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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D8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 <누벨 스타>


<누벨 스타(Nouvelle Star)>는 '새로운 스타'라는 뜻. 프랑스 TV 8번 채널인 D8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일반인 중 잠재력 있는 새로운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M6의 <새로운 스타를 찾아서(A la recherche de Nouvelle Star)> 프로그램을 전신으로 한다. M6의 방송이 프랑스 최초의 오디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수많은 이들의 워너비였던 것에 비하면 그 파급력이 현저히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누벨 스타>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챙겨 보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물론 여기에는 프랑스 TV 프로그램들이 지독히도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 크게 기여한다.


2월 16일, <누벨 스타> 새 시즌이 막이 올랐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한국인 유학생 김덕환(19) 군이 참가했으며, 이 방송이 현재 적지 않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한 프랑스인은 온라인 청원(링크)을 넣기도 했다. 대부분 심사위원들의 태도가 적합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악마의 편집이 다들 그러하듯, 솔직히 웃기긴 하다. 단, 조롱의 이유가 참가자가 노래를 잘하지 못 해서뿐만 아니라 참가자의 출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나 싶다.


우선 영상을 보고 이야기하자.



‘누벨 스타’에 출연한 한국인 유학생 김덕환 군


심사위원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방송의 분위기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대화의 상당 부분이 말이 아니라 표정이나 몸짓 등의 신체언어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본래는 자막 작업까지 해 보려고 했으나, 본 필자에게는 그런 고급 기술 따위 장착되어 있지 않음을 신속하게 인정, 그냥 누군가가 해 놓은 것을 붙여 넣었다. 내가 사는 곳이 프랑스인지라 이 영상에 대한 접근이 불가하다. '저작권상의 이유로 해당 국가에서 차단한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다는 문구가 앞길을 막는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음을 밝혀 둔다. 뭐, 알아서 잘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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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링크를 클릭했을 때 필자가 만나게 되는 화면


장면 1. 등장


한국인 참가자 김덕환 군이 등장한다. 미소를 띄고 있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김군의 등장에 상당히 오묘한 배경음악이 깔린다. 서양 세계에서 아시아 국가들을 떠올릴 때 나올만 한 '이국적'인 음악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번 참가자를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 절대 참가자의 노래 실력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님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다년간 보아온 시청자는 단번에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김군은 한국어로 인사와 자기 소개를 한다. 그 때 깔리는 찬바람, 심사위원의 정적. 그렇다, 이번 코너의 장르는 확실히 유머다.


장면 2. 자기 소개


정적을 깬 것은 피아니스트 앙드레 마누키안(André Manoukian). "보통은 ‘봉쥬르’로 시작하는데 말이죠." 그러자 김군이 프랑스 식으로 다시 인사를 한다. 심사위원들은 김군이 방금 한국어로 뭐라고 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김군이 ‘김덕환’이 아니라 (한국어 발음이 어려울 심사위원들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식으로 ‘뒤캉 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김군의 이름 따위는 프랑스 심사위원들에게 ‘칭챙총(필자 주: 서양 세계에서 중국어 및 중국인을 조롱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에 불과하다. 맨 왼쪽에 앉은 막말로 유명한 래퍼 겸 영화배우 조에스타(JoeyStarr)는 아예 "그냥 ‘뤽’이라고 부를게."라고 말한다. 그에 심사위원들이 빵 터진다.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김군이 "영어 식으로 ‘덕(Duk)’이라고 부르세요."라 말한다. 그제서야 심사위원들이 "아! 덕~"이라며 안심 아닌 안심을 하고, 배경음악으로는 오리의 ‘꽥’ 소리가 깔린다. 이 정도면 편집 방향, 확실하다.


