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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네. OOO 병원 의사 OOO입니다. OOO 맞으시죠?”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

 

“…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은데, 이틀 뒤에 수술하도록 합시다. 오전 11시까지 병원으로 오세요.”

 

“아. … 갑자기 무슨 일이시죠? 아직 수술 날짜가 보름 정도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 …”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일찍 수술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그러니 OO월 OO일 OO시, 시간 늦기 않게 오세요. 수술실과 담당 의사는 이미 예약해 두었습니다.”

 

“아 네. …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

 

출산은 보통 40주 차 즈음에 한다. 그러나 내 아내는 영국에서 30주 차에 출산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국에서 한 첫 임신과 예상치 못한 문제

 

나와 아내는 영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무런 연고 없이 서로만을 의지하며 살던 중, 아내가 임신했다. 임신테스트기로 확인된 사실이지만,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 GP - 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가 있어 1차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 를 찾아갔다. 결과는 임신 8주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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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건물.

현수막의 진료 시간을 보면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한다고 되어있다.

출처-<헤드라인제주>

 

결혼 후 5년 만에 한 첫 아기를 가진 터라 굉장히 기뻤다. 지금보다 훨씬 가진 것 없던 때였지만, 아기를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좋은 것만 먹여야겠다 생각했다. 그전까지 비싸서 먹지 않았던 유기농 제품들만 사 먹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식사를 밖에서 사 먹기보다는 직접 요리해 먹었다. 아기를 위해 나와 아내는 많은 것을 노력했고, 그런 과정은 우리 부부가 서로 더욱 의지하며 연결 고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임신 20주 차가 됐을 때다. 갑자기 아내의 혈압이 치솟기 시작했고, 심한 두통도 동반됐다. 혈압이 180에 120 –정상 수치는 120에 80- 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높은 숫자라 몇 번이고 혈압계를 툭툭 쳐가며 재고 또 쟀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상하다 싶어 급히 GP에 연락했고, GP는 발 빠르게 종합병원 응급실로 연락을 취해 당장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거동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기에 응급차보다는 자차를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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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응급실.jpg

영국 병원 응급실

출처-<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아주대학교 의료원지부>

 

“이러쿵저러쿵해서 응급실에 왔는데요...”

 

“우선 검사 몇 가지 해보죠.”

 

“네”

 

... 검사중 ...

 

“프리이클림시아(Pre-eclampsi, 임신중독) 네요. 앞으로는 각별히 주의하셔야겠어요.” 

 

“네?”

 

응급실에 가서 최종적으로 받은 진단은 임신중독. 그 전까지만해도 사전지식이 많지 않아, 뭔 중독? 이라고 반응했던 건 부끄러운 비밀이다. ‘프리이클림시아’(Pre-eclampsia)가 정확히 뭔지 찾아봤다. 우리말로는 ‘임신중독’이라고 나와 있었다. 검색도 해보고 주변 친구, 지인들 중 의료계에 있는 이들에게 알아보니 혈압과 관련된 질환으로 임신 20주 차 즈음 됐을 때 고혈압이 있는 임산부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근데 아내는 평소 혈압도 높지 않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며 운동도 꾸준히 했었는데 임신중독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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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임신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단백뇨였다. 임신중독은 임신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이와 산모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이 탯줄을 통해 엄마는 산소와 영양분을 아이에게 보내주고, 아이로부터 노폐물을 받아 내보낸다. 그런데 임신중독이 되면, 아이에게 전달될 영양분이 대부분 노폐물로 분류되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의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이러한 이유로 산모에게도 위험하지만, 아이의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질환이다.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해진 상황을 맞이하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임신중독일지라도 아이에게 영양분만 잘 전달된다면 큰 문제 없이 제 날짜에 출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갑작스런 출산

 

