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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고래 : 인생이라는 이름의 펄프픽션

 

(36) 달과 6펜스 : 꿈이냐 돈이냐

 

 

 

소설 『즐거운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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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문화사>

 

 

현대판 좃선의 금서 

 

무협 소설 ‘소호강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주받은 금서를 탐하는 자, 대가를 치르리라.” 

 

규화보전 - 소설 속 가장 기괴하고 사악한 최강 무공의 결정판 - 을 얻는 자가 천하의 무림을 호령할 터였다. 이 금서 앞에서 정파와 사파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무림은 혈겁에 쌓였고 최후의 승자는 동방불패였다. 그러나, 금지된 무공 규화보전을 익히기 위해선 고자가 되는 대가가 필요했다. 동방불패는 무공을 익혔고, 결국 고자가 되었다.

 

1992년 한국에도 대표적인 금서가 탄생한다. 그해 10월 29일,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마광수’는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사들이 들이닥치며 마광수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연행해갔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죄목은 ‘음화제조 및 음화반포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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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하는 마광수 교수

위 사진은 1994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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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통해 음화제조 및 반포를 했다는 것이었을까. ‘책’이었다. 책의 제목은 『즐거운 사라』. 구속된 건 마광수뿐 아니었다. 책을 출판한 출판사 대표도 함께 구속되었다. 마광수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95년 근엄하시고 지엄하시며 졸라리 도덕적인 대법원 판새님 – 오타다 - 은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한마디로 말해, 소설이 너무 야하고 정상적 성 윤리를 벗어나서 감옥에 보낸다는 거다. 체통과 근엄의 나라 조선으로부터 이어진 쌉선비 정신은 1990대 한국에서도 얄짤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1세기의 한국도 국민들의 성을 통제하겠다며, 다른 국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각종 성인 사이트를 모조리 막아놓은 점과 각종 사회적 검열이 판치는 점을 볼 때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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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2017년 9월 5일 마광수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오후 2시경,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 문단/학계의 왕따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다. 자살이었지만 사실상 타살인 죽음이었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를 수석으로 입학해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학부 과정을 전과목 A로 졸업한 인재였다. 28세의 나이로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되었으며 32세에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되었다. 등단한 시인이자 소설가였으며 윤동주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그를 ‘천재’라 평가했다.

 

그의 죽음으로 ‘즐거운 사라’는 영원히 금서가 되었다. 한 천재 교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영원한 금서. 이것이 현대판 좃선의 금서 클라쓰다.

 

 

미치도록 쓰고 싶었다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보통 금서나 절판된 책은 이타적이고 선량한 누군가의 헌신으로 네트의 바다 어딘가에 pdf본으로 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직 ‘즐거운 사라’만큼은 어디에도 없었다. 구글도 찾아주지 못했고, 그 똑똑하다는 장안의 화제 챗GPT는 ‘『즐거운 사라』는 캐서린 패튼의 소설로, 출간된 지 꽤 된 작품입니다.’라는 뻘소리만 띄엄띄엄 뱉어낼 뿐이었다. 

 

하다못해 절판된 지 20년이 된 ‘신화의 시간’ -전원 감옥에서 의문의 자살로 끝난 독일 적군파 1세대 논픽션이다 - 조차도 구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즐거운 사라’는 마르크스나 레닌, 그리고 적군파보다도 더 무서운, 결코 읽어서는 안 될 어둠의 금서였던 것이다.