장면 3. 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앙드레 마누킨이 "K-pop을 부를 건가요?"라 묻는다. 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K-pop은 프랑스에서도 여러 번 방송을 탄 적이 있다. 프랑스 역시 싸이의 <강남스타일>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단, 그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강남스타일>은 프랑스에서는 음악적 가치가 없는 그냥 '웃기고 유치한 노래' 정도로 각인되어 있다. 계속되는 비아냥.


김군은 에디트 피아프의 <Je ne regrette rien(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를 부른다. 김군이 노래 첫 소절인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을 부르자, 앙드레 마누키안은 "나는 조금 후회되네요."라고 말한다. 김군의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소절만에 노래를 중단시킨 것은 조에스타.


장면 4. 평가


조에스타는 "당신이 TV에 나가게 될 것은 확실한데,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림은 아닐 것 같군요."라 평한다. 2004년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이제껏 앨범 한 장 내고 별 가수 활동 없이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는 엘로디 프레제(Elodie Frégé)는 "목에 프랑스 요리가 잘못 걸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소리가 참 이상하게 난다."고 말한다. 김군은 고맙다고 했고(!), 네 명의 심사위원은 만장일치로 불합격을 주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김군이 나가자마자 조에스타는 "나 아까 정말 일어나서 무릎으로 쟤 거시기 있는 곳을 한 대 패 버리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뒷맛이 썼다. 그리고 이 사건을 글로 쓰겠다고 마음 먹기까지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과연 이 빡침이 그저 나와 같은 한국인이 프랑스 방송에서 저런 식으로 조롱당했다는 사실에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런 부분이 없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음을 밝힌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글로 내 생각을 딴지 독자들과 공유해 보기로 한다.


프랑스 전역으로 송출되는 TV방송에서 연출된 해당 장면은 타문화에 대한 무식에서 비롯된, 비상식적이고 인종차별적 혹은 문화차별적 모습에 다름 아니다. 김군이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잖아요."라고 하자, 끝없는 자부심과 뿌듯함을 전혀 감추지 않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의 출신지인 한국에 대해서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식과 무관심을 여과없이 보여 주었다.


이와 같이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상이 ‘아시아계’였기 때문이다. 만약 참가자가 흑인이었다면? 심사위원도, 프로그램 제작 측에서도 감히 "그럼 레게를 부를 건가요?" 혹은 "민속 음악을 보여 줄 건가요?"과 같은 질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종차별, 특히 흑인과 아랍인에 대한 차별은 꽤 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기에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를 분명 잘못이라 못 박아 두고 있다.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한 법 조항은 1881년 이래 존재하고 있으며, 최근 프랑스의 TV 프로그램 진행자 에릭 제무르(Eric Zemmour)는 무슬림 혐오 선동 발언으로 3,000유로(약 4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진 바 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인종(race)'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을 아주 무식하고 잘못된 것이라 본다. 대신 '출신(orig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프랑스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은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다만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은 신기하리만치 대수롭지 않은 농담 정도로 넘어간다. 나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아시아계 여성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길을 가다가 "니하오" 혹은 "곤니치와" 하며 기분 나쁘게 배실거리며 말을 거는 남성들의 수작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하면 뒤에서 양 눈 끝을 잡아 째진 눈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노란 면상(Gueule de citron)"이란 소리를 들어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 더욱 큰 충격은, 친구들에게 이러한 에피소드를 말하며 인종차별적이라고 했더니 '그저 장난인데 네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항상 난리를 치기에 내 주변 사람들은 이제는 덜 하지만, 나를 알게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있어 아시아계에 대한 총칭은 그저 ‘중국인’이었다. 동의어 사전을 제공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링크)에서 ‘아시아인’의 동의어로 아주 당당하게 ‘중국인’을 내어놓고 있음은 이제는 당연한 일인 것 같이 여겨지기까지 하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시선을 바라보자. 당장 구글 프랑스에 'asiatique(아시아인)'을 검색했다. 무슨 테마파크 사진 말고는 아시아 여성이 헐벗고 유혹적인 눈빛을 던지거나, 서양인 남성이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혐오음식을 먹으며 찡그리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프랑스어권에서 아시아계를 어떻게 바라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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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프랑스 이미지 검색 결과 'asiatique(아시아인)'
(검색 일자: 2016년 2월 23일 오전 00시30분)


