딱 맞아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런 사례는 꽤 많으니까. 진짜 우려스러운 건 그게 아니다. 그가 선임되는 과정이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총결산(링크)’ 을 쓰면서 축협에 바랐던 건 하나였다. 철학이 바뀌어도 어쩔 수 없으니, 감독 선임 과정만이라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해달라. 왜냐하면, 그렇게 선임한 감독이어야만 실패하더라도 실패에 이르는 과정이 ‘흑역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이 받아들인 감독이어야 팀의 안전성도 갖출 수 있고, 나아가 팬들 또한 경기 결과에 함께 책임지려는 연대 의식을 가진다.

 

그런데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은 불투명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오늘 있었던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의 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겉으로 보면 뮐러 위원장은 전권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과연 위원장이 클린스만과 얼마나 깊은 대화를 나눴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뮐러의 영어 기자회견은 동문서답과 말 돌리기로 일관되었다. 통역은 그걸 쉴드치기 위해 자신의 통역 기술을 총동원했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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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무언가 상식적이지 않은 절차를 거쳤을 때, 그리고 누구도 그 과정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을 때, 그 원인은 결국 ‘VIP의 결정’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물론 정몽규를 비롯한 축협 고위층이 클린스만을 선임했을 때, 그의 이름값만 고려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후보군과의 연봉 차이도 있었을 거고, 예전부터 한국 대표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클린스만의 적극성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팬들이 바랐던, ‘확실한 전술적 컨셉과 경기장에서 구현되는 명확한 프로세스’라는 열망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런 질문에는 회피할 수밖에 없다.

 

박지성의 추천으로 축협의 기술발전위원장으로 선임된 뭘러가 전력강화위원장으로 옮긴 것 또한 정몽규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 됐다. 그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축협 고위층이 내린 밀실 선택의 방패막이가 된 것 같으니까. 까놓고 말하겠다. 짬처리 당했다는 얘기다.

 

클린스만을 선임할 수도 있다. 그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고, 이름값도 역대 감독 중 최고인 것도 맞으니까. 그런데 선임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런 요소들은 모두 곁가지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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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정몽규에게로 향한다. 기자들은 물어야 한다. 왜 클린스만이냐고. 물론 그는 뮐러와 감독선임위원회에게 물어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르게 물어야 한다. 축협의 의사결정 과정은 어떤지, 이렇게 불투명한 과정에 대한 비판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감독 선임 직후부터 흔들어대면, 당연히 좋은 결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경위야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말, 옳지 못한 것 아닌가? ‘갱제만 살리만 그만’이라던 다수의 선택이 이 나라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알기 때문일까. 과정이 잘못됐는데 결과가 좋은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결과가 좋다고 과정의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클린스만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건 아니다. 나는 벤투의 축구 철학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벤투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대했다.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감독 선임 과정이 너무나 투명하고 상식적이었으니까. 게다가 벤투는 커리어에서 비록 안 좋은 결과가 있었어도, 그 과정만큼은 충분히 타당했다. 그러나 클린스만의 선임 과정은 정반대, 어쩌면 슈틸리케 선임 과정과 닮아 있다. 팬들은 이번에도 또, ‘한 번만 더 믿어 봅시다’라고 하면서 힘을 실어줘야 할까? ‘그래도 김학범은 아니니까 다행입니다.’라고 자위해야 할까?

 

클린스만이 이런 과정을 다 뒤로하고 결과로 증명한다면, 탄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단 한 사람의 코치진도 없이, 심지어 계약서에 사인도 안 한 채, 심지어 전력강화위원장조차도 그의 장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선임된 그가 준수한 성과를 낸다면, 모험을 선호하는 그의 타고난 반골 정신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볼은 다시 흐른다. 아시안컵 즈음이 되면 대략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재야에 묻힌 인재를 싼값에 낚았는지, 은퇴해야 하는 옛 시대의 유산을 비싼 값에 사 온 건지.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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