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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8. 목요일

산하






박규수(朴珪壽, 1807년 10월 27일~1877년 2월 9일)는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1848년, 42세의 나이로 증광별시문과에 급제했으며,

홍문관 수찬, 열하부사, 안핵사 등을 거쳐 1873년 12월 의정부 우의정이 되었다.

글의 배경이 되는 1866년 (고종 3년) 당시 박규수는 평안도 관찰사였다.

7월, 미국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와 통상을 요구하며 평양 주민을 위협하였다.

박규수는 제너럴 셔먼호에게 출국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몇 차례의 교전이 이루어진 후 감찰사이던 박규수는 제너럴 셔먼호를 태워버리라고 명령했고,

불탄 배에서 통역관 자격으로 타고 있던 영국인 선교사 R.J 토마스(한국 이름 최난헌)가 사로잡혔다.

그러나 성난 평양 주민들이 토마스를 향해 달려들었고, 토마스는 맞아죽었다.

이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토마스는 순교자로 보기도 한다. 






나, 전임 우의정 박규수. 새로이 정승이 되려 한다는 황 아무개에게 감히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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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대에게 몇 마디 걸치고자 함을 허물하지 말라. 내 비록 영상의 자리에는 앉지 못하였으되 예나 지금이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일컬어지는 자리, 어찌 백 마디의 경고가 아까우며 천 마디 충고를 소홀히 하겠는가. 물론 나 살던 시대와 그대 사는 때의 법도가 다르고 나라의 틀이 달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마는 사람 사는 이치란 환웅과 단군의 시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무엇이리오.


정조 대왕 때 우의정 이병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정승이 가져야 할 자질의 첫째는 명덕(名德)이고, 다음은 사공(事功)이고, 마지막이 시대를 구제하는 재능입니다. 태산교악처럼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그 노력과 유익함이 만물에 미치는 것을 명덕이라 하고, 나라의 법을 밝히고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며 일을 미루지 않고 처리함을 사공이라 할 것입니다.”


곧 함부로 공론과 잡언에 휘둘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편중되지 아니하며 법을 펴고 다스리는 자로서 모범이 돼야 한다는 뜻이리라.


두드러기로 군역을 면제받은 일은 태조 대왕 이래 손으로 꼽겠거니와 그대가 법관을 그만 둔 이후 태산교악과 같은 전관예우를 받은 일은 내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대놓고 도둑질한 자들이 당상관 반열에 드는 것이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이며 나의 때와 그대의 시대가 다르지 않을진대 그만하면 그대의 무리 가운데에서는 출중하게 깨끗한 인재일 터. 내 굳이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다만 그대가 행했다는 언설 중에서 나와 인연이 깊은 자가 등장하였던 바, 굳이 그대에게 내 경험과 의중을 들려주고자 하니 괘념치 말고 듣기 바라노라. 몇 년 전 야소(편집자 주- 예수의 음역어) 믿는 자들 몇 명이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땅으로 날아가서 ‘선교’란 것을 하다가 탈레반이라는 잔혹한 회교도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그대가 이런 말을 하였다.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 등 선진국 크리스천들의 공격적 선교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민족이 되었다.”


나는 이 토마스라는 사람을 안다. 그 최후를 보았고 그가 어떻게 이 땅에 왔는지도 전해 들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 주고자 한다.


병인년 늦여름의 어느 날, 한 병졸이 감영 대문으로 구르듯 뛰어 들어왔다. 대동강 변에 이양선 출현 제너럴 셔먼이라는 미국 배였다. 배에 탄 이들이 이르기를 통상을 위하여 왔다고 하였으나 인질을 잡으면서까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고자 하였으며, 먼저 양총의 탄환을 날려 조선 백성들을 죽였다. 적어도 그들은, 서로 사이 좋게 무역을 하고자 백기를 들고 들어오는 선량한 상인들은 절대로 아니었다.


화공으로 잿더미로 변해가는 배 위에서 숱한 사람들이 대동강으로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나이 서른이 채 안된 영국인이 있었으니 그가 토마스라는 자였다. 자신은 이전에도 조선에 온 적이 있으며 조선 이름까지 있다고 했다. 최난헌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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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J 토마스 선교사



최근 들어 그대를 비롯하여 야소교를 믿는 이들의 입에서 그 이름이 운위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 죽음에 애통해하는 것은 그대들의 일이니 따로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그가 만리타향에서 그가 믿는 도를 전하고자 노력한 것처럼, 너희가 아직 야소의 이름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나라와 민족에게 너희의 도를 알리고자 노력하는 것 또한 그대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는 토마스의 처신을 직시해야 한다.


