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생후 50일이 채 되지 않은 따님께서 윤허해주시는 내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 남짓.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 주어진 2시간 반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다. 육아를 하면서 4시간 수면을 취하면, 체력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된다. 잠깐이라도 숨 돌릴 틈이 생기면, 머리는 점점 바닥으로 기울고 말 그대로 기절한 나를 마주한다.

 

주변에서 익히 봐온, 예상했던 상황이라 글 쓸 시간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실제로 육아만으로도 24시간이 부족하고 지난 연재를 끝내면서(나의 삽질 연대기 14(完): 건설 현장에 들어오려는 이들에게-링크) 소중한 댓글에 감사하며, 아쉽지만 당분간 딴지에는 못 들어오나 싶었는데... 

 

아. 몸이 피곤하다고 가만히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 나이 쉰이 넘어 어지간한 일은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폭력단원이다. 내 나이 오십에 집단 폭력 단원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내 밥벌이 주무 부처 장관이 우리를 그렇게 규정했다.

 

우리는 폭력단원

 

unnamed.jpg

출처 - <SBS>

 

2018년 건설업계에 처음 발을 들이고 지금까지, 황당하고 어쩔 땐 겁나는 일들을 꽤 많이 겪었다. 휴일 없이 달려 완공했던 날, 사장이 '회사 경영의 긴급한 사유'를 이유로 들어 두 달의 임금이 체불될 것이라 말했다. 다음 날 사장의 아내는 벤츠 신형 SUV를 끌고 현장에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난 바로 사장을 박아버리고 퇴사했다.

 

나는 여한없이 그 팀을 관뒀지만, 나와 친하게 지내던 동네 형님은 "내 나이는 이제 잘 안 받아 준다."며 그곳에서 계속 일을 했다. 계속해서 임금 체불이 발생했고, 형님은 팀장에게 생계가 곤란하니 임금을 달라고 호소했다. 팀장은 월급을 줄 여유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도 여유가 없어~ 지금까지 사채 땡겨서 준 거야."

 

2021년, 임금을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형님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도 안 되게 들리지만 이런 형태의 임금 체불, 건설 현장에서 흔하게 발생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건설 현장에서는 근무한 월(月)에서 35일이 지나서야 임금을 지급했다. 그러니까 1월을 풀로 일하면, 1월 임금이 들어오는 날은 3월5일 경이었다. 이 정도는 체불 카테고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임금뿐만이 아니다.

 

unnamed (1).jpg

 

위 사진은 건물 외부 작업을 위해 설치하는 비계다. 그런데 안전 난간대가 하나도 없다. 10층 높이니까, 30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작업을 하는데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오른쪽 가운데 부분을 보면 파이프가 거푸집에 거의 맞닿아 있다. 저걸 떼어내려면 몸을 살짝 뒤로 젖히거나 옆으로 틀어야 거푸집 앵글에 걸리지 않는다. 안전 난간대는 물론 안전 로프도 없는데 30미터 위에서 목숨을 건 곡예를 해야 하는 현장이었다. 물론 노조에 가입한 뒤로는 이런 현장에서 일한 적 없다. 사실 위 현장은 지나가다가 발견하면 관할 구청 민원실에 고발해야 하는 건이다.

 

이런 일을 나만 겪었을까?

 

민주노총 내에서도 건설노조는 조합원의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타 산별은 신입을 뽑지 못한 지 꽤 되었고, 정년 퇴직자들만 늘어나고 있어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조직된 '건설' 노조가 먼저 맞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했던 일이다.

 

원희룡이라는 정크본드 1

 

무엇보다 작년 가을, 윤석열 정부와 그의 수하, 김진태 강원도지사 덕분에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큰 고초를 겪을 뻔했다.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이다. 그것도 '지자체'가 '흑자' 기업을 말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 채권은 한 방에 정크본드가 되어버렸다.

 

unnamed (2).jpg

출처 - <연합뉴스>

 

그 여파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도 이어졌다. 보통 건물을 올리기 전, 한참 땅을 파고 지하층을 완성할 때까지는 대체로 자금 사정이 안정적이다. 그러다 공사가 중반을 넘어서면, 여기저기서 돈을 당겨와야 나머지 층을 올릴 수 있다.

 

대부분의 건설 회사들은 위 과정을 프로젝트 파이낸싱(금융기관이 보증 없이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왔다. 그런데 김진태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리가 급격한 수준으로 올라버린 것이다. 울산의 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대우 건설이 440억을 포기하면서까지 건축을 포기, 철수하는 사태가 있었다.

 

하루 수면 4시간 미만. 수면이 부족하다보니 티비를 볼 때, 비몽사몽한 경우가 많다. 눈은 뜨고 있어도 뉴스 절반 이상을 흘려듣는다. 이날도 앵커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눈을 부릅- 뜨게 만든 뉴스가 있었으니 바로.

 

unnamed (3).jpg

출처 - <YTN>

 

일도 안 하고 돈을 2억씩이나 받는다는 내용이 되겠다.

 

올해 서울·경기·인천 지역 노조 소속 팀장의 하루 일당은 30만 5천 원이다. 자, 여기서 계산기를 한번 꺼내보자. 2억을 30.5만 원으로 나누면 며칠이 될까?