 

미치도록 쓰고 싶었다. 미로 속 미노타우로스처럼 올바른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딴지스들에게 사라의 인생을 소개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도대체가 구할 수 없었다. 절망적 상황 속에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시도를 했다. 대한민국 곳곳의 정보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딴지에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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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한 딴지 임권산 기자가 찍어서 보낸 사진 

 

구했다. 역시 딴지였다. 조중동 따위는 지렁이 콧구멍 속 흙먼지만큼으로도 여기지 않을 정보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딴지다웠다. 완전판이자 초판인 1991년 오리지날 판본을 구한 것이다. 보이시는가. 저 누렇게 뜬 종이 그리고 수많은 손과 세월 속에서 너덜너덜해진 표지가 혹여 떨어질까봐 정성스레 땜빵한 스카치테이프의 안타까운 몸짓들이. 어둠의 다크 속 전설의 레전드로 살아남은 오리지날만이 주는 포스가. 딴지의 능력을 잠시나마 의심했던 나 자신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했다. 딴지가 판을 깔아줬으니 썰을 풀어본다. 

 

사라의 즐거운 인생 이야기이다.

 

 

고2, 나를 따먹어 줘

 

내가 기철에게 이러한 생각을 말하면서 나와 육체 관계를 가져달라고 부탁했을 때, 아닌 속된 말로 나를 아무 부담감 없이 공짜로 ‘따먹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정쩡한 ‘처녀막 파열 의식’이 얼떨결에 치러졌고, 나는 비로소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꼈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벌인 정사는 싱겁고 또 싱거웠다. 그는 전희도 없이 급하게 사라의 스커트 속 팬티만을 아래로 끌어 내리고 그의 심볼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나서 몇초 뒤에 싱거운 발사를 해버렸다. 피스톤 운동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신촌의 미대생 사라는 몇 년 전 고등학교 시절 화실에서 있었던 기철과의 첫 정사를 떠 올렸다. 그때 기철은 미대 2학년생이었다. 아침이 되자 사라는 기철을 찾아가기로 했다. 남자가 필요했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지금 떠오르는 것은 기철뿐이었다.

 

화실 내부 흑백.jpg

 

기철은 작업실에서 군대용 간이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풀풀 풍겼다. 사라는 기철을 보며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한마디로 답답한 일상의 연속이었던 날이었다. 그나마 화실은 학교보다는 자유로웠다. 화실에 오면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화실만의 그 독특한 퇴폐적 분위기가 사라의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사라는 미대에 진학했다.

 

기철이 잠에서 깨어났다. 기철의 눈에는 지저분하게 눈곱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기철은 작업실 겸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한편으로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는 가난한 예술가였다. 화실은 기철의 자취방이기도 했다. 꼭 필요할 때 섹스파트너가 되어 주는 기철을 보며 어젯밤의 그 속물 덩어리를 떠올린 사라는 기철에게 기막힌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싶었다. 사라는 혓바닥으로 기철의 눈곱을 떼어주었다. 기철은 고마워했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세수를 시켜달라고 했다. 사라는 혓바닥에 침을 잔뜩 발라 기철의 얼굴 전체를 핥아 주었다.

 

피차 걱정도 간섭도 연민도 없이, 아니 사랑까지도 없이 그냥 무덤덤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사라는 아르바이트로 룸살롱과 나이트클럽을 나가는 자신을 마치 연인처럼 걱정해주는 기철을 보며 생각했다. 미국 지사장으로 발령 난 아버지와 외아들을 미국 명문대에 집어넣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는 엄마, 그래서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떠났고 사라는 남았다. 덕분에 동부이촌동의 아파트를 독차지해 살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는 고소득이어서 마음껏 옷과 화장품을 살 수도 있었다. 사라는 이제 겨우 대학 3학년이었고 그녀의 청춘은 즐거운 것이었다. 사라는 애인처럼 말하는 섹스파트너를 보며 이별의 예감을 느꼈다.

 

 

애증병존과 대리배설

 

연세대 90년대.PNG

 

가을 학기가 시작되자 사라는 인문대의 ‘문학과 인간’을 수강 신청했다. 미대 과목은 실기가 많아 준비할 것도 많고 숙제도 많아 귀찮았다. 그래서 전공과목은 최소로 신청하고 인문대 교양선택 과목을 신청했다. 강의실로 한지섭 교수가 들어왔다. 그 순간 사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지섭 교수는 전봇대처럼 길쭉하고 마른 몸매에 얼굴은 존 레논을 닮았다. 오똑하게 솟아있는 콧날에 걸쳐진 무테 안경은 왠지 세디스틱한 이미지를 풍겼다. 강의가 시작됐다. 그의 목소리는 크고 기름지고 낭랑했다. 사라는 그가 섹시하게 느껴졌다.