토마스, 즉, 최난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이 땅을 밟았는지, 내 그의 가슴을 풀어헤칠 길이 없으므로 알 길이 없도다. 그러나 토마스가 탄 제너럴 셔먼 호는 분명 무역을 가장한 해적선이었고, 토마스는 그 배의 통역으로 대동강을 거슬렀다. 토마스 나라의 격언대로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치는’ 것도 분명할진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해적선에 오르는 것이 정녕 합당한 일이냐. 그것이 선진이냐, 그것이 선교더냐. 그럼 그들의 손에 죽어간 이들은 너희가 말하는 신의 징벌을 받아 죽은 것이냐. 정승을 꿈꾸는 자로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함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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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조선에 요구하던 제너럴 셔먼호

당시 박규수는 평양 감사였다.



토마스가 그 자신이나 다른 선교사 뒤에서 포신을 가다듬고 있던 군함들의 의도를 모른 채 오로지 복음만 전파하려 했다고 애써 변명하지 말라. 토마스는 조선을 공격하려는 불란서 함대에 동승하고자 발버둥친 인물이었고, 그것이 무산되자 해적선에 올라탔다. 복음을 그렇게라도 전파해야 하느냐? 그렇게 전파되는 것이 복음이라 자신할 자 있느냐? 실제로 토마스가 속했다는 런던 선교회 총무조차 “무장한 선박을 타고 조선에 나간다니 이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요, 더욱이 당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항의하였는데, 일국의 정승이든 총리든 억조창생(편집자 주- 수많은 백성)을 공평히 바라보고 스며들듯 유익을 끼쳐야 하는 이로서 가당한 생각이냐.


“나는 정치를 모른다. 나는 복음을 전파할 뿐이다.”


아마 토마스는 이렇게 말하였으리라. 그러나 너희는 알아야 한다. 너희가 치켜드는 십자가의 붉은빛을 자기 형제의 핏빛으로 여기는 자가 많음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떠안기는 복음이 어찌 복음일 수 있으며, 그렇듯 복음을 전한다는 행위로 어찌 너희가 정신적 수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 토마스와 제너럴 셔먼을 일컬어 ‘공격적 선교’라 하였느냐. 무식한 자야, 무학한 자야. 눈이 있으면 글을 읽고 머리 있으면 생각을 하며 손이 있으면 책을 뒤지라. 어찌 그를 진리의 펼침이요, 복음의 전파라 할 수 있느냐.


도대체 그대와 저 아프가니스탄의 벽창호 탈레반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 더 나아가 남의 나라 땅에 대포를 들이대고 들어와 성경을 들이밀었던 토마스와 탈레반이 무엇이 다를 것이냐. 행여 탈레반이 강성해지고 세계를 주름잡는 날이 온다면,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기른 토마스가 이 땅에 다짜고짜 들어와 코란을 던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 무지몽매한 십자가를 버리고 초승달의 깃발을 따르라 외치지 않겠느냐. 그러면 그대는 무엇을 하겠는가. 정승을 꿈꾸는 야소교인이여 대답해 보라. 그들의 ‘공격적 선교’에 어찌 대응하겠는가.


황 아무개, 그대를 비롯한 무식하고 무학한 야소교인들이여 똑바로 들으라. 너희는 이미 탈레반이다. 세상의 변화와 역사의 증언과 세상 사람들이 누대를 거쳐 쌓아 올린 지혜를 너희들만의 체계로 깔아뭉개며 너희 아니면 진리가 없다고 우기는 독단의 미혹에 빠진 자, 복음을 위해서는 해적선에 올라타든 침략자의 배에 동승하든 그 땅에 이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자, 바로 탈레반이로다. IS라 일컬어지는 악마와도 같도다. 바미얀 석불을 포격하는 오만과 단군상·불상의 목을 베는 광기가 멀지 않고, 아무 죄 없는 양민에게 총알을 퍼붓는 것을 보면서도 태연히 그 배에서 통역을 하고 있었던 토마스와 애꿎은 민간인들을 납치하여 그 몸에 수십 발의 총알을 박아 넣고도 알라를 외치는 이들과의 거리가 빗금 하나보다도 가깝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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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에게 공격받는 바미얀 석불



그러고도 토마스를 본받을 것이냐. 그를 본받아 제국의 발톱이 할퀴고 간 그 산하에서 야소가 목 놓아 부르짖었던 가난한 자, 핍박 받는 자, 애통하는 자들을 상대로 제국의 종교를 믿으라고 설파할 참이냐. 그것이 정녕 야소가 가르친 것이더냐. 이미 저승에 간 토마스를 도대체 얼마나 더 욕되게 하려느냐. 나이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대동강 변에 피를 뿌렸던 그의 죽음을 나는 진실로 슬퍼하노라. 아마 그도 후회하고 있으리라. 자신을 본받겠다고 설쳐대는 그대와 같은 족속들에 가슴을 치고 있으리라. 하물며 그대가, 정승을 꿈꾼다는 그대가 토마스를 호출하는가. 그를 본받자고 하는가.


토마스를 본받지 말라. 자신의 종교를 위해 나라를 통째로 먹어 달라고 구구절절 호소하던 그대의 종씨 황사영도 본받지 말라. 하물며 그대가 사는 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법전에 명시한 나라요, 그대는 그 나라의 정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대의 믿음은 과연 정승에 가당한가, 합당한가.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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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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