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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랫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하였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바,

독자투고 및 자유게시판(그 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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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를 작성한 후인 3월 14일, 윤석열 정부는 주 69시간 근무제 재검토에 나선다고 하였습니다.

 

120시간을 거론한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정책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조삼모사일) 공산이 있습니다. 52시간제 의미와 현 정책 입안자의 자세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인 터라 원문 취지를 살려 싣습니다.

 

 

1. 52시간 안착에서 69시간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동 개혁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 개혁 중에는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말이 있었는데 "바쁠 때는 120시간도 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나름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던, 훌륭한 꼰대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초기에는 여론도 재계를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확정 사항은 아니다, 라는 말로 대충 상황을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그동안 보여준 노동 탄압들이 시작으로 기어이 52시간 제도를 개편한다고 나섰습니다.

 

[이 시각 세계] 호주·이탈리아 언론 '한국 주 69시간 근무제' 보도 (2023.03.15_뉴스투데이_MBC) 0-40 screenshot.png

호주·이탈리아 등에서 보도한 69시간 근무제 외신 셀럽 윤석열

출처-<2023.03.15 mbc 뉴스투데이 갈무리>

 

주 52시간 근무제는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1일 법정 근로시간 8시간을 계산하면 주당 40시간이 되고, 추가로 근무를 해야 할 때도 주당 1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여, 한 주 최대 근로 시간이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노동자가 원했다 할지라도 최대 노동 52시간을 넘기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노동자의 초과근무가 설령 자발적이라는 증빙서가 있다 할지라도 사업주의 위력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업주들은 최대 주 52시간 범위에서 근무시켜야 하고 강제로라도 퇴근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이 제도는 문재인 정부 때 법제화한 것으로 기존에도 근로기준법상 1일 근로 시간은 8시간이었으나 연장근로에 대해 주말을 제외한다는 해석 등이 등장하며 극단적으로는 68시간 이상도 근무가 가능했던 것을 명확히 52시간 제한으로 정한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 의견도 많았지만 부정적 의견도 많았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혜택을 받게 되는 직업군에서는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보장이라는, 이전과는 다른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임금 삭감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직업군 노동자는 거부하며 파업까지 감행하기도 했었지요.

 

어쨌든 현 정부에서 이 52시간제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1주일 단위였던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하에 분기·반기·연 단위로 변경하자는 게 뼈대입니다. 이렇게 단위를 변경하게 되면

 

월 단위 최대 52시간 (주 12시간 x 4.345[월 평균 주의 수])

분기 단위 최대 140시간 (월 52시간 x 3[개월 수] x 0.9)

반기 단위 최대 250시간 (월 52시간 x 6[개월 수] x 0.8)

연 단위 최대 440시간 (월 52시간 x 12[개월 수] x 0.7)

 

까지 초과 근무가 가능하게 바뀝니다. 위의 초과근무를 적용하면 월 단위 초과근무에 합의한 사업장에서는 2주간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 업무가 발생하여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13시간을 근무할 수 있습니다. 하루 초과근무는 5시간이 발생합니다. 2주간 주 5일 근무를 하면 총 50시간의 초과근무를 합니다. 이후 남은 2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초과근무는 2시간이고, 남은 2주 동안 초과근무가 없다면 하루 8시간만 근무하게 되겠지요.

 

[이 시각 세계] 호주·이탈리아 언론 '한국 주 69시간 근무제' 보도 (2023.03.15_뉴스투데이_MBC) 0-52 screenshot.png

 외신 인용이에요. 또 mbc 고소할라

 

노동자 건강권 문제와 겹쳐 건강 보호를 위해 주 69시간까지 일할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을 부여하게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1주 총 근로 시간을 64시간 이내를 준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2. 69시간 일해서 좋을 노동자는 누굴까

 

이런 상황에서 역시나 재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현재의 유연성 없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 노동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이죠. 사실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닙니다. 당장 납기일을 맞춰서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데 52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던가, 개발사에서 업데이트나 수정사항 등이 발생하여 며칠간 철야 작업을 해야 하는 등 획일적으로 52시간 제도를 적용했을 때의 부작용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주 52시간만 하더라도 주 5일제 근무를 하는 분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해야만 채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월·화···금 거의 날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을 해야만 52시간이 되는데, 무작정 노동자가 많은 시간을 할당해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구조적인 문제나 인력 문제 등을 고려해봐야 할 사항입니다.

