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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작은아들이 반갑지도 않은지, 엄마는 자꾸만 시계를 봤다.

 

“왜? 어디 가야 돼?”

 

“아니, 그게 아니라……. 뿌리공원에서 축제하는데, 오늘 장민호, 그 왜~! 트로트 가수 있잖어. 갸 온다고 해서, 거기 가야 돼.”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무슨 축제야?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우비 입으면 괜찮어. 별로 춥지도 않은데 뭘~!”

 

“장민호가 누구길래, 그 사람이 그렇게 노래를 잘해?”

 

“아니???!!”

 

“근데 왜? 그 사람 어디가 좋은데?”

 

“잘생겼잖어.”

 

“응??”

 

“잘생겼다고! 몰랐어? 엄마는 잘생긴 남자가 좋아. 호호호.”

 

뜨악했다. 몰랐다. 엄마가 잘생긴 남자 좋아한다는 걸. 하긴, 엄마도 송주홍의 엄마이기 이전에, 송일영의 아내이기 이전에 여자였는데 말이다. 그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곱게 화장하는 엄마를, 나는 한참 넋 놓고 바라봤다. 그리고 그날, 미뤄왔던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아들로서, 엄마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주 오래전이다. 어릴 때부터 파편적으로 들어온 엄마의 지난 세월은 이미 그 자체로 소설이었다. 나는 그저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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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1살의 동분 씨.

아들 송주홍 군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곧 망설였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엄마의 아들로 37년을 살았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혹은 송일영의 아내. 그 이상의 모습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두려웠다. 내가 우리 엄마의 삶을, 아니 1961년생 정동분 씨의 생애를 온전히 그릴 수 있을까?

 

그날 난 마침내 엄마가 아닌, 1961년생 정동분 씨를 만났다. 외출 준비로 바쁜 동분 씨에게 정식으로 제안했다.

 

“엄마, 나랑 인터뷰할래?”

 

<61년생 정동분>은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다.

 

동분 씨의 삶을, 세상에 내놓는 게 맞을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지금 이 시점, 나에게, 또 당신에게 1961년생 정동분 씨 생애는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가난한 집안 넷째 딸로 태어나, 평생 장미꽃 한 번 사준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해 꼬장꼬장한 시어머니 모시고, 두 아들 키우다 마침내 늙어버린 삶이다. 그게 전부다. 의도적으로 친구와의 추억을 묻고, 좋아했던 연예인과 소설책에 관해 묻는다. 다녔던 여행지와 취미에 대해서도 듣는다. 한계가 있다. 이러나저러나 1961년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를 지나온 여성과 그를 중심에 둔 가족 이야기다.

 

그에 반해 2023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남녀평등’을 넘어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배운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성평등’이라고 말한다. 이미 존재했지만, 나와 당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에 ‘성 중립 화장실’이 생겼다. 성공회대학교는 지난 2022년 3월, 새천년관 지하 1층에 ‘모두의 화장실’을 열었다. 이곳 표지판엔 치마만 입은 사람, 한쪽엔 치마 한쪽엔 바지 입은 사람, 바지만 입은 사람, 아기 기저귀 교환하는 사람, 휠체어 탄 사람을 함께 그려 놨다. 마땅하고, 옳은 흐름이다.

 

내가 어릴 땐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배웠다. 성인이 된 뒤엔 남자도 집안일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집안일에 남녀가 따로 있느냐고, 누가 누굴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고 말한다. 이 또한 마땅하고 옳은 말이다.

 

몇 년 전, 우엉․부추․돌김 세 작가가 같이 쓴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을 읽었다. 남성 1인과 여성 2인이 공동명의로 땅 사고,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같은 해, 홍승은 작가가 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라는 책도 읽었다. 당시엔 용어조차 생소했던 ‘폴리아모리’ 즉 비독점적 다자 사랑으로 살아가는 여성 1인과 남성 2인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작년엔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도 나왔다. 가부장이라는 단어에 있던 ‘부(父)’ 대신 ‘녀(女)’를 넣은 가족 이야기다.

 

책 세 권 모두 과거에 ‘정답’이라고 여겼던 질서를 흔든다. 과거 언제까지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자식 낳고, 남자는 밖에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살림하고 자식을 돌봤다. 그게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가족’이었다.

