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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안, 전기 공사

 

인테리어 용접 공장을 그만두었을 때, 삼성전자로부터 전기공사 일을 제의받았다. 제안자는 뻐드렁니 난 전기공 강 씨. 거푸집 해체 일을 하던 시절 만난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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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P2-GCS현장

 

삼성전자의 제안, 웬만하면 얼씨구나 수락했겠지만. 제안자 강 씨는 조금 미덥지 않은 사람이었다.

 

IMF 직후, 베트남 하이펑에서 잠시 거주한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 사용했던 간단한 인사말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쉽게 잊지 않았다. 건설 현장에서 만나는 베트남 직원에게 아침 인사를 건낼 수 있을 정도. 그런데 베트남 사람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강 씨는 "안녕하세요(Xin chao)" 도 몰랐다.

 

거기다 처가 외국인이면 한국어가 서툰 아내를 대신해, 한국 비자 시스템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 게 당연한 처사. 그는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서 서류를 받아와야 하는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이가 동업을 제안하니 뭔가 좀 찜찜할 수밖에.

 

그가 제안을 준 타이밍도 기똥찼다. 아내는 모국 방문으로 집을 비우고, 나는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들과의 현장 작업으로 지쳐가던 때. 계절은 한겨울로 들어서고 있었고, 눈바람 몰아치는 겨울에 꽝꽝 언 거푸집을 뜯는 일은 하기 싫었다. 사실은 돈도 한몫했다. 삼성전자 현장이라고 하면 임금 떼일 일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은 평택, 숙소는 강 씨 집이 있는 오산. 두 지역 간 거리는 16km 정도로 출퇴근하기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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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안전 교육

 

출근 전 건강검진을 하러 병원에 방문했다. 전날 과음을 해도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건강 체질이었기에 이번에도 친구들과 막걸리 한 병씩 비우고,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 한 잔을 들이켰다. 최고 혈압 145. 세월엔 장사 없다더니... 한 번 올라간 혈압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며칠에 걸쳐 병원을 수 차례 오가며 이중 삼중으로 시간을 날렸다. 병원에선 대충 넘어갈 법도 한데,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병원 창구 직원이 말하길, 특히 삼성이 혈압, 당뇨에 예민하다고 했다.

 

여긴 또 무슨 문젠데

 

내게 주어진 일은 천장에 앵커를 박고, 전산 볼트를 연결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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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각종 케이블이 지나는 길을 만드는 일로 현장에서는 '계장'이라 부르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계장공'이라 부른다. 계장공의 사전적 의미는

 

"공장, 빌딩 등의 건축물의 기계, 급배구, 전기, 가스, 위생, 냉난방 및 기타 공가에 있어서 각종 계기를 설치, 점검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일은 까다롭지 않았다. 일단 실내 작업이라 한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햇빛을 피해 일할 수 있었다. 임금도 합리적이다. 거푸집 일을 하던 현장의 기능공들이 받던 하루 일당은 14만 원. 계장공은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덜 힘든 일을 하면서 기능공과 같은 일당을 받았다. 거기다 야근이 많아서 실수령액은 두 배였다. 솔직히 건설 일용직 중에서 거푸집 해체가 임금 수준에 비해 일이 힘든 걸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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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씨름, 부흐 챔피언과 일하던 그곳

 

출근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두 명이 일을 그만뒀다. 삼성전자에서 일을 하려면 지정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틀은 그냥 날려야 한다. 일당 받는 노가다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한데. 이틀 치 돈을 포기하고 들어온 곳에서 금방 나간다는 건, 상당히 큰 문제가 있다는 말.