 

“‘백경’ 역시 사랑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주인공 에이허브 선장이 흰 고래 모비딕에게 퍼붓는 미칠 듯한 적개심은 바로 사랑의 다른 한 면이지요. 극단적인 애정과 극단적인 증오는 언제나 서로 통하게 되어 있어요. 이런 걸 애증병존, 또는 양가감정(兩價憾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라의 기대에 걸맞게 한 교수의 강의는 확실히 달랐다. 그는 문학이란 결국 인간학이고 인간이란 동물이기에 식욕과 성욕이 삶의 실존적 근거가 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문학은 결국 사랑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모비딕’조차도 사랑이야기라고 말했다. 모든 문학은 사랑의 욕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적 욕구를 글로 풀어 쓴 것이라고 했다.

 

“이 사회는 여러 가지 윤리적 금기와 위선적 도덕률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껏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만들고 있어요. 예술가들은 특히 정열적인 성품을 타고 난 사람들이라서 성욕이 강하기 마련인데, 그걸 제대로 풀 수 없으니까 글로라도 대리배설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한 교수의 강의에 사라는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강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사라는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한 교수’가 아닌 ‘한지섭’이라는 남성의 흡입력이었다. 사라는 초미니스커트에 노팬티로 강의실 맨 앞에 앉은 자신을 상상했다. 한지섭 교수와 눈이 마주친다면 다리를 벌릴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한지섭 교수의 시선을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고정시키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 자신의 음모를 붉게 염색할 생각도 했다.

 

 

두 남자의 오럴

 

사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청담동의 거창한 고급 비밀 룸살롱으로 아르바이트 장소를 바꿨다. 나이트클럽에 나간 지 1년이 되다 보니 붙박이 댄서처럼 되었고 고정 손님들이 많아졌다. 기분내키는대로 불쑥 바람피우는 맛이 없어진 것이다. 사라는 새로운 곳에서 편하게 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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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이곳에서 ‘김철’을 만났다. 룸살롱에서 일해 본 여자들은 알 것이다. 세 명의 남자가 들어오면 그 속에는 물주와 빈대가 있다는 것을. 재벌 2세들 같은 귀족집 자제들 속에 건달 예술가 같아 보이는 한 남자가 끼어 있었다. 빈대족임에 틀림 없었다. 사라는 물주로부터 그 남자가 언더그라운드 가수라고 소개받았다. 그가 김철이었다. 그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 사라는 반했다. 그것은 한지섭 교수의 강의에 사라가 반한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반한 건 김철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에게 반한 김철은 구애를 시작했다. 사라는 김철이 노래하는 카페로 가 술을 마시고 그의 하숙방으로 갔다. 김철은 간절하게 사랑한다고 첫눈에 반했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같이 살자고 했다. 돈은 사라가 잘 버니까 자신은 살림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라는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왠지 그의 말대로 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라의 미소를 본 그는, 그녀 앞으로 엎으러지더니 옷을 살금살금 부드럽게 젖혀내고서 사라의 젖꼭지에 정성껏 키스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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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BS>

 

핥는 솜씨가 대단했다. 정말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뒤져가며 정성껏 핥아준다. 아주 부드럽다. 아주 달콤하다. 이런 남자라면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지섭 교수가 입으로 떠들어대는 오럴, 그리고 김철의 혓바닥 오럴, 두 남자의 오럴 앞에서 사라는 즐거웠다. 사라는 한지섭 교수의 3학점짜리 강의 하나를 더 신청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청담동으로 출근했고 또 일주일에 한 번은 김철을 만났다. 그렇게 1년 정도 남은 사라의 학창 시절이 바쁘게 바쁘게 흘러갔다.  