 

위의 책들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과거와 작별을 고한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안하고, 성소수자의 삶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슬아 작가는 『가녀장의 시대』 에필로그에서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렇다. 바야흐로 2023년 대한민국은 ‘새 시대’다. 물론, 여전히도,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는다. 페미니즘의 ‘페’만 꺼내도 눈에 쌍심지 켜고 급발진하는 남자가 내 주변에만 세 트럭 이상이다. 갈 길 먼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분 씨가 살아온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세상은 이만큼이나 변했는데 나 홀로 철 지난 이야기를 붙들고 씨름하는 건 아닌가? 내가 써 내려간 글이 혹시 구시대적인 여성상을 찬양하는, 그리하여 시대를 역행하는 글로 비치진 않을까? 또 혹시 누군가는 왜 멍청하게 희생만 하며 살았냐고, 동분 씨를 비난하진 않을까? 나로 말미암아 동분 씨 삶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날 주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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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분 씨 가장 최근 모습.

카페에서 수다 떨다가 한 컷.

 

스물 다섯 동분이를 만나는 시간

 

26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믿어줄까. 난 요즘 그 여인에게 푹 빠졌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이야.

 

<61년생 정동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동분 씨와 정식으로 사전 미팅을 했다. 기자 일을 5년 했고, 어쨌거나 두 권의 책을 낸 작가 아들에겐 익숙한 상황이지만, 동분 씨는 모든 걸 낯설어했다. 아들이 아닌 작가로서, 프로젝트 취지와 콘셉트, 향후 일정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논의한 내용이다.

 

① 1961년생 정동분의 생애를 기록하되, 시간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② 2주에 한 번 만나,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인터뷰한다.

 

③ 주제는 동분 씨가 파편적으로 들려줬었던 이야기 가운데 인상 깊었던 사건과 인물, 감정 등을 중심으로 선정한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수정, 보완할 수 있다.

 

④ 당신과 당신 가족의 실명 및 초상권을 비롯한 사생활 전부가 일반 대중에 노출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 저녁, 인터뷰를 진행한다. 사전에 주제를 고민하고 질의서를 작성한다. 노트북과 녹음기를 챙겨 만난다. 함께 나누는 저녁 식사까지가 엄마와 아들의 시간이다. 식사가 끝나면 차분히 앉아 노트북과 녹음기를 켠다. 이때부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자리다.

 

보통, 두 시간가량 인터뷰한다. 인터뷰 마치고 집에 오면 곧바로 녹음파일을 문서화한다. 그러면서 원고 방향을 설정한다. 며칠 더 고민하고 원고 쓰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처 묻지 못한 질문이나 원고 쓰면서 새롭게 궁금해진 게 있기 마련. 그럴 때면 인터뷰어가 아니라 아들의 탈을 쓰고 불쑥 전화 건다.

 

“엄마 바뻐? 저번에 그런 얘기 했었잖어. 그게 왜 그랬던 거지?”

 

평소, 안부 전화 한 통 안 하던 아들이다. 요즘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한다. 동분 씨는 귀찮으면서도 즐거운 모양.

 

“왜 또~! 뭐가 궁금헌데?”

 

원고는 다음 인터뷰 전까지, 즉 2주 안에 마무리하는 게 원칙. 완성하지 않은 원고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상태에서 다음 인터뷰 진행하는 건 반칙이다. 하여, 요즘 난 2주 사이클로 ①인터뷰 ②녹음파일 문서화 ③원고 방향 설정 ④원고 작성 ⑤교정 및 교열 ⑥다음 인터뷰 주제 설정 및 질의서 작성 ⑦인터뷰 과정을 무한 반복하며 지낸다. 일정이 제법 빡빡하다. 그런 데다가 여전히 ‘글 쓰는 노가다꾼’으로 사는지라 매일 평일 저녁은 물론, 주말에도 이 작업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요즘 머릿속에 온통 동분 씨뿐이다. 주말에 친구 만나도 동분 씨 얘기만 한다. 오죽하면 “마마보이냐? 서른일곱이나 처먹은 놈이 종일 ‘엄마. 엄마, 엄마’하고 자빠졌네.”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얼마 전엔 현장에서 망치질하다가 ‘그때 동분 씨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스물넷에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그 뒤로 두어 달에 한 번, 바쁘게 직장 생활할 땐 명절에나 겨우 본가를 찾았다. 전화 통화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바쁜 아들 시간 뺏을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엄마가 전화했다. 그때마다 난 서둘러 끊기 바빴다. 애인이랑은 한 시간씩도 통화하면서.