 

놀랍게도... 문제를 파악하는데 단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초보자를 찾습니다

 

한 팀 구성 인원은 20명. 그중 계장공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나머지 열여덟 명은 전부 나 같은 초짜들이었다. 아무리 경험치 높은 고수 두 명이 있다고 해도, 원활하게 작업을 하는 건 무리였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삼성전자 현장에서는 사전 작업 승인서를 통해 승인된 작업만 해야 했다. 아침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다음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모두 서류에 적혀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TBM(Tool Box Meeting, 공구함 앞에 모여 오늘 할 일을 정하고 역할 분담을 하는 자리) 전에 서류를 확인하면 오늘 작업에서 헤맬 일이 없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팀장(강 씨)이었다. 팀장은 TBM 직전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와 혼이 빠진 채로 현장에 도착했다. 머리엔 까치집을 짓고 수염도 덥수룩하니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도 했지만, 이 상황이 매일 반복되니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현장과 숙소의 거리는 16km. 그다지 멀지 않다. 하지만 차를 몰고 오는 노동자가 워낙 많다 보니 현장에서는 항상 주차난, 교통대란이 발생했다. 아침 일찍 출근, 야근으로 늦게 퇴근. 혼잡한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숙소까지 도착하는 시간 한 시간 반. 집에 도착해 잠시 눈을 붙였다가 바로 출근해야 했다. 그러니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다가 서류 받아오는 시간이 항상 늦어진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자재는 어디서 받아와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현장에 도착해 우왕좌왕하다가 하루를 보냈다.

 

삼성전자는 안전 규정이 까다롭다. 누군가 사다리를 오르면 그 밑에서 다른 누군가 사다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작업용 우마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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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용 우마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우마를 밟고 작업한다. 보통 현장에서는 1.5m까지는 혼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삼성은 무조건 2인 1조였다.)

 

계장공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다른 팀 기공들이 작업하는 사다리와 우마를 잡아주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였다. 아니면 자재를 옮기거나.

 

사실 '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인력을 배정한 이유는 인건비 지급 방식 때문이었다. 인당 배정된 돈에서 4대 보험비와 추가로 '몇만 원' 정도를 제하고 나 같은 초보들에게 일당을 지급한다. 그럼 팀장은 추가로 뺀 '몇만 원'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팀원 구성을 초보자들로 하면 팀장에게 남는 금액이 커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 팀장이 대략 월 천만 원 단위의 큰돈을 챙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 난, 팀장이 꼬드겨 모은 가마우지 중 한 마리였던 것이다.

 

건강한 일벌을 원합니다

 

처음에는 피곤에 쩔어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오죽하면 저럴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날, 휴게실을 지나치다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는 팀장을 발견했다. 쪽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람들 없는 곳에 짱박혀서 한참 유행하던 애X팡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일이 이렇게 아사리판으로 돌아가고 있으면 팀장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작업을 주문해야 하는데 출근하고 나면 두문불출이었다.

 

뒤통수 스매싱. 또 당했다. 이번엔 아내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한 것이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가마우지들한테 뜯어간 돈은 숙소 근처 룸살롱에 갖다 바쳤다. 평소 현장에서는 초라한 행색으로 꼬질꼬질하게 다니다가, 룸살롱에 갈 때는 제일 비싼 옷을 입고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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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허용 범위는 현장 출입구까지. 현장에 출입할 때 전화기 카메라를 스티커로 가려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붙어있었던 이유. 일단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생활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하루 14만 원에 야근이 워낙 많으니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꽤 됐다. 조금이지만 빚도 남아있었고 가장으로써의 책임감도 있었기에, 아무리 현실이 참담해도 그냥 웃어넘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저녁에 막걸리 한 병 마시면서.

 

임금이 높아질수록 야근이 많다. 삼성 현장이 유독 혈압과 당뇨에 예민한 이유는 이것과 관련이 있다. 지병 있는 노동자 고용했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은 건강한 일벌만 선별한다.