 

 

한 교수의 연구실에서 사라의 침실로

 

소파 위에 걸터 앉으려니까, 지독하게 짧은 길이의 내 미니스커트가 우지직 위로 땡겨 올라간다. 허벅지가 치골 언저리까지 온통 다 드러났다.

 

한지섭 교수는 중간고사를 건너뛰고 기말고사만 보겠다고 했다. 그것도 시험이 아닌 레포트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레포트는 자유로운 창작물이었다. 사라는 기똥차게 섹시한 리포트를 썼다. 그것은 한지섭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떠올린 관능적인 상상들이었다. 사라는 사랑이 아닌 승부욕 때문에 한지섭 교수를 유혹하기로 했다. 한지섭 교수의 연구실 소파에 작정하고 짧게 자른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앉은 사라는 자신의 레포트와 허벅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한지섭 교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내 젖꼭지를 탐식한다.

 그가 내 입술을 탐식한다.

 그가 내 배꼽을 탐식한다.

 그가 내 귓불을 탐식한다.

 그가 내 코를 탐식한다(내 코가 너무 작아 조금 창피하다. 아마 별로 맛이 없었을 게다).

 

이후로 몇 번의 공과 사가 섞인 만남이 이어졌고 둘이 만나는 장소는 어느덧 사라의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다. 한지섭 교수는 사라의 아파트에서도 사뭇 명령조로 말했다. 맥주를 가져오라든지 하는 모든 요구가 명령조였다. 사라의 생각보다 그는 유약하지 않았다. 사라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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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검은손>

 

나는 정신없이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는 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내 마음은 마치 에드벌룬을 탄 것처럼 허공을 날고 있었다.

 

 

사랑의 원칙

 

사라가 한지섭과 사랑놀음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가 있는 동안 어느덧 새해가 다가왔다. 새해가 되면 사라는 4학년이 된다. 그는 사라에게 거미와 같은 존재였다. 진정 한 마리의 독거미였다. 끈끈한 점막으로 사라의 온몸을 움켜잡았고 사라는 벗어날 수 없었다. 사라는 즐겁게 그의 먹잇감이 되었다.

 

내 조그만 입과 목구멍이 그의 우람한 페니스로 가득 찰 때, 나는 금방이라도 질식해 죽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는 내가 숨이 막혀 헉헉거릴 때면, 페니스를 끝까지 몽땅 목구멍 속에다가 집어넣지 말고 그냥 핥기만 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의 페니스를 일부러 목구멍 깊숙이까지 꾸역꾸역 욱여넣는 경우가 많았다. 죽음의 쾌감이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라는 것을 나는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사라는 밥 먹을 때도 그를 생각하며 먹었고, 혼자서 똥을 눌 때도 그를 생각하면서 누었다. 그리고 김철의 생각은 점점 까마득한 기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라는 한지섭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곧 졸업반이 되는 그녀는 주변으로부터 심심치 않게 결혼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라는 한지섭과 결혼까지 간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결혼만은 안 돼. 그것은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한지섭의 사랑의 원칙은 단호했다. 그는 어두운 음색으로 결혼이 사랑을 끝장내고 둘을 후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의 말대로 선을 긋고 간격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좀 더 오래 가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라는 그 말고 몇 명의 애인을 더 두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물론 김철도 다시 떠 올렸다.  