영국은 주치의(GP 의사)를 통해 임신을 확인받으면,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 혹은 종합병원에 있는 산부인과로 등록된다. 이후부터 종합병원에서 산모에 대한 검사와 진찰이 병행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출산까지 약 3-4번 정도 초음파와 몇 가지 검사를 통해 아이의 건강을 확인하고 기일이 다가오면 출산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산모가 임신중독일 경우, 1-2주에 한 차례씩 초음파 검사를 하여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단백뇨를 체크하기 위한 소변 검사도 진행한다. 전술했듯, 임신중독은 산모가 아이에게 영양분을 전달하는 데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아이의 성장 상태와 산모의 소변에 검출되는 단백뇨를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단백뇨의 양이 많다면, 아이가 성장할 영양분을 엄마로부터 잘 못 받고 있는 것이라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임신중독 진단을 받았지만 제발 별일 안 일어나길 바라며 일상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닥쳐온 상황은 우리의 바람과 달랐다. 6주 정도가 더 지났을 때부터 아이의 성장이 멈췄다. 당시 아이는 1.2kg 정도였는데, 앞으로 1주일에 최소 200-300g씩은 자라야 출산 때 3kg 정도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 성장이 멈추자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32주 차에 수술을 통해 아이를 미리 꺼내야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 역시도 그분의 권고에 따라 동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촉이 좋지 않으니 수술을 2주 정도 앞당겨야겠다고. 그때 했던 대화가 글 제일 서두에서 언급한 대화다. 

 

처음 겪는 일이기도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그러겠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라 시간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출산 준비를 잘 못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은 2주 동안, 출산을 위한 용품도 사고 아이를 위한 물품도 구매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2주나 앞당겨지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아주 급하게, 당장 필요한 것들만 사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틀을 보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으로 기억한다. 

 

서명.PNG

 

“자,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

 

“동의하지 않으시면 수술을 시작할 수가 없어요. 최대한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동의할게요. (서명하고 서류를 내밀며) 여기 있습니다.”

 

“네 이제 곧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바로 됩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진료실을 나왔다. 아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 이미 수술 대기실로 옮겨진 상태. 누구나 그렇듯 출산을 앞둔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과 무거움이 앞섰다.

 

다행히도 걱정과 다르게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대기실에서 수술실까지 함께 이동하고, 

 

마취 주사를 맞고 수술대에 올라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처음으로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태명을 불렀을 때,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기 위해 어렵사리 눈을 뜨려 애쓰던 아이의 모습,  

 

아이를 안고 몸에 이상은 없는지 체크하고 인큐베이터로 들어가던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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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oreahealthlog>

 

물 흐르듯 흘러가는 모든 과정을 마주하며, 몇 달간 가지고 있던 걱정과 염려가 씻겨 내려갔다. 동시에 새로운 생명에 대한 환희와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생명체에 대한 기쁨을 만끽했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워낙 작게 태어난 아이라 많이 먹지 못했고, 먹는 양이 적다 보니 소화가 빨랐다. 그러다 보니 잠이 들어도 배고프다고 금세 일어나 울어 재꼈다. 아이는 길면 2시간, 보통은 1시간마다 일어나 밥 달라 울었다. 기저귀는 하루에 10번 정도 갈아야 했다. 깊이 잘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고, 밥을 먹다가도 아이가 울면 달려가 봐줘야 하니 내가 먹는 건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코 녹록치 않았다. 

 

수술 후, 아내와 아이 모두 3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좋은 의료진과 친절하고 배려심 깊었던 간호사분들 덕에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 모든 과정은 무료였다. 영국에서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민보건서비스) 등록 번호 하나만 있으면 받을 수 있는 의료 혜택이었다. 

 

 

NHS는 어떻게 정착될 수 있었나

 

영국 노동당 소속 정치인이었던 윌리엄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 1879-1963)는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내며 영국의 여러 사회시스템 기틀을 마련했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정식 명칭은 ‘사회 보험 및 제반 서비스에 관한 보고서’(The Report on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이 보고서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노동자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잘 담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영국 정치인의 정책 방향에 기준점이 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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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

 

윌리엄 베버리지는 이 보고서에서 불결함(squalor), 무지(ignorance), 빈곤(want), 게으름(idleness), 질병(disease)을 다섯 가지의 큰 악이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빈민가를 정비하고 개발하여 발전시키는 정부의 주택 건설 프로그램, 의무적인 무료 중등 교육제도, 국민 전체에 노동의 기회를 주도록 하는 고용보험제도, 그리고 국립 건강서비스 등이었다. 

 

이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정책을 정할 때, 표준으로 사용될 만큼 가치가 크다. 실제로 런던의 동, 북부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교육제도를 개선해 최소한의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보고서의 영향이 컸다. 보고서 속 여러 시스템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NHS’이다. 처음엔 실직, 질병 감염, 임신, 남편의 죽음 등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는데, 이는 점점 발전되어 현재의 NHS가 되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최소한 사람이 아플 때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국가가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준 영국의 NHS 정신은 1945년 이후, 노동당 정부에서 실행된 복지국가에 대한 청사진이 되었다. 