보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흑인(noirs)'과 '마그레브(Maghrébin.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를 총칭)'를 검색해 본다. 'noir'는 '검정색'을 뜻하기도 하는 탓에 검정 고양이도 같이 나온다. 두 경우 모두 아시아인을 검색했을 때보다 훨씬 덜 차별적이며 정치적으로 문제가 덜 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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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프랑스 이미지 검색 결과 '흑인(noirs)'
(검색 일자: 2016년 2월 23일 오전 0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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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프랑스 이미지 검색 결과 '마그레브(Maghrébin)'
(검색 일자: 2016년 2월 23일 오전 0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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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프랑스 이미지 검색 결과 '아랍(Arabe)'
(검색 일자: 2016년 2월 23일 오전 00시30분)


혹시 모르니까 내친 김에 '아랍(Arabe)'까지 검색해 봤다. 모두 프랑스어권 구글 사용자들이 지니고 있는 대상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투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꼬여 있는 것은 아시아인에 대한 것이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프랑스 사람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저 시덥잖은 농담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를 차별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프랑스 사회다.


도대체 왜일까? 프랑스 사회에 아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은 관계로 제대로 논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프랑스 통계청의 2008년 조사 결과(링크)에 따르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들의 8.4% 가량이 이민자이다. 출신 대륙 별로는 아프리카가 42.5%, 유럽이 42.5%, 아시아가 9.7%(필자 주: 2008년 당시에는 터키를 아시아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이를 유럽으로 수정한 수치임을 밝힌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른바 마그레브 3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옛 식민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서 온 이들의 비중은 전체의 20% 가량으로, 보통 아랍인이라 불린다. '검은 아프리카'로 불리는 지역에서 온 이들의 비중이 전체의 12.5% 가량이다. 사실상 이민자 통계 수치로만 보면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비슷해 보인다. 단, 프랑스 이민의 역사를 감안할 때 프랑스 국적 취득자 출신까지 디벼 보면 그 차이는 더 많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혹은 생활방식의 차이일까? 아시아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계의 경우, 많은 이들이 차이나 타운을 형성해서 살아 간다. 그들끼리의 삶이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유교의 영향인지 대부분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건다. 정확한 통계 자료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프랑스 통계청의 2014년 조사 결과(링크)에 따르면 EU 이외의 지역 이민자들의 고졸 학력은 전체의 29.6%에 불과하다. 프랑스 국적자는 45.2%. 그 이하의 학력은 42.5%에 육박한 반면, 전문대 이상의 학력은 19.4%로 프랑스 국적자보다 3% 가량 높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시아계들이 후자에 포진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그렇게 많은 아시아계들은 자기 목소리를 힘차게 내기 보다는 어서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는 것에 보다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튀지 않으면서 조용히, 하루 바삐 신분 및 계급 상승을 위해 지금껏 달려 온 아시아계의 현실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필자 주: 이 파트는 솔직히 필자의 사견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다. 보다 정확한 자료 혹은 이견을 환영한다).


여기까지 글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얼마 전 한국 유학생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그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모두 추방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순간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의 삶이 한국에서의 외국인에 투영되어, 너도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내게 "우리는 착하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 극우정당이 집권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착한' 아시아계는 별반 피해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래, 우리는 착하다. 별 반발 없이, 별 말 없이 사회에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아가기에 우리는 착하다. 아니다, 프랑스에서 아시아계는 그저 흑인과 아랍인에 묻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에게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나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씨알도 안 먹혔다.


언제까지 서양 세계에서 아시아인은 조롱받아도 웃고 넘어가는 '착한' 외국인으로 남아 있을까?




아까이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