 

그러니, 모자지간이라고 해봐야 어떤 면에서는 친구나 애인보다도 더 서로를 몰랐다. 물론, 엄마는 내 표정만으로 모든 걸 파악해 내는 능력을 갖췄지만. 적어도 난 그랬다. 엄마를 전혀 몰랐다. 특히나 내가 독립한 이후 엄마의 삶(그러니까 엄마의 50대)에 관해, 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얘기했듯, 요즘은 매일 동분 씨 생각만 한다. 열다섯의 동분이 읽었던 소설책을 찾아서 읽는다. 스무 살의 동분이 만났던 그 남자(송일영 씨, 나의 아버지)를 괜히 원망한다. 며칠 전에는 글에 이런 문장을 썼다.

 

“그날 나는, 할 수 있다면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스물다섯의 동분에게 달려가 꼭 안아주고 싶었다.”

 

이 정도면 상사병 중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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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큰아들 송주성 씨 결혼식 날 한복 곱게 차려입은 57살의 정동분 씨.

나란히 앉은 사람이 앞으로 자주 등장할 송일영 씨다.

 

그 여정에, 당신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과거의 나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치자.

 

“당신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

 

당장은 이렇게 답했을 거다.

 

“당연하죠.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이 세상에 낳아주고 길어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근데, 내 가슴까지 진심이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으레 부모를 사랑하라고 배웠다. 그래서 나 또한 당연히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말하자면, 나에게 엄마를 사랑한다는 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거나 새치기하지 말자 같은 ‘참’인 명제였다. 너무 당연해서 깊게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그냥 그러하다고 여기는 것.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좀 전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수줍게 고백할 거다.

 

“저보다 26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우리 엄마, 정동분 씨를 말이에요.”

 

이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 진행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질문, ‘지금 이 시점, 나에게, 또 당신에게 1961년생 정동분 씨 생애는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으로 말이다.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은, 서른일곱이나 먹고도 여전히 철들지 못한 아들이 마침내 엄마의 삶에 가닿게 되는 가족 드라마다. 37살 남자가 63살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로 봐도 무방하다. 그 여정에, 당신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나는 1987년에 태어났다. 그때 우리나라 경제가 호황이었다고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IMF를 어설프게 경험했다. 학창 시절엔 다마고치와 닌텐도를 갖고 놀았다. 24살에 처음 스마트폰이라는 걸 접했고,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다룬다. 어릴 땐 친구들과 깡통 차기, 땅따먹기하면서 놀았으며, 지금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를 만난다. 난 그런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2세대. MZ 세대의 정서와 문화도 어설프게 아는 세대. 한 마디로 끼인 세대. 세상은 우리를 ‘IMF 키즈(IMF 외환위기 당시 십 대를 보낸 아이들)’ 또는 88만 원 세대라 부른다.

 

개인적으로 세대 담론이 범할 수 있는 일반화의 오류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한강대교를 건넜던 1961년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때려 맞아야 했던 동분 씨 삶에도,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61년생 정동분>은 IMF 키즈이자 88만 원 세대가, 베이비부머 혹은 86세대(동분 씨가 대학을 나오진 않았지만)를 비로소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삶의 주기를 밟아온 30~40대에게도 그런 의미였으면 좋겠다. ‘아, 우리 엄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구나.’ 하고 당신의 엄마를 이해하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당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별다른 일 없으시죠?” 하고 물을 수 있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불쑥 당신의 엄마 집에 찾아가,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 먹고 싶어서 왔어.”라고 너스레 떨 수 있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당신이 당신의 엄마를 비로소 사랑하게 되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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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행 다녀온 정동분 씨 와 아들 송주홍 군.

베트남 하이퐁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