 

 

KS 마크의 신랑감

 

사라에게도 3학년과 4학년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막상 4학년이 되고 보니 심심치 않게 같은 과 친구들의 입에서 약혼이니 결혼이니 하는 말들이 나왔다. 사라는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골치가 아파질 때쯤 되면 사라는 청담동으로 출근했다. 돈도 벌고 술에 취해버리면 기분 좋게 스트레스가 풀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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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사라가 ‘노주형’을 만난 것은 실기실에서였다. 사라는 숙제를 하루에 해치우려고 실기실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실기실에는 ‘미애’도 있었다. 미애는 완벽한 순결지상주의자에 결혼지상주의자였다. 돈도 그럭저럭 있는 집의 외동딸인 미애는 꽤 예쁜 얼굴에 언제나 생머리였고 옷들도 항상 단정하고 우아하게 입고 다녔다. 한마디로 청순한 여대생의 표본 같은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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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건축학개론>

 

미애는 4학년이 되자마자 약혼을 했다. 상대는 스물아홉 살의 미남이자 상당히 큰 회사의 사장 아들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미애의 약혼자를 가리켜 ‘KS 마크의 신랑감’이라고 했다.

 

늦은 밤의 실기실로 미애의 약혼자가 찾아왔다. 밤이 너무 늦었다며 미애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미애는 자랑스럽게 사라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의 이름은 ‘노주형’이었고 모델을 해도 될 정도로 괜찮은 외모를 가진 미남이었다. 미애가 자랑할 만했다. 셋은 미애의 제안으로 함께 카페로 갔다. 사라는 미애와 노주형이 노는 꼴이 꼭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아 왠지 속이 메슥메슥했다.

 

나는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신선한 설레임이, 알근달근한 취기와 함께 내 아랫배 근처를 감싸고 돌았다. 나는 오른발을 들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노주형의 허벅지 위에다 올려놓았다.

 

 

두 병신과 외로운 사라

 

KS 신랑감은 사라의 생각보다 훨씬 쉽게 넘어왔다. 다음 날 아침 바로 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는 사라에게 만나달라고 간청했다. 사라는 일부러 평소보다 더 선정적인 옷을 입고 자신이 일하는 룸살롱에서 노주형을 만났다. 그는 술을 따르는 사라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었다. 사라는 속으로 그가 웃기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KS 마크 신랑감과의 결혼이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사라에게 세계는 넓고 남자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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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

출처-영화<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어느 날, 사라는 학교에 가려고 아파트 문을 나서다 우편함에 꽂힌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보기 드문 진짜 편지였다. 반가운 마음에 손에 쥐어보니 겉봉의 발신인 란에는 ‘한지섭’이라고 씌어 있었다. 사라는 몹시 궁금해서 후다닥 겉봉을 뜯고 편지를 읽었다.

 

언제라도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겠다고 사라는 약속했어. 이제 그 리포트를 내주겠어. 과제는 이거야. 앞으로 사라가 내 앞에서 절대로 얼씬거리지 않기. 전화도 안 하기. 물론 나도 사라를 귀찮게 하지 않겠어.

 

사라는 멍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강의실 안이었고 T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었다. 항상 사라를 째려보던 교수였다. 사라가 T교수의 입술이 마치 부풀어 오른 대음순처럼 흉하다는 생각을 할 때 강의가 끝났다. 다행히도 이것이 T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T교수는 사라를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다.

 

T교수는 사라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다. 그리고 자신의 조교가 되라고 했다. 자신이 꼭 사라를 유명 화가로 키워주겠고 말했다. 사라는 T교수의 눈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교수의 눈빛이 점점 몽롱해지는가 싶더니 맥주 한 잔을 제안했다. 술 한잔하며 천천히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사라는 혐오스러웠다. 교수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졸업을 위해서는 그의 학점이 필요했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고 그의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온 사라는 독한 술 서너 잔을 마셨다. 한지섭의 이별 통보, 그리고 두 남자의 행동을 떠올렸다. KS 신랑감은 단 한 번의 간단한 유혹에 빠져 약혼녀를 두고도 룸살롱에서 술을 따르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T교수는 평소에 자신의 옷차림 등을 못마땅하게 보면서 근엄한 태도를 보이더니 느끼하고 징글맞게 질퍽댔다. 사라는 두 병신같은 남자를 잊기로 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한 사라는 거울 앞에 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왠지 신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입을 벌리고 웃으려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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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외로워 미치겠네...... 이 뜨거운 몸뚱아리를 통째로 먹어 치울 놈 좀 없나...!”