 

52시간제가 목표했던 순기능 중 하나는 줄어든 노동시간으로 인한 신규 인력 채용을 유발하고자 함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기업들은 인건비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치를 떨지요. 두 사람이 수행하면 초과근무 없이도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에게 담당하게 하려는, 기업에 유리한 제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요.

 

또한 이미 주당 52시간을 꽉 채워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개편된 근무 시간제로 인해 급여 인상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시겠지만 어차피 초과근무가 주 단위냐 월 단위냐의 차이만 있을 뿐 총시간은 동일하기 때문에 급여 인상 효과는 없을 겁니다. 단순히 특정 기간에 일을 몰아서 할 뿐이지요. 그럼에도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히 쉬자! 라는 말로 노동자들에게 이득은 없는 제도를 홍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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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서울 용산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출처-<김창길 기자/경향신문>

 

이러한 주당 근무 시간이 변경됨에 따라 보상의 하나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장기 휴가를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초과근무로 인해 발생한 초과근무 수당도 지급받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일부 기업들에서는 그나마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각종 꼼수를 사용합니다. 한국 기업문화 안에서 초과근무로 발생한 휴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실효성이 의심스럽습니다.

 

단기 근로자들이 더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령 6개월 한시적 프로젝트로 계약직 직원을 채용 후 250시간의 초과근무를 적용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3~4개월 집중적으로 일을 몰아주거나, 1년 단위 계약직 직원을 채용 후 440시간 초과근무를 집중적으로 하게 하는 식으로 변질할 수 있습니다.

 

이런 초과근무의 합의는 노사 합의를 통해서라고 합니다. 관련하여 근로자대표 선출에 관한 부분도 과반수 노조가 있다면 노조가, 없다면 노사협의회 대표가, 이마저도 없다면 투표를 통해 근로자대표를 선출한다고 합니다. 90% 가까운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들은 실질적으로 기업이 원하는 대로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소득, 전문직은 근로 시간 제한을 하지 않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는데 전형적으로 갈등을 부추기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고소득 노동자와 저소득 노동자를 나눌 것이며 전문직 범위를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고소득과 전문직이 분리된다면 저소득 전문직도 존재할 수 있으며 고소득, 전문직이라고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을 겁니다.

 

찬성 측에선 주 52시간 근무제도조차 유명무실한 제도라며 쓸모없는 52시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을 일반화하는 것이라면 논리적인 반박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반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52시간 제도라는 법이 있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는데, 이 법마저 완화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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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시간 받고 통근 시간 더!

출처-<경향신문·한겨레21>

 

문재인 정권 당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과 관련하여 전경련 권신태 상근부회장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뉴욕시립대 폴 크루그먼 교수의 대담이 있었습니다. "일률적 52시간 도입은 무리가 아닌가?" 라는 질문에 폴 크루그먼 교수가 오히려 52시간이나 근무한다는데 놀랐던 일화가 있지요. 프랑스는 주당 노동시간이 우리나라의 40시간보다 짧은 35시간이며 초과근무를 포함해도 48시간입니다. 프랑스 연간 노동시간은 약 1,500시간 정도로 우리나라 2,000시간보다 500시간 정도 짧습니다. 그들 사정과 우리 사정이 다른 것은 인정하지만, 일도 많이 하는데 생산성에서까지 우리나라가 뒤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을 늘림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기업은 노동자 권리가 나아지고 개선되는 제도의 도입에 부정적입니다. 반대로 기업들이 반기는 제도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것이라는 게 비약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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