 

하루 8시간 근무가 1공수(하루 일당을 받는다는 뜻). 거기서 4시간 추가 근무하면 2공수. 고혈압이나 당뇨를 앓는 중년이 하루 12시간 근무를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것도 밤늦게까지. 별다른 지병 없는 건강한 남성도 현장에서 쓰러지는 걸 봤다. 다행히 구급대가 바로 출동해 큰일은 없었지만, 그날 이후 몸이 찌뿌둥한 날이면 무리하지 않으려고 조금 더 신경 쓴다.

 

"나도 이제 방심하면 안 되는 나이다..."

 

주문을 걸면서.

 

농땡이 적발과 팀 해산

 

건설 일용직을 하려면 기초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수업을 들을 당시, 강사님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있었다.

 

"하루 2공수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그 이상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계장공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거푸집 일은 야근이 없고 오후 4시 전 퇴근이 가능했기 때문에 돈은 적게 벌어도 나름 워라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튼 그렇게 야간작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팀 전체가 해산되었다.

 

팀장이 일은 안 하고 휴대폰 게임만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안전관리팀 직원 하나가 그 현장을 급습한다. 팀장이 천장 작업한다고 위층으로 올라간지 정확하게 30분 뒤, 안전팀 직원이 천정으로 올라갔다. 팀장은 휴게실도 아닌 작업 공간에서 실오라기 하나 설치지 않고 대자로 뻗어 자고 있다가 잡혔다. 천정 작업은 천정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어서 항상 안전고리를 2개 걸고 작업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자다가 안전팀에 잡혔던 것이다. 전날 룸에서 신나게 달리고 출근했던 터라 안전팀 직원이 이름을 불러도 잠에서 깨지 못하는 인사불성의 상태였다. 그날로 우리 팀원들은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강 씨는 잘렸고.

 

난, 다음 달에 아내 귀국이 예정되어 있어 전입을 포기했다. 우리 팀에서 일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저 한 달만 더 일할 건데요..."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형틀 목수가 되기까지

 

따뜻하게 겨울을 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계장공 일은 석 달 만에 끝이 났다. 그때 다른 팀장을 따라갔던 이 대부분 기능공이 되었다. 몇몇은 아예 기사 시험을 준비해 독립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들 팀장 놈이 나쁜 넘인 것은 맞지만, 계장 일을 소개해준 부분은 고맙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 시작한 노가다, 거푸집 일은 지금 목수 경력에 꽤 도움이 됐다. 어쩌다 빨리 기공이 되었는데, 그게 다른 사람보다 거푸집과 비계를 잘 뜯는다는 것 때문이었으니.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그로 얻은 경험과 교훈은 사는 동안 언젠가 도움이 되는 것. 그게 인생살이인 것 같다.

 

그 뒤로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다른 해체팀에서 거푸집 해체 일을 했다. 중간중간 일이 끊길 때는 인력 사무소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2021년 2월. 안산에 위치한 건설기능학교에서 형틀목공 과정을 한 달간 이수하고 형틀 목수가 되었다. 버라이어티한 과정을 거쳐 기능학교 졸업 1년 8개월 만에 기능공이 됐다. 다른 동기들은 대체로 커리큘럼대로 양성공 다음, 준 기능공 단계를 밟고 있다. 조금 빨리 기능공 명함을 얻게 되었지만 2년 만에 반장이 된 사람도 있으니까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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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닝 크루거 현상처럼. 원래 아는 게 없을 때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다 절망의 계곡을 한 번 거치고,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난 이 과정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에게 뭐가 더 필요한지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치고 나가야 할 타이밍이다. 그래서 공부할 거리를 모아뒀는데...

 

얼마 전, 아빠가 되었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잠시 펜을 내려놓으려 한다. 연재는 생존 가이드북을 썼던 짬을 살려 노가다 가이드북 한 편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여유가 생길 때쯤 또 다른 주제로 돌아오겠다.

 

지금까지 재미없는 일개 목수 이야기에 관심가져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린다.

 

그럼, 모두 평안하시길. (꾸벅)



<다음주 마지막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