 

이것이 사라의 입술에서 웃음 대신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이었다.

  

 

위선에 저항할 때 즐거워지는 인생

 

1년 전쯤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철나자 망령들 놈’이란 저주를 듣고 산 인생이라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0평 내외의 경기도 구축아파트들을 보러 다녔습니다. 30년쯤 된 주공아파트를 구입했습니다.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 주차장이 없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과 동 사이의 공간이 넓어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이 주는 특유의 답답함이 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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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부동산>

 

도배 장판 견적을 위해 빈집을 방문했을 때 베란다에 깔려 있는 푹신한 폼매트를 보았습니다. 꽤 깨끗해 보였지만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 매트를 들춰봤습니다. 바닥 상태가 안 좋으면 큰맘 먹고 밝은 그레이 색의 예쁜 타일을 깔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매트를 들춘 순간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겉보기엔 깨끗해 보인 매트였지만 그 속에는 개털이 먼지에 뒤엉켜 있었고 군데군데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퀴벌레들이 후다닥 하고 튀어나와 어두운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욕지기가 나왔습니다.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위선적으로 고착된 도덕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문학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인격이나 가치관을 저울질해 보려는 태도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사회적 입지를 위축시켜 그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들어버리기 쉽다.” 

 

- 마광수, ‘즐거운 사라, 작가의 말 中’ -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근엄한 나라입니다. 농경 시대, 중국으로부터 유교를 수입했지만,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나라입니다. 일례로 ‘동성동본 금혼법’을 중국은 1908년에 폐지했지만 우리나라는 2005년이 되어서야 폐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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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신해철

 

“삼국~고려 시대까지 국내혼이었다가 중국에서 수입되어 조선 후기에 확립된 제도이다. 따라서 미풍양속이란 소리는 개소리다. 이미 중국은 1908년에 폐지된 규정을 우리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

 

 - 신해철, NEXT 3집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수록) 앨범 자켓 中 동성동본 금혼법을 비판하는 글-

 

이 근엄함이 욕지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것이 진짜 근엄함이 아니고 오히려 음란함을 감추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음란함 마저도 빈부와 권력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허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들게 하는 위선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의 명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것입니다. 재벌 회장,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 그리고 언론사 주필이 비밀 요정에 모여 음탕한 섹스 파티를 벌이는 장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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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근엄하고 속으로 음란한, 지독히도 위선적인 사회입니다. 그리고 이 위선은 민중들은 개돼지라 섹스마저 허락받은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가장 음탕한 기득권들의 통치 수단이기도 합니다. 만약 위의 말이 영화 속 장면일 뿐이라며 반박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자거나 두개골 속에 뇌 대신 지고지순한 순백의 순두부가 들어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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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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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독재란 윤리를 억압하는 것’이고 이 윤리에서 기득권은 제외됩니다. 국가나 권력, 그리고 사회가 우리의 아랫도리까지 간섭하는 오지랖을 부린다면 그것이 독재입니다. 윤리의 탈을 쓴 비열한 통치행위일 뿐입니다. 음란할 ‘자유’와 섹스의 ‘민주’는 그들에게만 허락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위선에 맞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Pornhub(뽀른헙)’과 ‘일베’, 누가 더 우리 사회에 해악이 되고 있습니까.

 

저항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합니다. 저항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일깨워줍니다.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고 느낄 때 그리고 높아지는 자존감을 경험할 때, 인간은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사라의 인생이 즐거운 이유입니다. 위선에 저항했기에 사라의 인생은 즐거운 것입니다. 저항이 우리의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삼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시인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로 서른일곱 번째 인생탐구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왕궁의 음탕’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마광수 교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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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광수 교수

출처-<청년의사>신문

 

 

 

즐거운 사라에서 한지섭 교수가 강의한 소설 '모비딕'의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은 '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 1: 소설 모비딕 - 실패한 인생의 가치(링크)'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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