 

655.7377

 

365일 중 655일 근무... 말이 안 되는 계산법으로 수작을 벌이고 있다.

 

655라는 숫자를 도출하기 위해선 7시가 아니라 6시부터 일하는 '조출', 점심시간에 휴식 없이 일하는 'OT', 저녁 7시까지 일하는 '연장', 그리고 9시 반에서 10시까지 '야근'이 주야장천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돌아가는 건설 현장들, 거의 없다.

 

국경일과 명절을 제외하고 건설 현장 휴지기라고 볼 수 있는 장마철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건설 노동자가 일 년에 최대로 일할 수 있는 건 240일이 안 된다. 로또 맞을 확률로 있는 위와 같은 현장 하나를 예로 든 것이다.

 

원희룡 장관이 열을 올렸던, 연봉 2억이라는 부분. 예전부터 건설 현장에는 저 정도로 버는 분들이 있다. 참고로 여러 건설 현장에 목수들을 공급하는 대장들에게 연 수입 2억은 그해 사업 망한 거나 다름 없는 수준의 돈이다(그러니까 이걸 직원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외국인 구성의 거푸집 해체 팀장들은 일 년에 최소 5억씩 벌었고 지금도 벌고 있다.

 

노조 소속 팀장이 되려면 일단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2022년 시험 합격률은 10% 조금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험 통과 후 꽤나 지리한 과정의 교육을 받아야 팀장 직급을 달 수 있다. 교육의 주된 내용은 현장 실무와 HR 담당자 기초 교육. (노조 소속 팀장의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 바로, HR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 당의 강원도지사께서 올려놓은 금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원희룡이라는 정크본드 2

 

화면 캡처 2023-03-27 145228.jpg

출처 - <경향신문>

 

2019년부터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현장 작업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때 즉시 '작업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관리자는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묻지 못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 생존권을 포기하고 작업을 진행한 타워크레인 기사들, 결국 인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원희룡 장관님은 노동자 안위보다 보도 과정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하다.

 

건설 현장은 순간적, 국지적 돌풍이 부는 경우가 많다. 건축물을 올린다는 말은 바람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고, 그 속도가 바뀌게 되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니 국지적 강풍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지사. 현장에는 바람을 대비한 장치를 미리 준비한다.

 

unnamed (5).jpg

 

사진 속 회색 거푸집이 알루미늄 거푸집(현장 용어 '알폼')이다. 알폼 뒤에 있는 것이 사고가 난 갱폼이다. 아파트같이 반복되는 구조가 계속 올라가는 건축물 외부를 감싸는 거푸집으로 크기가 꽤 크다. 그러니 당연히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현장에선 알폼 앞에 파이프로 고정하고 당김줄로 앞뒤, 양쪽에서 갱폼을 고정하고 작업을 한다. 사진을 보면 위쪽에 쇠로 된 금속 재질의 와이어가 있다. 그게 당김줄이다. 저 작업을 해놓지 않으면 벽체가 통으로 넘어지고, 벽체가 넘어질 때 사람이 지나가면 바로 사망사고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고 현장은 구조물이 붙어 있어서 갱폼이 크레인 운전석과 바짝 붙어 있던 곳이다. 그 상황에서 안전과 관련된 상황 판단은 누가 해야하는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 아니면 타워 기사?

 

그런 판에 법정 속도만 따지는 주무 부처 장관님이라니.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유체역학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관이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만 골라오니 판이 저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겠습니다

 

거기다 한국인 건설 기술자들이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그래서 외국인 고용을 쉽게 하겠다고 한다. 그 결과 노조팀은 몇 달째 신규 현장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다. 나 또한 지난 2월 말, 현장에서 부당 해고를 당했다. 거의 20일간 제대로 된 현장을 구하지 못하다가 내 임금의 8% 이상을 팀장이 가져가는 일반팀에서 일하고 있다.

 

임금만 깎인 것이 아니라 국공휴일 수당이 없으니 실제로는 거의 30% 삭감됐다. 어찌 됐든 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수준은 되니까 참을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조합원들이다.

 

노조팀이 박살 나면서 내가 속한 지부에만 100여 명 넘게 있었던 여성 목수들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실질적 가장 역할을 몇 년 한 분들이 손가락만 빨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한참 돈 들어갈 나이에.

 

unnamed (6).jpg

 

없어진 것은 일자리뿐만이 아니다. 지난 정권 내내 조금이라도 진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었던 것들이 모조리 후퇴하고 있다.

 

조회 시간마다 외쳤던 구호

 

"우리는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겠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작업 거부권'이 구호의 근거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하면 타워 기사들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주무 부처 장관이 협박하는 것이다.

 

unnamed (7).jpg

출처 - <경향신문>

 

한때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경향신문 1면 기사다. 덕분에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지고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폭 강화되었다. 물론 충분하지 않지만, 나름의 진전이었다. 그렇게 쌓아온 노력을, 법을, 윤석열 정부가 모두 무력화시키고 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이 '중대재해법'이었지만 지금은 작업자만 처벌되고 있다.

 

작년에 돌아가신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가 조세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당분간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