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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유독 영국이 어렵다는 소식, 자주 접한다. 특히 특정 언론에서는 “토마토 메뉴가 사라진 영국”이라는 제목과 함께 토마토뿐만 아니라 다른 야채들도 구하기 어려워 시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물론,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과의 무관세 무역이 불가해져 공급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지에서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 상승은 보도 내용과 다른 측면이 많다.

 

토마토 있다고!

 

지난해 토마토 가격이 한 상자에 8천 원 하던 게 올해 들어 3만 원이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긴 하나 사 먹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보도는 틀렸다. 실제로 대형마트나 상점에 가면, 누구나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가격에 살 수 있고, 재고가 없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어쩌다 물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주로 스페인에서 수입해 먹었는데, 과거보다 절차가 까다로워졌으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아무런 절차 없이 운반되던 자원들에 일일이 세금을 매기고 이에 대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예전과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 번거로워진 절차로 인한 시간 지연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그렇게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구하기 힘든 야채가, 과일이, 고기가 있는 건 아니다. 어디서든 구매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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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대에 물건이 없는 걸 본 적 없다. 값이 너무 비싸 도저히 살 수 없겠다 싶은 물건도 본 적 없다. 되려, 테스코나 세인즈베리, 웨이트로스와 같은 대형 슈퍼마켓들은 창고 물량을 늘려 초과 수입으로 물건을 확보하는 등 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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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코비드 기간 동안 장기간 락다운을 통해 식료품 마켓들은 큰 흑자를 보았다. 브렉시트 이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에너지 비용이 크게 상승함에 따라 대부분의 식료품 가격을 동결 혹은 인하하는 방안을 모색해 실천하겠다 전한 바 있다. 실제로 각종 포털 및 홈페이지를 통해 100여 개의 품목들에 대한 가격 인하를 홍보하고 이를 시행 중이다.

 

체감 물가 상승은 크게 피부에 와닿지 않을 정도다. 오르긴 했다. 전반적으로. 하지만, 우리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곧 나라가 망하고 국민들은 기근에 허덕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파스타 가게에서는 토마토 파스타 대신 크림 파스타를 주문해 달라 요청하는 음식점이 주를 이룬다는 뉴스는 이곳 영국에서 15년을 살고 있는 나에겐 너무나도 낯선 소식이다. 어떤 식당에서 손님에서 토마토 파스타 먹지 말아 달라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했을까도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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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백 정부

 

가스와 전기 등 에너지 비용이 상승한 것에 대한 얘기들도 많다. 오르긴 올랐다. 그런데, 오른 부분에 대한 건 대부분 정부에서 부담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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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부터 에너지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될 것을 우려, 영국 정부는 곳간을 열어 고충을 부담 중이다. 매달 £66-7 (우리 돈 약 10만 원)을 매달, 가정마다 지원하고 있다. 때문에 에너지 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난방비가 급증했지만, 정부가 완충작용을 하는 중이다.

 

올겨울이 유난히 춥긴 했다. 예년보다 -5도가량 낮았으니 보일러 가동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도 사실. 그래서 부득이 예년보다 난방을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지난해보다 난방비 지출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식료품과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이 보도하는 것만큼 비용이 치솟지 않았다. 살기 어려워 길바닥에 내몰린 사람도 없다. 6명 중 1명은 식비 부담으로 끼니를 거르고 있다는 기사를 쓴 기자는 대체 어디서 뭘 보고 쓴 건지 어처구니가 없다.

 

뇌피셜 통계

 

한국 언론의 영국 보도 중 가장 황당한 건 이거였다.

 

영국 아동 전체 1/3이 빈곤선 아래

 

장난하나. 영국 아동 인구는 약 700만이다. 이중 1/3은 200만 명이 넘는데, 영국에 200만 명의 아이들이 빈곤이라고? 도대체 어디서 무슨 통계를 보고 쓰는 건가.

 

2010년 보수당 정권 이래로 현재의 영국은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경험 중이다. 영국은 매년 수십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고, 우-러 전쟁으로 인한 난민에 대한 수용 범위도 늘어났다. 해당되는 인원에 대한 통계는 여전히 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영국 국경청의 통계에 따르면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신청서 접수만 매년 7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판데믹 이후, 장기간의 락다운을 통해 경제활동에 타격을 입은 계층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푸드뱅크를 이용해 본 적이 있고, 이를 통해 도움을 받은 바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빈곤층이라고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푸드뱅크는 유통기한이 다가온 상품들을 공동창고에 두어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데, 집에서 사용을 거의 하지 않지만 나누면 좋을 것 같은 식료품들, 특히 캔이나 유압 유리병에 담긴 각종 소스, 파스타 면이나 빵을 만들기에 좋은 밀가루 등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구할 수 있어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푸드뱅크를 이용한다고 해서 빈곤층은 아니라는 얘기.

 

언 발에 오줌, 고만 누자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무역수지는 지난 10일까지 474억 6천400만 달러 적자였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적자다. 사실, 1996년 IMF 위기 직전에 달성했던 206억 2천400만 달러의 2.3 배에 달하는 규모다. 물가는 말할 것도 없고 청년 빈곤 문제와 극심한 가난으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실질적으로 우리가 가진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은 과연 이러한 이슈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그럼에도, 연일 타국의 어려움을 톱뉴스를 다루며, 특히 일부 선진국들의 거짓된 사례를 가져다 붙이며

 

“다들 먹고살기 빡세다”

 

라는 하향평준화 내려치기 수법이 훤히 보이는 기사들을 이역만리 타국에서 보고 있자니 한심하고 부끄러울 지경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파견되는 해외 특파원들은 3년 정도 해당 거주지에 머물며 취재를 하지만, 실상을 파악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많다. 현지인들을 만날 시간도 많지 않겠거니와 대부분 해외 연수, 파견은 일하러 간다기보다는 휴가로 생각들 한다. 그러니 이런 한심한 기사나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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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다 어려운 거 맞다. 전쟁도 있고, 기후변화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국도 마찬가지. 물가도 오르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우리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만큼 망할 수준도, 그래서 누군가는 굶어야 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건 아니다. 왜 이토록 부풀려진 소식들로 안정감을 선도하려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나.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