 

물론, 영국의 NHS가 엉망이라는 말도 많다. 우리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때문에 모두에게 무료인 의료시스템의 한계에 대한 조망과 평가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전에 미국의 민간 재단인 커먼웰스 펀드(The Commonwealth Fund)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NHS 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좋은 의료시스템이라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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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사진1.PNG

출처-<The Commonwealth Fund> 링크

 

영국 내에서도 국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긴 하지만, 절대로 민영화는 안 되며 끝까지 공공의 영역으로 유지해야 할 정책으로 NHS를 꼽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은 세계대전 이후, 급격하게 쇠락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방안으로 수많은 국가 산업을 민영화했다. 국민 전체를 고용하기 위해 소유했던 철도, 전기, 가스, 자동차 등이 대표적으로 사기업에 팔렸다. 이로 인한 폐해는 지금까지도 막강하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민영화되어도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 않았던 곳이 바로 의료서비스였다. 적자일지언정, 손해를 보고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할지언정,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사업을 벌일 수 없다는 가치관이 의료서비스만큼은 공공의 영역으로 남긴 것이다. 

 

재정도 감당되어야 하며 국민건강도 책임져야 하는 의료보험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은 분야다. 게다가 영국은 해외 이주민이 특히나 많고, 외국인 입국자가 많기 때문에 국가의 예산이 온전히 자국민에게만 사용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다른 국가보다 큰 국가다. 때문에 NHS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민영화를 통해 민간의료업체가 국가의 예산 중 일부를 부담, 충당하여 더 이상 국민 세금이 필요 이상으로 낭비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의견이다.

 

“나는 수년간 아프지 않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세금을 많이 내지만 정작 그 혜택을 나는 못 받고, 다른 사람들만 내 돈으로 무료로 치료받고 있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하지만 영국은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마지막 재산인 건강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가치관, 이념은 여전히 살아있다. 아마도 인종이나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가 지금의 영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비록 과거의 거대함은 사라졌지만, 과거에 대한 통찰과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받아들임과 내어줌의 자세가 어쩌면, 영국이라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듯하다. 

 

이러한 기조 아래 지난 70년간 영국을 지탱하고 있는 영국의 전국민 무료의료시스템(NHS)은 영국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무상으로 의료혜택을 받게 해준다. 자국민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대상은 모든 사.람.이다.

 

이런 가치 중심적 정책 실행은 NHS의 운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주치의를 만나러 GP에 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등록시스템에서 언어를 선택하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혹여 영어 구사가 어려운 이들이 언어적 장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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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몇몇 국가들에 대한 (특히, 해당 GP에 등록된 이들의 국적에 따라) 언어만 준비가 되어있다는 흠(?)이 있지만, 실제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가치에 대한 투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모여, 외국인들로부터 이질감을 갖지 않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고, 다양한 이들이 한데 어울려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사람이 가장 서러울 때 중 하나가 타국에서 아플 때라는데, 영국은 그 부분만큼은 외국인일지라도 국가가 책임져준다. 이런 부분이 여러 외국인 인재들로 하여금 영국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가장 큰 계기 중 하나가 되고, 어쩌면 영국의 전 국민 무상의료제도가 영국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다양성을 이룰 수 있게 해주어 나라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내의 출산은 미국이었다면 수억 원의 비용이 발생했을지 모르고, 우리나라에서조차 수백만 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진료에서부터 검사, 수술, 그리고 응급병동에서 특수 간호를 받고도 입/퇴원 수속 없이 유유히 병원을 걸어 나와 가벼운 발걸음에 집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경험은 앞으로 시간이 더욱 많이 흘러도 선명히 기억될 것 같다.

 

사회적 지위나 위치, 부의 여부와 관계 없이,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람이라면 차별 없이 치료받아야 마땅하다는, 사람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실천하는 현실이 피부로 와 닿았던 경험이기에 말이다.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이 많지만 이런 가치를 끝까지 놓지 않는 점이, 더욱이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차별 없이 운영한다는 점이 지금의 영연방을 유지하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